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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여름 밤 비는 내리고

  • 입력 2013.08.27 11: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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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양화가인 ‘페인트 최’는 고향이 서울로 울진에서 15년간 생활했다. 현재 경기도에 거주하며 한국미협·도무스·예형회 회원 등으로 작품 활동을 하고 있다. [사진 : lomo / 이명동기자]
  
주위를 집요하게 맴 돌던 모기 한 마리, 결국 내 다리 한쪽에 승리의 침을 꽂았다. 내려치는 손바닥을 피해 그 녀석, 아니 그년 재 빨리 어둠속으로 날아간다. 
  
긁적긁적 피가 비치도록 긁어도 근지러움은 쉽게 사라들지 않는다.
앵 하고 달려드는 모기 쫓으랴, 근지러운 다리를 부여잡고 긁어대랴, 에이 결국 피 나네, 에이,,, 궁시렁 거리랴...
  
나는 앞에 앉은 민아의 이야기에 집중하지 못하고 있다.
그녀의 주제는 주로 사랑과 전쟁, 이별, 눈물 같은 삼류영화의 신파가 주를 이룬다.
‘비 오는 날 이별 해봤어?’
‘눈물 같은 에스프레소... 맛을 알아?’ 
‘쿨한 사랑은 없어’
  
듣다보면 자기의 경험을 녹여 영화처럼 상상하게 하고, 드라마처럼 이입하게 하는 재주가 있지만 가끔은 남의 책을 베끼기도 한다.
‘야! 씨, 이 지지배 죽을래? 그거 윤 모 거시기, 그 사람 책 카테고리잖아. 어유, 낚였어... 이 비 땜에 용서 한다’
  
맘 좋은 진은 언니가 그렇게 민아를 용서하는 바람에, 빨리 작파하고 쉬고 싶다는 나의 바램은 안드로메다행이 되고. 본격적인 이야기는 이제 시작도 안했다는 듯, 일행의 동의도 없이 민아는 ‘여기 소주 하나 추가요’를 외친다. 연탄불에 얹은 석쇠에 한판의 조개가 더 깔리고, 비록 동의를 구하지 않고 왔지만 우리는 별 불만 없이 한잔 가득 소주를 받아 놓는다.
  
민아와 진은 언니, 그리고 나. 우리는 고등학교 때부터 잘 감아올린 실뭉치같이 똘똘 잘 뭉치는 문예반 선후배 단짝이다.
  
시집가서 미국에 살고 있는 진은 언니가 한국에 나올 때는 셋이서 얼굴을 보곤 한다. 주로 민아의 무궁무진한 이야기보따리 푸는 재주를 감탄하며 듣는 편이고, 듣다보면 어느새 동녘이 훤히 틀 때가 많다.
  
언니가 묵는 서울 한 복판의 호텔에서 와인을 곁들이기도 하지만, 외향적인 민아의 안내로 근교 맛있는 술 집 탐방도 즐긴다.
  
모처럼의 휴가인 나와 몇 년 만의 한국나들이인 언니와 언제나 프리한 민아는 그래서 이 번 여름에 얼굴을 볼 수 있었다. 언제나 그렇듯 사는 이야기를 얹지만, 그 풋풋한 청춘의 시간들 속에 들어가 있는 우리들의 모습을 추억할 때면 정말 행복하다.
  
이번에도 딱 거기까지 서로의 이야기를 귀 기울여 들어주는 우리가 있다는 사실을 그냥 확인만 하면 좋았는데, 이 여름의 요망한 비 때문에. 
  
그래, 한여름 밤 내리는 비의 조화 때문에 민아의 촉이 사랑과 이별에서 끝나지 않고 귀신 시리즈를 읊게 했다.
  
그만 하라고 귀를 막는 언니가 귀엽다고 귀신 하나, 시시하다고 콧방귀 뀌는 날 위해 귀신 하나, 그렇게 막 던진 귀신들이 비와 어울린 덕분인지 잠깐씩 더위가 얼어붙긴 했다.
  
아니지 그게 다가 아니지, 진짜 모골이 송연한 이야기를 내가 하나 해주지. 특히 민아 너 잘 들어, 한 10년간의 여름을 내가 책임지마. 끝내기 안타야.
  
자 이건 실화야.
내가 중학교 1학년 때 우리 반 아이 한 명이 아기 때부터 피부병을 앓았대. 피부가 실금처럼 그어지고 그어진 자리는 터지고. 그래서 그 부모는 이 아이의 치료를 위해서라면 안 해 본 게 없대. 차도가 없던 어느 날 어떤 사람이 이 병의 약을 안다면서 이렇게 알려줬대. 날마다 욕탕에 물과 함께 검은 깨를 잔뜩 넣고 목욕을 하라고... 그 엄마는 딸을 위해 검은 깨를 구해 물 받은 욕탕에 뿌려놓고 아이를 들여보냈대. 너를 꼭 낫게 해줄게 라면서. 한 시간 두 시간 아이가 목욕탕에서 나오질 않자 문을 열고 왜... 하다가 기절 했대. 아이가 온 몸에 박힌 검은깨를 이쑤시개로 하나하나 파내고 있더래. 
  
어뗘?
한 밤에 비도 오는데, 귀신 얘기 자꾸 하고 난리야. 오싹 소름 돋는 그런 거 내가 몰라서 안 하는 게 아니란 말이야. 나도 옛날에 엄청 사랑하는 사람한테서 들은 이야기여. 나한테서 이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면 아마도 식구처럼 애정이 넘쳐서 일거야.
민아야! 진은 언니야!... 다 도망갔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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