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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부가 된 미용사 정길상씨, 울진이 이젠 고향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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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3.09.04 11: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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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마가 주춤한 사이 달군 양철처럼 불볕더위가 이어지고 있다. 피서지로 계곡과 바다, 시원한 물가를 떠올리고 있지만, 검게 그을린 얼굴에 새하얀 이를 드러내며 분재를 매만지는 정길상(55세. 북면 부구리)씨 얼굴에는 구슬땀이 줄줄 흐른다. 

하늘을 떠받치고 선 가지와 절정에 이른 초록빛, 두 팔을 뻗으면 폐부 깊숙한 곳, 검게 그을린 마음까지 나무향이 스민다. 그늘에 감사하고 바람에 위로받을 수 있는 정씨의 천연농원을 찾았다.

부구중학교 건너편에 있는 천연농원은 한가롭고 넉넉한 시골 마을의 정취를 그대로 느낄 수 있다. 담장을 휘감은 소박한 덩굴나무며 논과 밭에는 고추, 벼 등 농부의 땀방울이 때글때글 여물어간다. 이따금씩 풀벌레와 매미 소리만 들릴 뿐 물소리도 들리지 않을 만큼 조용하다. 부드러운 흙냄새와 얼굴을 간질이는 산바람만이 손을 반긴다.

잘나가는 남자 미용사

이젠 울진 사람이 되어버린 정길상씨는 고향이 경남 거창이다. 그곳에서 학창시절을 보내고 제대 후 친구의 권유로 대구에 있는 미용학원에 등록했다. 외모를 다듬고 꾸미는 일에 관심이 많았던 터라 거절할 이유가 없었다. 6개월 공부한 끝에 당시에는 보기 어려운 남자 미용사가 되었다. “대구에서도 남자 미용사는 5명 정도로 손에 꼽을 인원이었다.”고 정씨는 말했다.

1985년 대구 시내에서 제법 큰 규모의 미용실 실장으로 근무했다. 공연을 위해 대구를 찾은 유열, 박남정 등 당시 유명 연예인들 머리 손질과 의상은 코디가 없던 그 시절 정씨가 전담하며 미용 업계에서는 유명세를 탔다.

잘나가던 그는 같은 미용실에 근무했던 김미경(51세)씨와 결혼해 행복한 가정을 꾸몄다. 그러나 첫째 아이가 태어나면서 이상하게 힘든 일이 시작됐다. 아이가 뇌수막염, 골수염 등 치료가 어려운 중병에 걸려 고생이 이만 저만 아니었다. 좋다는 병원을 찾아 직장까지 그만두고 치료에 전념했지만 별 차도가 없었다.

정씨는 “아이의 병은 점점 악화되고 좋다는 것은 다 시도해 보았지만 병원에서 포기하라 했었어요.” “남들은 웃겠지만, 마지막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용하다는 점집에서 점을 보았는데 대구를 떠나 공기 좋은 북쪽으로 가라고 하네요.” 집에 돌아온 부부는 며칠을 고민했다. “도시 생활도 지쳐 너무 힘이 들고 아이도 아이지만 부부가 공기 좋은 곳에 요양이나 하자며, 당시 처가 식구들이 살고 있던 부구로 자연스레 이사를 오게 됐다.”고 말했다.


무작정 찾은 부구, 인생의 터닝 포인트

“1987년 단돈 3백만원 달랑 들고 무작정 찾아온 부구에서 미용실을 오픈했지요.” 기술과 감각이 있던 부부는 입소문이 나면서 장사가 잘됐다고 했다. 그러나 지역이 좁은 부구에서 남자 미용사라는 선입견이 시기와 질투로 이어져 시작한지 3년 만에 집사람 혼자 미용실을 맡아 운영했다.

정씨는 “미용실도 자리를 잡았고 해서 미련 없이 원자력 하청업체 사무요원으로 취업했어요. 이전 직업과 전혀 다른 업종에 뛰어 들었지요”, “처음엔 많이 어색 했어요”라며 멋쩍은 웃음을 뛴다. 건설현장에 뛰어 들면서 그동안 정씨가 보지 못한 세상을 경험하게 됐다.

그는 취업 4년 만에 독립해서 사무실을 차렸다. 원청업체로부터 도급을 받아 실행을 뛰면서 제법 큰돈을 모았다. 그러나 돈을 조금 벌었다고 마음가짐이 흐트러지기 시작했다. 급기야 도박에 발을 들어 놓았다가 전문 도박단의 꼬임에 빠져 3억원 넘게 손해를 보는 등 모아둔 재산을 다 탕진했다.


나무와 함께라면 행복해

“죽을까 고민도 많이 했지요” 그때마다 가족들 생각에 마음을 다잡을 수 있었다는 그는 독한 마음을 먹고 지인이 소개해준 철탑 공사 근로자로 일을 시작했다. “허리띠를 졸라매고 초심으로 돌아가 이를 악물고 일했지요.”

공사를 위해 산을 오르며 중장비로 마구 버려지는 나무들이 아까웠다. 그때부터 조경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다. 나무를 가꾸고 키우는 일은 사람 머리손질과 비슷했다. 잘 다듬고 가꾸니 모양도 나고 주인의 발자국 소리를 자주 들어서 그런지 나무는 무럭무럭 잘 자랐다.
건설 현장에 일을 마치면 농원으로 달려간다. 1,500평 규모의 농원에 연못도 만들고 평상과 의자, 원두막이 마련돼 넉넉한 그늘을 내어준다.

쓰러져가던 집을 리모델링해서 방 2칸에 거실, 주방 등 정갈하게 꾸며놓아 싱그러운 풍경과 고즈넉한 여유를 만끽할 수 있는 공간으로 누구나 마음 편히 쉬었다 갈 수 있도록 했다.

정씨보다 더 바쁜 부인 미경씨는 울진군미용협회 회장까지 역임하며 사회활동을 많이 한다. 그런 미경씨를 정씨는 잘 챙겨주고 배려해준다. “바쁘게 살아오면서 주변을 뒤돌아보지 못한 부분을 집사람이 그 역할을 대신하는 것 같아서 다행이라 생각한다.”며, “그동안 주변을 둘러보지 못하고 앞만 바라보고 달려왔지요…”



출근 전에 아침 일찍 나무에 물을 주며 하루를 시작하는 정씨는 농원 면적은 넓지 않지만 좀 더 많은 정원수를 심고 흙길 산책로를 만들어 맨발로 발도장을 찍듯 걸을 수 있도록 하고 싶어 한다. 다양한 모양의 정원수와 야생화 꽃밭, 분재 등 힐링 공간으로 누구나 찾아와 즐기고 체험하는 장소로 희귀동물이나 볼거리를 함께 제공해 가족 단위로 이용해도 손색없이 만드는 것이 정씨의 소박한 꿈이다.

아직은 농원이 규모나 시설을 손보아야 할 것들이 많이 있지만 서두르지 않고 차근차근 준비해 나갈 계획이다. 분재와 조경은 부족한 점이 많아 밤마다 책이랑 인터넷으로 공부하고 있다. 또 지인들에게도 스스럼없이 물어본다.

농원에 1,500주 나무를 자녀보다 더 귀하게 키우고 있다는 정씨는 25년째 살고 있는 울진이 이젠 제2의 고향이라며 공익의 목적으로 사용될 식수(植樹)는 일정량을 기부할 의사가 있다고 말한다. 아름다운 일에 조그마한 힘이라도 보태고 싶다는 정씨는 이젠 울진 사람으로 살고 싶어 하며, 울진을 사랑하는 울진 사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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