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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진 바다의 추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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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3.08.23 18: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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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훈(65세. 경기도 고양시) 작가가 그의 말대로 ‘인간이 자연보다 우월하지 않은 땅’ 울진을 떠났다.

김 작가는 2012년 초가을부터 지난 4월 중순까지 울진군 죽변면 후정리 한국해양과학기술원 동해연구소에 머물며 장편소설을 집필해왔다.
김 작가는 본지 [울진뉴스]에 특별 기고한 글을 통해 “울진바다에서 자신은 바다의 불가해한 낯설음에 압도되어 쉽게 피로했고 늘 지쳐 있었다. 수평선 너머로부터 자신이 기다리는 새로운 언어는 날아오지 않았고, 자신이 바다 쪽을 바라보는 시간은 날마다 길어졌다.”고 담담하게 고백한다.

특히 김 작가는 ‘울진바다가 가르쳐준 자신의 병명은 살아온 날들의 기억의 쓰레기들로 가득 찬 마음의 필름들을 평생 단 한 번도 배출해내지 못한 종신변비였다.’며, ‘울진바다에서 자신은 겨우 그 처방을 알아냈지만 그기에 닿는 방법을 찾을 수가 없어서 난감했다.’고 토로하고 있다.

이 글은 지난해 겨울 문턱에서 울진문화원 신상구 사무국장과 함께 김훈 작가를 생애 처음으로 대면하던 날에 이루어진 서로간의 약속에 기인한 것이다.

당시 필자는 울진에 머무를 동안 자칫 신상에 불편을 초래할 수 있는 인터뷰 대신, 김훈 작가님께서 울진을 떠나실 때 형식에 구애받지 않은 울진 관련 단상(斷想) 글을 [울진뉴스]에 기고해 줄 것을 졸랐었다.
김 작가님께서는 약속했고, 그 약속을 지켰다.
김훈 작가님께 다시 한 번 진심으로 감사드린다.
/사진·정리. 이명동기자(uljinnews@empas.com



나는 2012년 초가을부터 2013년 봄까지, 8개월 동안 경북 울진군 죽변면 후정리 바닷가에 머물렀다.
나의 자리는 한국해양과학기술원 동해 연구소였다. 연구소는 나에게 집필실 한 칸과 원룸식 숙소, 그리고 구내식당의 밥을 제공해주었다. 내 집필실과 숙소의 유리창 밖에서 수평선은 끝없는 일(一)자로 전개되어 있었다. 거기에 아침마다 해가 떠올라서 사람의 마을에 새롭고 낯선 시간들이 햇살과 함께 퍼져나갔다. 이것이 대체 어찌 된 일인가, 어째서 이런 일이 있을 수가 있는가. 나는 아침 마다 몸과 마음이 들떠서 기댈 곳이 없었는데, 그 놀랜 마음속으로 아침 햇살은 사정없이 밀려들어왔다. 그것은 경험되지 않은 순수한 시간이었다. 바다는 수억만 년의 시간을 뒤채이면서, 이제 막 창조된 시원(始原)의 순간처럼 싱싱했고, 날마다 새로운 빛과 파도와 시간과 노을이 가득차서 넘쳐흘렀다. 바다는 시간을 통과해 나가지만 시간의 흔적이 거기에 묻어있지 않았다. 바다는 늘 처음 보는 바다였다. 바다에서는 가장 오래된 것이 가장 새로웠다. 바다는 논리나 개념이나 사유가 아직 빚어지지 않는, 언어 저 너머의 공간이었음으로, 나는 거기에 마땅히 말을 걸 수가 없었고, 바닷가에서 나는 바다로부터 밀려 날 수밖에 없었지만 나는 그 수평선 너머에서 새로운 낱말들이 태어나서 바다의 새들처럼 날아오기를 기다렸다. 나의 기다림은 기약할 수 없는 기다림이었다. 바다의 아침빛은 늘 어둠 속에서 잉태되었고, 빛이 다가오는 아침의 울진 바다에서는 숨을 곳이 없었다. 빛과 파도와 노을은 공간에 가득 넘치면서도 공간에 기대지 않았고, 어느 곳에도 머물지 않았다.
  
동해 연구소의 젊은 연구원들은 먼 바다, 깊은 물속에까지 탐사장비를 꼽고 전파와 음파를 보내서 바다의 숨소리를 엿듣고 있었다. 깊은 바다의 흔들림, 물살의 흐름, 빛의 신호, 캄캄한 바다 밑 바닥에 붙어서 사는 생명체들의 비밀을 그들을 탐지하고 있었고, 파도의 모양과 주기를 지속적으로 관찰해서 예측 가능한 법칙성에 접근해가고 있었다. 나는 그 젊은이들의 연구를 놀라운 마음으로 엿보았다. 지식은 순결하다는 것을 나는 알았다. 

울진의 아침 바닷가에서 나는 살아온 날들의 기억의 쓰레기들로 가득 찬 내 마음의 필름들이 부끄러웠다. 파도와 빛이 스스로 부서져서 끝없이 새롭듯이 내 마음에서 삶의 기억과 흔적들을 지워버리고 새롭게 태어나서 새롭게 다가오는 언어들과 더불어 한 줄의 문장을 쓸 수는 있을 것인지를, 나는 울진의 아침 바다에서 생각하고 있었다. 아, 나는 한 평생 단 한 번도 똥을 누지 못한 채, 그 많은 똥들을 내 마음에 쌓아 놓았다. 똥은 이미 바위처럼 굳어졌다. 똥은 내 몸과 마음에 가득 찼고 나는 똥에 갇혀있다. 삶의 기억과 파편들은 허상이 되어 내 마음에 찍혀있고 그 허상이 쌓여서 똥이 된 것인데, 내가 그 똥에 갇혀서 오도 가도 못함으로, 똥은 이미 허상이 아니고 완강한 실체인 것인데, 허상에서 실체가 빚어질리 없음으로 똥의 장벽은 완강할 뿐 실체는 아닐 것이었다. 허상은 헛됨으로서 오히려 완강할 것이고 실체는 스스로 자족함으로 완강할 이유가 없을 것이었다.
  
울진 바다에 비추어보니, 내 마음의 병명은 종신변비였다. 바다가 나의 병명을 가르쳐 주었다. 나에게 가장 시급한 처방은 마음에 쌓인 평생의 똥을 빼내고 새로워지는 것이리라. 
  
저 광활한 창공을 향해서, 한 생애에 쌓인 똥을 쫙쫙 뽑아내는 일이리라. 똥은 석 달 열흘은 족히 쏟아져 나올 것이다. 울진 바다에서 나는 그 처방을 겨우 알았으나 거기에 닿는 방법을 찾을 수는 없었다. 식물도감 속의 약초는 약이 아니었다. 바다에서 나는 변비와 더불어 난감하였다. 밤마다 별이 돋고 달이 떠서 흔들리는 물위로 달빛은 긴 고랑을 이루며 어두운 수평선 쪽으로 펼쳐졌다. 울진 바다에서 나는 바다의 불가해한 낯설음에 압도되어서 쉽게 피로했고 늘 지쳐있었다. 수평선 너머로부터, 내가 기다리는 새로운 언어는 날아오지 않았고, 내가 바다 쪽을 바라보는 시간은 날마다 길어졌다. 나는 조금씩 일했고 많이 헤매었다. 나의 일은 글을 쓰는 것이었는데, 일보다 헤매기가 더욱 힘들었다. 나는 계획한 일을 다 마무리하지 못하고 봄이 되자 짐을 싸서 달아나듯 울진을 떠났다. 일산으로 돌아오니까 내 마음속에는 여전히 한 줄의 수평선이 그어져있다.
  

죽변등대 등명기(燈明機) 앞에 선 김훈 작가. 김 작가는 ‘20초 1섬광’은 죽변등대의 개별성이라고 말한다(좌) 김훈 작가가 아침 산책의 끝자락에 위치한 죽변등대 관사 전망대에 올랐다(우)

울진에서 나는 하루에 2~4시간씩 걸었다. 주로 아침나절에 걸었고 일과를 마친 저녁에는 가끔씩 죽변항에 나가서 술을 마시거나 연구소에 설치된 체력단련장에서 운동을 했다. 나는 내 몸이 녹초가 되도록 힘을 빼고 나서 잠자리에 들었다. 그래도 잠이 오지 않는 밤에는 파도 소리가 내 혼곤한 의식 속으로 밀려들어왔다. 내 마음은 파도에 실려서 어두운 수평선너머를 헤매었다.
  
나의 걷기 코스는 연구소→후정리 해수욕장→111 반점 앞→죽변항→수산물 위판장→피렌체→대나무숲길→드라마세트장→죽변등대였고, 돌아올 때는 이 코스를 거꾸로 걸었다. 빠르게 걸으면 2시간 걸리고 도중에 죽변항 곰치국으로 아침을 먹고 커피 한 잔 마시거나 위판장에서 생선구경, 배 구경, 갈매기 구경하면 3시간 걸린다. 눈이 오거나 비가와도 빠짐없이 걸었다. 날이 흐리거나 바람 불어서 바다가 스산한 날에는 오후에 버스(요금 1천원, 좌석버스는 1천5백원)를 타고 덕구온천에 갔다. 온천 뒤쪽으로 덕구계곡을 따라서 응봉산에 올라갔다가(중턱까지만) 내려와서 온천에 목욕하고 막차를 타고 밤에 돌아왔다. 캄캄한 바다에서 파도는 인광으로 허옇게 부서졌다.
  
아침마다 죽변항은 고기 잡고, 고기 팔고, 고기 사는 사람들의 살림의 활기로 북적거렸다. 어선들은 위판장 시멘트 바닥에 막 잡어 온 생선을 부렸고, 생선들은 펄떡거릴 때 비늘에서 아침 햇살이 튕겼다. 갈매기들이 떨어진 게 다리나 내장 부스러기를 노리고 날아들었다. 먹고 살기 바쁘기는 사람이나 갈매기나 별 차이 없었다. 
  
어선들은 어수선하고 무질서한 느낌을 주지만, 어구와 생활용구들이 뒤섞여있는 그 무질서가 어부들에게는 정돈된 질서였다. 질서의 척도는 사물에 있지 않고 인간에게 있다. 그래서 그 무질서해 보이는 어선들의 갑판은 필요한 물건들만으로 가지런했고 물건들은 인간에게 편리한 위치에 놓여있었다. 갑판뿐 아니라, 어선의 마스트나 기관, 선실, 전등, 어창이 모두 그러했다. 나는 어선에서 일하는 선원들의 동작을 오랫동안 들여다 보고나서야 그 무질서 속의 질서를 겨우 알게 되었다. 노련한 선원들은 서로 아무 말도 하지 않으면서 작업의 손발을 맞추었고, 동료의 작업이 편안하도록 자신의 작업을 받쳐주었다.


김작가는 ‘어선들의 반 토막 태극기의 남루는 수고의 경건이 드러나는 방식’이라고 말한다
  
죽변항 어선들의 태극기는 남루했다. 어선들의 태극기는 바닷바람에 닳고 햇빛에 바래어서 반 토막이나 1/3 토막만 남아서 바람에 펄럭였다. 어선들의 태극기는 해풍 속에서 풍화되어갔다. 태극이 모두 없어졌고 궤만 남은 깃발도 있었다. 바람에 시달리면서 태극기는 가루가 되어 흩어졌다. 그 어선들의 반 토막 태극기는 살아가는 일의 수고로움과 수고의 경건함을 보여주었다. 남루는 그 경건이 드러나는 방식이며 외양이었다. 반 토막 태극기는 맹렬하게 펄럭였다. 아름다운 태극기였다. 권세 높은 관청 지붕에 높이 솟은 태극기보다 이 닳아빠진 반쪽짜리 태극기는 얼마나 순결한가. 입을 벌려서 애국을 말하지 않아도, 먹고 사는 노동의 수고로움 속에서 애국은 저절로 해풍에 펄럭이고 있었다.
  
죽변항구 뒤쪽 바닷가 언덕에서 신석기시대의 유적과 어로의 도구들이 출토되었다는 것을 나는 울진에 와서 알았다. 신석기의 삶이 있었다면, 아직 발굴되지 않았지만 구석기의 삶도 있었을 것이다. 죽변항이 고기잡이하기에 좋기는 신석기 시대나 지금이나 마찬가지다. 그래서 여기는 오래되어서 날마다 새로운 삶의 본바닥인 것이다. 죽변항의 낡은 어선들을 바라보면서 나는 수천 년 전 이 항구에서 고기잡이를 하던 신석기 사내들과 그들의 고기잡이 도구를 생각했다. 그들의 주먹도끼와 돌칼도 내 마음에 떠올랐다. 박물관에서 본 신석기의 주먹도끼는 그 손잡이 부분이 인간의 손바닥에 닳아서 반질반질했다. 그 주먹도끼를 쥐고 사냥을 해서 처자식을 벌어먹이던 사내들의 고난과 희망, 사냥에 실패해서 빈손으로 돌아오는 저녁의 슬픔, 비 오는 날의 그 신석기 사내들의 몸의 비린내도 내 마음에 떠올랐다. 그 사내들은 바로 내 눈 앞에 있었다. 신석기시대 죽변항의 어로와 지금의 죽변항의 어로는 그 본질이 같다. 먹이를 던져서 더 큰 먹이를 낚는 것이다. 몸을 먹여 살리기 위해 몸을 고단하게 하는 것이다. 생선뼈를 갈아서 낚싯바늘을 만들고 돌에 날을 세워서 돌칼을 만드는 행위는 미래에 대비하는 자의 삶이다. 바다에서 밤을 새우고 새벽 죽변항에 돌아오는 어선과 어부들에게서 나는 신석기 이래 이 물가에서 먹고 살았던 모든 사내들에 대한 동료의식을 느꼈다. 죽변항에는 볼 것도 많고 먹을 것도 많아서 내 아침 산책의 발걸음은 늦어졌다. 식당들은 마당에 줄을 매고 생선을 말리고 있었다. 신석기 시대의 생선이었다. 큰 방석만한 가오리가 햇볕에 말라가고 있었다. 내장을 빼낸 가오리는 대가리에서 척추, 꼬리에 이르는 뼈대의 구조를 드러냈다. 줄에 매달린 가오리는 그 몸통 안에 하늘을 나는 새의 꿈이 깃들어 있는 듯 했다. 가오리는 커다란 새의 날개를 펼치고 건조대에 매달려 있었다. 물고기의 지느러미와 새의 날개는 발생계통상의 친연 관계에 있고, 물고기가 진화되어서 새가 된 것이라고 어렸을 때 생물시간에 배웠는데, 아직도 하늘을 날지 못하는 가오리는 비상의 꿈을 온몸으로 펼치면서 햇볕에 말라가고 있었다. 가오리는 뼈를 드러내며 말라간다. 그 산맥 같은 뼈 속에 날개의 꿈은 퍼덕거린다.
  
말라가는 가자미는 내장이 투명하게 들여다보인다. 가자미가 바짝 마르면 내장은 푸른색이 짙어진다. 가자미의 내장은 작다. 다 긁어모아도 밤톨 한 개 정도다. 그 작은 내장 속에서 모든 생명의 기능이 작동되고 있다. 가자미는 그 밤톨만한 내장의 기능으로 바다를 헤엄치면서 먹이를 잡고 번식한다. 그 내장 속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 것인가. 줄에 매달린 가자미를 들여다보는 일은 그래서 놀랍다. 가자미의 두 눈은 각 다른 방향을 향해있다. 물고기의 눈이 대부분 그렇지만, 가자미는 두 시선 사이의 각도가 더욱 크다. 사람의 두 눈은 한쪽방향을 보지만 가자미의 두 눈은 서로 다른 방향을 보고 있다. 가자미의 마음속에는 이 두 개의 영상을 종합해서 통일된 정보와 판단에 도달하는 기능이 있는 것인가. 내 짐작에는 아마도 그럴 것이다. 그러니까 가자미는 위험을 판단하고 먹이가 있는 방향을 인지할 것이다. 가자미의 눈에는 무엇이 보이는가. 인간과 가자미가 동일한 물체나 풍경을 바라볼 때 인간에게 보이는 것과 가자미에게 보이는 것은 같은가 다른가. 보인다는 것의 내용을 인간과 가자미가 서로 교감할 수 있는가를, 연구소의 젊은 연구원에게 물어보았더니 모른다고 대답했다. 누군들 그것을 알 수가 있겠는가. 줄에 매달린 가자미는 그 불가해한 의문을 간직한 채 푸른 내장을 드러내 보이며 하얗게 말라가고 있었다. 
  
나는 죽변항 여러 식당에서 가자미를 많이 먹었다. 구이도 먹고 찌개도 먹고 졸임도 먹고 세꼬시 회도 먹었다. 가자미의 얼굴은 다른 생선에 비해 명석하고 정돈된 표정을 지니고 있다.(같은 가자미라도 표정이 각각 이기는 하지만, 일반적으로 그렇다는 말이다) 가자미의 얼굴은 명태나 복어, 삼식이에 비하면 훨씬 논리적이고 과장이 없다. 가자미 구이를 먹으면 얼굴 표정의 맛이 느껴진다. 맛에 기름기가 없고 담백해서 깔끔하다. 깊은 내면의 비밀을 간직한 생선이 이처럼 논리적인 표정과 맛을 지니고 있다는 것이 더욱 깊은 비밀로 느껴진다. 죽변에서 나는 가자미를 아주 많이 먹었다. 먹을수록 의문은 더 커졌다. 
  
물곰국은 아침에 먹어야 제 맛을 알 수 있다. 아침에, 뱃속이 비고 허전해서 심도 있는 위안이 필요할 때, 딱딱한 음식을 넘기거나 소화시킬 만큼 뱃속이 아직도 일상으로 접어들지 못했을 때, 사람의 마음이 밤에서 낮으로 아직 이행하지 못한 그 어슴푸레한 아침나절에 물곰국은 가문 땅에 단비 내리듯이 썰렁한 창자 속으로 스며든다.
  
물곰국은 인간의 창자 뿐 아니라 마음을 위로한다. 그 국물은, 세상잡사를 밀쳐버리고 우선 이 국물에 몸을 맡기라고 말한다. 몸을 맡기고 나면 마음은 저절로 몸을 따라가는 것이라고. 위안의 기능을 갖는다는 점에서, 물곰국은 하나의 완연한 세계를 갖는다. 이런 국물은 이 지구상에 울진 말고는 없다. 물곰의 살은 모든 짐승의 고기가 갖는 육질의 짜임새가 없다. 물곰의 살은 근육도 아니고 국물도 아닌 그 완충의 자리에서 흐느적거린다. 그 살은 씹어 삼키는 살이 아니라 마시는 살이다. 이 완충의 흐느적거림이 인간을 위로한다. 물곰 살을 넘길 때, 생선의 살이 인간의 살을 쓰다듬는다. 그 살은 생명 발생 이전의 원형질과도 같은 맛이다. 물곰은 살의 맛과 목구멍을 넘어가는 촉감이 일치한다. 
  
물곰국으로 아침을 먹고 나서, 나는 식당 수족관에 갇힌, 살아 있는 물곰을 오랫동안 들여다보았다. 물곰은 동작이 느렸고 얼굴표정은 매우 비논리적이었다. 물곰은 느린 동작으로, 물결이나 바람처럼 흐느적거렸으며 재빨리 방향을 바꾸지 못했다. U턴해서 뒤로 돌아설 때는 회전 반경이 컸다. 오징어나 돔종류는 수족관에 잡아넣으면 유리벽을 들이받으며 못견뎌하지만, 물곰은 그 부자유한 공간을 겨우겨우 견디어 내고 있었다. 물곰은 진화를 거부한 물고기처럼 보였다. 물곰의 표정과 몸짓은 그 종족의 최초개체가 바다 속에 생겨난 시절의 그 고생대의 질감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었다. 그 종족은 역사나 시간에 속해있지 않았다. 저것을 내가 먹었구나, 저 아득한 수억만 년의 표정과 질감을 내가 끓여서 국물로 마셨구나…….


“물곰국은 아침에 뱃속이 비고 허전해서 심도 있는 위안이 필요할 때 먹어야 제 맛을 알 수 있다”고 김 작가는 말한다
  
어느 날, 식당 수족관에 어린 물곰이 잡혀와 있었다. 물곰은 어린 시절부터 늙음의 표정을 지니고 있었다. 물곰은 태어날 때부터 수억만 년의 늙음을 이미 생명의 바탕에 깔고 있었다. 아마도 물곰은 공격본능이나 방어본능으로부터 얼마쯤은 벗어나 있는 물고기인 듯싶었다. 저러한 늙음, 흐느적거림, 시간으로부터의 자유가 물곰의 살과 뼈에 녹아들어서 그것을 끓인 국물이 인간을 위로하는 것이려니 싶었다. 어린 물곰은 이미 수억만 년 늙어있었고, 늙었다기보다는, 그 늙음 위에서 새로 태어나고 있었다.

초겨울부터 대게가 잡히기 시작하면 죽변항은 그야말로 살판난다. 아침마다 어선들은 위판장에 수천마리의 대게를 쏟아놓는다. 대게들은 크기 별로 분류되어, 대체로 10열종대로 100마리씩 묶음이 되어 경매에 붙여진다. 어부들은 대게가 달아나지 못하도록 뒤집어 놓는다. 뒤집힌 대게는 꼼짝 못하고 다리 10개로 허공을 긁으면서 발버둥 친다. 일단 뒤집히고 나면 발버둥 쳐봐야 아무 소용없지만, 발버둥질을 그치지 않는다. 발버둥질이 소용없는 까닭은 발버둥 쳐봐야 걸리는 것이 없기 때문인데, 대게는 걸리는 것을 찾아서 걸리는 것 없는 허공을 긁어댄다. 대게는 몸을 다시 뒤집어서 다리로 땅을 딛지 못하면 달아날 수 없다. 뒤집힌 몸을 다시 뒤집을 수가 있는가, 없는가. 이 무서운 질문은 대게에게나 인간에게나 똑같이 유효했다. 나는 어느 날 아침 위판장에서, 뒤집기에 성공한 대게가 물 쪽을 행해서 필사적으로 달려가는 광경을 목격했다. 대게는 다리 8개를 송곳처럼 일으켜 세워서 땅을 짚었다. 집게다리 두 개는 위로 치켜 올려서 전진 방향의 전방을 엄호했다. 대게의 다리 8개는 가장 작은 점 한 개를 골라서 땅을 짚었다. 대게는 땅과의 마찰 면적을 최소한으로 줄이면서 다리 8개의 동작을 하나의 이동 방향을 향해 질서 있게 작동시켰다. 
  
대게는 마치 장대높이뛰기 선수처럼 땅위의 점을 딛고 몸을 솟구쳐 올렸다. 대게는 죽음의 10열 종대를 벗어나 물 쪽으로 맹렬히 달려갔다. 대게는 흘러가는 그림자처럼 땅위를 스치며 이동했다. 대게의 다리는 정교하게 짜 맞춘 크레인들이 거대한 하모니를 이루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대게가 선착장에서 물로 뛰어내리려는 순간, 경매중개인이 대게를 집어서 다시 10열 종대 안에 거꾸로 뒤집어 놓았다. 끌려온 대게는 다리 10개로 허공을 긁어댔다.
  
대게는 껍질 안에 살을 지니고 있다. 살은 달고 향기롭다. 대게는 바다 밑바닥에 몸을 붙이고 사는데, 대게의 살에서는 바다의 냄새가 나지 않고 꽃의 향기가 난다. 대게의 향기는 전복, 해삼, 멍게, 골뱅이, 오징어의 냄새와는 전혀 다르다. 대게의 살은 다른 동물의 근육처럼 이동하는데 쓰이는 것 같지는 않다. 그 살은 수축이나 이완의 기능이 전혀 없다. 대게는 다리의 힘으로 이동한다. 대게의 살 중에서 집게 다리 속에 저장된 살이 가장 향기롭다. 대게의 다리들 중에서 집게다리가 가장 고달프고 위태롭다. 집게다리는 적과 싸우는 무기이고, 이동할 때 방향을 잡는 안테나이며 먹이를 집어먹는 팔이다. 대게는 집게다리로 먹이를 움켜서 입으로 밀어 넣는다. 사람이 숟가락질로 밥을 떠먹는 동작과 흡사하다. 나는 대게의 몸동작에 대해서 해양연구소의 연구원들에게 물어보았더니, 소상히 가르쳐주었다. 대게의 집게다리는 싸우기와 먹기를 동시에 수행한다. 대게는 그 고달픈 다리 속에 가장 향기로운 살을 저장한다. 대게를 먹으면서 그 고달픔과 향기의 관계를 생각했다. 대게의 꿈과 가오리의 꿈과 인간의 꿈이 만나는 자리가 반드시 있을 것이다. 그런 난데없는 생각들이 내 마음을 스치고 지나갔다. 울진에서 나는 늘 세상 구경 처음 하는 사람처럼 이리저리 쏘다니며 기웃거렸다.

김 작가는 지난 1월 8일, 울진문화원 강당에서의 특강과 질의응답을 통해 지역 독자들이 자신의 문학세계를 엿볼 수 있도록 했다
  
울진은 맑은 땅이다. 저절로 이루어진 것들의 숨결이 울진에는 보존되어있다. 아 봉평신라비의 글씨체는 얼마나 맑고 순결한가. 서예가 하나의 양식으로 고정되기 이전의 맑음과 천진함이 그 글씨체 속에 살아있다. 글씨들은 웃고 뛰논다. 울진에서는 바다 쪽으로 시선이 열리고 콧구멍도 열려서 들이마실 공기와 빛이 얼마든지 생겨난다. 갈 곳 많고 먹을 것 많고 들여다볼 것이 많아서, 나는 노느라고 나의 작업을 다 마치지 못했다. 인간은 자연보다 우월하지 않다는 것을 나는 울진에서 겨우 알았다.
  
죽변등대는 내 아침 산책의 끝이었다. 등대는 희고 군더더기가 없고 깔끔했다. 과장되거나 모자라는 구석이 없었다. 단정한 등대였다. 죽변등대는 20초에 1번씩 섬광을 발한다. 죽변등대의 섬광은 37Km를 뻗어나간다. ‘20초 1섬광’은 죽변등대의 개별성이다. 지구상의 모든 등대들 중에서 죽변등대만이 ‘20초 1섬광’이다. 배들은 그 섬광을 보고 죽변의 위치를 알고 자신의 위치를 인식한다. 상대의 위치를 알아야 나의 위치를 알 수 있는 것이다. 나는 나 혼자서는 나의 위치를 알 수 없다. 그 등대가 여기는 죽변, 여기는 죽변……. 이라고 어두운 바다를 향해 신호를 보내고 있다. 거기가 울진이다.
  
울진에 머무는 동안 나를 보살펴준 동해연구소와 울진의 착한 벗들에게 감사한다.


지난해 12월 3일, 김작가는 서면 전곡리 원곡마을 주민들이 이용하는 오지역인 봉화군 양원역(兩元驛)을 찾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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