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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가 똑똑해요

  • 입력 2013.04.02 11: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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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양화가인 ‘페인트 최’는 고향이 서울로 울진에서 15년간 생활했다. 현재 경기도 양평군에 거주하며 한국미협·도무스·예형회 회원 등으로 작품 활동을 하고 있다. [사진 : lomo / 이명동기자]

  

살랑대는 바람이 한 낮의 볕살과 버무려지면, 눈부신 봄을 재촉하는 천지의 합창이 들리는 듯하다.
  
만년설같이 쌓여있던 먼 산의 눈도 녹고 골목길 응달의 얼음도 흥건히 녹았다.
  
해빙된 땅에서 파릇한 싹이 손톱만큼씩 돋아나는 것을 보면 죽지 않은 희망, 끈질긴 생명의 노래를 할 때 왜 꼭 봄인지 정말 알 것만 같다.
  
머지않아 겨우내 자기 몸을 비워 얼어 죽지 않은 나무들의 물 올리는 소리도 들리겠지.
우듬지 끝까지 푸른 잎눈들이 앞 다투어 터지겠지.

봄맞이 하는 나무들을 보면 생각 많고 자랑 많은 인간들보다 훨씬 똑똑하다는 생각이 든다.
봄은 겨울의 혹독함을 견디고 살아남은 것들의 영광에 대하여 인간에게 속속들이 느끼게 해주는 설명서 같은 계절이다.
  
묵은 때를 벗기듯 지난 겨울을 잊고 새로운 마음으로 즐겁게 서로 힘을 합쳐 봄같이 시작을 한 번 해보자고 격려와 응원을 하면서 엊그제 저녁을 먹던 중, 갑자기 해소병 걸린 노인처럼 기침을 하다 피를 토한 사촌오빠가 겁먹은 얼굴로 병원에 달려갔다.
  
5년 전에 폐암 진단을 받고 식구들을 슬픔과 걱정 속에 빠트렸던 전력이 있다. 그러나 그것이 폐암은 아니고 폐암으로 발전할 수 있는 무언가를 발견한 것이라 해서 안도한 전력도 있다.

놀란 심정으로, 일찍 죽고 싶지 않다는 삶의 애착이 생겨 담배부터 딱 끊고 충실히 병원의 처방을 따라 생활을 한 뒤 완치 되었다고 좋아하더니.
  
그동안 건강해져 방심했는지 몇 달 전부터 안 먹던 술이 날마다 늘고 연신 줄담배를 피워 물고 생각나면 밥 한 술 뜨고.
어쩌다 보는 나도 손에서 떨어질 줄 모르는 담배를 보며 건강을 좀 생각하라고 잔소리를 할 정도였다.
  
마음만 먹으면 금방 금연이 되는 사람이 자기라고 큰 소리는 잘 치던데, 보건소에서 무료로 주는 금연 패치를 받아와 몸에 부치고도 담배를 푹푹 피워 대더니 결국 어제 시커먼 얼굴로 켁켁 피를 토하고 샛노래진 얼굴로 병원에 갔다.
아직 검사 중이라는 소식을 들었다. 치료하면 또 완치될 만큼만 아픈 것이길 식구들은 바란다.

별일 아니길 기원하면서 궁금한 것이 생긴다.
자기 인생의 즐거움이 최고의 가치라며 시간관념, 경제관념, 가족 관념조차 애매모호하게 넘나들던 사람, 한 쪽 속은 다 썩어 뭉개지는지 마는지 외면하는 무한 이기주의자,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 번도 큰 소리로 부부싸움 해 본적 없음을 자랑하는 자유주의자...... 말로는 가족 사랑을 애기하지만 막상은 자기를 위해서만 돈과 시간을 할애하는 사람, 한 가족의 가장이라는 자리보다 자기 인생의 즐거움을 먼저 택한 시간이 후회되진 않은지.
  
그가 어떤 대답을 할지 짐작이 가므로 질문은 생략한다.
병이 나면 안 사람이 나야지. 
날마다 늙어가는 것과 죽음이 가장 두렵다며 자기 인생 삶의 즐거움을 최고의 미덕처럼 간직하던 사람이 왜 병원 신세를 지고 있담. 

항상 자랑하던 청년의 몸매 대신 체력을 키웠어야지.
건강이 저 모양인데 똥배 나올까 걱정, 주름 생길까 걱정, 하나 둘 보이는 흰 머리카락 걱정만 늘던 철딱서니 없는 애어른이다.
병원 신세가 철 좀 들게 하려나.
  
나만이 아니라, 나와 같이 사는 사람들도 돌아보는 인간미가 새싹처럼 돋아나길 바란다.
인생은 한 번 뿐인데, 하늘과 땅 차이의 생각으로 살아가는 사람들.
내일이 없는 듯 무분별한 즐거움이 최고인 사람도 있고, 한 자리를 평생 지키면서도 내면이 충실한 사람도 있다. 
  
봄을 맞는 나무처럼.
나는 둘 다 자신 없는 사람이지만 왠지 이 봄엔 힘든 겨울을 디딤돌 삼아 한 나이테 성장을 하는 나무를 닮고 싶다.
이 봄, 나처럼 느끼시길 선물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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