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동해연안 정월보름 세시는 ‘여성해방구’
“보름달을 태우며 풍년을 기원”
정월보름 지나면 모두 고된 노동의 현장으로 복귀
정월보름 지나면 모두 고된 노동의 현장으로 복귀

평해읍 월송리 달효마을의 동제
![]() 남효선/시인·언론인 |
정월대보름은 농어촌 전통사회에서 농사(農事), 해사(海事) 등 한 해의 생업을 앞두고 행해지는 우리 전통 명절 중의 마지막 세시의례이다. 특히 울진지방 등 동해연안의 해촌에서 정월보름은 이월초하루 영등날과 함께 2대 명절로 여겨져 왔다.
한국 전통사회의 생업력은 ‘달의 주기’를 품은 태음력에 바탕을 두고 전개돼 왔다. 우리 선조들은 태음력을 바탕으로 한 생업활동을 펼치며 ‘노동과 제의’를 담은 독특한 세시력을 창조했다. 곧 오늘날 전통문화의 근간인 세시풍속이 그것이다.
‘설’과 ‘추석’이 ‘조상모시기’를 중심으로 전개되는 가족 혹은 문중 중심의 세시인 반면 ‘단오’와 ‘정월보름’은 생업력을 바탕으로 하는, 마을공동체 중심의 세시이다. 정월 보름은 바로 한 해의 생업을 위한 노동의 시작을 알리는 출발점인 셈이다. 때문에 정월대보름의 풍속은 전통사회에서 매우 왕성하게 또 독특한 세시의례를 동반하며 전승되어 왔다.
동해 연안지방의 정월대보름 세시의례로는「부럼깨물기」,「오곡밥먹기」,「마을제사, 성황제」,「윷놀이」,「쥐불놀이」,「망월이」,「달넘세」,「여성놀이」와 같은 의례와 집단놀이가 대표적이다. 특히 정월보름의 민속은 생업공동체와 그 구성원들의 안녕과 결속을 담고 있는 까닭에 ‘공동제의’와 ‘가족제의’를 동시에 담아 전개되어 왔다. 이 중 마을 공동제의의 대표격이 ‘마을제사(동제)’이다. 또 가족제의의 대표격은 ‘보름제사’로 전승된다.

북면 덕천리 박철재씨 댁의 영등 소지 올리기
“동제는 엄숙한 비의의 세계”
마을제사(동제)는 ‘성황제’나 ‘서낭제’ ‘용신제’ 따위로 불리며 마을의 구성원이 모은 ‘마을기금’으로 제수를 장만하여 구성원 모두가 공동으로 수행하는 대동 제의이다. 동해연안 농어촌의 성황제는 주로 보름이 드는 날 자시에 마을 구성원 중에서 선출된 제관과 제물을 장만하는 자가 함께 참여하여 치러진다.
동제는 유교적 절차에 따라 매우 엄격하게 수행된다. 특히 동제는 남성중심의 제의로서 여성과 외부인은 절대 참여가 허용되지 않는, 엄격한 ‘비의적, 폐쇄적’ 구조를 띠고 있다.
정월보름이 드는 ‘음 정월 열나흘’ 저녁 무렵이면 마을은 ‘엄숙한 비의의 세계’로 들어간다. 함부로 개 울음마저 경계하는 ‘정적의 세계’로 들어간다.
동제가 치러지는 정월 열나흘 날부터 대략 일주일 전부터 성황당과 동사, 제관들의 집에 금색이 둘러지면 제관들은 일체 바깥출입이 금지된다. 또 동제가 치러지는 열나흘 날에 마을의 여성들은 바깥출입을 삼간 채, 집안에서만 생활한다.
이날 마을의 각각의 집에서는 보름이 드는 새벽 2시 경에 자신의 4대조에게 찰밥을 차리고 보름제사를 올렸다. 이를 ‘찰밥제사’라고 불렀다. 성황제가 마을의 안녕을 기원하는 집단의례라면 찰밥제사는 가정의 안녕과 자손의 발복을 기원하는 가정단위의 개인의례이다.
보름이 드는, 정월 열나흘날 밤에는 온 가족이 모여 덕담을 나누며 호두와 땅콩 등 부럼을 깨며 온 가족이 건강하기를 기원했다. 호두나 땅콩을 구하기 어려웠던 예전에는 ‘무구덩이’에 묻어 놓은 생무를 꺼내 깨물어 먹기도 했다.
“달의 기운 받은 첫 우물물 길어 건강 기원”
보름날 새벽, 여성들은 여명이 밝기도 전에 마을 공동 우물로 뛰어가 물을 길었다. 여성들은 보름 날 새벽 일찍 길어 올리는 우물물이 달의 기운을 듬뿍 담고 있다고 여겼으며, 이를 남보다 먼저 길어 올려 보름찰밥을 해서 먹으면 한 해 동안 가족들이 병에 걸리지 않고 건강해진다고 믿었다.
울진지방 해촌에서는 대부분 동제를 지내기 3일 전에 서낭당과 제관 집, 동네우물에 금색을 치기 때문에 금줄을 치기 전에 3~4일간 먹을 식수와 생활용수를 미리 준비해 놓아야 했다.
이 때문에 각 집집마다 여성들은 밤을 꼬박 새워 동제를 지내기 위해 쳐 놓은 금줄이 걷어지길 기다렸다가 앞다투어 동네우물로 달려가 우물물을 길어 왔다. 이를 ‘웅구리 뜨기(우물물 긷기, 용물긷기)’라 불렀다.
우물물을 먼저 가장 뜬 사람은 ‘똬리(‘따배이’, ‘따비’ 등으로 부름)’를 우물가에 놓거나 똬리 줄을 끊어 놓아 ‘물을 길어 갔음’을 표시했다. 첫 번째 똬리나 똬리 줄의 주인공은 마을 안에서 금방 소문이 나게 마련인데, 부지런한 며느리를 두었다는 덕담을 받기도 해 시어미들의 자랑거리가 되기도 했다.
울진지방 해촌에서는 대부분 동제를 지내기 3일 전에 서낭당과 제관 집, 동네우물에 금색을 치기 때문에 금줄을 치기 전에 3~4일간 먹을 식수와 생활용수를 미리 준비해 놓아야 했다.
이 때문에 각 집집마다 여성들은 밤을 꼬박 새워 동제를 지내기 위해 쳐 놓은 금줄이 걷어지길 기다렸다가 앞다투어 동네우물로 달려가 우물물을 길어 왔다. 이를 ‘웅구리 뜨기(우물물 긷기, 용물긷기)’라 불렀다.
우물물을 먼저 가장 뜬 사람은 ‘똬리(‘따배이’, ‘따비’ 등으로 부름)’를 우물가에 놓거나 똬리 줄을 끊어 놓아 ‘물을 길어 갔음’을 표시했다. 첫 번째 똬리나 똬리 줄의 주인공은 마을 안에서 금방 소문이 나게 마련인데, 부지런한 며느리를 두었다는 덕담을 받기도 해 시어미들의 자랑거리가 되기도 했다.
아침이면 밥을 먹기 전에 온 가족이 모여 ‘귀밝이술’을 먹었다. 아침밥은 찹쌀, 조, 수수, 콩, 팥 등 오곡을 넣어 지은 ‘오곡밥’을 먹었다. 이는 한 해 농사의 풍년과 잡귀의 접근을 막는 유감 주술적 벽사의 의미가 있었다.
동제를 치른 보름날 아침이면 마을주민 모두가 마을회관에 모여 ‘동제 음복’을 나눈 뒤, 마을의 한 해 살림살이를 결산하고 계획을 짜는 ‘연시총회(동네공사, 마을총회)’를 갖는다. 지나온 한 해의 살림살이와 마을 공동기금의 쓰임새 따위를 결산하고 새 한 해의 살림살이를 구상하는 셈이다.
연시총회가 끝나면 온 마을 사람들이 모여 풍물을 앞세우고 윷놀이와 줄다리기를 벌이며 신명의 세계를 펼쳤다. 특히 갓 시집 온 새댁들이나 젊은 아낙들은 ‘남색’을 하고 마을을 돌아다니며 집집마다 걸립을 했다. 이른바 여성해방의 속내를 담은 여성중심 집단놀이인 셈이다.
이 무렵 마을의 아이들은 바가지를 들고 집집마다 다니며 오곡밥을 얻어 반드시 ‘방앗간의 디딜방아’에 걸터앉아 걸립한 오곡밥과 나물을 함께 나누어 먹었다. 한 해의 건강과 특히 부스럼이 나지 않기를 기원하는 의미를 담았다.
저녁이면 남녀노소 할 것 없이 마을 앞의 밭이나 동산에 올라 ‘보름달 보기’를 즐겼다. 이 때 쥐불놀이가 치러지거나 망월이가 행해지기도 한다. 동해 연안지방에서는 주로 ‘망월이’라는 이름으로 연행됐다. 망월이는 주로 ‘깡통’에 ‘옹이불(소나무 옹이덩이)’를 담아 마을의 동산에 올라 행했다. 나이 든 총각들은 이웃마을과 ‘달싸움’을 벌이기도 했다. 망월이는 남녀노소 모두 모여 옹이불을 담은 깡통을 돌리면서 ‘망월아’를 연호하며, 보름달을 향해 소원을 빌었다. 망월이는 ‘보름달을 끄실려 풍년의 기원’을 담은 집단놀이로 해석된다.


정월보름서 이월초하루까지는 ‘여성해방구’
‘달넘세’ 등 여성중심의 집단놀이 전승
‘달넘세’ 등 여성중심의 집단놀이 전승
동해 연안 해촌의 아낙들은 저녁이면 ‘불가(백사장)’에 나가 ‘망아지 띠기’나 ‘대문열기’ ‘게줄당기기’ 와 같은 단락을 가진 ‘달넘세’ 놀이를 즐겼다. 달넘세는 인근 안동이나 영덕지방에서 전승되고 있는 ‘지에밟기’나 ‘월월이청청’과 같은 강강술래유형의 여성놀이로서 울진지방에서는 평해 직산리, 거일리 등 주로 해촌에서 왕성하게 전승되었다.
또 보름 날 저녁에 "소 밥먹이기"라는 풍속이 치러진다. “보름 날 저녁에 소가 나물을 먼저 먹으면 그 해에는 풍년이 들고, 밥을 먼저 먹으면 흉년이 든다”고 사람들은 믿었다. 이처럼 우리 고장의 세시는 모두 농사 등 생업조건과 밀접한 연관성을 가지며 치러졌다.
또 동해연안 해촌에서는 세습무가 주재하는 대규모 굿판이자 놀이마당인 ‘별신굿’이 펼쳤다.
해촌의 생업터전인 바다는 항상 위험했다. 해촌 사람들은 생업터전인 바다로부터 안녕과 풍어를 얻기 위해 별신굿을 정착시켜왔다. 별신굿은 바다의 신을 달래는 '오신제의'이자 해촌의 축제이다.
별신굿은 울진을 비롯해서 동해 연안 해촌에서 주기적으로 치러지는 ‘대동제의’이자 신명나는 마을 대동놀이판이다. 정월보름 세시 중, 망월이나 줄다리기 따위가 농촌 중심의 놀이라면 달넘세와 별신굿은 해촌 중심으로 전개됐다.
"정월보름이 끝나면 아낙들이 웃가줏대를 붙잡고 운다" 는 얘기가 있을 정도로 정월대보름과 2월초하루날 영등제가 끝나면 아낙들은 1년 내내 밭농사와 해사(海事)에 매달렸다.
정월보름과 이월초하루 ‘영등할미맞이’를 기점으로 농어촌은 눈코 뜰 새 없는 노동의 세계로 들어간다. 때문에 동해 연안 마을의 정월보름세시는 성황제를 제외하고는 대부분 여성 중심의 놀이로 짜여 있는 것이 특징이다.
정월보름과 이월초하루 ‘영등할미맞이’를 기점으로 농어촌은 눈코 뜰 새 없는 노동의 세계로 들어간다. 때문에 동해 연안 마을의 정월보름세시는 성황제를 제외하고는 대부분 여성 중심의 놀이로 짜여 있는 것이 특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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