일 년 전쯤인가.
친한 친구의 아들이 군 입대를 하고 얼마 안 되어 육군 병원에 입원 했을 때, 마침 함께 있다가 전화를 받게 된 친구와 경기도 모처의 병원을 같이 동행하게 되었다.
운동을 하다가 다리를 조금 다쳤다고 하니 큰 걱정은 없었으나, 음료와 빵이며 과자를 잔뜩 사들고 한달음에 내 달렸다.
면회 절차를 마치고 병원 2층까지 올라가서 환자를 보게 되었다. 약간 절뚝이긴 했지만 복도까지 마중을 나왔다. 걱정했던 다리는 다행히 큰 부상은 아니었으나, 더 심각해 보이는 건 좀처럼 걷히지 않는 그의 얼굴 어둠이었다.
이유인즉 차라리 병원이 좋다는 거다. 완쾌 되더라도 일주일 더 병원에 있고 싶다는 말 한마디를 어렵게 뱉는다. 그 걱정을 하느라, 같이 간 엄마 친구에게는 처음부터 인사 한마디 없이 유령 취급을 한 친구의 아들이 나는 아직도 괘씸하다. 안녕, 누구야! 하면서 다가가는 나를 쳐다보지도 않는다.
걱정이 되어 많이 아프냐는 나의 말에도 묵묵부답, 헤어지면서 빨리 나아서 건강 하라는 인사에도 눈 한번 안 맞추고 처음처럼 묵묵부답. 나 같으면 내 친구에게 내가 민망할 텐데, 그저 아들 비위 맞추기에만 급급한 내 친구. 이런...
우리 아들은 볼 것 없고 내 세울 것 없지만 인사 하나는 잘한다. 난 고게 사실 제일 예쁘다.
그런데 우리 아들보다 더 예쁜 내 친구 아들놈 하나가 있다.
그 아이 이야기를 하려니 정말 먼저 가슴이 아파온다.
그 아이는 재영이와 동갑이니까 군대에 갔거나 갈 준비를 해야 하지만, 자기의 방문을 자기의 마음만큼이나 몇 년째 안 열고 지냈다.
고등학교 다닐 때, 불량한 선배에게 심한 구타를 당한 다음부터 학교는 졸업도 안하고 방문을 걸어 잠가 버렸다 한다.
울고 부탁하고 사정하면서 방문을 열게 하고, 마음을 얻으려고 노력하지만 매번 그의 부모는 너무 지쳐갔다.
그 무렵이었다. 그 나이또래의 아이들이 대학교 진학이다, 군 입대다 하면서 현실의 문제들에 매달려 있을 때에도 자기 방안에서 나오지 않는 그 친구 아들의 이야기를 들은 건. 그리고 내가 그 친구 집에 놀러 갔을 때는 몇 년 사이에 처음으로 온 손님이라 했다. 이후 자주 놀러 갔지만 그 아들의 얼굴은 역시 볼 수 없었다.
친구는 그러한 상태의 아들이 과연 군대에는 갈 수 있겠으며, 간다고 해도 도저히 적응을 못할 거 같아 병무청에 상담을 했다.
상담 결과는 ‘그래도 신체검사는 해야 된다’였고, 아들은 자기를 잡아가든 가두든 마음대로 하라며 방안에서 문턱 넘기를 거부하고 있었다.
그 신검의 마지막 날, 주제넘게도 어렵게 설득하여 눈물 바람에 시야도 흐릿한 그의 엄마를 대신해서 두 모자를 싣고 병무청으로 출발했다. 그때 그 아이를 처음 보았지만, 어깨 밑으로 내려온 머리로 온통 얼굴을 가리고 있었다. 그러나 그 아이는 또박또박한 음성으로 ‘태워 주셔서 고맙습니다’하면서 차에 탔다.
그렇게 다녀오고 나서 전문병원에 입원도 하고, 지금은 통원 치료 효과가 있는지 많이 치유되고 있는 게 눈에 보인다 한다. 대중 버스를 타고 검정고시 학원에 다니고, 때로는 운동 삼아 근 한시간을 걸어오기도 하면서 살도 많이 뺐다니. 자기의 소심함을 자책하고 도망간 자존심에 매달렸던 세월을 갑자기 없었던 것처럼은 아니지만, 꿋꿋한 의지로 조금씩 힘을 내고 있는 그 아이를 보면 참 대견하다. 볼 때마다 듣기 좋은 중저음의 목소리로 ‘안녕하세요’ 인사하는 그 녀석.
요 며칠 전에는 바쁜 엄마를 대신해서 반찬을 조금 갖다 주었더니, 친구와 둘이 이야기 하고 있는 안방 문을 빠끔 열고는 ‘맛있는 것 주셔서 감사 합니다. 잘 먹었습니다’ 한다. 나는 친구와 마주보고 미소 지었다.
사람의 심성은 정성스런 인사 안에 있는 것 같다.
사람의 좋은 심성은 진심어린 인사 속에 있는 것이 확실하다고 생각하고 있는데, 전화벨이 울린다.
강남 한가운데의 높고 넓은 집으로 이사 갔다고 놀러 오라는 친구. 그러나 나는 아들 입원비 때문에 전세로 집을 줄여서 간 친구네 집에 놀러 갈 거다. 그 집에는 인사를 진심으로, 정성스레 하는 아들이 있다. 잘사는 집에 진열되어 값을 따지는 어떤 보석을 좋아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나는 그 녀석이 귀하다.
그 녀석은 값을 매길 수 없는 최고의 보석이다. 나는 그 보석 보는 게 즐겁다. 내 눈에만 보이는 보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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