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리재 가는 길
구리재 정상 부근
초겨울의 구리재는 쓸쓸했다.
길가에는 무성한 마른 풀이 금방이라도 길을 막을 기세다. 여기 저기 억새가 하얗게 핀 길은 구리재 정상에서 사라졌다. 어디서 나타났는지 고라니 한 마리가 숲으로 뛰어간다.
울진의 남북을 연결하는 비포장 7번국도. 매림(근남면 노음 3리)에서 굽이굽이 넘던 구리재길.
노음초등학교가 있는 마름동네는 울진에서 옹기가 많이 생산되던 곳이었다. 필자도 한 때 이곳에서 옹기와 곱돌을 대량으로 제작, 생산하고 있는 모습을 어렵지 않게 보았다.
옹기골이 있는 옆으로 구리재 길이 지난다.
지난 80년대에 7번 국도가 포장되면서 자연스레 기억에서 멀어진 구리재길. 이 길은 일제강점기 때 닦은 신작로다.
구리재를 넘어가면 구산정류소다. 성업하던 성류여인숙도 10여 년 전에 없어졌다. 여인숙 자리는 밭을 일구거나 묵밭이 되었다.
길도 사람의 일이라 무상하다.
80년대까지만 해도 울진은 시외버스 터미널이 북부·남부정류장 두 곳이 있었다.
구산 정류소는 이들 정류장에서 오는 버스가 처음 정차하는 곳이고, 다음은 매화 정류장이다. 지금 매화정류장은 없어졌다.
80년에 귀향하여 86년부터 구산정류소를 인수하여 오늘날까지 운영하고 있는 임춘길(72세)씨는 버스가 한 번도 설 것 같지 않는 정류장에 혼자 앉아 있었다.
“지금도 차가 서나요?” “무슨 말이여, 표를 파는 정류장일세.”
간단한 잡화와 과자, 음료를 파는 구멍가게를 겸하고 있는 정류소. 낡은 책상 위에 판매하는 차표 뭉치가 녹슨 클립보드에 철해져 있다.
구리재를 넘어 노음국민학교를 다녔다는 그는 과거 구산 정류소 시절을 그려주었다.
“식당, 담배포, 차표 판매, 상점 모두 4개의 가게를 운영했다. 앉아 있을 시간도 없을 정도로 바빴다. 버스가 하루에 많이 다닐 때는 북행의 경우 5분마다, 남행의 경우 10분마다 한 대씩 다녔다. 방학 때는 자식들까지 차표 파는 일을 도왔는데, 3명이 바쁘게 표를 팔 정도였다. 아성, 한일, 천마, 경일, 경기, 강원, 경북, 경남, 영암 등의 버스회사들이 정차를 했다. 예나 지금이나 별도의 주차시설은 없고, 도로변에 차가 정차했다. 여름휴가 때나 가을 소풍 무렵에는 한 번에 차를 다 못 탈 정도로 관광객이 많았다. 돈도 많이 벌었다. 차를 다 못 탈 경우 민박을 하기도 했다. 방이 6개나 있었는데 모두 꽉꽉 찰 정도였다. 서울 경기도 사람들은 특히 대게와 오징어 회를 좋아했다. 오징어 회를 조르면 방법없이 죽변까지 가서 급히 조달해주기도 했다. 당시 동네 젊은이 중에는 성류굴 입구까지 관광객에게 돈을 받고 마차를 운행하기도 했다.”
‘지하금강’이라 부르는 아름다운 천연동굴인 성류굴은 지금 한산하다. 관광객으로 붐비던 것도 이제는 옛말이 되었다.
구산정류소 앞은 ‘뒤뜰(北坪)’이라 부르는 들판이 넓게 펼쳐져 있다. 근남면 구산 1리 지역이다.
남쪽으로 남수산(嵐峀山)이 있고 매화천이 들판 가운데로 흐른다. 남수산은 영양군의 일월산(日月山) 지맥(支脈)으로 인근에서 가장 높은 산이다.
뒤뜰은 마늘이 유명했다. 한 때 ‘뒤뜰 마늘’이라고 하면 전국에서 알아줄 정도였다. 구산정류소보다 더 나은 규모를 갖추었던 인근의 매화정류장도 직행버스가 서질 않는다.
시골에서 하나 둘 사라져 가는 것이 어디 정류소뿐이랴.
노인 한분이 오시더니 소금을 안주삼아 컵으로 소주를 마신다. 짧은 11월의 햇살이 정류소 창을 비추는 일요일 오후에.
구리재로 들어가는 입구
구산 정류소 입구
구산 정류소 전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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