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연세가정의학과 의원 이종규
누구나 자기의 인생을 마무리하는 일에는 특별한 공식이 없습니다.
살아가는 방식이 다양하듯이 마무리하는 일도 마찬가지입니다.
울진읍에서 7번 국도를 따라 남쪽으로 36킬로미터쯤 내려오면 평해읍이란 이정표를 볼 수 있습니다.
읍이라고 해봐야 인구는 줄어들고 주로 노인들만이 마을을 지키고 있을 뿐입니다. 이곳에 작은 노인 요양원이 있습니다.
시골의사를 자처한지 이미 두 자리 수가 돼 갑니다. 이 요양원이 설립된 이후 줄곧 촉탁의를 맡고 있습니다.
그곳에 삼십여 명의 노인들이 아침부터 저녁까지 복작대면서 삶을 연명하고 있습니다.
이미 우리 사회에서 소외되고 버려진 노인들의 생활터전이기도 합니다. 가장 가깝고 정다웠던 사람들에게서 조차도 잊어진 사람들입니다.
한때 그분들은 모든 정열과 청춘과 젊음을 바쳤던 삶의 목표가 송두리째 깨어지고 우리 사회에서 따돌림 받고 버려진 폐인들입니다.
매일매일 원망과 서러움 속에서 긴긴 세월을 지내오셨습니다. 희망보다는 절망과 체념에 더 익숙한 사람들입니다.
그 분들이 간절하게 바라는 것은 모든 이들의 기억 속에서 빨리 잊어지기를 기대할 뿐입니다.
요양원은 흔히 생각하는 병원이라는 개념과는 좀 다릅니다.
요양원에 입소한 분들은 삶을 마무리할 시간이 얼마 남지 않은 분들이나 아예 삶이라는 것 자체에 의미를 두지 못하고 방황하는 분들입니다.
그 분들의 화려했던 젊은 시절은 현재의 우리들의 생활방식에 대입해도 결코 틀리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요양원에서는 화려한 삶이나 기억은 더 이상 찾아볼 수가 없습니다.
그분들의 세계는 사회생활을 하는 우리들과는 전혀 다른 세계입니다. 우리가 이해하지 못하는 아주 특별한 세상이기도 합니다.
크리스마스를 한 달 앞두고 반백의 낯익은 얼굴들이 작은 마을을 찾아왔습니다.
고등학교를 졸업한지 40여년이 지났고 검은 머리에는 허연 서리가 내렸습니다. 삶을 달관한 주름은 현실을 부정하지는 못했습니다.
여전히 희희 낙락한 표정으로 반가운 마음을 교환 했습니다. 요양원에 특별한 관심을 갖게 되는 시기이기도 합니다.
그건 바로 우리 삶의 진솔한 뒤안길이기 때문입니다.
푸짐한 필수품을 잔뜩 보내준 “경동고등학교 24회 동창회”에 진심으로 깊은 감사의 마음을 전합니다.
표정 없는 노인들의 얼굴에 웃음을 다시 찾게 해준 위로 공연이야 말로 가슴 후련한 맑은 샘물이나 다름없습니다.
이제는 사람들의 관심에서 아예 잊어진 무뚝뚝한 표정이 잠시만이라도 밝게 펴진 모습을 보면 그저 고마울 따름입니다.
음악에 맞춰 손뼉을 치고 몸을 뒤틀면서도 주변을 의식하는 모습이 안쓰럽기도 했지만 그건 희망의 몸짓이고 자기를 표현하는 의지였습니다.
오히려 조금은 어색하고 매끄럽지 못한 진행이 이분들에게는 더 포근하고 마음이 편할지도 모릅니다.
수염이 비뚤어진 산타클로스가 하모니카를 연주하고 진정성이 넘치는 대금연주는 보는 이로 하여금 많은 공감을 불러 일으켰습니다.
선글라스로 눈동자를 가렸으니 산타의 마음속을 꿰뚫어 볼 수가 없었습니다.
저분들의 모습이 차마 우리들의 장래일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하였을 게 틀림없습니다.
조금이라도 더 긴 호흡으로 더 아름답고 즐거운 멜로디를 연주하고 싶었을 겁니다.
일그러지고 무표정하던 노인들이 손을 합쳐 치는 박수 소리가 그렇게 크게 들렸을 거라는 생각을 못했을지도 모릅니다.
편 마비된 손은 움직여지지가 않았습니다. 그러자 재빨리 옆자리의 편 마비된 다른 노인의 한손과 힘을 합쳐 박수를 치고 있었습니다.
2인 삼각 게임을 아시지요? 그런 모습이 얼마나 보기가 좋았는지 모릅니다.
하모니카를 연주하던 산타는 아주 짧게 또 긴 숨을 몰아쉬며 연주에 몰두 했습니다.
그는 아예 지그시 눈을 감고 혼자만의 연주세계로 몰입하였습니다.
밸리 댄스를 지켜보던 할머니는 손을 꼭 잡고 지나간 청춘을 기억하려고 애를 쓰는 모습이 안타깝기도 했습니다.
민요가락에 몸을 흔들고 손뼉을 치는 어린애 같은 표정은 결코 잊을 수가 없습니다.
진행을 보면서 멋진 민요 가락으로 요양원의 분위기를 한껏 돋워주신 “예진소리” 회원님들과 “제일약국”에도 깊은 감사를 드립니다.
시골 진료실을 나서면서 산타클로스는 아끼던 새 담배 한 갑을 옆 친구에게 아낌없이 건네주었다고 합니다.
긴 한숨을 쉬면서......... 그는 우직하고 의지력이 강해서 결코 기대에 어긋나지 않을게 틀림없습니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자신의 생활을 이분들과 함께 어우러져 살아가는 요양원의 모든 식구들에게 정말로 머리 수그려 감사드립니다.
당신들이야 말로 진정한 우리 사회의 빛이고 소금이나 다름없습니다.
당신들이 궂은일로 밤샘을 하는 동안 내일의 삶에 희망을 찾는 가족들은 단잠을 이룰 수가 있습니다.
아무도 거들떠보지 않는 병실에서 말동무가 되어주고 싸늘해져가는 거칠고 굳어진 몸매를 닦고 주물러주는 당신들이야 말로 진정한 천사의 손길이나 다름없습니다.
기저귀를 바꿔주고 생의 마무리를 아름답게 만들어가는 여러분에게 존경과 감사를 드립니다.
사회생활의 가장 기본적인 삶이 건강해져야만 국가는 힘을 기르고 발전을 할 수가 있습니다.
바로 여러분들이야 말로 가장 기본적인 국가 발전의 최 일선에서 일하고 있습니다.
끝으로 수년전 시골의사를 찾아 주셨던 어느 요양보호사님의 유언장을 소개하면서 다시 한 번 진정으로 감사하다는 말씀을 전합니다.
유 언 장
이제는 그동안 말하지 않고 참았던 걸 말씀드려야겠습니다. 살만큼은 살았으니 여한은 없습니다.
기왕에 가는 길이라면 마음을 훌훌 털고 가벼운 걸음으로 가는 게 도리라고 생각합니다.
눈을 감으니 지나간 삶의 모든 희로애락이 한눈에 알 수 있고 한 번에 느껴집니다.
그 중에서도 가장 가슴 아픈 일이 하나 있습니다. 나를 낳아주신 부모님께 변변한 효도한번을 못한 것이 엄청나게 후회스럽기만 합니다.
정말로 감사를 해야 하는 분들인데도 가장 무심하게 지내온 게 정말로 후회스럽습니다.
머지않아 내가 다시 그분들의 곁으로 돌아간다고 생각하니 그저 두렵기만 합니다.
무슨 말로 그분들의 마음을 훈훈하게 해드릴까를 생각해 보지만 딱히 적당한 말이 아직 떠오르지 않습니다.
다시 만나면 최선을 다해서 그 분들을 편안하게 해드리고 싶습니다.
우리 부모님처럼 나는 우리 아이들에게 그런 정성으로 다 보살펴 주지 못해서 미안한 마음을 숨길수가 없습니다.
생전에 부모로서의 책임을 다하지 못한 것이 지금까지도 부담스럽기만 합니다.
아이들을 낳고 기르면서 같이 즐거워하던 시간이 내게도 분명히 있었다는 것만으로도 아주 만족합니다.
그만큼 아이들은 내 인생에 가장 중요하고 자랑스러웠습니다. 그런 행복을 누릴 수 있었다면 꽤 괜찮게 살아왔다고 자위를 합니다.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표현하지는 못했어도 마음껏 사랑했던 아이들의 아버지에게 정말로 수고했다는 말씀을 전하고 싶습니다.
당신이야말로 나에게는 하느님과 같은 사람입니다. 처음 만나서 헤어질 때까지 가슴속에 담은 말을 어떻게 다 말을 할 수가 있겠습니까?
다만 분명하고 자신 있게 말 할 수 있는 건 진정으로 당신 한 사람을 사랑했다는 말을 전해 드립니다. 정말로 감사하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친인척을 비롯해서 많은 친구들과 지인들과의 좋은 관계를 늘 기억하고 있습니다.
행여 부족했던 일들이나 그동안 잘못된 일로 그분들에게 부담을 드렸다면 용서해 주시기 바랍니다.
그래야만 훗날 갈 길이 조금이라도 편하게 느껴질 것만 같습니다.
이제 남아있을 분들에게 몇 가지 부탁을 드려야겠습니다.
부모님께 받은 육신을 곱게 지키지 못했지만 그래도 요즈음은 마지막 헌신할 수 있는 기회가 있습니다.
조금도 주저하지 말고 xx 대학교 의과대학 해부학 교실에 기증해 주시기 바랍니다.
조금이라도 신세를 진 분에게 보답을 하고 싶은 마음을 헤아려 주시기 바랍니다. 나를 낳아주신 부모님께서도 기뻐하실 것으로 생각합니다.
그동안 복에 겨운 생활을 하면서도 행운이 따라서인지 작은 집을 한 칸 마련했습니다.
사회생활을 하면서 얻게 된 크지 않은 재산이지만 그동안 잘 살고 잘 지냈으니 이제는 사회에 다시 돌려드리겠습니다.
임종하시는 분들에게 비록 짧은 순간이라도 내세를 기원 할 수 있는 장소로 기증하도록 하겠습니다.
모든 관리는 이웃의 여동생에게 위임을 하겠습니다. 제가 지니고 있는 모든 소유물과 보험관련 금융자산은 모두 이곳의 안식처를 위해서 사용해 주시기 바랍니다.
2008년 6월 xx일
유언자 x x x
방문해주신 여러분 정말로 감사합니다. 휴일인데도 요양원을 찾아 주시고 정열적으로 공연에 임해주신 분들에게 정말로 고맙다는 말씀을 전합니다.
아울러 돌아가시는 길이 멀고 지루하겠지만 편안한 귀가길이 되시기 바랍니다. 한상 건강과 행복이 함께 하시기를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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