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금산 산행에서의 압권은 서산으로 넘어가는 해가 첩첩 산자락
사이사이에 암영을 만들 때다
작지만 아름답고 신비로운 산, 금산(錦山)은 근남면 행곡리에 자리 잡고 있다.
높이가 387.9m로 그리 높은 산이 아니지만 오밀조밀하면서도 가파른 산세 속에 온갖 전설과 설화를 간직하고 있고, 금산이 이어주는 주변 봉우리들과 계곡들도 숱한 사연과 내밀한 장소를 품속 깊이 여기저기 감추어 두고 있다.
◈낙동정맥의 첩첩만산 중 하나인 행곡리 금산(錦山)
금산에는 2009년에 조성된 3km 구간의 등산로가 잘 정비되어 있어, 주말에 가족이나 연인과 가벼운 차림으로 근교의 산을 찾으려는 사람들을 손짓해 부른다.
금산은 메마르고 척박한 바위틈에서 끈질기게 생명의 연줄을 이어가는 분재에 가까운 수형의 소나무를 비롯해 참나무, 때죽나무, 단풍나무, 진달래가 봄이면 피어나서 여름이면 왕성한 수세를 자랑하다가 가을이면 절박한 빛의 단풍으로 물들어가는 곳이다.
![]() 거북바위는 서쪽에서 바라보면 차라리 부엉이를 닮았다 ![]() 1978년 건설부에서 금산 정상부에 설치한 측량 삼각점 ![]() 금산 정상의 산불감시초소 ![]() 남근(男根) 바위 ![]() 여근(女根) 바위 ![]() ![]() ![]() 금산의 척박한 토질이 분재 수형으로 키워낸 소나무 |
정상에 올라서면 동쪽으로 호호망망(浩浩茫茫)한 동해바다가 펼쳐져 있고, 왼쪽으로는 아득하게 죽변항구가, 남쪽으로는 왕피천(王避川)과 광천(光川)의 풍부한 물길을 받아 곡식을 알알이 영글게 하는 근남면 장평들과 행곡 마을이 한눈에 들어온다.
서쪽으로 눈을 돌리면 백두대간(白頭大幹) 낙동정맥(洛東正脈)의 첩첩만산이 동쪽으로 쉼 없이 내달리며 산태극(山太極) 수태극(水太極)의 형상으로 수려한 불영사계곡을 형성하고 있다.
금산 산행에서의 압권은 시간을 묻으면서 서산으로 넘어가는 해를 바라볼 때이다.
해가 점점이 기울면서 불영사계곡 좌우에 펼쳐진 수많은 산봉우리에 차례대로 드리우는 희뿌연 미색 그림자와 산자락 사이사이로 그늘지는 암영을 만드는 검붉은 낙조는 일순간 넋을 놓게 만든다.
불영사계곡을 내딛고 힘차게 때로는 여리게 흐르는 광천이 점점 옅어지는 저녁 햇살을 받아 반짝거리고, 계곡 따라 줄지어 늘어선 기암괴석이 낙조를 흠씬 머금어 붉게 물들어가는 것을 지켜보고 있으면 켜켜이 쌓였던 일상의 피로가 한방에 날아간다.
서쪽으로 눈을 돌리면 백두대간(白頭大幹) 낙동정맥(洛東正脈)의 첩첩만산이 동쪽으로 쉼 없이 내달리며 산태극(山太極) 수태극(水太極)의 형상으로 수려한 불영사계곡을 형성하고 있다.
금산 산행에서의 압권은 시간을 묻으면서 서산으로 넘어가는 해를 바라볼 때이다.
해가 점점이 기울면서 불영사계곡 좌우에 펼쳐진 수많은 산봉우리에 차례대로 드리우는 희뿌연 미색 그림자와 산자락 사이사이로 그늘지는 암영을 만드는 검붉은 낙조는 일순간 넋을 놓게 만든다.
불영사계곡을 내딛고 힘차게 때로는 여리게 흐르는 광천이 점점 옅어지는 저녁 햇살을 받아 반짝거리고, 계곡 따라 줄지어 늘어선 기암괴석이 낙조를 흠씬 머금어 붉게 물들어가는 것을 지켜보고 있으면 켜켜이 쌓였던 일상의 피로가 한방에 날아간다.
1, 2전망대를 거쳐 도착하는 3전망대 인근에는 신안 주씨 묘소가 있는데, 묘소 옆의 남근(男根) 바위와 여근(女根) 바위는 등산을 즐기는 호사가들 사이에서는 유명세를 탄지 오래이다.
묘소 지척에 자리하고 있는 남근 바위와 여근 바위는 누군가 인위적으로 조성한듯이 보이기도 하고, 또 어떻게 보면 애초부터 그곳에 자리를 잡고 있었던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등산로 옆에 우뚝 서 있는 각각 1m 이상 되는 크기의 이 바위 앞에 걸음을 멈추고 장래를 약속한 연인들은 사랑을 맹세하기도 하고, 부부들은 금슬상화(琴瑟相和)를 빌기를 주저하지 않는다.
쉬엄쉬엄 걸으면서 주변을 둘러보는 여유를 가진 사람이라면 왕복에 두어 시간 소요되는 금산 등산로를 오르내리는 내내 발치 아래 펼쳐지는 세상을 내려다보는 틈틈이 거북바위를 비롯한 온갖 기묘한 형상의 암석을 수석으로 완상할 수 있다.
묘소 지척에 자리하고 있는 남근 바위와 여근 바위는 누군가 인위적으로 조성한듯이 보이기도 하고, 또 어떻게 보면 애초부터 그곳에 자리를 잡고 있었던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등산로 옆에 우뚝 서 있는 각각 1m 이상 되는 크기의 이 바위 앞에 걸음을 멈추고 장래를 약속한 연인들은 사랑을 맹세하기도 하고, 부부들은 금슬상화(琴瑟相和)를 빌기를 주저하지 않는다.
쉬엄쉬엄 걸으면서 주변을 둘러보는 여유를 가진 사람이라면 왕복에 두어 시간 소요되는 금산 등산로를 오르내리는 내내 발치 아래 펼쳐지는 세상을 내려다보는 틈틈이 거북바위를 비롯한 온갖 기묘한 형상의 암석을 수석으로 완상할 수 있다.
특히 척박한 토질 때문에 분재에 가까운 수형으로 자연이 키워낸 다양한 수목을 감상하는 것도 등산의 재미를 더해준다.
4월 6일, 봄을 시샘하는 바람이 오가는 방향을 잃고 변덕스럽게 굴던 날에 또 다시 금산에 올랐다.
왼쪽으로 거북바위를 끼고 산을 오르는 길 좌우에는 연분홍 진달래가 한창 꽃을 피워 올리고 있다.
가파른 경사인데도 꼭 필요한 곳에는 돌 축과 돌계단을 쌓아서 잘 정비된 등산로는 평이한 발걸음을 옮겨 내딛기에도 불편함이 없다.
띄엄띄엄 다리쉼을 할 만한 장소에는 벤치를 마련해두어 먼산바라기를 하면서 주변을 살필 수 있도록 배려했고, 이따금 뒤돌아서 내려다보는 빼어난 불영사 계곡과 광천의 변화는 지루함을 잊게 한다.
잔솔밭 사이로 난 길을 걸어 1, 2, 3전망대를 지나고 남근, 여근 바위를 지나 오르면 갈림길이 나타나지만 안내 표지판 덕분에 길을 잃을 염려는 없다.
갈림길에서부터 정상까지 이어지는 가파른 길 주변에는 분재가 되어버린 소나무들이 즐비해서 하나하나 완상(玩賞)하기에 시간이 모자랄 지경이다.
4월 6일, 봄을 시샘하는 바람이 오가는 방향을 잃고 변덕스럽게 굴던 날에 또 다시 금산에 올랐다.
왼쪽으로 거북바위를 끼고 산을 오르는 길 좌우에는 연분홍 진달래가 한창 꽃을 피워 올리고 있다.
가파른 경사인데도 꼭 필요한 곳에는 돌 축과 돌계단을 쌓아서 잘 정비된 등산로는 평이한 발걸음을 옮겨 내딛기에도 불편함이 없다.
띄엄띄엄 다리쉼을 할 만한 장소에는 벤치를 마련해두어 먼산바라기를 하면서 주변을 살필 수 있도록 배려했고, 이따금 뒤돌아서 내려다보는 빼어난 불영사 계곡과 광천의 변화는 지루함을 잊게 한다.
잔솔밭 사이로 난 길을 걸어 1, 2, 3전망대를 지나고 남근, 여근 바위를 지나 오르면 갈림길이 나타나지만 안내 표지판 덕분에 길을 잃을 염려는 없다.
갈림길에서부터 정상까지 이어지는 가파른 길 주변에는 분재가 되어버린 소나무들이 즐비해서 하나하나 완상(玩賞)하기에 시간이 모자랄 지경이다.

소의 코뚜레를 만들 때 사용되는 노간주나무
잔솔 사이사이에는 길쭉하게 위로 솟아 빗자루 모양을 하고 있는 노간주나무가 푸른빛으로 하늘을 받치고 서 있다.
노간주나무는 목질이 탄력 있고 열을 가하면 휨새가 좋아서 오래전부터 농가에서 소의 코뚜레를 만들 때 이용했다.

금산 정상
드디어 정상이다.
금산 389m라는 목재 안내판과 내려가는 길을 알려주는 이정표, 벤치, 산불감시초소가 서 있고, 땅바닥에는 1978년도에 건설부에서 설치한 측량 삼각점이 깊이 박혀 있다.
눈을 들어 보면 왼쪽으로부터 죽변면과, 울진읍, 근남면이 한눈에 내려다보인다.
금산 389m라는 목재 안내판과 내려가는 길을 알려주는 이정표, 벤치, 산불감시초소가 서 있고, 땅바닥에는 1978년도에 건설부에서 설치한 측량 삼각점이 깊이 박혀 있다.
눈을 들어 보면 왼쪽으로부터 죽변면과, 울진읍, 근남면이 한눈에 내려다보인다.

하산 중간 지점 쉼터에서 내려다보는 풍광은 어느 곳보다
빼어나다
하산하는 반대편 등산로는 입구 쪽보다 조금 더 험한 지형을 갖추고 있어 얼마간 주의가 필요하다.
급경사로 인한 등산객의 안전을 돕기 위해 군데군데 목재 계단과 안전로프를 둘러 하산시의 부상 위험을 최소화한 배려가 돋보인다.
하산 중간 지점의 벤치가 놓인 쉼터에서 내려다보는 풍광은 어느 곳보다도 뛰어나다.
큼지막한 선돌 옆에 마련된 벤치 주위로는 금산에서는 쉽게 보기 힘든 오랜 수령의 소나무가 둘러 있고, 그 틈새로 내려다보이는 광천의 말굽형 물굽이는 탄성을 부른다.
![]() 이 봄, 동박나무 꽃이 노랗게 피어 알큰한 향기를 바람에 실어 보낸다 |
하산 길 곳곳에는 동박나무 꽃이 노랗게 피어 알큰한 향기를 바람에 실어 보낸다.
흔히 생강나무라고 불리는 동박나무는 산수유와 닮았지만 선이 굵고 알싸한 향기도 훨씬 더 진하다.
우리 할머니들은 동박나무 열매로 기름을 짜서 머릿기름으로 사용했다.
봄, 여름, 가을, 겨울.
각각의 향기와 색깔로 변함없이 그 자리를 굳건히 지키고 서 있는 산이 금산이다.
흔히 생강나무라고 불리는 동박나무는 산수유와 닮았지만 선이 굵고 알싸한 향기도 훨씬 더 진하다.
우리 할머니들은 동박나무 열매로 기름을 짜서 머릿기름으로 사용했다.
봄, 여름, 가을, 겨울.
각각의 향기와 색깔로 변함없이 그 자리를 굳건히 지키고 서 있는 산이 금산이다.
◈원효대사(元曉大師)의 천량암(天糧岩)과 숨겨진 절 검산사(劒山寺)
![]() 천량암이 위치한 백련산(白蓮山)은 온통 수천 년동안 부서져 내린 날카로운 바위들로 가득하다 |
울진읍내에서 36호선 국도를 타고 6km 정도 올라가면 만날 수 있는 절터가 천량암(天糧岩) 절터이다.
근남면 행곡 2리로 진입하는 다리를 지나치자말자 나타나는 오른쪽 산 중턱의 남동쪽을 향한 수십 미터 바위 절벽 아래 위치하는데, 입구가 숨겨져 있어 길 안내자가 없이는 찾기가 어렵다.
1998년 울진문화원에서 발간한 울진의 유적 Ⅲ집『울진의 사찰』에서는 천량암에 대해 “근남면 행곡2리 천전동 마을 건너편 백연봉(白蓮峰) 동남쪽 청량산골 푸른 암벽 사이에 있는 석굴로 해발 125m이다.”라고 적고 있다.
근남면 행곡 2리로 진입하는 다리를 지나치자말자 나타나는 오른쪽 산 중턱의 남동쪽을 향한 수십 미터 바위 절벽 아래 위치하는데, 입구가 숨겨져 있어 길 안내자가 없이는 찾기가 어렵다.
1998년 울진문화원에서 발간한 울진의 유적 Ⅲ집『울진의 사찰』에서는 천량암에 대해 “근남면 행곡2리 천전동 마을 건너편 백연봉(白蓮峰) 동남쪽 청량산골 푸른 암벽 사이에 있는 석굴로 해발 125m이다.”라고 적고 있다.

천량암은 숨겨진 입구를 찾아서 험한 산길을 한참 올라야
만날 수 있다
그런데『울진군지』에서는 “근남면 행곡리 천전동 검각봉(鈐閣峯)에 있는데 신라 때 원효대사(元曉大師)가 수도하면서 석실(石室)에 암자를 세우고 있는 동안 쌀이 돌구멍에서 조석으로 나왔다 하여 천량암(天糧岩)이라 하고 동네 이름도 미고(米庫)라 하였다. 그러나 원효대사가 떠난 후 가난한 중이 와서 쌀 구멍을 넓게 팠더니 쌀이 나오지 않았다는 전설이 있다.”고 기록하고 있다.
천량암이 위치한 장소를 두고 각각 백연봉(白蓮峰)과 검각봉(鈐閣峯)으로 그 명칭이 달라지는 것이다.
특히 조선 중종 25년(1530년)에 발간된 관찬 지리서인『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은 “백련산(白蓮山)에 있다. 민간에서 전하여 오는 말이 ‘원효(元曉)가 이 절에 거주할 때, 바윗돌 사이에 구멍이 있고 쌀이 나왔기 때문에 이름하였다’ 한다”고 기록하고 있다.
시기적으로 가장 앞서 발간된『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에 나타나는 지명을 따른다면 당초 부처의 세계와 깊이 연관되어 있는 연꽃을 의미하는 백련산(白蓮山)이었던 것이 후대에 와서 새로운 지명으로 바뀌었거나, 또는 일부에서 그렇게 불린 것이 아닌가 짐작할 따름이다.
전해오는 얘기에 따르면 천량암은 신라 진평왕대에서 신문왕대까지 실존했던 고승 원효대사(元曉大師. 617~686년)가 수도를 했던 곳이다.
원효대사가 행곡리 검각봉 바위산 아래 석실(石室)에 암자를 세우고 수도를 하는 동안 석실 밑 돌구멍에서 아침저녁으로 쌀이 나와서 도움을 주었다고 하는데,『울진군지』는 “그러나 원효대사가 떠난 지 가난한 중이 와서 쌀 구멍을 넓게 팠더니 쌀이 나오지 않았다는 전설이 있다.”고 적고 있다.
그러나 일부 민간에 전승되어 오는 설화는『울진군지』의 기록과 사뭇 다르다.
민간에서는 “쌀 구멍에서 쌀이 나오는데, 손님이 한명 찾아오면 한사람 몫이 더 나오고 두 명이 오면 두 사람 몫이 더 나오니 원효대사를 따라 다니던 동자승은 항상 배가 고팠다. 그러던 어느 날 동자승은 ‘쌀이 조금이라도 더 나오면 누룽지라도 먹을 텐데...’ 싶어 쌀 구멍을 부지깽이로 쑤셔서 넓혔다. 그런데 그 다음부터는 더 이상 쌀이 나오지 않았다.”고 전해 내려온다.
또 일부에서는 천량암에서 실제 원효대사가 수도를 했었는지의 여부에 의문을 나타내고 있다.
그러나 ‘원효대사는 39세(655년)에서 44세(660년) 사이에 태종무열왕의 둘째 딸로 백제와의 전투에서 남편을 잃고 혼자 사는 요석공주(瑤石公主)와의 사이에 설총을 낳고 실계(失戒)한 뒤, 스스로 복성거사(卜性居士) 또는 소성거사(小性居士)라고 칭하며 명산대천을 찾아 수도하며 일정한 틀에 구속되지 않았다’는 기록을 참고할 때, 전국을 떠돌았던 원효대사가 천량암에 머물렀을 가능성을 배제하기는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원효대사가 수도했던 천량암은 인근 지역의 지명에까지 큰 영향을 미친다.
경상북도 지명유래사전에 따르면, “천량암 전설에 연유하여 쌀고(米庫, 쌀구·살구는 이 쌀고에서 변한 말인 듯함)라는 이름도 생겼으나, 이것은 본동(本洞)만이 아닌 행곡리(杏谷里) 전체를 일컫는 지명으로 쓰이고 있다. 그런데 일설로는 살구나무가 많아 살구 혹은 쌀구로 부르게 되었다고도 한다.”고 기록하고 있다.
그런데 각종 기록과 문헌에 나타나는 대체적인 견해는 ‘원효대사가 천량암에 머물면서 마을 이름을 米庫(쌀고)라고 했는데, 세월이 지나면서 쌀구나 살구로 불리다가 杏谷(쌀고)으로 마을 이름을 고쳐 부르게 됐다’로 모아진다.
천량암은 오랜 세월동안 몇 차례의 존폐를 거듭하면서도 암자의 형태를 계속 유지하여 내려오다가 임진왜란 당시에 병화(兵火)를 입어 인근 성류사(聖留寺), 불영사(佛影寺)와 함께 불타 버린 것으로 전해진다.
현재 검각봉에 오르면 수십 척 깎아지른 바위 절벽 아래에서 천량암 절터를 오롯이 확인할 수 있다.
36호선 국도변에 차를 세우고 보일 듯 말듯하게 흔적만 남은 입구를 찾아서 나지막한 소나무 숲 사이 토끼 길을 따라 올라가면, 오랜 세월 쉼 없이 암산에서 떨어져 나온 날카로운 바위들이 잔뜩 나타난다.
낙엽이 수북이 쌓이면서 가려져 있어 무척 위험한 암석 사이를 조심스럽게 내딛으며 20여분 올라가면 왼쪽에 수 미터에 이르는 인공 석축이 나타난다.
채 열 평이나 될까 말까한 석축 위의 펀펀한 공간 주위로는 신우대가 군데군데 자라고 있고, 인공적으로 다듬은 흔적이 있는 크기가 각기 다른 석재와 기와편이 발견된다.
이곳이 1300여 년 전 원효대사가 전국의 명산을 찾아 떠돌다가 한동안 수도를 했던 곳으로 전해오는 천량암 터이다.

천량암 터에서 내려다보이는 행곡2리와 광천(光川)
우뚝 선 두어 그루 소나무 사이로 저 아래 광천이 끊임없이 맑은 물을 동해바다로 흘려보내고 있고, 굴참나무 사이사이로 행곡2리 마을이 한손에 잡힐 듯 다가온다.
행곡리의 지명으로 연결된 천량암 쌀 구멍은 이곳 천량암 터에서 오른쪽으로 10m 정도 떨어져 있다.

천량암에서 10여 미터 떨어져 있는 쌀 구멍은 깊이 1m 35cm,
입구 높이 65cm, 입구 넓이 1m 10cm 크기이다
쌀 구멍은 낙엽으로 미끄러지는 산을 타고 조심조심 올라야 겨우 닿을 만큼 천애절벽 중간에 깊이 숨겨져 있다.
깊이가 1m 35cm 정도인 쌀 구멍은 입구의 높이가 65cm, 입구의 넓이가 1m 10cm 정도의 크기이다.
![]() 험준한 지세의 검각봉 아래에서는 맹금류가 작은 날짐승을 잡아먹은 새털 흔적이 곳곳에서 발견된다 ![]() 천량암 터에서 발견되는 다양한 기와편 ![]() 천량암 터에서는 인공적으로 다듬은 것으로 보이는 석재가 다수 확인된다 |
검각봉 절벽 중간에 위치한 쌀 구멍은 사람이 맨손으로 오를 수 있는 가장 높은 곳에 위치하는 지극히 험준한 곳이다.
그런 만큼 지척 바위틈에서는 덩치 큰 맹금류가 작은 날짐승을 잡아먹은 새털 흔적을 곳곳에서 발견할 수 있다.
『울진군지』 등의 기록을 종합해 볼 때, 천량암은 1300여 년 전 원효대사가 처음 수도한 이래 조선 선조 때의 7년 전쟁인 임진왜란 당시에 불타 없어지기 전까지 숱한 고승들이 암자와 석축을 보수하면서 그 명맥을 이어갔을 것으로 추정할 수 있다.
작지만 너른 자락으로 숱한 생명을 가득 아우르고 있는 금산은 천량암 외에도 검산사(劒山寺)라를 절을 또 품고 있었다.
검산사 또한『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에 천량암과 함께 백련산에 있는 절로 기록되어 있다.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에는 울진 지역의 사찰 가운데 불귀사(佛歸寺), 천량암, 진관사(眞觀寺), 검산사, 정림사(淨林寺), 성류사(聖留寺)가 올라 있다.
울진문화원에서 발간한『울진의 사찰』은 “검산사는 근남면 행곡리 검산 중허리에 있었으나 지금은 폐사되었다. 이 절은 신라시대에 창건하였다고 하나 기록은 남아 있지 않고 구전으로 전해오고 있다. 천량암 서쪽 5리 되는 곳에 있으며, 지금은 주초석만 남아 있다.”고 적고 있다.
그런 만큼 지척 바위틈에서는 덩치 큰 맹금류가 작은 날짐승을 잡아먹은 새털 흔적을 곳곳에서 발견할 수 있다.
『울진군지』 등의 기록을 종합해 볼 때, 천량암은 1300여 년 전 원효대사가 처음 수도한 이래 조선 선조 때의 7년 전쟁인 임진왜란 당시에 불타 없어지기 전까지 숱한 고승들이 암자와 석축을 보수하면서 그 명맥을 이어갔을 것으로 추정할 수 있다.
작지만 너른 자락으로 숱한 생명을 가득 아우르고 있는 금산은 천량암 외에도 검산사(劒山寺)라를 절을 또 품고 있었다.
검산사 또한『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에 천량암과 함께 백련산에 있는 절로 기록되어 있다.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에는 울진 지역의 사찰 가운데 불귀사(佛歸寺), 천량암, 진관사(眞觀寺), 검산사, 정림사(淨林寺), 성류사(聖留寺)가 올라 있다.
울진문화원에서 발간한『울진의 사찰』은 “검산사는 근남면 행곡리 검산 중허리에 있었으나 지금은 폐사되었다. 이 절은 신라시대에 창건하였다고 하나 기록은 남아 있지 않고 구전으로 전해오고 있다. 천량암 서쪽 5리 되는 곳에 있으며, 지금은 주초석만 남아 있다.”고 적고 있다.

검산사지
검산사는 천량암 입구에서 36호선 국도를 타고 영주 방면으로 2.3km 정도를 더 올라가면 만날 수 있다.
검산사 절터 또한 천량암처럼 자연스럽게 입구가 감추어져 있는데, 일부 주민들은 검산사 터를 숨겨진 절터로 부른다.
그도 그럴 것이 36호선 국도변에서는 아무리 자세히 위를 살펴보아도 검산사 터가 전혀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꼭꼭 숨겨진 입구를 찾아서 가파른 산길을 따라 백여 미터 올라가면 좌측으로 검산사 터가 나타나는데 족히 백여 평은 됨직하다.

검산사지에서 왼쪽으로 바라보이는 거북바위
검산사지 뒤쪽은 절벽으로 이루어져 있다
검산사지에는 현재 신우대가 빼곡히 무성한 숲을 이루고 있고 그 사이사이로 주초석(柱礎石)으로 사용됐음직한 다듬어진 석재와 구들장들이 나뒹굴고 있어, 한때는 신증동국여지승람에 기록될 만큼 대단한 세를 떨쳤을 것으로 짐작할 수 있다.
수년전까지만 하더라도 이곳을 찾은 사람들은 아궁이로 추정되는 곳에서 놋수저 등을 쉽게 발견할 수 있었다고 전한다.
절벽위에 꼭꼭 숨겨진 절터, 검산사지에서 조심스럽게 내려다보면 광천이 햇살을 가득 머금고 아래로 아래로 흘러가며 덧없이 흘러간 찰나삼세(刹那三世)의 무상함을 웅변하는 듯하다.

관찬 지리서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에
기록되어 있는 천량암(天糧岩)과 검산사(劒山寺)
천량암과 검산사.
과거 어느 때, 인근 지역의 숱한 불자(佛者)들이 부처를 향한 정결한 신심으로 모여들었을 이들 절터에는 지금 이름 모를 잡초와 나뭇잎들만 계절 바람 따라 기약 없이 흔들리다가 땅으로 떨어지고 있다.
◈광천(光川) 물가의 관세음보살(觀世音菩薩)은 서쪽을 바라보며 합장하고
천량암에서 600여 미터를 더 올라가서 왼쪽으로 꺾어 돌면 옛 D레미콘 자리가 있다.

광천(光川) 물가의 관세음보살(觀世音菩薩) 바위
이곳에서 광천 물가 쪽으로 발걸음을 옮겨 물 건너편을 쳐다보면 물가 바로 옆에 사람의 얼굴 형상을 한 바위가 우뚝 서 있다.
주민들은 이 바위를 관세음보살(觀世音菩薩) 바위라고 부른다.
십 수 미터에 이르는 높이의 관세음보살 바위는 두 손을 합장한 채 서쪽의 금산을 말없이 바라보고 서 있다.
불영사계곡은 촛대바위, 부처바위, 노적바위, 사랑바위 등 숱한 이름 있는 바위를 가지고 있는데, 이 관세음보살 바위가 근남면에서 36호선 국도를 타고 오르면서 처음 만나게 되는 바위이다.
구원을 바라는 중생들의 근기에 맞는 천변만화하는 형태의 33신(身)으로 나타나 대자비심을 베푼다는 관세음보살을 닮은 바위.
조물주가 빚어낸 갖가지 형상의 바위에 우리 조상들은 그럴듯한 이름을 붙였다.
자연이 조형화해낸 바위에 이름을 붙이는 행위는 언제나 한국 미학의 기본 주제가 되어 왔다.
천량암 인근 광천 물가에 서 있는 관세음보살 바위 또한 그렇다.
원효대사가 울진 땅에 들었던 신라, 고려, 조선을 거쳐 현대에 이르기까지 숱한 세월을 부벼 안고, 주변 자연과 어울림의 미학을 구현하며 지난한 살림을 꾸려온 중생들이 끊임없이 추구해온 정토신앙(淨土信仰)과 맥을 함께 해왔다.

◈남루한 행색의 60~70년대 중년 여자 거지, 쌀구 남아귀와 차력사였던 그녀의 아들
1950~60년대를 거쳐 70년대 초반까지만 하더라도 울진 지역에서는 남의 집에 한 끼 먹을거리를 얻으러 다니던 거지들을 흔하게 볼 수 있었다.
지독스럽게 가난했던 이 땅 울진의 50년~70년대.
거지가 집집마다 동냥을 다니면 먹던 밥이라도 덜어 고지(박) 바가지나 찌그러진 놋그릇에 퍼주며 따뜻한 불기운이 서린 부엌 아궁이 앞에서 먹고 가기를 권하는 그런 살가운 인정이 있었다.
어렵고 힘든 시절을 거쳐 온 사람들은 너나 할 것 없이 밖으로 내몰린 거지들의 슬픈 가난을 없이 살면서도 함께 나누었다.
사람들은 자기 동네를, 자기 집을 찾아드는 더럽고 추한 행색의 거지들을 타박하여 내쫓거나 하지 않았고, 또 불편해 하지도 않았다.
1970년 초반까지만 해도 행곡 쌀구에는 울진 인근에서 가장 유명했던 남아귀라는 중년 여자 거지가 있었다.
가진 것이라고는 성치 않은 몸뚱어리밖에 없는 그 여자 거지를 두고 누구나 할 것 없이 쌀구 남아귀라고 불렀다.
누추한 천 쪼가리를 옷이라고 몸에 두르고 더러운 손과 발로 울진읍, 근남면, 서면 등지로 돌아다니며 음식을 얻어먹는 그 여자 거지는 이름도 나이도 짐작하기가 어려웠다.
이 골짜기 저 골짜기에 드문드문 흩어져 있는 산중 동네를 찾아다니며 음식을 구걸하는 남아귀는 혼자 다니기도 했고, 가끔씩은 남자애인지 여자애인지 구분하지 못할 아이와 함께 나타나기도 했다.
철없는 동네 아이들은 남아귀가 애들을 잡아간다는 소문을 믿고, 그녀가 마을 어귀에 나타나면 너도나도 돌멩이를 던지고 달아나기가 일쑤였다.
돌에 맞은 이마가 퉁퉁 붓고 피가 흘러도 남아귀는 그런 그들을 쫓아가거나 욕하지 않았고, 아무 집이나 들어가서 한 끼 양식을 구걸할 뿐이었다.
왜 사람들이 그 여자 거지를 쌀구 남아귀라고 불렀는지, 언제부터 그렇게 불렸는지는 알 길이 없다.
쌀구가 고향이었거나 주로 생활하는 터전이었기 때문에 쌀구 남아귀라고 불렸으리라는 추정만 할뿐이다.
남아귀라는 별명 또한 입에 비해 목구멍이 작아서 항상 배고파하고, 주변에 누가 있으면 곧장 달려들어 공격을 가한다는 아귀라는 귀신으로 비유해서 사람들이 남씨 성을 앞에 붙여 남아귀로 부르기 시작했을 것으로 미루어 짐작할 뿐이다.
남아귀에게는 장성한 아들이 한명 있었는데, 하나뿐인 그 아들은 60~70년대 울진 시장 안에서 차력사로 이름을 날렸다.
울진읍 5일장이 열리면 남아귀의 아들은 시장 통 한복판에서 웃통을 벗어던진 채 차력 시범을 보이고 난 후 구경꾼들이 던져주는 몇 푼의 돈으로 먹고 살았다.
그는 당시에 일부 차력사들이 구경꾼들의 눈을 속이며 거짓 시범을 보인 것과는 달리 실제 머리나 맨손으로 돌을 격파하거나 병 모가지를 날렸고, 입에서 불을 내뿜고, 몸에 칭칭 감긴 철사 줄을 온 힘을 써서 끊고는 했던 것으로 나이 든 이들은 기억한다.
변변한 볼거리가 없었던 60~70년대 시장 통에 모여드는 장꾼들은 손풍금을 연주하면서 구경꾼들을 불러 모으는 무허가 약장수와 차력사의 시범에 박수를 치면서 환호하고 열광했다.
천량암과 검산사를 품고 있는 금산 자락 한 귀퉁이에 몸담아 살다 간 남아귀를 어쩌면 불교에서 거지를 일컫는 규화자(叫化子)나 화자(花子)라고 기억해야 하는 것은 또 아닌지 모르겠다.
1950~60년대를 거쳐 70년대 초반까지만 하더라도 울진 지역에서는 남의 집에 한 끼 먹을거리를 얻으러 다니던 거지들을 흔하게 볼 수 있었다.
지독스럽게 가난했던 이 땅 울진의 50년~70년대.
거지가 집집마다 동냥을 다니면 먹던 밥이라도 덜어 고지(박) 바가지나 찌그러진 놋그릇에 퍼주며 따뜻한 불기운이 서린 부엌 아궁이 앞에서 먹고 가기를 권하는 그런 살가운 인정이 있었다.
어렵고 힘든 시절을 거쳐 온 사람들은 너나 할 것 없이 밖으로 내몰린 거지들의 슬픈 가난을 없이 살면서도 함께 나누었다.
사람들은 자기 동네를, 자기 집을 찾아드는 더럽고 추한 행색의 거지들을 타박하여 내쫓거나 하지 않았고, 또 불편해 하지도 않았다.
1970년 초반까지만 해도 행곡 쌀구에는 울진 인근에서 가장 유명했던 남아귀라는 중년 여자 거지가 있었다.
가진 것이라고는 성치 않은 몸뚱어리밖에 없는 그 여자 거지를 두고 누구나 할 것 없이 쌀구 남아귀라고 불렀다.
누추한 천 쪼가리를 옷이라고 몸에 두르고 더러운 손과 발로 울진읍, 근남면, 서면 등지로 돌아다니며 음식을 얻어먹는 그 여자 거지는 이름도 나이도 짐작하기가 어려웠다.
이 골짜기 저 골짜기에 드문드문 흩어져 있는 산중 동네를 찾아다니며 음식을 구걸하는 남아귀는 혼자 다니기도 했고, 가끔씩은 남자애인지 여자애인지 구분하지 못할 아이와 함께 나타나기도 했다.
철없는 동네 아이들은 남아귀가 애들을 잡아간다는 소문을 믿고, 그녀가 마을 어귀에 나타나면 너도나도 돌멩이를 던지고 달아나기가 일쑤였다.
돌에 맞은 이마가 퉁퉁 붓고 피가 흘러도 남아귀는 그런 그들을 쫓아가거나 욕하지 않았고, 아무 집이나 들어가서 한 끼 양식을 구걸할 뿐이었다.
왜 사람들이 그 여자 거지를 쌀구 남아귀라고 불렀는지, 언제부터 그렇게 불렸는지는 알 길이 없다.
쌀구가 고향이었거나 주로 생활하는 터전이었기 때문에 쌀구 남아귀라고 불렸으리라는 추정만 할뿐이다.
남아귀라는 별명 또한 입에 비해 목구멍이 작아서 항상 배고파하고, 주변에 누가 있으면 곧장 달려들어 공격을 가한다는 아귀라는 귀신으로 비유해서 사람들이 남씨 성을 앞에 붙여 남아귀로 부르기 시작했을 것으로 미루어 짐작할 뿐이다.
남아귀에게는 장성한 아들이 한명 있었는데, 하나뿐인 그 아들은 60~70년대 울진 시장 안에서 차력사로 이름을 날렸다.
울진읍 5일장이 열리면 남아귀의 아들은 시장 통 한복판에서 웃통을 벗어던진 채 차력 시범을 보이고 난 후 구경꾼들이 던져주는 몇 푼의 돈으로 먹고 살았다.
그는 당시에 일부 차력사들이 구경꾼들의 눈을 속이며 거짓 시범을 보인 것과는 달리 실제 머리나 맨손으로 돌을 격파하거나 병 모가지를 날렸고, 입에서 불을 내뿜고, 몸에 칭칭 감긴 철사 줄을 온 힘을 써서 끊고는 했던 것으로 나이 든 이들은 기억한다.
변변한 볼거리가 없었던 60~70년대 시장 통에 모여드는 장꾼들은 손풍금을 연주하면서 구경꾼들을 불러 모으는 무허가 약장수와 차력사의 시범에 박수를 치면서 환호하고 열광했다.
천량암과 검산사를 품고 있는 금산 자락 한 귀퉁이에 몸담아 살다 간 남아귀를 어쩌면 불교에서 거지를 일컫는 규화자(叫化子)나 화자(花子)라고 기억해야 하는 것은 또 아닌지 모르겠다.
◈초자연, 초합리적인 신령(神靈)의 힘을 지녔던 수채바우
관세음보살 바위가 지척인 36번 국도변에서 울진 읍남리 상토일 까지는 지난 2000년에 뚫린 1.52km 거리의 임도가 나 있다.

근남 행곡~상토일 방면 임도 끝지점에서 500여 미터 더 직진하면
나타나는 오른쪽 길 바로 옆의 너럭바위가 수채바우이다
차량 운행이 불편하지 않은 비포장임도 주위로는 봄이면 진달래가 만발하고, 가을이면 임도 변에 있는 밤나무 숲에서 쩍하니 아가리가 벌어진 밤송이와 알밤을 줍는 재미가 쏠쏠하다.
인근 지역 주민들 상당수는 수년전부터 이 길을 천천히 걸으면서 운동할 수 있는 트래킹 코스로 활용하며 주변 자연의 여유로움을 만끽하고 있기도 하다.
36호선 국도변에서 울진 읍남리 상토일 방면으로 임도를 따라 가다가 임도 끝 지점에서 500여 미터 더 직진하면 오른쪽 길 바로위에 사시사철 마르지 않고 물이 졸졸 떨어지는 큰 너럭바위 하나가 나타난다.
![]() 40~50여 년 전까지만 해도 눈병이 난 인근 지역민들은 수채바우를 찾았다 ![]() 수채바우 옆에 마련되어 있는 네모난 작은 박스 모양의 신단(神壇) ![]() 수채바우는 지금도 위쪽 산정에서 스미어 나오는 맑은 물을 쉼 없이 흘려보내고 있다 |
수채바우는 오래전부터 인근 지역 주민들의 자연 안과로 불리며 눈병이 있는 숱한 사람들을 불러 모았다.
현재의 의학적 상식으로 판단하면 웃고 말 일이지만, 1960~70년대 까지만 해도 실제 눈병이 난 사람들이 수채바우에서 떨어지는 물로 눈을 씻으면 낫는다는 맹신 아래 수채바우골을 찾았다.
위생 상태가 열악하던 시절 가까운 울진읍내에서부터 근남면 일원에 살던 사람들, 저 멀리 서면 하원리 사람들까지 눈병을 고치려고 수채바우골로 몰려들었고, 대부분은 큰 효험을 보았던 것으로 알려진다.
안과가 없던 지난 시절, 많은 이들의 눈병을 고쳐주었던 수채바우는 지금도 위쪽 산정에서 스미어 나오는 맑은 물을 쉼 없이 흘려보내고 있다.
먼 조상 때부터 사람들은 천지자연이 실현해내는 초자연적이고 초합리적인 여러 가지 신비한 현상을 마주하게 되면 언제나 자연 그 자체를 신격화한 신령(神靈)을 대비시켜 문제를 해석하고 또 숭상했다.
수채바우 길옆에도 신격화된 자연에 내재하는 초자연적인 신령의 힘을 빌리려고 기도하고 치성을 드리던 소박한 장소가 퇴락한 채로 두어군데 여전히 남아 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신심 강한 사람들이 촛불을 켜고 기도를 올려 보이지 않는 힘을 빌리려 했던 듯, 앞이 툭 트인 네모난 작은 박스 모양의 신단(神壇) 안에 또 하나의 단을 시멘트로 만들어 두었다.
신단 위에는 길쭉한 돌 하나를 얹어 신주(神柱)로 삼았는데, 누군가 영험한 힘을 가진 것으로 믿었던 수채바우 아래에서 소망하던 무엇인가를 은밀히 갈구했으리라 짐작할 수 있다.
원효대사의 천량암, 검산사, 남아귀, 수채바우를 산자락 가득 품고 있는 금산.
그곳에서는 천지산천이 애니미즘(animism)적인 신앙의 대상으로 승화되어 신격화된 영혼의 자취를 확인할 수 있다.
모르면 그냥 지나치고 말 것을, 어떤 장소에 얽히고설킨 다양한 전설과 설화를 알고 나서 그곳을 찾는다는 건 아주 각별한 의미 하나를 더 보태는 것이다.
혹여나 금산 자락을 찾아가게 되면 이들 장소를 숨은그림찾기 놀이하듯이 꼭 한번 찾아보고, 한결 정화된 영혼의 무게도 확인하고 돌아오기를.

인근 지역 주민들은 근남 행곡~울진 읍남리 간 임도를
수년전부터 운동 코스로 활용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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