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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굴(發掘), 울진의 옛 자료 1-성류굴 조사 보고서 ②

  • 이명동기자 기자
  • 입력 2010.07.09 17:59
  • 글자크기설정

<지난호에 이어 계속>

1960년 울진군 교육과에서 만든 천연기념물 155호인 성류굴 안내기이다.
당시 울진군청 교육과 직원들이 성류굴을 직접 탐험하고 난 후 먹을 먹인 원지위에 철필을 이용하여 내용을 일일이 쓰고 지도를 그린 다음 등사기에 밀어서 찍어낸 귀중한 자료로 청주의 한 고서점에서 우연히 입수한 것이다. 

 

이 보고서는 천고의 신비를 지닌 성류굴이 오랜 세월에 걸쳐 많은 관광객이 찾아 왔으나 그들을 위해 성류굴 내부의 전모를 밝혀낸 사람이 한 사람도 없던 점을 안타까이 여겨오다가, 성류굴의 관광자원화와 지질학 연구에 일조를 하고자 당시 울진군 교육과 직원 주도하에 8명의 대원이 2차에 걸친 탐험을 하게 된다. 

 

탐험 결과 2지(池) 11광장을 필두로, 당시 총연장 400m, 3지(池) 20광장을 발견하게 된다.  

 

이 보고서의 서문에 “국무사무처 공보국 영화과와 강원도 공보과의 영화촬영 및 각 신문지상을 통해 기암괴석들이 장관을 이룩해놓은 지하금강을 널리 소개하고 이곳을 찾는 관광객들에게 그 편의를 제공하기 위하여 간략한 안내기로 만든 것”으로 밝히고 있다. 

 

내용은 크게 네 부분으로 나눠 볼 수 있다. 첫째 날짜별 탐험경과와 지상보도, 영화상영 일정 등을 소개하고, 둘째 1광장에서 12광장에 이르는 굴의 형상과 탐험하면서 느낀 감흥을 기록하고, 셋째는 성류굴에 얽힌 갖갖지의 전설과 양주동 박사가 조선일보에 기고한 고려조 이곡(李穀)의 성류굴기행인「관동유기」를 소개하고 있다. 부록으로 울진지역의 대표적 명승고적 몇 군데를 소개하고 있다. 

 

보고서 내용에는 당시 사회문화의 한 단면을 들여다보는 즐거움이 있다. 예컨대 당시 탐험 장비 목록 중에서 ‘싸치라이트(searchlight)’, ‘체크라이트’, ‘나침판’, ‘부’, ‘카메라’, ‘줄자(6척)’ 등과, 대원들이 오직 모험심과 용기에 의존했다고 하는 대목 등에서 직접 수영으로 굴 내부를 통과하는 과정에서 장시간 체온을 높여 탐사를 진행했던 당시의 모습이 그려진다. 

 

일일이 굴 내부를 손으로 그린 보고서 원본을 보면서 천연의 신비로 가득찬 오염되기 전 성류굴의 원형을 보았던 그들을 부러워해본다.

 

무시 무시한 마의 심연이 전개된다. ‘사찌라이트’의 불빛을 삼키며 말이 없는 이 천고의 신비를 간직한 심연은 그 수심 8미내지 10미의 깊이를 갖고 석저로 어디론가 통해있을 이 수면위로는 형형색색의 수많은 종유석돌이 흡사 괴석의 ‘쑈’를 방불케하고 있다.
*대개 탐승객은 이심연의 위협으로  여기서 되돌아가게되는 것이나 새로운용기와 모험에 가득찬 우리 일행만은 되돌릴 수는 없었다. 깊이 20미를 수영전원 무사히 도강 반전에 성공하여 피안에 상륙하였을 때 여기 눈앞에 전개되는 석주림 ‘유탓슈’가 연발되는 이
극치의 지대는 그야말로 지하금강으로서의 아무런 이론이 없다.
***그림 설명 : 무시무시한 마의 심연.....마의 심연 괴석의 쑈***
*이곳에서 장시간 체온을 높여 다시 전진 약 20미의 지대에는 함정을 중심으로 2층석계를 이루었으며 잘못 실족하면 혼비백산할 위험지대를 서로가 부축하여 돌파하니 여기가 제6의 광장이다. 이광장에도 기암괴석은 끝이없고 여기서 좌측으로 넓게뚫인 지점이 제 7의 광장인데 역연 기암들이 웅립은 물론 이거니와 맑은 석간수가 거울처름 깔린 이요철의 광자은 사방 막받이가된 석영지대이다. 여기서 일행 다시 후퇴하여 새로운
소혈 발견하였고 결정적인 종반전을 전개하여 이곳에 또다시 나타난 제 8의 광장과 제 구의 광장 그곳의 풍모는 이 괴굴의 절경지대인 것이다.
***그림 설명: 종유석과 석순............제6광장의 석주군***
어디선가 예쁜 선녀들이 신선주를 따루며 반겨줄것도 같은 반면에 괴물이 도사리고있을것도 같은 괴이한 감회속에서 바라볼 수 있는 제 9광장의 웅장무비한 모습, 이곳은 극락의 세계가 아니면 용궁의 상좌라고 할까 상층 천정에 종유석 밑바닥에 치솟은 아름안을 석순, 지금도 이기암들의 숲속에서는 간단없이 석종유가 흐르고있다. 이용궁의 상좌에서 다시전진하면 길이 20여미의 직선소로가 있는데 여기서 우리 일행의

탐험은 이단락을 지웠다. 전설에 평해경 30리로 뻗었다는 이굴의 앞날의 숙제를 남긴 아쉬움을 금치 못하였으나 여기까지의 성공과 황홀경에 감격함과 더불러 입굴후 연 3시간 44분만인 하오 4시40분에 총연장 250여미를 되돌아 석양이 따사로운 광명의 세계로 전원 무사히 ?로 에 올랐다.

전설략기
(기 1) 성륙굴의 명칭 고려시대에 본굴이 위치한 이 성류봉하 성류사가 있었다한다. 옛적에도 이 산이 울창하여 학의 보금자리가 되었고 따라서 전후사방의 경치가 극히 우아하여 신선이 한유하는 소위 선유산으로서의 풍모를 지닌바 있었던것이다. 지금도 일명 ‘선유굴’이라함은 그 까닭이요

그 후 이조대에 이르러 임진왜란의 참변으로 성류사는 소실되고 당시 절간에 있었던 대소의 부처들은 이석굴에다 반입 피난을 하였음에서 즉 성불이 유하게된 굴이 되었음에 성류사의 영향으로 그 때에 ‘성류굴’로 이름지었음이 확실한것 같다.
(기 2 ) 임진왜란과 성류굴 ***그림 설명 : 제 2 광장좌측의 적석***
이조 선조 임진년에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왜군의 가등청정 산하의 일지대가 울산으로부터 동해를 따라 진격해옴에 왜군내공지보를 듣 근남 원남등지의 주민5백여명은 미리 이 성류글속으로 피난해 들어가니 이를 탐지한 왜군이 굴동구를 막아 나오지 못하게 하여 굴내의 사민이 전원 기사되었다. 한다.

그 증거로 입구 경사지에 깔린 궤석은 당시 왜군이 딴곳에 있던 석궤로  봉쇄한 것이 무너졌음이 확실하고 지금도 잘살피면 내붕 매몰된 인골을 볼 수 있는 것이다.
***그림설명 : 8광장에 있는 구름 탑.....마의 심연피안의 석주림***
(기 3 ) 지금부터 20년전에 발간한 본군군지에 ‘성류굴은 재군남쪽17리 구산리북평 월동 성류굴봉하하니 재백련산석존 성류사하니 즉 현종산북동지야라 고명 탱천굴이니 석봉이 삭립어벽담지상하고 하지기층즉 좌우석벽이 혹철혹첨하야 불가진상이 속전혈로달우 평해경30리 두암이러라’ 하였고 고인 김시습은 당시의 성류굴 주변풍치를 노래하기를 굴전춘초양태기산 

후?화영락위경유일반청의미야심소학?인비라하였다.
(기 4 ) 항간에 떠도는 말에서는 본굴이 평해영치굴(평해면 학곡리소재 본굴도 탐승완료 길이 70여미)과 통해저 있다고도 하고 혹은 사람이 입굴하면 백견이되어 나온다는 풍설이 있는가 하면 본굴에는 천년도더묵은 대사가 있어 이의 조화로 한발이 계속되는 해는 굴입구에 제물을  차려놓고 기우제를 지내야만 비가 온다는 미신등 아직도 인근 주민에게 깃들어있다

(기 5 ) 관동유기(이곡 기행의 일부)
※조선일보 4293년 12월 10일자에 문박 연세대교수 양주동씨가 성류굴에 대한 참고기사를 발표해 주셨기에 여기에 옮겼음.

지난 가을 각지상에 울진읍인사들이 그 고장 명승이요 재래 전인미답의 비경으로 알려온 ‘성류굴’을 처음 탐험하였다는 기사가 있었고 이어 그 제 2 차 좀더 탐험에의한 자세한 보고가 본보에 실렸음을 보았다. 아마 이번 그 양차의 탐험에 의하여 그 유명한 비오의 전내용이 대개 소개된 듯하다. 그런데 그 ‘성류굴’의 탐방기사론 진작 여말 가정 이곡(1298-1351)의 명문 ‘관동유기’(동문선 권 71)중 좌에 인록하는 일절이 있는데

그것이 굴탐험의 최최의 기록인가 한다. 마침 내가 그것을 번역발표했던것이 있기로(‘한국평론’ 소재‘한국역대기문선’ 2 ) 여기다시 그 일 절을 소개하여 그 고장 인사 및 관계제위의 참고에 공한다. 가정의 해기는 글자대로 그가 금강산을 비롯하여 관동일대의 승경을 종람 유상한 글인바 그는 지정구년 기축(1349)7월14일 송도를 떠나 내외금강 기타를 유람하고 동해안을 연하하여 8월 19일에 울진현에 이르러 이틀을 묵고 21일에 ‘성류굴’을 탐방했던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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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일에 울진에 이르러 하루를 묵다 21일에 일찍 떠나다 울진현나뽁 10리에 ‘성류사’가 있다 절이 석벽밑 장천위에 있는데 절벽의 돌이 깎아지른 듯 천척이요 벽에 작은 구멍이 있으니 ‘성류굴’이런다. 굴의 깊이를 헤아릴 수 없고 또 어둑 컴컴하여 촛불이 아니면 들어갈 수 없다.

절의 중을 시켜 횃불을 들고 인도하라하고 또 그을 사람으로 출입에 익은 자로 하여금 앞서고 뒤따르라하여 들어가 보았다. 구멍 어귀에는 좁으나 4,5보쯤 기어들어가니 조금 넓어지며 일어나 또 몇 걸음을 걸으니 단애가 세길쯤 솟았는데 사다리로 내려가니 점점 평평하고 넓어지며 몇 십 걸음을 가매 평지가있어 몇 무가 됨직한데 좌우에 돌모양이 이상야릇하고 또 몇 십 보 쯤을 걸으니 구멍이 있는데 구멍 어귀보다 더좁다. 엎드리어 가니 그아래는 진흙인데 자리를 깔아 습기를 막는다 또 칠 팔보를 걸으니 좀 헌출한데 좌우에 돌이 더 이상야릇하여 혹은 번당과 같고 혹은 부도(탑)와 같다. 또 십 수보를 가니 돌이 더욱 기괴하고 그 모양이 더욱 여러 가지여서 이루 기록할 수 없으며 그 번동 부도같은 것도 더욱 길고 넓고 높고 크다. 또 4,5보를 가니 불상같은 것도 있고 고승같은 것도 있으며 또 못물이 사뭇 맑아 넓이가 몇 무 쯤 되는 데 가운데 두 돌이 있어 하나는 수레띠(車穀)같고 하나는 정병 같으며 그 위와 곁에 드리운 번개는 모조리 오색이 찬란하다 처음 생각엔

석종유가 엉긴것이라 그리 굳지 않으리라 여겼드니 지팡이로 두들기매 각기 소리가 있어 그장단을 따라 청탁이 있어 마치 편경과 같았다. 이 세속 사람의 섯불이 구경할 것이 아니라하여 어서 나가자 하였다 그 양벽에 구멍이 많은데 사람이 잘못들어가면 나올수 없다한다. 그 사람에게 굴의 깊이가 얼마냐 물으니 대답하여 가로대 아무도 그 근원을 다한자가 없다하며 혹은 이르되 평해군 바닷가에 달하리라 하니 대개 예서 상거가 이십여리라 처음 들어갈 때 검고 더러울까  하여 동복의 의건을 빌려 들어갔더니 나오자 옷을 바꿔입고 세수하고 양치하니 마치 꿈에 화서국에  노닐다가 거연히 깬 듯하였다. 그윽히 생각컨댄 조물의 묘가 흔히 헤아리지 못할것이니 내가 국도와 및 이굴에서 더욱 그런줄을 알았다 그것이 자연으로 된 것이나 그렇지 않으면 일부러 만든 것이냐 자연이라 한다면 그 기변의 묘가 어찌 이렇듯

극하며 일부러 만든 것이라면 아무리 귀공신공으로 천만세를 다하였기로서니 또한 어찌 이 극에 이르렀으랴. 이날 평해군에 이르렀다.

■울진군관내 명승고적안내
*망양정 (관동팔경의 하나)
소재지 근남면 산포리 (군소재지로부터 남방 4 천) 년대는 미상이나 원래 기성면 망양동 현종산 기슭에 있었던 것이 퇴폐되자 약 60 여년전 본군군수 황진규씨가 지금 근남면 산포리 둔산동에 이축했다. 이것이 다시 퇴폐된 것을 단기 4291년 12월 28일 현재와 같이 신축준공했다....

*월송정(관동팔경의 하나) 소재지 평해면 월송리 (군소재지로부터 남방 40 천)
이조 연산조 관찰사 박?종이 창건한 바로 지금은 퇴폐되어 재건을 계획하고 있으나 자금부족으로 착공치 못하고 있다.

*연호정 소재지 울진면 연지리(군소재지로부터 동방 0.5 천)
구건물 일부가 소실되고 잔존건물 일부를 이용하여 지방 특지가들이 4255년 4월에 건축했다.

*불영사 소재지 서면 하원리 (군소재지로부터 서방 24천)
지금부터 일천 삼백 십여년전(신라 진덕왕 5년) 의상조사가 신력으로 용을 몰아내고 터를 잡았다하며 인도 천축산과 비슷하다하여 천축한불영사라 한다.

*백암온천 소재지 온정면 온정리(군소재지로부터 남방 52 천)
신라 때 한 수렵인이 창에 찔린 사슴을 쫓다가 발견된 것이라 하며 현재 목욕실을 겸한 여관이 완비되어 있다. 수오니은 42도이며 수질은 유황질로서 피부병 위병 신경질환 치료에 특효하다.

*덕구온천 소재지 북면 덕구리 (군소재지로부터 서북방 16천)
지금부터 약 2백여년전에 수렵인이 발견한 것으로 현재 북면면사무소직영으로 숙소가 마련되어 있으며 수온은 40도 수질과 약효는 백암온천과 같다.

*굴참나무(천연기념물 제 96호 4273,1,5 지정) 소재지 근남면 수산리 (군소재지로부터 3천)
근부직경은 5척이 넘으며 수령이 700여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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