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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경을 넘어 ‘사랑의 인술’ 펼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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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3.06.05 11: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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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봉사를 봉사라 생각하면 힘들다!

 
“봉사를 봉사라고 생각하니까 어려운 겁니다. 생각만 바꾸면 가장 쉬운 것을, 그냥 생활의 일부라 여기고 그저 내가 가지고 있는 것을 나누는 것이 봉사 아니겠습니까.”

이종규(63세. 전임 울진군의사회장) 회장에게 봉사란 바로 그런 것이다. “바쁠 때일수록 시간 내기 더 좋다”고 말하며 계획표를 짤 때도 봉사계획을 제일 먼저 세우는 이 회장을 만났다.

뉴질랜드 크라이스트처치에 거주하다 평해읍에서 터를 잡고 병원을 개원하지 10년. 환자 진료에 여념 없는 이 회장은 흰색 가운이 잘 어울리는 노년의 신사다.

1986년 이종규 회장은 필리핀 마닐라 시 근교에 있는 빈민촌 의료봉사를 시작한 이래로 해외봉사활동이 올해로 27년을 맞았다. “우연히 다녀온 해외 의료봉사활동이 마음 한구석에서 떠나지 않았지요. 그래서 ‘미얀마 정부파견의사’를 지원하게 되었어요.”

당시 연세의대를 졸업하고 가정의 전문의로 서울에서 개원하고 있던 1994년이었다. 미얀마에서 2년간의 근무를 마치고 뉴질랜드로 이민을 떠났다. 이민 생활 중에 아프가니스탄 전쟁(2001년)으로 희생된 난민촌 3개국(아프가니스탄, 우즈베키스탄, 타지크스탄)을 찾아다니며 의료봉사를 했다. 생명의 위협을 느끼며 구호활동을 펼친다는 것이 결코 쉬운 일은 아니다.

이 회장은 “러시안 군인들의 보호 아래 지뢰밭에 갇힌 상황에서 추위와 식량부족 등의 어려움을 겪으며 펼친 의료봉사가 제일 기억에 남는다.”고 한다. “전날 총상을 치료해준 병사가 다음날 난민촌으로 스며든 탈레반 병사의 저격으로 두개골이 관통된 시신으로 발견되었을 때 느껴지는 충격을 어찌 말로 다 표현하겠습니까?”라며 마음을 다잡는다.
어려움이 있는 곳은 어디든 달려간다.


몽골 의료봉사


어려움이 있는 곳은 어디든 달려간다.

2002년 월드컵 열기가 있는 뜨거웠던 그곳에서 의료자원봉사를 했다. 정부파견의사로 미얀마 대사관에서 근무했었던 것이 인연이 되어 외교통상부에서 주관한 한-러 친선 특급 시베리아횡단 열차 의무실장을 맡아 사절단의 일원으로 러시아를 방문하기도 했다.

일정을 마치고 뉴질랜드로 돌아가려는데, 때마침 태풍 루사로 인한 호우피해를 입은 김해시, 영동군, 동해시 수해지역에 파견의사가 필요하다고 대한의사협회에서 요청이 들어왔다. 이런저런 이유로 5개월 동안 뉴질랜드에 돌아갈 수가 없었다.

봉급 받는 의사로서 의료봉사를 위해 자리를 비워야 하는 어려움과 아이들 교육문제 등 여러 가지 이유로 이민 10년 만에 한국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수만 가지 생각이 뇌리를 스치고 지나갔다. 인생에서 가장 힘든 시기였다.

한국에서 잘 나가던 그가 어려운 길을 선택한 것에 대한 미련은 없다. 자기희생과 봉사로 이 사회를 밝게 비추는 작은 소망이 있었기 때문이다. “수많은 의사가 드러나지 않지만, 자신의 길 위에서 묵묵히 ‘신성한 직분’을 수행하지요.” “이들이 있기에 의사의 길에 접어든 의학도들은 의사라는 이름을 결코 부끄러워하지 않을 듯합니다.”


미얀마 의료봉사

휴가를 휴가답게 보낸다

2004년 평해읍에서 개원하면서 사랑의 교통봉사대, 태풍(매미) 피해지역인 울릉도 의료봉사단, 청산리 대장정의료단장을 맡아 본격적인 의료봉사에 나섰다. 2010년부터는 몽골 의료봉사를 시작했다. 평일에는 병원 문까지 닫고 봉사를 한다.

몽골 의료봉사는 3년을 꾸준히 다녀와 다른 곳보다 정이 많이 들었다고 한다. 또한 동참해준 봉사자들이 서로가 서로를 격려하고 감싸주는 모습은 너무나 아름답고 자랑스럽다. 초등학생부터 중년의 성인들로 구성된 봉사단은 봉사를 통해 사랑을 나누어 주었음에도 더 큰 것을 얻고 왔다며 감사해 하는 정예대원들이다.

봉사란 대가를 바라는 게 아니다. 만약에 어떤 대가를 바란다면 그건 봉사라는 단어보다는 오히려 거래라는 단어가 더 어울리지 않을까 생각한다. 내가 베풀면서 즐거울 때 참된 봉사의 의미가 있다고 생각한다. 휴가를 휴가답게 보내고 왔다는 데에 더 큰 의미를 둘 수가 있다.
이 회장은 “봉사를 마치고 헤어지는 시간이 너무 싫다.”고 말한다. “짧은 만남이지만 함께한 모든 것이 의미 있고 보람된 시간이라 아쉬움도 크게 느껴지는 것이 아닌가 합니다.”

일행들 각자는 서로 깊은 포옹으로 불확실한 미래를 약속한다. 봉사란 이런 재미에 또 가는 모양이다. 아마도 심하게 중독되었음이 틀림없다.
해외봉사단을 꾸릴 때는 재정적인 부담이 크다. 기업체 등 후원하는 곳이 없어 자체적으로 해결해야 하기 때문이다. “봉사단원들이 십시일반 부담하지만 운영하다 보면 생각지 않는 곳에서 도움을 주시는 분들도 계십니다.” 그럴 때 마음으로 느껴지는 전율은 잊을 수 없다고 한다.


아프가니스탄 난민촌의 탈레반 병사 치료


올해는 11월~12월에 네팔로 해외의료봉사를 떠나기로 예정되어 있다. 의사 3명, 간호사 3명, 진행 2명, 학생 5명, 홍보 3명으로 봉사단을 구성하게 된다. 학생들에게 참여 기회를 많이 주려고 한다. 그들이 우리의 미래이기 때문이다.

이번 네팔 의료봉사는 마을주민을 대상으로 진료를 하루 진행하고, 다음날 학교를 방문해서 학생들의 건강검진과 체질검사를 시행할 예정이다. 학생들의 체질검사를 끝내면 양국 간의 문화 교류의 장이 펼쳐진다. 우리 학생들의 끼를 마음껏 펼쳐 보일 수 있는 기회이다. 해외에서 자신의 장기를 보여주는 것도 대단한 용기인 동시에 자긍심을 높일 수 있다.
언제나 사랑과 봉사를 실천하는 이종규 회장.


하지만 그는 그것이 특별할 것 없는 생활의 일부라고 말한다. 앞으로의 계획도 이러한 나눔을 계속 실천하는 것이다. 어둠이 빛을 몰아내기 전에 ‘빛’을 더욱 밝게 해 어둠을 물리치듯 봉사에 대한 인식 전환을 위해 분위기 조성도 필요하다.

“돈은 벌리는 만큼 써야 하는 것이 아닙니까? 적게 벌면 적게 쓰지요.” 이 회장의 자녀들은 아직 의대에 다니고 있다. “아이들 학비가 많이 들어가요. 큰놈은 이제 막 졸업했고, 둘째는 휴학 중인데, 그놈만 졸업하면 남은 인생 제 힘이 필요한 곳에 의료봉사를 하면서 작은 도움이라도 드리고 싶다.”고 말한다.

“아직 할 일이 많이 있습니다. 우리 주변에 힘들고 고통받고 있는 이웃들을 위해 봉사활동을 계속한다.”고 말하는 이 회장의 모습에서 다시 한 번 봉사의 참 의미를 느끼게 된다.


구. 울진여고 학생들 몽골에서 의료봉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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