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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산리토성, ‘삼포왜란 이후 설치된 책보(柵堡)일 가능성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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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3.08.06 15: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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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산리(直山里) 토성(土城) 전경(항공사진)

삼포왜란 후 동해안 영동지역에 각 지역별로 1~3개소씩 설치됐던 수소(戍所)인 책보 가능성 무게…지형이 험한 곳은 녹각성(鹿角城) 설치, 평지에는 목책(木柵) 설치해 도내 군사들이 왜구가 그칠 때까지 상번(上番)을 덜어다가 방호하도록 해

‘당시의 정확한 방수처(防戍處) 고증 위해서는 동해안 연변 관방유적(關防遺蹟)에 대한 정밀 조사 필요할 것’으로 지적


평해 월송포진성(越松浦鎭城)에서 남동쪽으로 약 1km 정도 이격된 곳에 위치하고 있는 직산리(直山里) 토성(土城)이 월송포진과 유기적인 연관성이 있는 유적일 가능성이 제기됐다.
  
지난 1월 22일부터 6월 24일까지 148일간의 일정으로 ‘울진 월송포진성 정밀 지표 조사’와 함께 직산리 토성, 울진포진에 대한 기초 조사를 수행한 성림문화재연구원(조사 단장. 박광열)은 보고서에서 “직산리 토성은 월송포진 관할 병선을 정박시키고 있었던 곳이라고 여겨지는 평해 남대천 하구에 위치하고 있고, 이곳에서 고려 말~조선시대에 이르는 유물이 주로 수습되고 있다. 직산리 토성이 고려 말에서 조선 초기 평해읍성이 만들어지기 전에 주변 거주민들이 입보하던 곳일 가능성이 크며, 삼포왜란((三浦倭亂, 1510년(중종 5) 부산포(釜山浦)·내이포(乃而浦)˙염포(鹽浦) 등 삼포(三浦)에 거주하던 왜인들이 대마도의 지원을 받아 일으킨 난)) 당시에 평해에 만들도록 한 두 개의 책보(柵堡) 가운데 하나일 가능성이 크다.”고 밝혔다.


직산리(直山里) 토성(土城) 북쪽 성벽 전경 세부
  
이와 관련해 성림문화재연구원은 중종실록을 인용하여 “삼포왜란이 일어나면서 강원도 동해안 지역에는 강릉에 세 곳, 평해·울진·삼척·양양·간성·고성·통천에 각각 두 곳, 흡곡에 한곳의 (책보를) 설치하여, 험한 곳에는 녹각성(鹿角城)을 설치하고 평지에는 목책(木柵)을 설치하여 도내의 군사를 왜구가 그칠 때까지 상번(上番)을 덜어다가 방호하게 하였다.”며, “이러한 연해 지역의 책보 설치 조치와 관련하여 월송포진성 근처에 있는 직산리 토성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고 설명했다.
  
중종(中宗, 1488∼1544) 당시에 강릉 등의 동해안 영동 지역에 각 지역별로 1~3개소의 수소(戍所)가 만들어지게 됐지만, 어느 곳인지는 명기되어 있지 않아서 지금까지도 그 위치를 정확히 알기는 어렵다. 
  
이에 대해 성림문화재연구원은 “(책보 설치) 조치가 그해 4월에 일어났던 삼포왜란에서 비롯된 것이기 때문에 연해 지역을 집중적으로 방비하기 위해서 설치됐던 것이고, 따라서 연해의 각 부군현(府郡縣)별로 중요한 요충지에 설치됐을 것은 명백하다. 특히 산성이 그러한 것처럼 이미 예전에 고성(古城)이나 방수처(防戍處)를 이용해서 녹각성이나 임시의 책보를 만들었을 것”으로 내다봤다. 
  
성림문화재연구원은 “직산리 토성이 삼포왜란 당시에 평해에 만들도록 한 두 개의 책보 가운데 하나일 가능성은 크지만, 당시의 방수처를 모두 정확하게 고증하기 위해서는 동해안 연변의 관방유적(關防遺蹟)에 대한 매우 정밀한 조사가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성림문화재연구원의 기초 조사에 따르면, 평해 남대천의 남쪽 연안에 위치하는 직산리 토성은 용정(龍井) 마을 뒤편 일대의 해발 38m 정도의 낮은 구릉지에 입지한다. 
  
애초 축조 시기가 불분명한 토성은 남서쪽에서 동쪽의 낮은 능선으로 연결되어 북서쪽 능선을 따라서 축성된 것으로 여겨지며, 삼태기형으로 서쪽 남대천 방향으로 열려 있는 형태이다. 


직산리(直山里) 토성(土城) 북쪽 성벽에 노출된 기와편
  
이번 지표 조사에서는 문지(門址)로 추정되는 곳에서 북동쪽 능선을 따라서 40m 진행한 남동쪽 경작지의 북쪽으로 길이 180m, 하단 너비 2.6~6m, 상단 너비 80~120m, 높이 60~120m 정도의 토루(土壘, 흙으로 만든 보루)가 확인됐다.
  
또 토성의 가장 높은 지점인 해발 38m 북쪽의 능선 상에 토석혼축(土石混築)의 토루 사이에서 어골문(魚骨紋, 생선 가시 무늬)과 선문(線紋, 줄무늬)이 타날(打捺)된 고려 말~조선 초기로 추정되는 평기와 편들이 확인됐다.
  
기와편의 색조는 회백색과 적갈색을 띠며, 두께는 1.6cm 내외로 소성 강도가 약했고, 남쪽 능선의 경작지에서 도기편과 자기편 몇 점이 확인됐다. 
  
한편 직산리 토성은 10년여 전 당시 후포역사연구소 부회장이던 신진철씨가 최초로 발견했고, 한 지역 언론사를 통해 ‘용정 토성’이라는 이름으로 처음 소개됐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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