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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 아버지 가라사대

  • 편집부 기자
  • 입력 2010.06.17 13: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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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심을 먹은 후 커피를 마시며 이야기나 하자고 공원 의자에 앉았는데, 그늘진 자리에 부는 바람이 제법 서늘해 춥다고 했더니 따라오라고 한다.  

 

그래서 간 곳이 그녀의 집이다.
그녀 희숙씨는 같이 일하던 곳에서 만난, 나와는 다른 듯 닮고 닮은 듯 다른 분위기의 아줌마다.  

 

희숙씨 집 단아한 거실에서 따끈한 차를 마실 때 잡아매어 놓은 것처럼 내 눈길을 끄는 것이 하나 있었다.
거실 벽에 걸려 있는 소박한 액자 3개가 그것이었다.  

 

다가가서 읽어보니 붓으로 써내려간 글이었는데, 뭐냐고 물어보니 아이들이 태어났을 때 희숙씨의 아버지, 즉 아이들의 외할아버지께서 써 주신 글과 가훈이라 했다.  

 

아이들이 맑고 밝게, 건강하고 행복하게 크라는 할아버지의 글 중에 ‘흙처럼 진실하게, 꽃처럼 아름답게, 벌처럼 성실하게’라는 글이 가슴에 새겨 진다.  

 

가슴에 새겨지는 좋은 글도 당연히 그러하지만, 이 세상에서 내가 느껴보지 못한 색다른 향기에 넋을 잃었던 이유는 “할아버지...”라는 단어가 너무 애틋한 그리움으로 넘쳤기 때문이다.  

 

나는 할아버지라는 호칭을 단 한 번도 불러 본 적이 없다.
외가도 친가도 내가 태어났을 때부터 할아버지는 존재하지 않으셨으므로.   

 

나는 왜 할아버지가 없을까라는 한 번의 섭섭함도 없이 그냥 살았는데, 갑자기 그날 이후 나는 본적도 그래서 불러 본적도 없는 나의 할아버지에 대한 그리움을 앓기 시작했다.  

 

손에 잡히지 않는 뭔가를 자꾸 잡아보고 싶은 마음, 그럴 수 없음을 알면서도 매일 나는 “할아버지...”라고 불러 보곤 한다.  

우리 집 거실 벽에 액자로 만들어 걸만한 글을 분명히 써주셨을 할아버지.  

 

나도 그런 할아버지가 계셨으면 좋았겠지만, 안 계신 할아버지를 억지로 계신 듯 상상하기보다는 평생을 군인으로 사셨던 나의 아버지 말씀을 하나 써서 걸기로 했다.  

 

군화 끈을 매시느라 문턱이나 마루턱에 구부정하게 앉은 뒷모습을 보이시다가, 신새벽에 걸어 부대로 가시곤 하던 그 아버지 돌아 가신지도 20년이 훌쩍 넘었지만 아버지 정신의 말씀은 어제인 듯 살아남았다.  

 

‘남에게 폐가 되는 삶을 살지 말거라, 오늘 하루의 성실이 남은 생을 설명한다, 죽음 앞에서도 자기에게 부끄럽지 않아야 한다’...  

 

아침저녁으로 듣던 아버지의 말씀, 쉬워 보이기만 했던 그 말속에 수많은 의미와 가르침이 있다는 것을 나이 먹으면서 조금씩 어렵게 알아간다.  

 

물론 이 세상엔 더 좋은 말씀도 많다.
내 아버지, 내 할아버지의 말씀을 쉽게 흘려보내지 아니하는 정신이 귀하다는 거다.
그리고 더 중요한 것은 그 분들이 살아계실 때, 그 분들을 더 많이 불러 드려야 한다는 거다.  

 

“아버지, 아버지...”, “할아버지, 할아버지...”
더 이상 그 분들을 부르고 싶어도 못 부르는 사람들의 몫까지 합해 더 많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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