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열흘 밤 낮, 좋아 하는 것만 옆에 두고서 놀고 싶다’는 말도 안 되는 마음이 슬그머니 기어든다.
‘넘어진 김에 쉬어가야겠다’... 이러면서.
그러나 어떤 이유를 갖다 대도, 놀아야 하는 이유 보다는 일을 해야만 하는 이유가 강하므로 넘어진 김에 쉬는 것조차 내 것이 아니다.
부엌 바닥에 기름이 흘러 고여 있는 걸 모르고 갔다가 광속으로 미끄러졌다.
정신을 차리고 일어나 보니, 육중한 내 몸무게를 온전히 실었던 내 왼쪽 팔꿈치가 심상치 않다.
다 부서져 나가지 않았나 싶을 만큼 아팠으나 손톱만큼 뼈가 둥그러져 나갔다 한다.
다행인 것은 가만히 있으면 하나도 안 아프다.
그러나 지나는 작은 바람 같은 스침에도 놀라 자빠지게 통증이 올 때가 있다.
그래서 어떤 행동을 해도 은연중에 왼쪽 팔꿈치를 과보호하게 된다.
자꾸 그러다 보니 장애가 따로 없으며, 만약 평생 이렇게 아프다면 얼마나 힘들고 고달플까를 생각했다.
병원이라는 곳은 대체로 조용한 공기가 흐른다.
거기에서는 목소리조차 조금 낮은 기압에 편승한다.
주위를 둘러보면 행복의 조건은 무조건 건강뿐인 사람들.
내가 이제까지 누렸던 신체의 건장함이 하늘에 닿을 만큼 감사한 일은 분명한데, 처음으로 미안한 마음도 자리를 잡는다.
그날은 김수환 추기경님의 선종 1주년 되는 날이라고 병원 대기실 텔레비전에서 알려준다.
이상하게도 그분이 평생 펼쳤던 인간에 대한 사랑이라는 말이 ‘가는 비에 옷깃이 젖듯’ 서서히 내 가슴에 오더니 머릿속까지 채워버린다.
그것은 신자이건 아니건 상관없이 마음의 문을 열고 길을 만들어 놓는 것이었다.
그 길로 소리 없이 무언가가 들어온다.
인간에 대한 사랑이라는 것.
몇 달 전 전철에서 우연히 만난 여고 동창생이 “그래, 너 이름은 생각이 안 나는데 네 성격하고 그 점, 그리고 그 예쁜 눈 때문에 너 기억난다”고 했다.
그 말이 왜 유난히 잊히지 않는지.
더러운 성격은 돈을 뭉텅이로 얹어 준다고 해도 아무도 안쳐다 볼 것이고... 입술 위에 수박씨처럼 붙어 있는 점도 보기 거북하므로 아무도 관심이 없을 것이고... 그나마 그다지 예쁜지는 모르겠으나 시력하나는 괜찮다는 이유를 대며 사후 각막기증을 결심하고, 오늘 사랑의 장기기증 운동본부에서 보내온 엽서를 적었다.
매월 소정의 후원 금액은 결코 내가 남아돌아가게 돈을 벌어서가 아니다.
이렇게 저렇게 매월 머리를 굴리며 아껴도 항상 마이너스지만, 한달에 만원만큼씩 내가 안 먹고 말면 되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같이 체크를 했다.
마음의 문을 열고 그 길로 살포시 찾아오는 무언가를 느끼는 것이란, 결코 누가 시킨다고 되는 일이 아니며 대가가 있어서 하는 일도 아니다.
어느 날 그냥 온다.
사랑이 무언지 아는 날에.
줄 수 있는 게 이 노래 밖에 없다는 가수는 감미로운 노래가 있고, 줄 수 있는 게 이것 밖에 없는 나는 그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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