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양화가인 ‘페인트 최’는 고향이 서울로 울진에서 15년간 생활했다. 현재 경기도에 거주하며 한국미협·도무스·예형회 회원 등으로 작품 활동을 하고 있다. [사진 : lomo / 이명동기자]
크고 작은 모임에 서서히 빠지게 된 것이 몇 년은 되었다. 그러고 보니 친구들과 만나지 못한 시간도 길다. 그런 여유를 앗아가는 세월을 그러려니 살고 있다.
혼자서 보내는 시간이 길수록 혼돈의 비빔밥 같은 세상에 섞이지 않아도 되는 나만의 여유라는 묘한 즐거움에 빠진다. 막연하게 내가 소망하던 어느 골짜기 작은 암자의 수도승 같은 생활에 만족한다.
한 달에 한 번 장보기를 해서 최소한으로 먹 거리를 줄이자고 결심했는데, 점점 공간이 좁아지는 냉장고를 보면 ‘인간이란 생각과 실천의 간극을 극복하지 못하는 존재인가’ 라는 물음을 스스로 던지면서 말이다.
사랑하는 책 대신 틈만 나면 안고 사는 텔레비전이 쉽게 고쳐지지 않는 불만사항이지만 내 의지의 박약이 어디 그 뿐이랴. 내일은 책을 실컷 안아야지, 그러면서 또 하루 티브이 리모컨을 찾아 손에 든다.
잔액이 부족해 뭐가 빠졌네, 뭐가 안 빠졌네 하면서 울리는 전화. 예전 같으면 진땀 삘삘 흘리며 죽을 듯 고민하며 뛰어다녔지만, 이제는 오늘 당장 해결 못할 문제로 더 이상 나를 볶지 않는다. 피하려는 게 문제지, 천천히 해결해도 지구는 뒤집어지지 않는다.
이런 저런 크고 작은 불만사항들을 해소하려 내 안의 나와 투닥투닥 거리다 보면, 이것이 나란 말인가 실소를 금할 수 없다.
부족하기만 한 하루하루지만 혼자라는 건 말할 수 없이 편하다. 아마도 당분간은.
말 많고 욕심 많은 사람들을 탈출해 왔지만, 계속 탈출해야할 사람들 속으로 밀려와 서 있는지 나는 아직 모르기 때문이다.
나는 말 많은 사람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말이라는 건 쏟아진 물 같은 거라서 항상 넘치지 않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특히 남의 말을 하는 사람들을 멀리한다.
조금 전까지 밥 먹고 차 마시고 배려와 이해를 주제로 고상하게 대화를 했는데, 세 사람이 모여 있다 한 사람이 먼저 빠지면 두 사람은 먼저 빠진 한 사람 이야기를 시작한다.
두 사람은 방금 전까지 우정을 들먹이며 마주보고 웃었던 한 사람의 모든 것을 뼈가 드러날 때까지 분해한다. 낱낱이 드러난 뼈대에 자기들 마음에 들 때까지 엉뚱한 살을 만들어 붙인다. 한 사람의 이상한 스토리가 본인도 모르는 극본으로 완성이 되어 간다.
이제 그것은 바람에 날리는 민들레 씨앗보다 가볍게 사람들의 입으로 들어간다. 몇 시간 씩 앉아 말을 만들었던 사람들의 노고가 헛되지 않게, 오늘도 열심히 살 붙은 소문들은 둥둥 하늘을 잘 날아다니고 있다 한다.
사람들의 신뢰, 진성성... 그것은 정말 포장된 것일 뿐일까?
만나면 친한 척 커피나 한 잔 하자면서 자주 얼굴을 마주 하는 사람들이 그렇고, 친하다고 생각했던 사람들이 그러면 더 징그럽다.
너한테 처음 이야기 하는 거니까 아무한테도 말하지 말라는 전제 조건이 꼭 붙지만, 혀를 재빠르게 놀리는 사람들의 공통점이 그렇다고 보면 된다. 그래서 나는 그런 사람들일수록 절대 안 믿는다.
지구의 수억 다양한 인종에 비슷한 얼굴은 있지만 똑같은 얼굴은 없다. 비슷한 성향은 있지만 똑같은 성격은 없다. 한 뱃속 형제자매도, 하물며 부모 자식도 닮은 건 있어도 같은 건 없다.
같은 나라에 살고, 같이 일을 하고, 한 집에 살면서 매일 얼굴을 보는 사이일지라도 나와 다른 남의 존재가 되어 소위 성향이나 성격 차이의 문제가 시작된다. 나와 다른 남을 백 사람 만나면 백가지의 이해 매뉴얼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사람들은 종종 비슷한 취향으로 몇 가지 공통점을 찾거나, 아예 나와 같으라고 요구하는 게 남을 이해하는 범위의 전부인줄 안다.
나와 다른 남을 이해 한다는 건 내가 좋아하는 걸 똑같이 좋아하길 바라거나 같이 좋아하라고 요구하는 게 아니라 모든 게 나와 같지 않음을 인정하는 것이다.
일단 사람들은 나의 뜻과 같지 않으면 먼저 적대시하고 흉을 보고 물어뜯는다. 다름이 다양할수록 배려가 많고 이해심이 길러지는 것인데, 수용이 안 되면 뒤에서 먼저 씹는다. 끊임없이 말 만들기를 좋아하는 사람들, 어딘가 은밀한 곳에서 자기도 잘근잘근 씹히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시기 질투가 이글거리고 남 보다 당연히 자기가 잘 나야 되는 세상은 가장 좁은 세상이다. 나는 살고 다른 사람은 짓밟아야 속이 풀리는 세상은 비열하다.
인정을 해야 인정을 받는다는 사실을 망각한 사람들아. 제발 한 번도 남을 엿보지 않았다고 거짓말 하지 말고, 제발 엿보아 주세요. 제대로 정확하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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