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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 같은 말

  • 입력 2013.04.29 13: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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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양화가인 ‘페인트 최’는 고향이 서울로 울진에서 15년간 생활했다. 현재 경기도 양평군에 거주하며 한국미협·도무스·예형회 회원 등으로 작품 활동을 하고 있다. [사진 : lomo / 이명동기자] 
 
아침 운동을 시작해 볼까 몇 번을 결심하다가 나선 길, 북한강의 짙은 안개가 마을과 산을 삼키고 있다.
  
아직 남아 있는 꽃샘추위 속에서 나는 목을 잔뜩 움츠리건만, 앙증맞게 피어난 보랏빛 노루귀는 당당하게 얼굴을 쳐들고 있다.
어느 골목의 노란 산수유 꽃은 등불처럼 환하다.
  
봄은 환한데 내 일상은 멍하다. 내가 갖고 싶은 편한 시간이 하루도 없다. 몸과 마음이 밧줄로 매인 듯하다. 매어있는 듯 한 기분은 머릿속을 단순하게 만드는 심각한 부작용이 있다.
  
매일 얼굴을 봐야만 하는 한 사람이 말을 너무 함부로 하고 이기적이다. 매사를 부정부터 하고 본다. 말을 함부로 하는 것이 싫으니까 내 입이 닫히고, 이기적인 사람이라는 것이 싫으니까 내 마음이 닫혀 버린다.
  
거기까지라면 내 입을 닫고 내 마음만 닫으면 되는데, 똑같은 사람이 되어 어떻게 하면 좀 더 독한 말로 이겨먹고 어떻게 하면 좀 더 나누지 않고 내 것을 지킬까 하고 있는 나를 본다.
  
어색하고 괴로운 모습이 아닐 수 없다.
내 입장 보다는 상대방의 입장을 이해하고 말이라도 다 들어줄 수 있는 배려를 가지는 게 항상 당연하다고 배워왔고 그래야 더 행복하다는 것도 알건만, 그러기가 싫어지는 사람도 있다는 사실이 그렇고. 
  
내가 좋으면 남도 좋을 물건이라든지, 내가 맛있으면 남도 맛있을 무언가를 나누는 것이 당연한 인정이라, 그것은 어디서 배워 아는 것이 아니라고 생각하건만 나누기가 싫어진다.
  
어떠한 세파에도 내 정서와 인성은 변하지 않을 것이라는 믿음이 날아갔다.
  
그 무슨 자신감이었을까? 내 상상력과 감성도 굳어가고 자유로움의 행복이 점점 결박당하고 있다는 억울한 상실감이 어색함을 넘어 괴롭고, 괴로움을 넘어 부끄럽다.
  
그것은 내가 나를 잃어가고 있는 이유를 밖에서 찾기 때문이고, 내가 나를 지키지 못해 마음에 들지 않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단순해지는 머릿속은 돌덩이처럼 무거워 자주 목이 뻐근하다.

눈 밭 속에서 자기의 열로 눈을 녹이고 꽃을 피우는 야생화들을 본다.
밟힐 듯 발밑 높이에서 더 이상 크지도 않지만 허리를 잔뜩 구부리고 고개를 숙이고 보게 하는 그들의 얼굴. 자갈밭이건 얼음 땅이건 씨눈을 틔워 줄기를 올린 의연한 그들, 작디작고 낮은 곳에 있지만 향기롭고 아름다운 얼굴이다.
  
잘 났다고 떠벌이지 않는데도 잘났고, 예쁘다고 뽐내지 않는데도 예쁘다. 그들의 사랑스러움이 마음속으로 들어와 앉는다. 내 마음의 모습이 들어와 앉은 그들을 닮았으면 좋겠네. 슬며시 웃음이 나는 욕심이다.
  
낮고 작은 꽃들을 보면서 그들 말없음의 강함과 향기를 부지런히 채우면서 살면 거만스럽고 싹수없는 사람의 언행에 일일이 신경 쓰면서 심장을 조일 일이 없을 것 같다.
  
안개 뒤에 사라졌던 산이 다시 자기 자리를 지킨다.
꽃 핀 작은 산길을 내 마음을 찾아 안고 나는 고요히 걸어가리라. 걸어 걸어 가다보면 혹시 모르지, 굳어있는 내 입과 마음에서 독기 대신 꽃향기 닮은 말이 피어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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