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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3년 ‘유신 1차년도의 해, 농가 목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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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3.05.03 17: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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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3년 ‘유신 1차년도의 해, 농가 목표’


“유신 1차년도의 해”, “지난날의 주먹구구식 농사 방식을 버리고 올해는 과학적 영농으로 증산 시책을 꼭 실천하겠다”, “새마을 공동 작업으로 집단 재배”, “1모작 답은 조직 재배”, “예방 위주 농약 살포”, “노는 땅 없도록 보리 파종”

소개하는 자료는 1972년 10월 17일 박정희 대통령이 초헌법적인 계엄과 국회 해산, 헌법 정지의 위헌적 절차에 의한 국민투표를 통해, 1972년 12월 27일에 제3공화국 헌법을 무력화시킨 10월 유신 1차년도의 농가 목표 서류이다.

이 자료가 생산된 1973년은 앞서 1962년도부터 추진되어 온 ‘경제 개발 5개년 계획’ 가운데 3차년도 계획(1972~76년) 기간이다.

농림·어업 분야에서 13%의 성장률을 계획했던 3차년도 기간의 실제 실적은 18%로 예상보다 5% 높게 달성됐다.

통계에 따르면, 1972~76년까지의 제3차 경제개발 5개년 계획은 고도성장과 중화학 공업화를 목표로 추진됐는데, 1971년 ‘닉슨 쇼크’에 따른 국제 통화 질서 붕괴와 1973년 10월 제1차 석유 파동 등으로 큰 위기를 맞기도 했다.

하지만 당시 박정희 정부의 외자 도입과 수출 드라이브 정책, 중동 건설 붐의 열기를 타고 다행스럽게 고비를 넘기며 연평균 11%의 높은 경제 성장률을 유지했다.

울진읍 읍남4리에 거주하면서 농사를 짓던 한 농민이 당시 울진면에 제출한 농가 목표는 경지 면적, 지력 중진 방법, 증산 목표, 재배 품종, 영농 방법의 혁신 등의 란이 구체적으로 채워져 있다. 

서류를 살펴보면, 이 농민은 1973년 한 해 동안의 생산 목표를 2704평 규모의 논밭에서 쌀 1551.24와 감자·고구마 1119.3을 합한 2670.54로 설정하고 있는데, 그 단위는 명확하지 않다.

이 목표를 위해 농민은 천수답 1668평과 밭 1036평 등 총 2704평의 논밭에 퇴비 1185.2kg를 살포하여 지력을 증진시킬 계획이라고 명기하고 있다.

재배 품종은 당시에 유행하던 품종인 재건(再建) 벼, 남작 감자, 유신 고구마를 각각 심는 것으로 나타나 있다.

재건 벼는 국내 육성 품종 가운데 하나로, 국내 육성 벼는 풍옥, 수성(水城), 팔굉(八紘), 팔달(八達), 풍광(豊光), 진흥(振興), 팔금(八錦), 농백(農白), 낙동(洛東), 관악(冠岳)벼, 진주(眞珠)벼, 설악(雪嶽)벼 등이 있다.

소개하는 서류 왼쪽 하단에 나열되어 있는 ‘우리 면의 장려 품종’ 가운데, ‘통일’ 벼는 통일형 신육성 품종으로 분류되고, ‘아까바레(秋晴)’는 ‘아끼바레’의 오타로 추정되는데 일본에서 들여온 도입 육성종이다.

또 ‘남작’ 감자는 감자의 품종 가운데 가장 널리 보급되어 재배되는 품종으로, 미국이 원산지며 일본을 거쳐서 국내에 도입됐다.
남작 품종은 퇴화가 심하고 병에 약해서 2기작 재배가 힘든 단점이 있지만, 수확량이 많고 성숙기가 빠른 것이 장점으로 알려진다.

역사적으로 박정희 대통령의 한국적 민주주의를 표방했던 유신 체제는 전형적인 사이비 민주주의 또는 장식적 입헌주의 체제의 독재 체제로 숱한 비판을 받아왔다.

대통령 혼자 행정, 입법, 사법부를 모조리 장악하면서 삼권분립은 여지없이 무너졌고, 제한이 없는 연임 허용과 어용 기구에 불과했던 통일주체국민회의를 통한 대통령 선출 간선제로 종신 집권을 가능하게 한 점은 전례가 없던 일이었다.
 
국민들은 대통령을 직접 선출한 수 있는 선거권이 없었고, 대통령은 헌법의 효력까지 정지시킬 수 있는 긴급조치권을 이용해서 필요할 때는 언제든지 유신체제를 비방하거나 비판하는 모든 행위들을 금지하고 처벌할 수 있었기 때문에 국민의 기본권은 철저히 묵살 당했다.

그러나 이런 점에도 불구하고 박정희 대통령이 추구했던 경제개발 5개년 계획을 통해 국내 경제는 매년 10% 안팎의 성장세를 유지하면서, 자립경제와 조국 근대화를 기치로 ‘한강의 기적’이라는 신조어를 만들어낼 정도로 고도성장을 이룩했다는 평가 또한 동시에 받고 있다.

이번호에 소개하는 문서는 1970년대 초반, 정부의 주요 시책인 농업 생산력 증가를 위한 울진 지역의 농업사와 사회상의 일면을 들여다볼 수 있는 귀한 자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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