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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 살아가는 지혜, 낙자칠변(落子七變)

  • 편집부 기자
  • 입력 2010.05.12 17: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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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 원 섭
(경민대학교 교수)

정치에 뜻을 둔 사람이 자신의 뜻을 이루기 위해서는 ‘선거(選擧)’라는 가장 어렵고 힘든 관문을 반드시 통과해야 한다. 그것도 후보 당사자 한 사람만이 아니고 온 가족과 지지자들이 한 마음이 되어 그야말로 바늘방석 위에서 전쟁을 치루는 심정으로 긴 시간을 공 들여 저자거리를 돌며 바닥 민심을 얻어야 하는 것이다. 그 기간 동안은 피를 말리는 긴장감 속에서 노심초사하며 할 말은 많아도 참아야 하고 화나는 일이 있어도 속으로 삭히면서 미소를 잃지 말고 살아야 한다.

 

시작이 있으면 반드시 끝이 있는 법. 선거가 끝나면 당락이 결정되고 희비는 갈린다. 민심을 얻어 당선된 사람은 승자로서 새 출발을 하게 되지만, 민심을 얻지 못한 사람은 한 동안 실의에 잠겨 그 고통에서 쉽게 헤어나기 힘든 게 보통이다.

 

그러나 항상 회자되는 말처럼, 승패는 늘 일어나는 일이라 언제든지 뒤바뀔 수 있으니 이겼다고 기고만장하거나 졌다고 낙담할 이유가 없다. 이왕 정치를 하겠다고 마음을 먹었다면 다음 번에는 민심의 선택을 받을 수 있도록 열심히 노력하면 되기 때문이다.

 

선거를 앞 둔 정치인의 마음은 입시를 앞 둔 수험생의 심정과 다를 바가 없다. 옛날부터 입신출세의 관문인 과거를 치르는 수험생을 거자(擧子)라 했다.

 

청나라 초기에 무려 여섯 번이나 과거에 낙방을 했던 포송령(蒲松齡:1640~1715)은 자신이 겪은 일을 바탕으로〈요재지이(聊齋志異)〉라는 소설을 썼는데, 무릇 과거를 보는 자의 몰골이 일곱 번이나 바뀐다고 적었다.

 

시험장에 들어갈 땐 발이 무거운 거지 몰골이요, 몸수색을 받을 땐 죄지은 죄수 몰골이며, 칸막이 해놓은 방에 들어앉으면 바깥을 기웃거리는 새끼 벌(蜂子) 몰골에다, 시험이 끝나면 조롱박에서 나온 병든 새(鳥) 몰골이요, 합격자 방(榜)을 기다릴 때는 안절부절 못하는 잔나비(猿) 몰골이며, 낙방이 확인되면 약 먹은 파리(蠅) 몰골에다, 정신 차린 다음 홧김에 살림살이까지 부수고 나면 제 알 깨버린 비둘기 몰골이라. 이른바 거자칠변(擧子七變)이다.

 

당시 중국에서는 ‘커닝’을 방지하기 위해서 수험생들을 칸막이 방에 한 명씩 따로따로 들여보내 답안지를 작성하도록 했다. 그 안에는 붓, 벼루, 종이는 물론이고 수험생이 먹을 수 있도록 떡이나 차도 갖춰놓았다. 심지어는 생리 현상을 해소할 수 있도록 요강까지 비치해 놓았다. 일단 칸막이 방에 들어가면 핑계를 대고 나올 수 없도록 한 것이다. 

 

몸수색도 철저하게 했다. 워낙 철저하게 몸을 뒤지는 바람에 ‘커닝 페이퍼’ 따위는 아예 가지고 들어갈 엄두조차 낼 수 없었다. 과거 응시생들은 홑옷만 걸치고 빈손 차림으로 들어가 시험을 치러야 했다. 포송령은 과거를 보려는 자들이 겪는 그 까다로운 과정을 들어 비유해가며 ‘거자칠변’으로 표현한 것이다. 

 

포송령의 ‘거자칠변’을 읽고 임어당(林語堂·1895∼1976)은 다음과 같이 ‘낙자칠변(落子七變)’을 썼다. 비록 과거에 실패했어도 사람은 일곱 가지 유형으로 변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제시한 내용으로 한 가지 일의 실패가 인생의 전부는 아니라는 점을 하나하나 예를 들어가며 강조하고 있다. 

 

첫 번째는 만재(晩材)로 재능이 늦게 피어나는 대기만성 형이다. 아인슈타인은 고등학교 때 수학을 제외하고는 모두 낙제점을 받았고 대학 입학시험에서도 낙방한 경력이 있다.

 

두 번째는 은재(隱才)로 숨은 재능을 시험관이 발견하지 못한 경우다. 20세기 가장 뛰어난 두뇌라는 평을 받는 프랑스의 시인이자 사상가인 폴 발레리(1871~1945)는 스물네 살 때 육군성 시험에 낙방했다. 시험관은 그의 논문을 보고 ‘수험생의 정신에 일맥상통함이 없다’는 평가를 내렸다. 그러나 이듬해 바로 그 논문이 잡지에 발표되자, ‘유럽에 전무후무한 지성이 탄생했다’는 찬사가 쏟아졌다.세 번째는 반재(反才)로 낙방을 계기로 비약적인 발전을 하는 사람이다. 독일의 시인 하이네(1797~1856)는 고등학교와 대학시절에 시험만 치면 떨어지는 바람에 어머니로부터 ‘제발 남들에게 바보 소리만 듣지 않게 해 달라’는 애원을 들었다. 그는 그 후 심기일전하여 세계적인 시인이 되었다.

 

네 번째는 상재(商才)로 자신의 재능이 어디 있는지 일찍 발견하는 사람이다. 중국 역사상 최고 부자로 손꼽히는 서진(西晉)의 석숭(石崇, 249~300)이란 인물은 과거에 떨어지자 자신의 적성이 학문이나 벼슬보다 장사에 어울린다고 판단하고 방향을 전환, 거부가 되었다.

 

다섯 번째는 예재(藝才)로 예술가로 성공한 사람이다. 화가 피카소는 초등학교 때부터 퇴학당한 낙방 5관왕이다.

 

여섯 번째는 역재(逆才)로 과거에 낙방한 후 반항심 때문에 반골(反骨)이 되는 사람이다. 중국 역사상 반란자 대열에 들어 있는 인물 가운데 당나라 말기의 황소(黃巢)와 명나라 말기의 우금성(牛金星), 태평천국의 난을 주도한 홍수전(洪秀全) 등이 이에 해당한다.

 

일곱 번째는 빈재(貧才)로 도저히 가망이 없는데도 자꾸 과거를 치는 바람에 달리 구원할 길 없는 영락없는 진짜 낙오자를 가리킨다.

 

이렇게 낙자칠변을 훑어보면 일곱 번째로 지목하는 빈재만 아니라면 시험이나 선거에서 떨어지는 것도 크게 비관할 것이 못 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오히려 실패는 마음먹기에 따라 성공의 디딤돌이 될 수도 있으니 인생 역전의 기회로 삼을 만 하다고 하겠다.

 

바야흐로 선거철이 돌아왔다. 거리에 나붙은 현수막을 보니 낯익은 얼굴이 대부분인데 새로운 인물들도 더러 보인다. 저마다 청운(靑雲)의 뜻을 품고 출사표를 던졌지만 선택을 받는다는 것이 그리 녹록하지 않음을 곧 깨우치게 될 것이다. 삶의 이력에 대해 공정한 평가를 받기도 어렵지만 여러 방면으로 왜곡되어 있는 우리의 정치현실을 피부로 느끼면서 그로 인한 압박감에서 견디기가 쉽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세상을 살아가는 방법은 다양하다. 도전해서 성공한다고 해서 크게 우쭐댈 일도 아니요, 실패한다고 해서 낙담할 필요도 없는 일이다. 이번 선거에서 큰일을 도모하려고 출사표를 낸 사람이라면 모름지기 임어당의 ‘낙자칠변(落子七變)’을 한번쯤 새겨보는 것은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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