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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울진원전 건설부지 ‘문화재 발굴 조사 마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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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3.06.07 16: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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Ⅰ구역 1지점 추가 부지·····석실묘(石室墓) 7기·석곽묘(石槨墓) 1기·토광묘(土壙墓) 4기·건물지 관련 불고래 시설 1기 확인·····단각고배(短脚高杯)·개(蓋)·대부완·병 등 토기류, 장신구, 철기류 60건 66점 출토

Ⅱ구역 4지점·····봉토분(封土墳) 4기·석곽묘 83기·석실묘 76기·목곽묘(木槨墓) 5기·토광묘 4기·수혈(竪穴) 34기·건물지 관련 불고래 1기 등 조사·····고배(高杯)·장경호(長頸壺)·단경호(短頸壺)·연질발(軟質鉢)·연질호(軟質壺)·상형토기(象形土器)·세환이식(細環耳飾)·경식(頸飾)·금동관편(金銅冠片)·환두대도(環頭大刀)·마구류 등 다양하게 출토



조사 지역 원경(항공사진)

신울진원자력발전소 건설부지 내 Ⅱ구역 4지점과 Ⅰ구역 1지점 추가 부지에 대한 문화재 발굴조사가 종료됨으로써 전원개발사업실시계획이 승인(2009년 4월 3일)·고시되기 이전인 2006년도부터 사전 지표조사로 시작됐던 문화재 발굴조사가 7년여 만에 완전히 마무리됐다. 
  
신울진원전 건설부지 내 Ⅱ구역 4지점과 Ⅰ구역 1지점 추가 부지에 대한 문화재 발굴 조사는 2012년 5월 7일부터 지난 3월 25일까지 (재)성림문화재연구원(조사단장 박광열)에서 실시했다.


조사 구역 지형도·유구 분포도

  
성림문화재연구원에 따르면, ▲Ⅰ구역 1지점 추가 부지에서는 석실묘(石室墓) 7기, 석곽묘(石槨墓) 1기(1호 묘), 토광묘(土壙墓) 4기, 건물지와 관련된 불고래(갱동, 炕洞) 시설 1기가 확인 조사됐다.
  
석실(곽)묘의 평면 형태는 1호묘(세장방형)를 제외하면 모두 장방형으로, 3호묘만 등고선과 평행하게 축조됐다.
  
묘광의 규모는 길이 322~492㎝로, 너비 130~268㎝정도며, 석곽(실)의 규모는 길이 205~385㎝, 너비 52~129㎝, 깊이 18~82㎝이다. 
  
석실묘의 대부분은 입구부가 남쪽 또는 동쪽인 횡구식 석실묘로, 4호묘는 유개고배(有蓋高杯-뚜껑이 있는 고배), 부가구연장경호(附加口緣長頸壺-입술 부분이 ㄴ자처럼 꺾인 굵고 긴 목이 붙어 있는 항아리), 호(壺, 병) 등이 출토됐고, 6세기 전반 이후의 석실묘로 추정됐다.
  
유물은 단각고배(短脚高杯-소형 굽접시), 개(蓋, 뚜껑), 대부완(4세기 후반에 등장하는 삼국시대 토기의 한 종류), 병 등과 같은 토기류와 장신구, 철기류 60건 66점이 출토됐다.
  
성림문화재연구원은 “Ⅰ구역 1지점 추가 부지에서 확인된 토기류는 대부분 석실묘 단계에 해당되는 것으로, 특히 5호묘에서 출토된 개(蓋)의 연대는 6세기 후반 이후로 편년된다.”며, “Ⅰ구역 1지점 추가 부지에서 조사된 석곽·석실묘는 비록 유구의 유실이 심한 편이지만 2010년 11월~2012년 1월까지 Ⅰ구역 1지점 발굴조사에서 확인됐던 석곽·석실묘와 비슷한 구조와 유물이 출토됐고, 중심 연대는 대체로 6세기 후반으로 추정된다.”고 밝혔다.


Ⅰ구역 추가 지점 5호묘 유물 노출 후 전경(①), 유물 세부(②), 북단벽 벽석 세부(③)
Ⅱ구역 4지점 9호묘 유물 노출 후 전경(①), 유물 세부(②,③)  


▲Ⅱ구역 4지점에서는 봉토분(封土墳) 4기, 석곽묘 83기, 석실묘 76기, 목곽묘(木槨墓) 5기, 토광묘 4기, 수혈(竪穴) 34기, 건물지와 관련된 시설인 불고래 1기 등이 조사됐고, 봉토분 4기는 모두 석실묘로 확인됐다.
  
조사 구역 북쪽 능선 일대에서는 석곽묘와 석실묘가 비슷한 수치로 혼재되어 조성되다가 남쪽으로 내려오면서 석곽묘보다 석실묘의 축조가 많아졌고, 목곽묘는 조성되지 않고 수혈의 빈도수가 높아졌다.
  
특징적인 유구로는 기존 석곽묘에 유구를 덧붙어 증축한 경우가 나타났는데, 이 같은 사례는 앞서 조사된 Ⅰ구역 1지점 유적 35호 석실묘(횡구식)에서도 확인됐다.
  
Ⅱ구역 4지점에서 조사된 10호묘는 석곽묘를 이후에 횡구식 석실묘로 개축한 것으로 추정되는 유구로, 석곽묘 축조 시에 주로 할석을 사용하여 벽석을 축조했지만 증축된 부분은 선축된 석재보다 큰 천석을 사용하여 벽석 부재의 차이를 보이고 있다. 
  
또 개석의 잔존 상태가 양호한 1호분의 경우, 6매의 할석을 이용하여 덮은 후 개석 사이사이는 작은 할석을 채워 넣었으며, 밀봉토를 덮어 마감했다.
  
밀봉층 형성 시에 구획은 하지 않았고, 횡구부까지 연결되지 않는 점을 볼 때 추가장(追加葬)의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는 것으로 확인됐다.
  
성림문화재연구원은 연대를 6세기 전반으로 추정하면서, 1호분에서 출토된 각종 마구류(馬具類)와 2호분의 태환이식(太環耳飾, 고신라시대의 귀걸이) 등은 이 지역의 정체성의 위상을 엿볼 수 있는 중요 자료로 평가했다.


Ⅱ구역 4지점 15-1호묘 유물 노출 후 전경(①), 유물 세부(②,③) 

Ⅱ구역 4지점 96호묘 유물 노출 후 전경(①), 유물 세부(②,③)  


Ⅱ구역 4지점에서 출토된 유물은 고배(高杯, 굽다리접시), 장경호(長頸壺, 긴 목항아리), 단경호(短頸壺, 짧은 목항아리), 연질발(軟質鉢, 적갈색 사발), 연질호(軟質壺), 상형토기(象形土器, 사람이나 특정 기물의 형상을 본떠 만든 신라·가야 시대의 토기), 세환이식(細環耳飾, 가는 고리 귀걸이), 경식(頸飾, 목걸이 장식), 금동관편(金銅冠片), 환두대도(環頭大刀), 마구류 등으로 다양하다.
  
성림문화재연구원은 “출토된 유물 가운데 고배의 편년을 기준으로 한 목곽묘는 시기가 가장 이르며(5세기 전반∼중반), 비교적 시기가 이른 석곽·석실묘의 조성 연대는 대부분 황남대총 남분 단계 전~후(5세기 중엽 기준)로 이 시기에 석곽·석실묘가 주구 중복을 이루며, 연접하여 집중적으로 축조·확산된 것으로 판단된다. 이후 53호묘에서 출토된 고배의 경우 호우총 단계의 고배와 유사한 기종으로 6세기 초로 판단된다.”고 밝혔다.
  
그리고 “80호·85호 석실묘에서 출토된 유개합(有蓋盒, 뚜껑 사발)과 병의 경우 마제형문(馬蹄形文, 말발굽 모양 무늬)과 능형문(菱形紋, 마름모 무늬)과 같은 인화문(印花紋, 찍은 무늬)이 시문되어 7세기 후반∼8세기 초로 추정되며, 113호 석실묘에서는 개 1점만이 출토되었는데 꼭지경이 넓은 굽형 꼭지이고, 134호 석실묘에서 출토된 인화문 병에는 수적형문(水滴形文)과 이중원문(二重圓文)이 조합되어 시문됐다.”고 밝혔다.  
성림문화재연구원은 시기를 7세기 후반~8세기 초로 추정했다.

Ⅱ구역 4지점 유적에서 출토된 고배 가운데 외래계(外來系)로 판단되는 고배들도 확인되고 있다. 
  
수혈 5호에서는 상형토기가 2점 출토되었다. 머리는 짐승형을 하고 있고 몸통은 조류와 닮아 있는데, 이러한 기형은 울진 지역에서는 처음 출토된 것으로, 연대는 5세기 중엽에서 6세기 초엽(상형토기 발전기)에 해당한다.
  
이 밖에 경식과 이식, 철기류 등이 출토되었는데, 이 중 출토된 이식은 대부분 세환이식으로 특히 15-1호묘에서 출토된 이식은 신라의 전형적인 요소를 가지고 있다. 
  
즉 샛장식(귀고리의 고리와 드리개의 가운데 부분을 이루는 장식)이 소환연접입방체(小環連接立方體 작은고리이은입방체, 둥근 고리 6개를 정사각형으로 붙여서 만든 것)를 띠고 있는 것으로, 이런 형식은 신라의 세환이식 중 초기부터 존재하는 형태이다. 
  
99호 석실묘에서는 80∼85㎝로 추정되는 삼엽문(蔘葉文) 환두대도 1점이 출토되었는데, 병부가 서쪽을 향하고 있어 피장자의 두향을 추정할 수 있다.
  
이 환두대도는 상원하방형의 외환 안에, 삼엽문의 형태는 중엽이 작고 좌우의 양엽은 옆으로 뻗어 있는데, 부식이 심하게 진행되어 보존 처리 과정에 있다.
  
132호 석실묘에서는 영락(瓔珞, 구슬을 꿰어서 만든 걸이) 장식 발형기대(鉢形器臺, 그릇 받침)가 출토됐다. 
  
영락 장식은 가야, 신라에만 나타나는 특이한 장식으로 고리를 만들어 기면에 붙이고 마치 귀걸이를 매어 달듯이 하여 고리 끝에 나뭇잎 모양이나 크로버잎 모양 등 각종 형태의 걸이가 부착되어 나타난다. 
  
발형기대에 달린 영락을 잔존상태에서는 형태를 파악할 수 없으나 영락을 연결한 고리가 확인됐고, 구연부에 고사리 문양의 장식을 부착했다.
  
성림문화재연구원은 연대를 6세기 전반으로 편년했고, 신라와의 밀접한 교류 관계로 설명했다.
  
1호 봉토분 출토 마구류의 형태는 보존 처리 과정에 있어 명확하지 않지만 교구, 십금구, 행엽, 등자 등의 안정용과 토기와 마구류 사이에 약 10㎝ 정도의 철촉(鐵鏃)이 함께 확인됐다.

  
문화재 발굴 조사 결과와 관련해 성림문화재연구원은 “Ⅰ구역 1지점 유적에서 조사된 석곽·석실묘의 조성 연대는 대체로 6세기 중·후반이 중심 연대로 Ⅱ구역 4지점 유적에서 조사된 석곽·석실묘보다 조성연대가 늦다. 따라서 덕천리 고분군의 전체적인 분묘의 조성 과정은 5세기 전엽을 전·후한 시점에 Ⅱ구역 4지점 유적 구릉에 목곽묘가 최초로 축조되고, 이후 구릉 전체에 주구(周溝)와 봉토(封土)에 의한 묘역을 조성하면서 구릉 전체로 석곽묘와 석실묘(횡구식)가 확장되어 오다가, 6세기 이후 서쪽 Ⅰ구역 1지점 유적의 구릉으로 주 묘역이 확장된 것으로 판단된다.”고 설명했다.
  
이어서 “7세기 중반 이후가 되면 Ⅰ구역 1지점의 완만한 주능선 일대 또한 포화 상태에 이르게 되어 주능선이 아닌 비교적 소외된 곳에 석실묘가 작은 군집으로 위치하거나 독립묘로 조성된다. 이때부터 더 이상 석곽묘는 조성되지 않고 석실묘로 대체되며, 횡구부(橫口部)는 동쪽에서 남쪽을 더 선호하게 된다. 석실묘의 평면 형태는 세장방형(細長方形, 긴 네모꼴)이 아닌 방형(方形) 또는 장방형(長方形)으로 변화되며, 입구부가 위치하는 남쪽을 좁아들게 조성했다. 특히 축조 수법이 간소화되며, 시상(屍床, 주검받침)을 사용하지 않고, 유물의 빈도수가 극히 줄어드는 것으로 볼 때 신라사회에서 영향력이 줄어드는 시점으로 판단된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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