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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제국 전답관계(大韓帝國 田畓官契) 문서인 ‘지계(地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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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3.07.02 11: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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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문서는 대한제국(大韓帝國, 1897년 10월 12일~1910년 8월 29일까지의 조선의 국명) 시기에 생산된 관문서(官文書)로 정식 명칭은 ‘대한제국 전답관계(大韓帝國 田畓官契)’ 지만 흔히 ‘지계(地契)’로 불린다.
  
가로 17.5cm, 세로 24.3cm 크기의 지계는 토지의 소유권 변동 사항이나 저당권 설정 시에 꼭 필요한 문서로써, 지금의 토지 대장과 등기 권리증의 기능을 동시에 가지고 있었다.
  
지계 문서는 똑같이 3부를 작성하여 1부는 지계아문(地契衙門)에 보존했고, 1부는 토지 소유주가, 또 1부는 지방 관청인 지계감리(地契監理)에 보존했다.
  
지계아문은 조선 후기에 전토문권(田土文券)의 사무를 맡아보던 관청이다.
  
지계아문은 조세 수입원을 명확하게 파악함으로써 조세 수입을 증대시키기 위한 목적에서 대한제국 정부가 1898년 설치한 양지아문(量地衙門)이 혁파되면서 그 업무를 이양 받아서 설치된 관청이다.
  
지계아문은 각 지역의 토지 측량 조사를 실시하는 한편 토지 소유권 증명서인 지계를 발급했다.
  
지계아문의 관원은 총재(總裁, 칙임관) 1명, 부총재(칙임관) 1명, 기사원(記事員, 주임관) 2명, 위원(주임관) 4명, 주사(主事, 판임관) 6명으로 구성됐고, 전국 13도에 별도로 감독인 지계감리를 두어 지방의 토지문권을 관리했다.
  
이번에 소개하는 문서는 대한제국의 연호인 광무(光武) 당시에 생산된 문서로, 밭(田)의 소재지는 강원도(江原道) 평해군(平海郡) 남면(南面)이다.
  
소개하는 지계 문서상에 나타나는 토지 등급은 오등결(伍等結), 토지 면적은 이부칠속(貳負柒束)이다.
  
조선시대의 토지는 총 6등급으로 나누어졌는데, 가장 비옥하고 기름진 땅이 1등결이므로 5등결인 이 문서상의 밭은 꽤나 척박했던 것으로 보인다.
  
또 지금은 토지의 단위로 평방미터(㎡)나 평(坪)을 사용하지만, 예전에는 곡식 한줌을 생산할 수 있는 정도의 땅 넓이를 1줌으로 사용했고 한자로 1파(把)라고 했다.
  
그리고 1把의 10배는 1속(束)으로 곡식 한 다발 정도를 생산하는 땅의 넓이, 1束의 10배는 1부(負)로 곡식 한 짐을 생산할 수 있는 정도의 땅 넓이, 1負의 10배는 1결(結)로 표시했다.
  
이렇게 예전에는 평균적으로 1등급 토지의 1결(結)은 2753.1평(坪. 약 18마지기 또는 약 1정보)이고, 최하 등급인 6등급 토지의 1결(結)은 11,035.5평이었다.
  
이 문서상의 토지 소유주(時主)는 이계춘(李啓春)이다.
특히 이 문서에 나타나는 ‘사표(四表)’는 대한제국 시절 토지의 경계 표시를 나타내는 말로 사방(四方)이란 뜻을 가지며, 해당 토지의 둘레를 나타내는 것이다.
  
이 지계는 토지 동쪽에 김용만(金容萬)의 밭(田)이 있고, 서쪽에 김익수(金益秀)의 밭(田)이 있으며, 남쪽에는 길(路)이, 북쪽에는 산(山)이 있는 것으로 상세하게 해당 토지의 경계를 표기하고 있다.
  
이번에 소개하는 지계는 디자인 측면에서도 단조롭지 않으면서 완성된 아름다움을 보여준다.
  
지계의 앞면은 문서 상하좌우를 빙 둘러서 양각과 음각의 꽃무늬 또는 꽃잎을 형상화한 것으로 보이는 추상적인 무늬가 수놓아져 있고, 문서 상단의 중앙에는 지금의 태극기와는 건곤감리(乾坤坎離) 4괘의 모양이 다른 이채로운 태극기가 자리 잡고 있으며, 그 좌우로 대한제국(大韓帝國-右) 전답관계(田畓官契-左)가 인쇄되어 있다.
  
문서 끝부분에는 지계아문총재(地契衙門總裁)와 지계감리의 명칭 위에 직인이 빨간 인주로 찍혀 있어 관문서의 권위와 위엄을 살리고 있다.
  
그리고 문서 뒷면에는 지계를 발급할 때 주의해야 할 사항인 지계규칙(地契規則)이 자세하게 기록되어 있다.
  
지계 규칙은 ‘토지 소유주는 이 문서를 보관해야 하며 옛 문서는 반납해야 한다’, ‘토지를 매매하거나 증여할 때는 예전 문서를 새 문서로 교환해야 하고, 저당할 때는 관청의 허가를 받아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해당 토지를 국유로 한다’, ‘이 문서 교부 시에 소유주는 논 1부에 엽전 5푼, 밭 1부에 엽전 3푼, 화전 1부에 엽전 1푼씩을 납부해야 한다. 지방관은 이 돈을 용지와 인쇄비용 등으로 사용한다’, ‘전답 매매 시에는 거래 가격의 1%를 납부한다. 이를 매도자와 매수자가 각 절반씩 부담한다’ 등의 사항을 기록하고 있다.
  
지계 제도는 지계 사업에 의한 토지 측량과 이에 따른 소유권 증명 등기와 발급 등으로 전국적으로 차례차례 실시됐지만 지주들의 반발과 잦은 부서 이관으로 인해 약 2년 정도 일부 지방에서만 발행됐다.
  
특히 일본제국주의가 1904년 2월 러일전쟁을 일으키고 사실상 조선을 군사 점령하면서부터는 시행이 전면 중단된 만큼 현존하는 수량이 매우 적은 희귀 문서이다.
  
본지 [울진뉴스]에서는 지난 2007년 6월호의 「발굴(發掘), 울진의 옛 자료」 코너를 통해서도 대한제국 고종황제 당시에 생산된 지계를 소개했었다.
  
이 지계는 대한제국 시절에 생산된 울진 지역의 토지 문서로, 지적·토지제도의 시대적 변천사와 함께 사회상을 더듬어 유추하는데 있어 소중한 문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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