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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효선의 울진문화 읽기(5) 유월, 금빛 보리밭이 부르는 생명의 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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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2.08.01 16: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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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리, "생존의 밥상에서 생명의 밥상으로 돌아오다"

 4∼60년대 농꾼 생존 지켜준 서러운 이름, '짝두보리'



 가도 가도 붉은 황톳길
 숨 막히는 더위뿐이더라[중략]
 수세미 같은 해는 서산에 남는다[중략]
 가도 가도 붉은 황톳길
 숨 막히는 더위 속으로 절름거리며 가는 길[중략]

- 한하운 시『전라도길』

쨍쨍한 볕이 온 천지를 달구는 유월의 들녘과 산비얄은 보리 천지이다. 
유월은 보리의 세계다. 끝 간 데 없이 활짝 펼쳐지는 금빛 생명의 천지이다.

어머니의 손으로 일군 화전 떼기에서부터 바닷가 바위 언덕을 쪼아 만든 코딱지만 한 돌밭, 고샅밭, 그리고 남도의 가없는 들녘에 이르기까지 유월이면 어김없이 보리가 익는 장한 금빛이다.

50여 년 전 우리 생명의 명줄을 이어 준 보리가, 또 다시 생명의 밥상으로 각광을 받고 있다.

온갖 방송매체는 앞 다투어 "보리밥 예찬론"을 펼친다.
보리밥뿐만 아니다. 패스트푸드에 쫓겨 이름조차도 생소한 질병과 건강에 위협을 당하다 급기야 우리네 어머니의 어머니들이 수백 년을 갈무리하며 지켜온 토종 먹거리의 소중함에 감탄한다.

아침방송 리포터들은 전국을 돌며 우리네 토종 먹거리를 소개하느라 연일 분주하다.
까끌하게 입 안에 씹히던 보리밥과 구수한 보리숭늉 한 그릇이 물밀 듯 밀려오는 패스트푸드를 제끼고 생명을 지키는 파수꾼으로 다시 우리 밥상 위로 돌아온 것이다.



70년대 근대화 이농세대, 보리밥에서 모둠살이 꿈 재현
남루한 농꾼 가계 지켜온 "짝두보리"... 서민 생명 버팀한 서러운 이름

고추장과 된장찌개, 푸성귀와 함께 벌건 고추장으로 잘 비빈 보리밥에 보리밥 숭늉을 곁들이면 금세 마음은 고향으로 달린다.

"우리도 한번 잘살아보세"로 시작하는 새마을의 깃발 아래 도시로, 도시로 떠돌던 잃어버린 모둠살이가 보리밥으로 되살아나는 셈이다.

6∼70년대 이른바 근대화라는 이름으로 포장되어 있는 이농ㆍ탈향세대들이 예순을 훌쩍 넘긴 어느 날, 도심지 골목어귀 보리밥집에서 고향마을로 들어가는 황톳길과 처마와 처마를 맞대고 보금자리를 틀고 있던 고샅길을 떠올리고 땡볕이 좀체 사그라지지 않는 유월, 마당 가운데 모깃불을 놓고 온 식구가 둘러앉아 먹던 보리밥 저녁 밥상을 비로소 떠올린다.

보리가 활짝 금빛으로 패나는 유월이 오기 전, 우리네 어머니 아버지 그리고 또 그 어미의 어미들은 쉴 참 없는 호미질로 쳐진 허리를 "짝두보리"로 배겨냈다.

이름조차도 섬뜩한 "짝두보리"는 우리나라 농꾼의 팔 할인 소작농의 생명을 키워낸 "생명의 양식"이다. "짝두보리"라는 이름 속에는 학정과 수탈로 점철된 지난한 이 땅의 농촌의 역사가 오롯이 담겨있다.

평생을 흙과 함께 노동으로 살아온 우리네 아버지의 서러운 삶의 곡절이 "까끄라기 속에 꽉 차게 영그는 보리알"처럼 박혀있는 것이다.
"짝두보리"는 그래서 "보리개떡"과 함께 이 땅의 서러운 이름이다.

겨울을 지나 한 해의 농사를 시작하는 봄이면 농촌의 가계는 '소쩍새 울음소리' 만큼 곤궁해 진다.

겨우내 배를 굶주려 가며 아껴놓은 양식은 "자신을 낳아 준 조상님의 몫"으로 언감생심 욕심도 못내는 소중한 것이었다.

"짝두보리는 생명의 양식이자 수탈의 또 다른 이름"
 

 
보리 중에서 으뜸으로 치는 것이 "우리 토종"인 "육각보리"이다. 육각보리는 이삭의 단면이 여섯 개 모여서 영글었다하여 "여섯모 보리"라고도 한다.

오월이면 평생 소작으로 어렵게 마련한 산비얄의 밭에는 동토를 뚫고 새파랗게 웃자란 보리가 노르끼리한 빛깔로 보리 꽃을 피워 올린다.

"수세미 같은 해" 가 서편에 걸려있는 해거름에 아비는 낫을 들고 금방 순을 피워 올린 보리 한 땀을 잘라 부리나케 집으로 달려온다.

아비는 멍석을 깔고 "덜 팬 보리를 줄기 채 작두로 썰어" 지어미에게 건넨다. 
지어미는 정지칸에 쭈그려 앉아 "작두로 썬 보리"를 돌확에 넣어 곱게 빻는다.

흰 물이 달큰하게 배어 나오는 "작두로 썬 보리" 가루를 끓는 솥에 넣어 뭉글하게 범벅을 끓여 온 가족이 주린 배를 채웠다. 

"보릿고개를 넘어가려면 애먹어. 죽을 고비여. 만날 밭에 나가봐도 보리는 안 익고. 그래
낫으로 덜 익은 보리 한 땀을 베다가 작두로 잘게 썰지. 이를 다시 돌확이나 디딜방아에 곱게 빻아 펄펄 끓는 물에 넣어 뭉글하도록 끓이면 범벅이 되지. 삼, 사월에 나물밥만 먹다가 그도 떨어지면 짝두보리 해먹지. 애들은 얼굴에 부색이 나고 매일 배앓이를 하지"

팔순의 장헌수(북면 신화리) 할아버지가 보릿고개 시절, 식구의 주린 배를 채우기 위해 덜 익은 보리를 작두로 썰어 "짝두보리범벅"을 해 먹던 시절을 떠올리며 지그시 눈을 감는다.

온 산천이 하루가 다르게 연록색으로 피어나는 봄. 앞산의 꾀꼬리울음이 "아재비 삼촌 집도 가지 말라"는 것처럼 들리던 보릿고개.

남루로 범벅된 우리 농꾼의 질긴 생명을 이어준 "짝두보리밥"은 이렇게 탄생한다. "밟아야 제대로 크는 보리의 생명"은 바로 우리 농꾼의 생명이다.

겨울, 보리가 푸릇하게 순을 내민 동구 밖 보리밭은 아이들의 놀이터였다. 
금빛으로 장한 보리로 키우기 위해 아이들은 온 종일 파릇한 보리 순을 밟고 뒹굴며 해 지는 줄 몰랐다.

유월로 접어들면 아이들은 산등성이에 소의 고삐를 던져놓고 "보리서리"를 했다. 
연한 금빛으로 익는 보리를 한 줌씩 꺾어 불을 묻은 흙 속에 넣어 익힌 보리쌀을 손바닥으로 비벼 한 줌씩 입 안으로 털어 넣었다.

보리서리에 지친 아이들은 "산뽕나무"에 매달린다. 보리가 익는 유월이면 뽕나무 열매인 "오디"가 지천으로 열리기 때문이다.

어머니들은 아침 일찍 논밭으로 나가기 전에 삼베보자기로 덮은 보리밥 한 그릇을 정성스레 정지(부엌) 벽에 붙은 찬장에 정성스레 넣어놓았다. 

학교에 다녀오는 아이를 위한 소중한 양식이었다. 
아이는 학교에서 집으로 오자마자 찬장을 뒤져 어머니가 삼베보자기로 덮어놓은 보리밥에 고추장을 쓱쓱 비벼 먹은 뒤 삼삼오오 떼를 지어 소를 몰고 쇠꼴(참풀)이 많은 산등성이로 올랐다.

시골에서 유년을 보낸 이면 누구나 한 번쯤은 기억할 것이다. 
초등학교 시절 보릿짚으로 정성스레 만든 "여치 집"이나 "귀뚜라미 집"을. 다보탑처럼 층층을 지며 보릿짚으로 엮어 만든 여치 집에 한 가득 담긴 여치를.
배고파 우는 아이의 울음을 단번에 그치게 하던 "보리개떡"의 아련한 맛을.

 보리 중 최고는 육각보리....

조청, 고추장, 엿기름 ,막걸리 등 전통발효식품의 주 재료
성장기 어린이, 임산부, 당뇨환자에 효능....변비치료에 월등

최근 들어 너도나도 건강식품에 부쩍 관심을 가지면서 민중들의 생명을 보듬어 온 보리가 다시 우리 곁으로 돌아오고 있다.

특히 보리는 예나 지금이나 농약 없이 재배되는 유일한 먹거리이다.
보리 중에서 으뜸으로 치는 것이 "우리 토종"인 "육각보리"이다.

육각보리는 이삭의 단면이 여섯 개 모여서 영글었다하여 "여섯모 보리"라고도 한다. 
보리는 또 4각종의 "네모보리(늘보리)"와 이삭의 단면이 두 줄로 된 "두줄보리" 그리고 토종인 육각종과의 중간 형태인 중간종이 있다.

보리는 늦가을이나 겨울의 들목 무렵에 파종한다. 
그 때부터 보리씨는 동토의 겨울을 언 땅 속에서 발아를 하고 파종한 뒤 3개월가량 지나면 싹이 돋는다.

과거 6-70년대 초등학생들은 심심찮게 보리밟기에 동원되기도 했다. 
이렇게 자란 보리는 3-4월이면 초록의 바다를 이룬 듯 넘실대다가 소쩍새가 울기 시작하는 오월이면 노리끼리한 보리 꽃이 피어난다. 
이를 "보리가 팬다"고 한다. 오월 말경이면 보리밭은 황홀한 금빛으로 변한다.
유월에 농가에서는 보리를 수확한다.

보리개떡은 농촌 아이들의 최고의 주전부리

보리팰 무렵 '꽁치' '멸치'는 최상의 품질 각광

보리가 한창 팰 무렵이면 울진 연안 바다에서는 "꽁치"와 "멸치"가 만선을 이뤘다. 
이 때 잡히는 꽁치와 멸치는 "보리꽁치", "보리멸치"라 하여 품질이 뛰어났으며 고가로 팔렸다.
"보리꽁치"는 보리가 한창 팰 무렵 잡히기 때문에 붙혀진 이름이다.

보리 베기가 끝나면 어머니들은 삼삼오오 떼 지어 보리밭에 나가 "보리이삭줍기"를 했다. 
이렇게 주은 이삭으로는 조청이나 감주를 담그는데 없어서는 안될 엿질금(엿기름)을 만들었다.

타작한 보리는 한 해를 날 양식으로도 턱없이 부족했기 때문에 한 알의 이삭이라도 주어 젯상에 올릴 감주나 막걸리를 만들어야 했기 때문이다.

보리를 수확한 자리에는 대개 콩을 묻는다. 
이듬해 먹을 된장용이다. 
보리는 "지겹도록 남루"한 우리네 농어촌 가계의 주 양식이자 전통 발효 먹거리의 주된 원료로 요긴하게 사용되어 왔다.

감주(단술), 누룩, 막걸리, 고추장, 수제비, 식혜, 엿기름(질금), 차떡, 조청 따위를 만드는 주 재료였으며 서민 가계의 건강음료인 보리차의 주원료로 자리 잡아 왔다.
특히 보리등겨로 만드는 "보리개떡"은 가난한 농촌아이들의 최고의 간식거리이다.

보리 한 홉의 칼로리는 3백35㎈(쌀 3백37㎈)이며 단백질 10g, 지방 19g, 탄수화물 71.7g, 화분2.4g, 칼슘40mg, 인 320g, 철 4.5mg, 비타민B 0.38mg 등으로 쌀에 버금가는 영양가를 함유하고 있으며 특히 단백질, 칼슘, 철 등은 쌀에 비해 월등하다.

또 보리는 지방과 탄수화물이 적어 한창 성장하는 어린이나 임산부, 또는 칼로리를 적게 섭취해야 하는 당뇨병 환자에게는 특히 유효한 먹거리로 정평이 나 있다.

특히 쌀에 비해 섬유성분이 많아 창자의 연동운동을 촉진시켜 변비를 없애주며 쌀 보다 월등한 비타민B 성분은 당질대사(糖質代謝)에 큰 도움을 준다.

한방에서는 보리가 오장을 튼튼히 하고 설사를 멎게 하는 효과가 탁월한 식품으로 분류하며 민간에서는 엿기름을 만들어 소화제로도 사용하고 있다.

또 얼굴에 부스럼이 많은 어린이에게는 볶아서 감초와 함께 달여 먹이면 효과가 있으며 각기병, 당뇨병, 고혈압환자에게는 특히 탁월한 효능을 가진 건강식품으로 각광받고 있다.

이 때문에 7∼80년대에는 국가적 정책으로 "보리밥 먹기운동"이 전개되기도 했으며 각 학교에서는 점심시간마다 도시락 뚜껑을 열고 담임선생이 보리쌀 혼합비율을 검사하는 등 진풍경이 연출되기도 했다 .

보리밭 사이길 걸으며 보리피리 한번 불어보시라

금빛 보리밭과 황톳길이 빚는 황홀 속에서 보리피리 불어보시라 
고향 툇마루에 앉아 보리밥에 고춧잎나물, 된장찌개, 고추장을 얹어 쓱쓱 비벼먹고 하늘나리 피어나는 황톳길을 따라 보리밭에서 보리피리 불어보시라.

유월의 농촌은 금빛이다. 
제각기의 색깔을 빚은 신록 사이로 언뜻언뜻 비치는 금빛의 보리밭은 요란한 네온 불에 식상한 도시의 삶을 시원하게 적셔주는 계곡의 맑은 물이다.

보리피리 불며/ 봄 언덕/ 고향 그리워/ 피 - ㄹ 닐니리 
보리피리 불며/ 꽃 청산어린 때 그리워/ 피 - ㄹ 닐니리
보리피리 불며/ 인환의 거리/ 인간사 그리워/ 피 - ㄹ 닐니리 
보리피리 불며/ 방랑의 기산하/ 눈물의 언덕을 지나/ 피 - ㄹ 닐니리

                              -한하운 시『보리피리』전문-


보리밥 한 그릇, 된장찌개, 고춧잎나물, 비름나물 한 줌 그득하게 양푼에 담아 고추장 한 숟갈 듬뿍 넣어 여기에 참기름이라도 한 방울 넣고 쓱쓱 비벼 아내와, 아이와 함께 유월 햇살이 슬금슬금 서편으로 넘어가는 고향 집 툇마루에 빙 둘러앉아 먹어보시라.

그리고 아이들 손잡고 "수세미처럼 걸린 햇살"을 머리에 이고 하늘나리가 흡사 호랑나비처럼 피어나는 동구 밖 길을 돌아 산비얄 금빛 보리밭을 거닐어 보시라.

금빛의 보리밭과 황톳길이 빚어내는 황홀 속으로 들어가 보시라.
보리밭을 거닐며 해 지는 서편을 향해 보리피리 한번 불어보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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