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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영국미술관」, 울진읍 말루 생가 터에 건립 추진

  • 이명동기자 기자
  • 입력 2010.06.15 10: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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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울진군 ‘유영국 미술관 건립 타당성 조사·기본 계획 수립’ 용역, 9월 완료

울진읍 말루에 위치한 유영국 화백 생가

 

1930년대 이후부터 독특한 조형 이념으로 추상작업을 고집해오면서 한국 추상회화의 선구자로 일찍이 자리매김한 울진 출신 고(故) 유영국화백을 기념하는「유영국 미술관」이 울진읍 읍남리 말루에 위치한 그의 생가 터와 인접해 건립하는 방안이 추진되고 있다.  

 

유영국 미술관 건립은 지역의 미술애호가들이 수년전부터 고대해온 사업으로, 울진군은 4천6백만원의 예산을 들여 ‘유영국 미술관 건립을 위한 타당성 조사와 건립 기본 계획 수립’을 위한 용역을 발주했고 오는 9월까지 완료할 계획이다.

 

작고한 작가 개인의 이름을 딴 유영국 미술관은 건립 후에 군립미술관으로 운영될 계획이며, 울진군은 용역을 통해 국내·외 작가의 생가 활용과 소미술관을 중심으로 한 각종 사례를 조사 분석한 후 미술관의 조성 방향과 기본 구상을 도출해낼 계획이다.  

 

또한 유영국화백의 조카며느리로 일명 말루 유부자집의 33대 종부인 박송자씨가 현재 거주하고 있는 유영국화백의 생가를 매입 보수하여 미술관으로 활용하는 방안과, 인접부지에 미술관을 신축하고 생가는 별도로 보존하면서 다양하게 활용하는 방안 등이 다각적으로 검토되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울진군 관계자는 “오는 9월 용역이 완료되어야 유영국 미술관의 건립과 조성·운영 방향, 공간 구성 등의 기본 계획, 정책적 타당성 등의 종합적인 검토 결과가 나올 것”이라며, “국내·외에 널리 알려진 울진 출신 유영국화백의 미술관이 건립되고 나면 지역 관광산업과의 연계를 통한 새로운 문화예술 거점이 될 수 있을 것”으로 내다봤다.  

 

한편 유화백의 생가와 인접 부지 매입, 건물 신·개축에 따르는 충분한 예산 확보와 함께 유화백의 실제 작품 소장 전시, 관련 자료 다수 확보 등은 미술관 건립의 목적과 향후 원활한 운영 유지에 꼭 필요한 요소들로써, 건립 이전에 충분히 고려돼야 할 것이라는 지적이다.

동촌동 집에서 가족들과의 즐거운 한때. 1981년-출처.『유영국 1주기전』팸플릿

 

▣유영국(劉永國) 화백은...
국내에 기하학적 추상미술을 도입한 선두 주자이자 대가로 독보적인 위치를 점유하고 있는 유영국화백은 울진 지역 주민들이 전설처럼 기억하는 말루 유부자집의 아들로 태어났다.   

 

말루 유부자는 135년 전에 태어나서 30대에 만석부자로 엄청난 부를 축적한 유재업(劉載業)으로부터 시작된다.  

 

성류굴 맞은편에 위치하고 있던 아버지 유열의 묘를 천하명당으로 알려진 북면 두천리로 이장하고 난 다음에 벌어들인 것으로 전해지는 일확천금은 그의 맏아들 유문종(劉文鍾. 1866~1951)을 거쳐, 다시 유문종의 맏아들인 유영준(劉永峻)에게로 이어진다.  

 

유영국화백은 유문종씨의 셋째 아들이자, 마지막 말루 유부자 소리를 듣는 유영준씨의 둘째 남동생이다.  

 

말루 유부자의 명성은 끝내 3대까지는 이어지지 못하고 유영국화백의 맏형인 유영준씨대에서 끝나게 된다.  

 

유영준씨가 벌인 어업과 광산업이 연이어 실패를 거듭한데 더해, 1945년에 광복을 맞으면서 실시된 토지개혁인 ‘농지개혁’ 제도를 겪으면서 자신이 소유한 막대한 토지를 대부분 포기할 수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다행히 유화백은 여전히 만석꾼의 부를 이어가던 유문종의 4남4녀 중 여섯째로 세상에 태어났고, 1935년 경성제2고보(현 경복중학교, 景福中學校)를 4년 수료한 후에 일본 땅으로 건너가서 동경문화학원 유화과에 진학한다.  

 

1938년 동경문화학원 유화과를 졸업한 유화백은 일본에서 각종 전시회에 출품하면서 1940년 오리엔탈 사진학교를 졸업한다.  

 

오리엔탈 사진학교에서 사진을 전문적으로 공부한 유화백은 부친을 졸라서 라이카 사진기를 구입했고, 경주의 문화유적 등을 즐겨 찍었다.  

 

그림 다음으로 사진을 좋아했다는 유화백은 말년에도 여행을 다닐 때는 항상 카메라를 휴대하고 다니면서 자연 풍경을 많이 찍은 것으로 알려진다.  

 

최인진 한국사진사연구소장은 유영국 1주기전 팸플릿에 기고한 글에서 “유영국화백에게 카메라는 일본 유학시절에는 전위사진의 영향을 흡입하는데 중요한 역할이 되었으며, 50~60년대 이후에는 자연을 선과 면과 색채로 구성된 비구상적인 형태로 관찰할 수 있게 해준 도구였던 것이다.”라고 평가했다.     

 

일제로부터 해방되기 2년 전인 1943년 일본 유학을 마치고 귀국한 유화백은 이듬해 김기순씨와 결혼하여 금강산으로 신혼여행을 다녀왔고, 해방을 맞은 1945년 장녀 유리지가 태어난다.  

 

1947년 가족과 함께 고향인 울진을 떠나 서울로 상경한 유화백은 2년 3개월 동안 서울대 응용미술학교 교수로 재직했고, 1948년 장남 유진이 태어난다.

 

6,25전쟁이 발발한 1951년 1.4후퇴 당시에 유화백은 울진으로 되돌아온다.
1953년 차남 유건이 태어나고, 1955년 유화백은 다시 울진을 떠나 서울로 올라가서 약수동에서 생활한다.  

 

1965년 유화백은 3년간 홍익대학교에 재직했고, 1967년 예술원회원이 됐으며, 1977년 서울 약수동에서 동촌동으로 이사한다.  

 

유화백은 1940년 일본 유학 당시 김환기, 길진섭, 이규상, 이중섭, 암기풍 등의 한국인이 함께 참가한 ‘창작미술가협회(자유미술가협회의 개칭) 경성전’에 참가하는 등 각종 전시회에 출품한데 이어, 귀국하고 나서도 1949년 ‘신사실파전’ 출품을 시작으로 숱한 전시회에 참여했다.  

 

또한 1964년 서울 신문회관 3층 특설화랑에서의 제1회 개인전 이후부터 그룹전에 참여하지 않고 개인전을 통한 작품 발표에 주력하게 되며, 2002년 11월 11일 87세를 일기로 지병인 심장병으로 작고하기 전까지 12회에 걸쳐 개인전을 가진다.   

 

유영국화백의 맏형인 유영준씨의 맏아들인 유상욱(劉相旭)씨의 부인 박송자씨는 유부자집의 종부로 현재까지 울진읍 말루동 유영국화백의 생가에서 생활하고 있다.  

 

그녀는 지난 2007년 1월호 본지 [월간울진]과의 인터뷰를 통해 둘째 작은 시아버지인 유영국화백과 관련하여 “일본에 유학하고 난 다음 6.25 전쟁 통에는 한동안 울진에서 살았다. 울진에 살면서 형님이 하던 어선으로 고기잡이를 하던 유화백은 전쟁 후에 죽변면에서 양조장을 경영한다. 죽변면에는 유화백이 아버지 유문종씨로부터 물려받아 직접 운영하던 양조장이 있었다. 처음에는 막걸리만 만들어 팔다가 뒤에는 소주도 만들어 판매했는데 소주 이름이 ‘망향(望鄕)’이었다. 소주 이름도 ‘고향을 그리워하고 생각한다’는 뜻을 가진 ‘망향’으로 지을 만큼 유화백의 고향사랑은 각별했다.”고 회고했다.   

 

유영국화백은 작고하기 전에 자신이 죽고 나도 미술관을 건립하지 말라는 유언을 남겼는데, 울진군이 건립을 추진하고 있는 미술관은 유화백의 유언과는 일견 상반되는 측면도 지니고 있다.  

 

고인의 이런 뜻을 쫒아서 유화백을 추모하는 가족과 지인들은 미술관 대신 ‘유영국미술문화재단’을 설립했고, 2004년부터 매년『유영국 저널』이라는 책자를 발간하고 있다.  

 

한편『그림 읽어주는 여자』로 유명한 미술 작가 한젬마씨는 저서『화가의 집을 찾아서』를 통해 유영국화백의 생가와 작품을 소개하면서 “겉으로 보면 그저 서너개의 삼각형이 화면을 분할하고 있을 뿐이다. 하지만 자세히 보면 그렇지 않다. 노랑, 빨강, 파랑, 초록, 주황 각 색깔별로 계절마다 달라지는 산의 모습을 나타내고 있다. 또한 그림 속에는 물도 있고 논밭도 있으며 하늘도 있다. 산의 정신, 산의 몸, 산의 목소리가 이 단순한 삼각형 속에 모두 담겨 있다. 단순하게 그리면서도 모든 것을 담아낼 줄 아는 유영국은 얼마나 위대한 작가인가. 말없이 있어도 속내로 수만 가지 얘기를 건네주는 그림... 그래서 나는 유영국의 그림이 좋다. 몇 개의 선과 면, 색채로만 이야기하는 그는 분명 과묵한 사람이다. 하지만 우리는 설명적으로 ‘들이대는’ 그림보다 그의 과묵한 그림에서 더 많은 행간을 읽어낼 수 있다”고 평했다.      

 

본지 [월간울진]에서는 2006년 10월호「발굴(發掘), 울진의 옛 자료」 코너를 통해 유영국화백이 1964년 서울 신문회관에서 제1회 개인전을 가질 당시에 제작한 개인전 팸플릿을 어렵게 입수하여 공개했고, 2007년 1월호를 통해서는 유영국화백의 생가 소개와 함께 말루 유부자의 내력에 대해 상세하게 소개한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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