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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머니 밥

  • 편집부
  • 입력 2011.01.06 18: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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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양화가인‘페인트 최’는 고향이 서울로서 울진에서 15년간을 생활했다.
현재 경기도 안산시에 거주하며 한국미협·도무스·예형회 회원 등으로 작품 활동을 하고 있다.

좁은 집에서 저는 저대로 나는 나대로 바쁜 일이 있어, 지구 반대편의 시차나 되는 것처럼 좀처럼 얼굴도 못 본 딸과 오늘 일주일 만에 점심을 같이 먹기로 했다.  

 

혼자라도 챙겨 먹으라고 틈나는 대로 해놓은 반찬이 냉장고에 그대로 있는데, 딸은 인스턴트식품 봉지를 덜렁덜렁 들고 들어온다.  

 

보아하니 일주일의 대부분을 그리 때운 듯해 딸한테 ‘왜, 반찬 좀 챙겨서 밥을 먹지’ 하니, ‘먹을 게 없어’란다.  

 

아니 참나, 다다다··· 잔소리 일발 장전 중인데, 딸이 먼저 ‘할머니 밥 먹고 싶어. 우리 할머니 집에 가서 맛있는 밥 먹고 옵시다’ 한다.  

 

사실 말이지, 엄마가 연세가 높아지면서 음식간이 좀 밍밍해지는 건 아닌가 하고 있는데, 딸은 시간이 갈수록 유난스럽게 할머니 밥, 할머니 밥 한다.  

 

출발하겠다고 엄마께 전화를 하니 ‘밥을 새로 지어 놓으마’ 하신다.
밥상에 세 모녀가 앉았는데, 정작 식사는 안 하시면서 “이거는 이모가 농사지은 건데 먹으라고 준 파하고 깻잎으로 한 거야.” 파김치와 깻잎 장아찌를 우리 밥 앞으로 밀어주시면서 그러고.  

 

“이제 이 부추는 내년 봄에나 먹을 수 있어서 마지막으로 뜯어서 담근 거야.” 알맞게 익어 밥을 더 부르는 부추김치를 밀어주시면서 그러고.
“노인대학 할머니들하고 점심을 먹으러 갔는데, 이 소머리 국밥이 맛있더라. 너희 한 번 먹이려고 사왔어.” 따끈하게 끓인 국을 떠 주시며 그러신다.  

 

음식마다 맛깔난 스토리를 함께 듬뿍 얹어 주신다.
딸은 그런 할머니 옆에서 연신 역시 ‘할머니 밥맛이 최고야’ 한다.
어떤 한순간에 나는 딸이 먹을 게 없다고 하던 우리 집 양념 많은 반찬과 할머니의 조곤조곤한 말이 맛있는 양념이 되는 할머니 집의 반찬의 차이를 화악 느꼈다.
‘그런 거였군···’  

 

나는 정말 오늘에서야 엄마 표 밥상이 제일 맛있는, 맛있을 수밖에 없는 이유를 알았다.
보글보글 끓고 있는 된장찌개 하나에도 정이 스민 이야기가 여러 개이고, 그 이야기를 들으면서 맛을 음미하는 식사는 잊을 수 없는 맛이 되어 가끔씩 ‘할머니 밥 먹으러 갑시다’ 가 되는 것임을.  

 

이야기를 잃어버린 나의 반찬은 더이상 엄마의 밥상 자격을 잃어버리고 먹을 게 없는 그런 음식으로 전락을 했다.
어느 때보다도 찬바람이 몰아쳐 오는 오늘.   

 

이 세상에서 가장 맛있는 손끝과 목소리로 버무려진 식탁에 앉아보면 12월의 추위쯤은 너끈히 이기지 않을까나.    
‘그런 거였군.’   요

 

즘 들어 영 친밀감이 사라져 버린 듯한 딸이 ‘밥 먹기도 바쁜데 왜 말 시키나?’ 할지도 모르겠지만 그런 말 무시하고 이야기 있는 밥상을 만들어 봐야겠다.  

 

언젠가는 이것저것 양념 넣느라 신경 덜 써도 알롱달롱 음식마다 달려나오는 이야기에 반해 ‘역시 엄마 맛 최고야’라는 말 들으며 살날이 있지 않을까.   

 

자 딸아!
할머니가 싸준 깻잎 장아찌랑 엄마 친구가 보내준 김치랑 구수하게 끓고 있는 우거지 된장국이랑 해서 엄마랑 맛있게 저녁밥 묵자.
할머니 밥 따라가려면 멀었지만 노력할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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