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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5년 안보정세보고회(安保情勢報告會) 초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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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3.03.07 11: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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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년 안보정세보고회


40년 전 그때는 날이면 날마다 ‘때려잡자 김일성, 쳐부수자 공산당, 이룩하자 유신과업’이라는 구호가 온 나라를 울렸고, 자고 일어나면 담벼락 한 귀퉁이에 계엄령을 알리는 포고문이 나붙었다.
  
온 나라 안의 국민은 모두가 잠재적인 불순분자(不純分子)이자 범죄자여서 차를 타고 가다가 시도 때도 없이 집총(執銃)을 한 군인들로부터 검문을 받아야 했다.
  
소개하는 자료는 1975년 1월 22일 오전 10시에 울진극장에서 개최된 안보정세보고회(安保情勢報告會)의 초청장이다.
  
한국홍보협회에서 개최하는 보고회는 ‘격변하는 국내외의 정세 속에 우리의 현실을 살펴봄과 동시에 향후의 각오를 다짐하기 위한 것’이었다.
  
당시의 유신 정부는 체제를 부정하는 사회각계의 주장을 탄압하기 위해 1974년 1월 8일 이른바 ‘긴급조치’를 발동한다.
  
이 긴급조치는 유신헌법에 대한 모든 논의 자체를 위법으로 간주하여 처벌할 수 있도록 하는 등 국민의 자유로운 정치 의사 표현 자체를 전면적으로 금지한 헌법위에 존재한 법이었다.
  
이 긴급조치로 인해 당시 유신 헌법의 개헌 서명을 주도했던 장준하, 백기완씨 등이 최초로 구속됐다.
  
그 후로도 유신정부는 별도의 사안이 있을 때마다 긴급조치를 발동했는데, 일명 민청학련으로 불리는 전국민주청년학생총연맹 사건과 배후로 지목된 인민혁명당 재건위 사건을 탄압하기 위해서도 긴급조치 4호를 발동하여 총 169명을 처벌했다.
  
이어 1975년 5월 13일부터 1979년 12월 8일까지 4년 4개월 동안 지속된 긴급조치 9호는 겉으로는 안보 위협을 이유로 내세웠지만, 실상 유신 말기의 정권을 유지하는 중요한 수단으로 작용했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평이다.
  
긴급조치 9호는 대한민국 내에서의 집회와 시위는 말할 것도 없고, 신문 방송 문서 등의 표현물을 통해 유신헌법을 부정 반대 왜곡 비방하거나 청원 또는 선전하는 행위 일체를 금지했다.
  
특히 긴급조치 9호는 이 조치를 위반한 사람들은 사전 영장 없이 체포할 수 있도록 했고, 특히 이 조치에 의한 명령은 사법 심사의 대상이 되지 않음을 명시했다. 
  
2007년 1월 31일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 정리 위원회’의 ‘2006년 하반기 조사 보고서’에 따르면, 진실화해위원회가 입수한 긴급 조치 위반 판결문 1,412건 중 1심 판결은 589건, 항소심 판결은 522건, 상고심은 252건이다.
  
1심 판결 중 긴급조치 1·4호 위반이 36건, 3호 위반이 9건이며, 특히 긴급조치 9호 위반이 554건이고 9호 위반으로 인한 피해자 수만 974명에 달한다.
  
유형별로는 1심판결 589건 가운데 재야인사 관련 85건, 간첩 행위 관련 2건, 학생 운동 관련 187건, 발언 관련 252건, 국내 재산 해외 도피 등 29건이다. 
  
이번호에 소개하는 문서는 긴급조치 제9호가 발동되기 4개월 전인 1975년 1월 22일 안보정세보고회를 앞두고 일명 ‘가리방’이라 불리는 등사기(謄寫機)를 이용해서 만들어진 것이다.
  
1970년 울진군 인구수가 12만이었던 당시 보고회, 강연회, 대회 등 각종 행사는 주로 울진극장이나 군민회관에서 이루어졌다.
  
이들 공간에서는 안보 정세 보고회를 비롯해 총력안보 계몽 강연회, 6.25 반공 울진군민 궐기대회, 반공 웅변대회, 반공 방첩 계몽 강연회, 북괴 만행 규탄 군민 궐기대회, 시국관 정립을 위한 특별 교육, 반공 연예반 공연 등 각종 행사가 진행됐다.
  
당시 진행됐던 안보정세보고회 사진을 살펴보면, ‘뭉치자 12만(萬), 멸공(滅共)으로 무장(武裝)하자’, ‘안보(安保)없이 조국(祖國)없고, 조국(祖國)없이 자유(自由)없다’, ‘총력안보(總力 安保)’라는 구호 아래 많은 주민들이 영사기를 이용한 홍보 필름 영상을 시청하거나 강사의 강연을 경청하고 있다.
  
소개하는 문서는 안보와 경제성장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동시에 쫓던 유신정부가 1970년대 중반에 울진 지역에서 실시했던 안보정세보고회의 단면을 살펴, 당시의 전반적인 사회상을 유추해 볼 수 있도록 하는 귀한 자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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