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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글납작한 후회

  • 입력 2013.06.26 15: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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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양화가인 ‘페인트 최’는 고향이 서울로 울진에서 15년간 생활했다. 현재 경기도 양평군에 거주하며 한국미협·도무스·예형회 회원 등으로 작품 활동을 하고 있다. [사진 : lomo / 이명동기자]
  
몸이 한 군데라도 고장이 나면 건강이 최고라는 말을 그때서야 절감한다.
관절 사이의 물주머니가 부어 갑자기 왼쪽 팔을 쓰지 말고 쉬라는 처방이 이유인지, 아니면 몸이 아니라 마음이 편한 곳을 찾고 싶었는지, 그 둘의 핑계가 이유가 되어 갑자기 일하던 곳을 옮기게 되었다.
  
팔이 아파 며칠 쉬라는 것일 뿐인데, 내 존재 자체의 필요성이 없어진 것이다.
부뚜막에서 졸고 있는 고양이 손이라도 빌리고 싶게 정신없이 바쁜 와중에, 퉁퉁 부어 잘 움직이지도 않는 팔을 부여잡고 앉아만 있어야 한다는 건 생각 보다 훨씬 부담스러운 일이다.
  
마침 전화를 걸어 온 친구에게 이런저런 얘기 끝에 팔이 아파 일도 못하고 있다는 소리를 하자, 무조건 만나자는 약속이 어찌해서 이사를 가는데 까지 결론이 나버렸다.
  
‘지금 좀 쉬고 팔을 쓸래, 지금 일하고 팔을 못 쓸래’라며 친구가 강조하던 말은 이미 의사선생님으로부터 받은 주의였다.
  
주위의 도움을 받아 일치감치 이삿짐을 싸 놓은 저녁, 내 길은 이것인가 하고 살아온 시간들이 한 편의 영화처럼 한 장의 낙서처럼 교차한다.

복잡해지는 마음도 정리할 겸, 거울을 볼 때마다 마음에 들지 않는 머리도 정리할 겸, 동네 미용실을 찾았다.
‘얼굴 옆머리는 귀 뒤로 넘겨도 쭉 빠지게 하고, 뒤통수는 제일 신경이 쓰이는데 납작하게 하지 말고 볼륨 있게 해주세요.’
  
사실 이 주문은 미용실에 갈 때마다 하게 되는데, 한 번도 만족을 못했다.
내가 특별히 강조하지 않아도 대충이라도 알아서 어울리게 스타일을 해주는 게 그들의 감각이 아닐까 기대를 할라치면, 기대 이하였다는 이야기다.
  
쭉 빠지게 치라는 머리는 동그랗게 잘라놓고 볼륨감 있게 쳐 달라는 머리는 눌린 듯 납작하다.
시원하게 대답하던 미용사를 믿고 앉아있던 나는 잠이나 잘 걸 하고 후회했다.
  
머리를 자르기 전 미용실 거울을 보고 앉아 있으면, 그전까지 마음에 안 들던 머리 스타일이 갑자기 예뻐 보일 때가 있다.
  
머리를 몽당하게 자르고 나면, 차라리 자르기 전의 머리 스타일이 아까울 때가 있다.
  
살아내는 시간을 대하는 마음과 머리를 하는 마음은 닮아 있을지 모른다.
  
내가 이 직업을 택했다면 한 사람 한 사람 고객의 얼굴 스타일과 원하는 스타일을 적절하게 파악해 만족스럽게 해 줄 수 있었을까?
  
그렇다면 나는 왜 좀 더 일찍 돈도 벌고 재주도 살리는 직업에 눈을 못 떴을까?
동글납작한 내 머리를 보면서 잠깐 동글납작한 후회가 들었다.
  
그러나 가지 않은 길에 대해서가 아니라, 내가 택한 길에서 만난 모든 문제의 어려움을 현명하게 해결하고 헤쳐 나가는 방법이 항상 최선이었나를 생각할 때다.
  
머리는 또 자랄 테고, 내가 원하는 스타일이 나올 때까지 기대를 하고 다른 동네의 미용실을 가 볼 수 있는 기회가 있는 한, 동글납작한 후회는 멀리 가 버려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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