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칼의 노래』, 『현의 노래』 등으로 앞서 이 시대의 대표적 소설가로 자리매김한 김훈 작가가 울진 지역 독자들과 만났다.
김 작가는 1월 8일 오후 7시부터 두 시간여 울진문화원에서 지역 독자들을 대상으로 특강과 함께 독자들의 질문에 대답하는 형식으로 자신의 문학세계를 내보였다.
대학 2학년 때 읽은 난중일기라는 책 한권이 한 젊은이의 운명을 뒤엎어 버린 것이 계기가 되어 소설가가 됐다고 밝힌 김 작가는 “논리나 관념이 아니라 사물의 구체성과 일상성에 바탕을 두고, 언어의 힘을 회복하는 글을 쓰려고 노력한다.”고 말했다.
강의를 끝낸 김훈 작가는 자신의 소설을 구입한 독자들을 위한 팬 사인회를 가지며 독자들과 감성을 나누었다.
김 작가는 소설가이자 문학 평론가로, 1994년 문학동에 소설 ‘빗살무늬토기의 추억’으로 등단했다.
2001년 동인문학상, 2004년 제28회 이상문학상, 2005년 제5회 황순원문학상, 2007년 제15회 대산문학상, 2009년 제29회 한국예술평론가협의회 올해의 최우수예술가 상을 각각 수상했다.
저서로는 『칼의 노래』『현의 노래』『흑산』『내 젊은 날의 숲』『남한산성』『공무도하』 등 다수의 소설, 독서 산문집『내가 읽은 책과 세상』, 에세이『자전거 여행』 등이 있다.
김 작가는 지난해 겨울 초입에 울진 땅에 내려와서 죽변면 후정리 모처에서 이 시대를 배경으로 하는 작품을 집필중이다.
아래에 김훈 작가의 특강, 독자들과의 질의응답 내용을 가감 없이 옮긴다.

▣▣▣ 김훈 작가의 특강 ▣▣▣

◈나는 머릿속에 질서가 들어 있는 사람을 별로 신뢰하지 않는다. 나는 내 머릿속이 뒤죽박죽인 걸 부끄럽게 생각하지 않는다. 물론 그걸 자랑스럽게 생각하지도 않는다.·····나는 신념에 가득 찬 사람을 별로 신뢰하지 않는다. 나는 의문에 가득 찬 사람을 편드는 쪽이다.
지난 추석 무렵에 울진 바닷가에 내려와서 글을 쓰고 있다. 여름까지는 울진에 머물면서 장편 소설 하나를 완성해서 돌아갈까 한다. 나는 서울토박이다. 바다가 너무 좋고 세상에 저런 큰물이 있을까 매일 놀라고 있다. 매일 하루 종일 수평선만 들여다보고 앉아 있으니까 저녁이면 많이 피곤하다. 바다는 저렇게 무섭고 끔찍하다는 생각을 한다. 저런 엄청난 에너지를 품고 있는 바다 앞에서 인간이란 너무나 하찮은 존재라는 생각을 한다. 바다의 무서움을 매일 보고 있으니까 점점 글을 쓰는데 자신이 없어진다. 바다가 가진 시원의 순결, 그런 것들을 생각하면서 나 자신을 추슬러 나가고 있는 중이다. 나는 혼자 숨어서 글을 쓰는 사람이지, 많은 사람들 앞에서 말을 하는 사람이 아니다. 여러분 앞에서 말을 하려니까 두려운 생각이 든다. 나는 머릿속이 정돈된 사람이 아니다. 내 머릿속은 매우 뒤죽박죽이고 질서가 없다. 나는 머릿속에 질서가 들어 있는 사람을 별로 신뢰하지 않는다. 나는 내 머릿속이 뒤죽박죽인 걸 부끄럽게 생각하지 않는다. 물론 그걸 자랑스럽게 생각하지도 않는다. 나는 이런 뒤죽박죽이고 엉망진창인 세상을 들여다보면서 글을 써야 하기 때문에 내 머릿속도 뒤죽박죽이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건 자랑스럽게 얘기하는 게 아니다. 나는 머릿속에 질서가 잡혀있는 사람을 보면 그 질서를 가지고 무얼 하려는 것인지 모르겠다. 그리고 그 질서 속에 편입된 세상을 다 잘라버리는 것이다. 그런 사람을 신뢰하기 어렵다. 나는 신념에 가득 찬 사람을 별로 신뢰하지 않는다. 나는 의문에 가득 찬 사람을 편드는 쪽이다. 이건 내가 신념의 가치를 부정한다는 건 아니다. 너는 어느 쪽인가 하고 누가 나에게 묻는다면, 나는 신념에 가득 찬 사람이 아닌 의심에 가득 찬 사람을 편드는 사람이다. 마음속은 의심에 가득 차 있는 것이다.

◈인간의 아름다움을 말하려면 야만과 억압과 착취와 모순들을 한꺼번에 말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인간의 아름다움만 따로 떼어서 ‘이것만이 아름다움이다’고 얘기할 수 없다는 것이다. 내가 쓴 글에는 이 세상의 밑바닥, 인간의 야만성, 약육강식, 폭력, 악, 비리, 이런 게 깔려 있는 것이다.
나는 글을 쓰는 사람이기 때문에 나의 사명은 딱 하나라고 생각한다. 그건 인간의 아름다움, 인간의 존엄을 증명하는 책임이 있다는 것이다. 그 이외의 사명은 나에게는 없다. 오직 그것 하나뿐이다. 그런데 인간의 아름다움을 말한다는 건 너무 어려운 일이다. 아름다움만 따로 독립해서 존재할 수는 없다고 생각한다. 인간의 아름다움은 야만적이고 더러운 세상 속에서, 억압과 착취와 약육강식과 비리와 모순에 가득 찬 세상 속에서 그것과 더불어 그것에 짓밟히고 학대를 받는 그것과 같이 존재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래서 내가 인간의 아름다움을 말하려면 야만과 억압과 착취와 모순들을 한꺼번에 말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인간의 아름다움만 따로 떼어서 ‘이것만이 아름다움이다’고 얘기할 수 없다는 것이다. 내가 쓴 글에는 이 세상의 밑바닥, 인간의 야만성, 약육강식, 폭력, 악, 비리, 이런 게 깔려 있는 것이다. 인간의 아름다움과 존엄은 그것들의 틈바귀 속에서 그것에 시달리면서 그것들과 함께 존재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역사책 속에는 고려자기와 이조자기, 신라 왕관, 백제 미술의 아름다움들이 많이 나온다. 물론 그건 다 맞는 얘기라고 생각한다. 미학의 역사가 상당히 많은 양을 차지하고 있다. 그러나 그것들보다 더 아름다운 것은 인간의 노동이다. 그러나 우리 역사책속에는 인간 노동의 역사는 없다. 아주 피상적으로 다루고 있을 뿐이다. 노동하는 자의 동작, 노동하는 자의 몸짓, 그들의 고통과 삶, 꿈, 이런 것들은 역사에 기록되어 있지 않다. 난 박물관을 다니면서 물건을 보는 것을 좋아한다. 나는 책을 읽는 것보다 사물을 들여다보는 걸 훨씬 좋아한다. 나무나 돌멩이나 돌아다니는 개들. 울진에 와보니까 생선을 많이 말리고 있는데, 생선들의 표정이 다 다르다. 그런 구체적인 사물을 들여다보는 걸 좋아한다. 박물관에 가보면 구체적인 사물로 가득 차 있다. 그곳에 가면 구석기시대의 주먹도끼라거나 타제석기류들, 만 년 전에 인류의 선조인 우리 조상이 돌멩이 하나를 들고 그 돌멩이로 노동을 해서 처자식을 먹여 살리던 물건이 있다. 그것을 보면 어떤 사내가 손으로 잡고 주먹도끼를 써서 반질반질하게 닳은 부분이 있다. 그것을 보면 참 눈물이 난다. ‘아, 저런 것이 인간의 모습이구나’, ‘저것이 인간 본래의 모습이구나’ 그런 생각을 하게 된다. 그것이 진화가 돼서 돌화살, 돌도끼 등이 만들어진다. 그러다가 돌도끼에 자루를 매달아서 만든 것들이 나타난다. 돌에다 자루를 매달면서 인간의 역사는 급속하게 발전하기 시작한다. 연장에 자루를 매달면 그 연장의 효용은 수십 배로 늘어나고, 사물을 격파할 수 있는 조준 능력이 생겨나게 된다. 도끼 자루나 삽자루 같은 자루의 발견은 위대한 것이다. 그런 것을 보면서, ‘아, 저것이 인간의 아름다움이구나’ 생각하게 된다. 연장을 만들었다는 건 인간이 미래에 대비했다는 것이다. 그날 벌어 그날 먹는 게 아니라, 닥쳐올 앞날에 대비하기 위해 인간은 연장을 만들었다. 곡식을 갈무리하는 것이고. 나는 매일 아침 산보를 나가서 죽변항과 등대를 돌아서 숙소로 돌아가는데, 하루에 두 시간 정도 운동을 한다. 아침에 죽변항에 나와 보면 활기차고 삶의 힘으로 가득 차 있다. 항구에 어선들이 가득 차 있는데, 그 어선은 강력한 생산 수단인 것이다. 신석기 시대에 인간이 작은 배를 타고 바다에 나가서 고기를 잡던 것과 원형이 똑같다. 다만 지금의 어선은 그기에 기계를 달아서 성능이 강화된 것일 뿐이다. 죽변항의 어선을 보면서, ‘우리 인간의 삶은 수만 년의 전통과 생존방식 속에서 연결되어 있구나’ 하면서 안도감을 느낀다. 내 삶이 수만 년에 걸쳐 연결되어 있다는 편안함과 안도감을 느낄 수 있다. 나는 그런 것들이 인간의 아름다움의 본질이라고 생각한다. 물론 고려자기나 이조자기가 아름답지만, 그것보다 밑바닥에는 인간의 노동의 고귀함과 노동의 아름다움이 있다고 생각한다. 그 증거가 박물관에 있는 주먹도끼다. 박물관의 주먹도끼를 보면 손잡이가 반들반들한데, 그걸 가지고 짐승을 잡아서 가족들을 먹여 살리던 어떤 한 남자의 모습이 떠오른다. 나는 만 년 전의 그 어떤 남자와 친구 같다는 느낌을 갖는다.
◈나는 그때 미군들에게 초콜릿 얻어먹은 일을 부끄럽게 생각하지 않는다. 자랑으로 생각하지도 않는다. 애들이 먹을 게 없으면 그렇게 된다. 애들이 초콜릿 하나를 얻어먹으려고 이리 뛰고 저리 뛰고 하던 것이 생존의 법칙처럼 느껴진다. 애들이 먹을 걸 앞에 두고 날뛰는 것이 얼마나 정당한 것인가?
나는 1948년생이다. 올해 65세가 됐다. 내가 태어나던 해에 남쪽에서는 대한민국 정부가 수립됐고, 북쪽에서는 북조선인민공화국이 생겼다. 6.25때 우리 가족은 부산으로 피난을 갔다. 나는 부산에서 초등학교 저학년을 마치고 서울로 올라왔다. 나의 생애는 대한민국 분단의 현대사와 정확하게 일치하는 그런 삶을 살았다. 나는 3살 때 피난을 갔다. 나는 3살 때가 기억이 나지 않는다. 3살 때의 일은 돌아가신 우리 아버지의 말로 알 수가 있다. 그때 서울은 한강다리가 끊어져서 서울서 출발하지 못하고 수원에서 기차를 타고 피난을 갔다. 수원에서 기차를 타고 부산까지 가는데 8박 9일이 걸렸다. 중간에 고장 나서 못가고, 폭격 때문에 못가고, 천안에서 하룻밤 자고, 대전에서 하룻밤 자고 그렇게 8박 9일 동안 부산으로 갔다. 피난열차 지붕에 피난민 가족이 새카맣게 붙어서 부산까지 갔다. 우리 집은 피난열차 지붕에 타고 부산까지 갔다. 우리는 4남매인데, 젊었던 우리 엄마가 어떻게 4남매를 데리고 피난열차 지붕까지 기어 올라갔는지 나는 상상을 못하겠다. 피난열차 지붕에 올라갔던 아이들이 기차 지붕에서 숱하게 떨어져 죽었다. 바람에 날려서 떨어져 죽고, 졸다가 떨어져 죽고, 서로 자리다툼을 하다가 떨어져 죽고, 열차가 터널을 지날 때 터널 지붕에 삐져나온 철근에 머리를 부딪쳐 죽고, 다 죽었다. 나는 안 죽고 살아서 부산까지 가서 한 많은 나라의 소설가가 됐다. 피난열차 객실은 어떻게 됐나? 돌아가신 우리 아버지의 증언에 따르면, 그리고 다른 많은 목격자들의 증언에 따르면 피난열차 객실 안에는 이 나라의 고관대작들이 피아노를 싣고, 셰퍼드를 싣고, 호화 응접세트를 싣고, 어떤 자식들은 요강까지 싣고 그렇게 부산까지 갔다는 거다. 나는 그런 나라에서 태어났다. 내가 세 살 때 우리나라는 그런 나라였다. 고등학교 3학년이 되니까 우리 아버지가 나를 불러서 그런 얘기를 해주면서 ‘너는 그런 나라에서 태어났다’고 했다. 이제는 컸으니까 얘기를 해준다면서, ‘너는 앞으로 어떻게 살고, 네가 살아가야 할 나라를 어떻게 해야 하는지 생각을 해보라’고 했다. ‘네가 너의 생애를 살아가는데 반성의 자료로 그런 얘기를 해준다’고 했다. 나는 아버지의 얘기가 착각이고 거짓말이라고 생각했다. 나는 상상을 할 수 없었다. 그러다가 대학교에 들어간 다음, 내가 3살 때 우리나라에서 발행된 신문들을 찾아서 봤다. 1950년부터 51년 사이에 발행된 조선일보, 부산일보를 찾아서 봤다. 아버지의 얘기는 다 사실이었다. 신문에 그렇게 났다. 50만, 60만이 길을 가득 메우고 남으로 남으로 그렇게 걸어가는데, 관용차 관용트럭에 권력이 있는 자들이 그기에 호화 응접세트와 가구를 싣고 피난민들 사이를 지나가는 그런 풍경, 국방부 정훈감이 제발 그런 짓 좀 하지 말라고 발표한 담화, 매일 그런 기사들이 나왔다. 아버지의 말은 다 사실이었다. 나는 그때부터 내가 태어난 조국과 이 시대에 대해 고통스럽게 생각하기 시작했다. 부산에서 살았던 얘기는 다할 수 없다. 미군들에게 초콜릿도 얻어먹고. 나는 그때 세상에 이렇게 맛있는 게 있구나 하는 생각을 했다. 마치 심봉사가 눈이 떠진 것 같은 그런 느낌이었다. 초콜릿을 얻으러 미군부대에 가면 철조망 사이로 초콜릿을 던져 주었다. 하나는 오른쪽으로 던지고 다음 하나는 왼쪽으로 던지고 이번에는 또 멀리 던지고. 어떤 놈은 멀리 던지는 시늉을 하면서 초콜릿을 던지지 않았다. 그러면 아이들은 욕을 했다. 두세 시간 지나서 근무 교대를 할 때는 한꺼번에 스무 개씩 던졌다. 나는 하나씩 던질 때는 움직이지 않았다. 한꺼번에 던질 때 움직였다. 어디로 날아오는지 잘 봐 두었다가 야구 투수가 홈으로 들어올 때 슬라이딩 하듯이 그쪽으로 슬라이딩해서 초콜릿을 잡았다. 그때 어떤 애들은 허쉬 초콜릿 하나를 들고 일가족이 사진관에 가서 기념사진을 찍기도 했다. 그 사진은 지금도 있다. 나는 그때 미군들에게 초콜릿 얻어먹은 일을 부끄럽게 생각하지 않는다. 자랑으로 생각하지도 않는다. 애들이 먹을 게 없으면 그렇게 된다. 그건 너무나 당연한 것이다. 애들이 초콜릿 하나를 얻어먹으려고 이리 뛰고 저리 뛰고 하던 것이 생존의 법칙처럼 느껴진다. 애들이 먹을 걸 앞에 두고 날뛰는 것이 얼마나 정당한 것인가?

◈해마다 사람들이 밥을 못 먹어서 굶어 죽었다. 당연히 내 청춘의 꿈은 밥을 먹는 것이었다. 밥을 못 먹는 이놈의 세상을 밥을 먹는 세상으로 바꾸어놓아야겠다는 생각을 했다.·····주입식 교육은 나의 창의성을 말살한 적이 없다. 오히려 내 창의력의 바탕이 됐다.
그러다가 대학을 갔다. 나는 1966년에 대학에 들어갔다. 학교에 다닐 때 내 청춘의 꿈은 소설가가 되는 건 절대 아니었다. 나는 소설가가 되겠다고 생각할 만큼 몽상적이고 문학적인 소망을 가진 적이 없다. 절대 그런 적이 없다. 나는 50살이 될 때까지 그런 생각을 한 적이 없다. 내 청춘의 꿈은 오직 하나 밥을 먹어야겠다는 것이었다. 딴 건 없었다. 그때는 밥을 못 먹었다. 1960년대의 정부 목표는 기아퇴치였다. 식량증산 이런 구호들이 시청 도청 건물마다 걸려 있었다. 해마다 사람들이 밥을 못 먹어서 굶어 죽었다. 당연히 내 청춘의 꿈은 밥을 먹는 것이었다. 밥을 못 먹는 이놈의 세상을 밥을 먹는 세상으로 바꾸어놓아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나뿐만 아니라 내 친구들의 생각도 똑같았다. 그때 우리나라에서 흑백티브이와 냉장고를 만들기 시작했다. 그때는 모든 국민이 텔레비전과 냉장고를 가지고 조그만 아파트에서 사는 것이 꿈이었다. 아주 간절한 소망이었다. 나는 학교를 졸업하면 원고지에 글 쓰는 게 아니라, 텔레비전과 냉장고를 만드는 회사에 들어가서 국민들에게 보급하고 나도 잘 먹고 잘사는 게 꿈이었다. 아주 건강한 청년의 꿈을 가지고 있었던 것이다. 실질적이고 세속적이고 물질적인 꿈을 가지고 있었다. 나만 잘 먹고 잘사는 게 아니라 이 나라 국민들이 다 그렇게 되기를 바랐다. 그러나 나는 그 길로 갈수가 없었다. 왜냐하면 내 꿈은 좌절됐다. 나는 학교를 졸업하지 못했기 때문에, 그 꿈으로 진입할 수 있는 문이 막혀버린 것이다. 그런데 많은 친구들은 또 그길로 갔다. 그 시절에, 대학 2학년 때 도서관에서 이순신장군의 난중일기를 봤다. 그때는 영문학을 배우면서 19세기 낭만주의 문학을 배웠다. 워즈워드, 바이런, 키츠, 이런 시대였다. 자연의 질서와 조화, 신의 섭리. 이 세상은 아름답고, 희망에 가득 차 있고, 인간의 마음속에 있는 소망은 다 이루어질 수 있다는 그런 행복한 세계관을 19세기의 아름다운 용어로 쓴 시들이었다. 그런 시들은 억압받고 짓밟히는 그 시대 젊은이들을 아편처럼 매혹시켰다. 지금도 대부분 외울 수 있다. 그때는 다 외워야 했다. 시험문제도 시를 직접 써야 했다. 외우지 않으면 안 되는 주입식 교육이었다. 주입식 교육은 참 좋은 것이라고 생각한다. 주입식 교육이 인간의 창의성을 말살하는 건 아니다. 주입식 교육이 나쁜 게 아니라 무엇을 주입하느냐가 문제다. 좋은 것을 주입해서 내 몸의 일부로 만드는데 그걸 어떻게 인간의 창의성을 말살한다고 할 수 있는가? 무엇을 주입하느냐의 문제다. 나는 주입식으로 시를 배웠고, 그래서 지금도 주입된 시를 외울 수 있다. 주입식 교육은 나의 창의성을 말살한 적이 없다. 오히려 내 창의력의 바탕이 됐다. 특히 한문은 반드시 주입식으로 배워야 한다. 주입이 안 되면 매를 맞아야 한다. 맞아야 되도록 되어 있다.
◈난중일기를 다 읽으니 ‘세상은 희망과 낭만만으로는 설명할 수가 없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그때 전방에서 보초를 서면서 생각했다. 내가 더 나이를 먹고 언어를 장악하게 되면 어느 날 난중일기와 이순신에 대해 뭔가를 말하거나 쓰게 될 것 같은 막연한 느낌을 받았다. 그 느낌은 굉장히 행복했다.
영시를 읽다가 난중일기를 읽었는데 거기에는 희망이 없었다. 낭만도 없었다. 거기에는 이순신이라는 한 인간이 당면한 절망만 있었다. 전쟁이 나자마자 임금은 신의주로 도망을 가버리고, 나한테 덤비는 적들은 열배 스무 배나 많고, 부하들은 적들이 열배 스무 배나 많이 들어오니까 싸움만 나면 도망을 갔고, 별의별 놈들이 다 있었다. 인간세상이란 별의별 놈이 다 있는 것이다. 이순신의 부대라고 해서 사기충천한 정예 군사들만 있는 게 아니었다. 그 안에도 싸움나면 도망가는 놈, 군량미를 팔아먹는 놈, 민간인의 처자를 강간하는 놈, 민간인의 개를 잡아먹는 놈, 민간인의 처자를 잡아다가 적에게 팔아먹는 놈, 별의별 놈이 다 있었다. 이순신은 그런 놈들을 다 죽였다. 가차 없이 죽였다. 그런 놈들에게는 연민을 두지 않았다. 그건 자비 무자비의 문제가 아니라, 그렇게 될 수밖에 없는 길을 갈수밖에 없는 그런 길이었다. 난중일기를 다 읽으니 ‘세상은 희망과 낭만만으로는 설명할 수가 없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난중일기는 그렇게 위대한 책은 아니다. 철학책이나 논리학 책이나 아름다운 시구가 있는 책이 아니다. 그 책안에 위대한 철학이나 외워야 할 구절이 들어 있는 것이 아니다. 그 책은 매일매일 전쟁을 하는 한 군인이 자기 부대 안에서 일어난 일들을 그날그날 써 놓은 진중일기에 불과한 책이다. 그런데 그 책은 나에게 엄청난 무서움과 감동을 주었다. 나는 그 책을 읽던 해에 영장이 나와서 육군에 입대했다. 그리고 다시는 학교로 돌아갈 수 없었다. 나는 그때 전방에서 보초를 서면서 생각했다. 내가 더 나이를 먹고 언어를 장악하게 되면 어느 날 난중일기와 이순신에 대해 뭔가를 말하거나 쓰게 될 것 같은 막연한 느낌을 받았다. 그 느낌은 굉장히 행복했다. 보초를 서는데 너무 좋았다. 그때는 군대가 육군은 37개월을 살았다. 공군은 4년을 살았다. 군대에 가면 늙어서 나왔다. 37개월 만에 나왔다. 군대에 있으면서 자연에 대한 느낌, 아침마다 바다에서 해가 뜨는 모습, 봄이면 신록이 우거지는 것, 산맥사이에 눈이 오는 것, 그런 것들이 좋았다. 자연에 대한 친화력을 처음 느꼈다. 육군은 일 년을 근무 하면 한 달씩 휴가를 주었다. 신바람 나는 한 달 휴가. 그러나 나는 한 달 휴가를 주어도 서울로 오지 않았다. 한 달간 부대 밖에서 놀다가 다시 들어갔다. 서울에 와도 용돈을 주거나 반길 사람이 없었다. 나는 거기가 훨씬 좋았다.
◈이순신은 논리가 아니고 사물의 구체성에 입각해서 그런 난관을 돌파할 수 있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나도 글을 쓸 때 논리나 관념이 아니라 사물의 구체성, 삶의 일상성, 그런 것들에 바탕을 두고 언어의 힘을 회복하는 그런 글들을 쓰려고 노력한다. 잘될지 안 될지는 모르지만 나의 글 쓰는 목표는 그런 것이다.
그때 나는 난중일기 생각을 했다. 절망을 통과해버린 인간의 모습. 헛된 희망이나 환상적인 희망을 설정하지 않고, 그 절망을 절망 그대로 통과해 버린 이순신. 그 쓸쓸하고 슬프고 외로운 그 사내. 그 사내에 대해 뭔가 쓸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 스물세 살 때. 그로부터 35년이 지난 어느 날 나는 손에 연필을 들고 칼의 노래라는 소설을 써 나가기 시작했다. 50이 넘은 나이에. 그것이 내가 소설가로서 내 생애를 바꾼 계기가 됐다. 난중일기라는 책 한권이 한 젊은이의 운명을 뒤엎어 버린 것이다. 책 한권과 우리 아버지가 얘기해주었던 억울하고, 짓밟히고, 각각 폭력과 모순에 가득 찬 시대를 우리가 어떻게 돌파해야 되는지가 난중일기가 보여준 그런 것들이었다. 난중일기라는 책 한권이 한 젊은이를 뒤집어엎어서 오늘의 나를 만들어 준 것이다. 이순신은 겨울에 아주 추울 때 노량바다에서 돌아가셨다. 나는 그 분이 돌아가신 겨울이 되면 노량바다에 가서 소주 한잔을 바치고, 혼자서 좀 울다가, 서울로 돌아온다. 그리고 다시 새롭게 살아가야겠다는 생각을 한다. 그분이 어떻게 그런 전쟁을 했는지는 모른다. 그냥 그렇게 했다는 것만 안다. 우리가 알 수 없는 불가사의한 것들이다. 그분은 논리가 아니고 사물의 구체성에 입각해서 그런 난관을 돌파할 수 있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나도 글을 쓸 때 논리나 관념이 아니라 사물의 구체성, 삶의 일상성, 그런 것들에 바탕을 두고 언어의 힘을 회복하는 그런 글들을 쓰려고 노력한다. 잘될지 안 될지는 모르지만 나의 글 쓰는 목표는 그런 것이다. 사물의 구체성과 삶의 일상성 위에서 글을 써야겠다는 생각이다.

▣▣▣ 울진 지역 독자들과의 질의·응답 ▣▣▣
◐죽변항이나 울진을 배경으로 소설을 쓸 생각은 없는가
지금 쓰고 있는 소설은 죽변항이나 울진을 배경으로 하는 건 아니다. 우리나라의 현대사와 관련된 글이다. 죽변항에서 본 여러 느낌은 당연히 들어갈 것이다. 죽변항에서 여러 풍경들을 봤다. 어선들이 태극기를 달고 다니는데, 바닷바람에 닳아서 반만 남은 태극기가 있다. 그걸 보면서 ‘야 태극기가 저렇게 아름답게 쓰이는구나’ 싶었다. 거친 해풍에 닳고 닳은 아름다운 태극기다. 태극기가 저렇게 아름답게 쓰이는구나 싶었다. 눈물 나는 태극기였다. 중앙청에 걸린 번쩍번쩍하는 태극기보다 더 아름다운 태극기다. 어선을 보면 참 복잡하게 생겼다. 그러나 자세히 살펴보면 불필요한 게 하나도 없다. 다 필요한 거다. 어부들이 볼 때는 그게 잘 정돈된 거다. 어부들은 어떤 물건이 어디에 있는지 정확히 안다. 어부들이 7~8명 조업을 하는데, 잘 보면 그 사람들은 아무 말도 안하지만 자기가 할 일을 다 안다. 동료들의 동작에 나를 맞춰주는 것이다. 나는 죽변항에 나가면 신바람 난다. 나 혼자 볼게 너무 많아서다. 노트를 가지고 다니면서 메모한다. 그런 부분은 지금 쓰고 있는 소설 속에 들어갈 것 같다.
◐판사나 의사가 되는 것도 중요하지만, 김훈 선생님이라도 사람들이 노무현 대통령이나 고아원 원장 같은걸 추구하게 만들어야 하지 않는가
그것은 양쪽으로 나누어서 말할 수 있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나는 권력을 선하게 만드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우리 손으로 선거를 통해 대통령도 뽑고 그러지만, 그것은 참 어려운 일이다.
◐김훈 작가께서는 강의에서 논리보다는 삶의 구체성이나 일상의 생활성을 추구한다고 했는데, 당장 마음에 와 닿지 않고 붕 뜨는 기분이다. 추가 설명 부탁드린다.
청소년들에게 책을 많이 읽으라고 한다. 물론 좋은 일이다. 그러나 그것이 최고로 좋은 일은 아니다. 10월 달은 독서의 달이라고 해서 청소년들에게 책을 읽으라고 닦달하는 건 참 불쌍하다. 청소년들이 책을 못 읽도록 해놓고, 이번에는 책을 안 읽는다고 닦달을 해대니 어떡하라고 그러는 것인지 모르겠다. 책속에 길이 있다고 하지만 내가 보기에는 책속에는 길이 없다. 책속에는 글자가 있다. 그 글자가 길인지 아닌지는 모르겠다. 책속에 길이 있다 하더라도, 그 책속에 있다는 길을 세상으로 끄집어내서 인간이 걸어가지 못한다면 책속에 길이 있으나 마나하다. 그런 길이 책속에 있으면 뭐하겠는가? 책속에 글자가 있는 건 확실하다. 그러나 그 글자가 길인지 아닌지는 잘 따져 보아야 한다. 나는 우리 아들보고 ‘책보다는 친구의 얼굴을 보고, 저 친구의 얼굴이 아름답다고 느낄 수 있는 사람이 되라’고 한다. 그리고 공부를 많이 해서 남보다 높은 직위에 갈 생각을 하지 말고, 시민의 한사람으로 근면하고 정직하게 살라고 한다. 그러나 그것도 굉장히 어려운 일이다. 그건 아무나 할 수 없는 참 힘든 일이다. 오히려 공부를 많이 하고 출세를 해서 남의 윗자리에 가서 사기를 치고 사는 게 훨씬 편하고 쉬울지 모른다. 시민의 한사람으로 근면하고 성실하게 산다는 건 참 어렵고 고귀한 일이다. 삶의 구체성에 입각한다는 것이 나는 바로 그런 태도라고 생각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책을 참 많이 읽은 사람이다. 나는 책을 많이 읽은 것을 자랑하지 않는다. 그건 자랑할 일이 아니다. 내가 좋아하는 중국의 주희라는 분은 ’너희들이 공자 논어를 읽고 난 다음에도 삶의 태도가 바뀌거나 달라지는 게 없다면 책을 읽지 마라. 그렇지 않을 거라면 그 어려운 책을 왜 읽느냐고 했다. 그 책을 읽고도 허랑방탕하게 살 거라면 그 어려운 책을 구태여 왜 읽느냐는 거였다. 그러나 책은 재미와 오락으로 읽기도 한다. 나도 가끔 고상한 책을 읽기도 하지만, 내가 좋아하는 책은 기술서적이다. 삼등항해사 자격증 시험 문제나 소방관 시험 문제, 조종사 시험 문제집을 본다. 교보문고 23번 코너에 가면 다 있다. 항해사 자격시험 문제를 보지만 기술 전문 분야의 것이어서 3분의 1정도만 이해할 수 있다. 그 책속에는 어두운 바다에서 파도가 치는데, 인간이 어떻게 저걸 뚫고 돌파해 나가느냐가 쓰여 있다. 그걸 본다는 건 너무 아름답다. 어두운 바다를 헤쳐 나가는 인간의 근육과 동작이 책속에 다 있다. 흥미 있게 봤다. 우리 집사람은 저 사람이 항해사가 되려고 저러나 하면서 책을 읽는 나를 본다. 난 소방관들하고 굉장히 친했다. 지금도 소방관들이 죽었다고 하면 문상을 간다. 남의 재난에 뛰어드는 사람들을 보면 나는 그들이 성인 같다. 불 끄는 것도 자세히 보면 흥미롭다. 동풍이 불면 불길이 서쪽으로 쓰러진다. 그러면 소방대장은 가장 정예한 부대를 서쪽으로 배치시켜 불길을 차단한다. 그리고 가장 믿을만한 부대원을 고층에 불이 나면 고가사다리에 태워 투입한다. 그 사람들은 불을 끄러 들어가는 게 아니라 현장을 수색해서 인명을 구하러 들어가는 것이다. 그 다음에 물을 뿌려서 불을 끄는 관창수를 투입한다. 예전에 나와 친했던 소방관들은 많이 불구덩이 속에서 죽었다. 그리고 살아있는 소방관들은 은퇴해서 더 이상 불을 끌 수 없게 됐다. 지금은 옛날처럼 불이 많이 안 난다. 소방장비가 발달했고, 연료가 개선됐다. 그런 모든 것들이 내가 삶의 구체성으로 접근하려는 노력이었다.
◐이번에 강의를 듣기 위해서 김훈 작가의 작품 중 ‘흑산’이라는 책 한권을 읽었다. 흑산에 보면 황사영이라는 인물이 앞부분에서는 능지처참을 당해서 여섯 조각이 났다고 돼 있는데, 뒷부분에는 그냥 목이 잘려서 죽는 걸로 나와 있다. 그 부분이 실수인지 의도적인 것인지 알고 싶다. 그리고 오동이라는 인물은 처음에는 소작인의 아내였다가, 중간에는 과부였다가, 다시 마지막에는 소작인의 아내로 나온다. 그 부분이 일치하지 않은데 어떻게 된 것인지? 그리고 강의 중에 6.25 피난열차 얘기를 하면서, 나는 그런 나라에 태어났다고 하며 절망적인 뉘앙스를 풍겼다. 지금 우리나라는 어떻다고 생각하는가
흑산의 황사영에 대한 기술은 목이 잘렸다는 게 맞는 것 같다 다시 한 번 확인해보겠다. 오동이는 소작인의 아내였는데 남편이 죽어서 과부가 됐다고 쓴 것 같은데, 그것도 확인해보겠다 그런 디테일한 부분이 더러 있었다. 칼의 노래에도 그런 부분이 있었다. 칼의 노래에 이순신 부대가 전쟁에 이겨서 항구로 들어올 때, 마중하는 사람 하나 없이 옥수수가 휘날리는 장면이 나온다. 어느 날 전화가 왔었다. 서울대 농과대에 근무하는 분이 전화를 했는데, 옥수수가 임진왜란 때 들어왔다고 했다. 그건 나도 알고 있었다. 그러나 그건 옥수수가 아니면 안 된다. 옥수수는 굉장히 멋있고 남성적이다. 옥수수 이파리가 부딪히고, 비가 오면 물이 잘 흘러내리고, 옥수수 숲에 바람이 불면 정말 슬픈 소리가 난다. 옥수수나무 이파리가 굽이치는 모습은 정말 남성적이고 강렬하다. 나는 난초 같은 우아한 꽃보다는 옥수수를 더 사랑한다. 그래서 그건 지적을 해도 고칠 수가 없다. 지금도 안 고쳐져 있다. 6.25 피란열차 얘기는 나의 절망감을 강조하려는 것은 아니다. 지금 나는 그 시대에 비추어 어떤 나라에 살고 있는지를 돌이켜 보고 있다. 그건 등에서 진땀이 나는 일이다. 그 시대의 야만에서 우리는 얼마쯤 벗어나 있지만, 아직도 그와 같은 구조는 남아 있다. 그건 우리가 해결해야 될 문제다. 우리는 밥 먹는 나라를 건설했다. 우리 청춘의 꿈은 다 이루어졌다. 밥이 넘쳐흐르는 아주 찬란한 나라를 이룬 것이다. 그러나 밥이 넘쳐나는 나라를 건설하는 과정에서 우리는 얼마나 많은 죄악과 비리와 차별과 모순을 저지른 것인가? 그건 이 사회 밑바닥에 기존 질서로 깔려 있다. 그런 구조적인 악, 이것을 해결하지 못하면 우리는 희망이 없다.
◐자전거 여행이라는 책을 봤다. 책을 통해 용기를 얻고 자전거도 열심히 탔다. 울진에서도 자전거를 타는지, 자전거로 여행은 많이 하는지
자전거를 가지고 와서 지난 가을에는 많이 탔다. 불영계곡도 가고 했는데, 겨울이라서 추워서 못타고 있다. 예전에 동해안 쪽으로 내려오면서 자전거를 신나게 탔었다. 특히 포항 구룡포에서 경주 쪽으로 넘어가는 길을 아주 좋아했다. 자전거를 타고 태백산맥과 노령산맥을 넘어 다녔는데, 산속의 산간마을에 들어가면 글을 모르는 노인들이 많이 있다. 그런데 한글을 모르는 노인들이 세상의 모든 일을 다 알고 있었다. 자기 주변의 환경을 어떻게 다루어야 하는지, 집에서 기르는 개돼지를 어떻게 다루어야 하는지, 그리고 자기와 이웃과의 관계, 나처럼 외지에서 들어온 사람은 어떻게 다루어야 하는지를 다 알고 있었다. 알고 있을 뿐만 아니라, 그걸 생활 속에서 실천하고 있었다. 그걸 보면서, 이 사람들에 비하면 나는 아주 쓰레기 같은 놈이라고 생각한 적이 있다. 아마 그 사람들은 인간의 노동을 통해서 그런 걸 다 깨우쳤을 것이다. 그걸 보면서 ‘아, 인간은 아름답구나’ ‘인간의 노동은 아름답구나’ 하는 생각을 했었다. 그런 것들이 내가 자전거를 타면서 느꼈던 행복한 순간이었다. 한번은 영일만에서 작은 고기 배를 탔는데, 배안의 작은 부속이 하나가 없다는 거다. 고장이 나도 작은 부속 하나가 없으면 큰 사고가 난다. 그때 한 어부가 옆 배에 핸드폰으로 연락을 해서 부속을 구해서 배를 고치는 걸 봤다. 그리고 항구로 들어오면서 핸드폰으로 자기 부인에게 전화를 해서 고기를 많이 잡았다며, 몇 시 몇 분에 들어가니까 부두에 나와서 기다리라고 했다. 그때 핸드폰이 참 아름답다는 생각을 했다. 그전에는 나는 핸드폰을 미워했다. 그때부터 ‘아, 이거 핸드폰을 미워하면 안 되겠구나’ 하는 생각을 하게 됐다. 자전거를 타고 다니면서 인간의 아름다움을 확인하는 순간들이 나는 좋았다.

◐자전거 여행 책은 저널이나 문화 평론가 사이에서 우리나라 인문학적 성찰을 일궈주는 책이었다는 찬사를 받았다. 그런 평가를 어떻게 생각하는가? 그리고 지난번 대선 이후 젊은 친구들이 오십대, 육십 대 이후의 세대들에게 ‘왜 우리들의 삶을 그대들이 선택하는가?’라고 말한다고 한다. 그런 부분에 대한 평가는
젊은 친구들의 소외감도 시간이 가면 점차 해소될 것으로 생각한다. 많은 국민이 선택한 지도자가 대통령을 하는 게 맞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걸 거꾸로 할 수는 없지 않은가? 어떤 정치적 견해도 다른 사람의 견해보다 우월하지 않다. 물론 저열하지도 않다. 선거라는 것은 선과 악의 대결이 아니다. 이긴 쪽이 정의이고 진 쪽이 불의도 아니다. 선거를 선과 악의 대결로 가져가는 것이 나는 매우 낙후된 정치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나의 자전거 여행 책에 대한 저널의 평가는 과장된 부분이 있다. 저널리스틱한 과장이 있는 것이다. 다만 내가 인정할 수 있는 것은 자전거 여행 책에 나의 인문학적 성찰이 담겨 있는 건 인정할 수 있다. 그러나 그 책이 국내 최고인양 하는 건 인정할 수 없다. 가령 동네에 짬뽕집이 있는데 가격이 양극화되어 있다. 돈이 있는 자들은 비싼 걸 먹고 돈이 없는 자들은 싼 걸 먹어라 하는 것이다. 나무랄 데 없는 경제성의 합리성이다. 시장의 정당성이자, 과학성이다. 공정거래이다. 그렇게 생각하는 것이 시장의 정의이다. 그런데 그것이 과연 인간사회가 지향해야 될 궁극적인 모습인가 하고 다시 물어보는 것이 인문주의다. 그것이 인문주의의 힘이다. 인문주의가 아니라 과학성과 합리성만 가지고는 그기에 의문을 제기할 수 없다. 그런데 강자와 약자가 공정거래를 할 때 그것이 과연 공정거래가 되겠는가? 그건 약육강식이 되는 것이다. 그기에 다시 의문을 제기하는 것이 인문주의의 정신이다.
젊은 친구들의 소외감도 시간이 가면 점차 해소될 것으로 생각한다. 많은 국민이 선택한 지도자가 대통령을 하는 게 맞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걸 거꾸로 할 수는 없지 않은가? 어떤 정치적 견해도 다른 사람의 견해보다 우월하지 않다. 물론 저열하지도 않다. 선거라는 것은 선과 악의 대결이 아니다. 이긴 쪽이 정의이고 진 쪽이 불의도 아니다. 선거를 선과 악의 대결로 가져가는 것이 나는 매우 낙후된 정치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나의 자전거 여행 책에 대한 저널의 평가는 과장된 부분이 있다. 저널리스틱한 과장이 있는 것이다. 다만 내가 인정할 수 있는 것은 자전거 여행 책에 나의 인문학적 성찰이 담겨 있는 건 인정할 수 있다. 그러나 그 책이 국내 최고인양 하는 건 인정할 수 없다. 가령 동네에 짬뽕집이 있는데 가격이 양극화되어 있다. 돈이 있는 자들은 비싼 걸 먹고 돈이 없는 자들은 싼 걸 먹어라 하는 것이다. 나무랄 데 없는 경제성의 합리성이다. 시장의 정당성이자, 과학성이다. 공정거래이다. 그렇게 생각하는 것이 시장의 정의이다. 그런데 그것이 과연 인간사회가 지향해야 될 궁극적인 모습인가 하고 다시 물어보는 것이 인문주의다. 그것이 인문주의의 힘이다. 인문주의가 아니라 과학성과 합리성만 가지고는 그기에 의문을 제기할 수 없다. 그런데 강자와 약자가 공정거래를 할 때 그것이 과연 공정거래가 되겠는가? 그건 약육강식이 되는 것이다. 그기에 다시 의문을 제기하는 것이 인문주의의 정신이다.
◐대학교는 왜 중퇴했는가
대학교를 중퇴한건 돈이 없어서다. 나는 돈을 생각하면 아주 지겨워서 돈이라고 하지 않고 ‘디오엔’이라고 한다. 예전이나 지금이나 학교는 돈이 없는 애들은 가르치지 않는다. 돈이 없어서 공부를 하지 못하는 애들이 거지가 되든지 말든지 그냥 잘라 버린다. 그리고 오기가 있었다. 돈이 없으면 오기도 없어야 하는데 학교 아니면 먹고 살 것이 없나? 하는 오기가 없었다. 젊은이들의 짧은 생각이었다. 젊은이들의 생각은 그런 특징이 있다.
◐고2 올라가는 학생이다. 주입식 교육을 좋다고 얘기했는데, 지금의 주입식 교육은 마음에 들지 않는다.
내가 얘기한 주입식 교육이라는 것이 좋은 문장을 외워서 내 몸의 일부로 만든다는 것이다. 물론 좋지 않은 점도 있을 것이다. 그런데 주입식 교육이 고정관념이 돼서 내가 거절하게 되는 건 좋지 않은 점일 것이다. 주입식 교육은 좋은 것을 내가 받아들인다는 것이다. 하늘천따지는 외워야 한다. 주입식 교육을 무조건 배척하는 건 옳지 않다. 대학생들과 얘기하면 어떻게 하면 좋은 글을 쓸 수 있을까를 묻는다. 좋은 글을 잘 쓰려면 한문을 잘해야 한다. 내가 사랑하는 모국어를 폄하하는 건 아니다. 법을 봐도 조사와 종결어미만 나온다. 법은 우리가 읽어도 알 수가 없다. 한글로 표현할 수가 없다. 한글 전용주의를 하더라도 한글의 아름다움을 극대화하는 건 좋지만 한자를 무조건 배척하는 건 아주 야만적인 행위라고 생각한다. 번역해도 한자의 개념은 그대로 남는다.
◐지금 노동은 하위로 보는 면이 있다. 작가님의 노동은 무엇인가
나에게는 글 쓰고 돌아다니는 것도 노동이다. 나는 순전히 유흥 목적으로 돌아다니지는 않는다. 세상을 들여다보고 안쪽을 관찰하고 돌아다닌다. 나는 나의 모든 행위가 밥벌이의 노동이라고 생각한다. ‘선생님, 소설이 무엇입니까?’ ‘인생은 무엇입니까?’ 하는 물어보는 사람들이 있다. 그런 포괄적인 질문에는 번드르르하게 거짓말을 할 수 있다. 젊은이들은 어떻게 잘 물어봐야 하는지, 의문문을 어떻게 만들어야 되는가를 배워야 한다. 나는 노동으로 글을 쓴다. 밥을 벌어먹는 노동으로 글을 쓴다. 나는 예술가라기보다는 노동자이다. 나는 밥을 벌어먹는 일을 아직도 아주 중요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 편집자 주 -
특강은 적어도 울진 지역에서는 문화적 충격이었다. 감히 김 작가의 표현을 빌리자면『현의 노래』에서 아라가 아래를 열듯이, 김 작가는 익숙하지 않은 땅 울진에서 익숙하지 않은 울진 사람들에게 입을 열었다. 이 글은 끝내 김 작가의 입에서 토해진 이야기의 토씨 하나하나까지는 다 챙기지 못했다. 그래도 이 글이 소설가 김훈을, 인간 김훈을 이해하는데 있어 작으나마 도움이 되기를 바라는 마음은 간절하고 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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