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용일(시인, 수필가) |
베드로 성당을 모방한 카잔 성당, 1876년 12월 6일 “조국과 자유”라는 노동자 선언을 낭독하고 붉은 깃발을 꽂은 역사적인 장소다. 나폴레옹 군대를 무찌른 크투조프 장군의 시신이 안치된 곳으로 지금은 종교 박물관이 되어 찾아오는 발길이 줄을 잇는다.
표트르 대제의 여름 궁전, 프랑스의 베르사이유 궁전을 방불케 한다. 11시 정각이 되자 웅장한 음악과 함께 140여 개의 화려한 분수들의 일제히 물줄기를 뿜어댄다. 끝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젊은 부지에 20여 채의 궁전과 일곱 개의 정원, 그 중 최대의 하이라이트는 궁전 정면에 위치한 계단식 폭포다.
유럽인들이 줄을 잇는다. 한국인들도 많은 탓인지 우리 일행을 보고 거리의 악사들이 애국가를 연주한다. 반갑기도 하고 놀랍기도 하여 지폐 한 장으로 고마움을 표한다.
모스크바 붉은 광장, 레닌의 묘(墓)를 참배하려는 행렬이 끝이 없다. 이곳이 바로 러시아의 심장부요 한 때는 세계 공산주의 혁명의 사령부다.
1812년 나폴레옹의 50여 만의 군대가 애꾸눈 쿠트조프 장군의 계략에 말려 이곳까지 점령했다가 추위와 굶주림으로 패주하게 된 역사의 현장이기도 하다. 감회가 새롭다. 건물마다 높이 걸린 붉은 벽돌을 올려다본다.
“상품의 가치는 그 상품을 생산한 노동자의 노동량이다. 그 상품의 이윤은 마땅히 그 가치를 창출한 노동자의 것인데 자본가들이 착취하고 있다”
얼핏 들으면 그럴듯한 논리다. 과연 그럴까. 삼성, 현대, LG 등 우리 브랜드의 광고판이 현란하다. 상품의 광도도 노동자의 노동량인가. 자본주의가 반드시 망한다는 3대 법칙이라는 황당한 논리가 있다. 마르크스의 자본론에 있는 한 대목이다. 곧 자본집중의 법칙, 빈곤 증대의 법칙, 이윤율 저하의 법칙을 말한다. 이 법칙에 의해 자본주의는 반드시 망하고 공산주의는 필연이다. 누가 이 준엄한 역사의 수레바퀴를 멈추게 할 것인가.
소름이 끼친다. 정반합(正反合)이라는 변증법에 의해 반드시 그렇게 될 줄로 알았을 것이다. 반드시 망한다던 자본주의는 발전과 번영을 거듭하고, 필연이라던 공산주의는 한갓 해프닝으로 막을 내렸다. 지난날 공산주의이론 비판으로 열을 올리던 위인인지라 비록 늦었지만 개선의 기분이 없는 것도 아니다.
15세기에 이반4세 황제가 이백 여 년 간 몽골의 지배에서 벗어난 것을 기념하여 세운 상크트 바실리 성당의 첨탑이 햇빛을 받아 찬란하다. 중앙으로 양파 모양의 원형뿔 탑이 비대칭으로 배치된 것이 인상적이다. 벽의 채색은 불꽃과 파도치는 모양 무슨 과일 같은 형상들이 여러 색으로 혼합되어 보는 이로 하여금 동화의 나라를 보는 것 같은 환상에 들게 한다. 이토록 아름다운 건물을 더 이상 짓지 못하게 하기 위해 설계한 사람들의 눈을 뽑아 버렸다는 얘기는 차라리 듣지 않는 것이 나을 뻔 했다. 동서고금에 이름을 떨친 독재자들은 왜 이리도 똑같단 말인가. 권위를 상징하는 200여 톤의 황제 종과 직경이 1미터가 넘는 황제 대포는 사회주의 허상을 보는 것 같아 슬며시 웃음을 흘린다.
크렘린 궁전의 높은 첨탑과 빨간 별들이, 찬란한 햇살에 가려 퇴색해 보이는 이유는 무엇일까. 사람이 주체라는 「김일성 주체사상」, 그 주체인 인민들이 억압 속에서 굶주리고 있는 우리의 북녘 산하, 그 허상도 깨어질 날이 그리 멀지 않았으리라.
북유럽, 노르웨이인들의 초탈한 삶과 피의 제국 러시아의 역사적 교훈을 가슴에 안고 귀로(歸路)에 오른다. 이래서 여행은 보고, 듣고, 느끼는, 깨달음의 길이 아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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