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내가 제일 잘하는 것 ‘축구’

가만히 있어도 연신 손부채를 저어대는 늦더위에도 가쁜 숨을 몰아쉬며 운동장을 돌고 있는 선수들이 있다. 그들을 보며 고함을 질러대는 울진중 박노화(남. 45세) 축구 감독은 얼마 전 추계한국중등연맹전에서 우승을 이끈 명장이다.
울진에서 구기 종목으로 전국대회 우승은 울진중 축구부가 처음이다. 그 드라마 같은 연출을 박 감독이 해냈다. 축구밖에 모르는 그의 인생에도 전국대회 우승 트로피는 한 번도 안아 본 적이 없었다.
박노화 감독이 축구와 인연을 맺은 것은 초등학교 3학년 때였다. 또래 아이들보다 공 차는 것을 더 좋아하고 재능을 보인 그는 노성열(남부초 교장) 교사 눈에 들어 축구부에 들어갔다. 겨우 동아리팀 수준의 울진초 축구부에서 그의 기량은 탁월했으며, 6학년이 되던 해 강릉 옥천초로부터 스카우트 제의가 들어왔다.
가족 모두 운동선수 출신?
아버지 박순영(81세. 前 울진축협 조합장)씨는 수락했지만, 어머니 장복남(79세. 前울진여고 교감)씨의 반대가 심했다. 어머니는 학창시절 배구 선수로 강원도 대표 선수까지 지냈기에 운동선수의 어려움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으며, 형도 축구 선수로 뛰고 있었기에 두 아들 모두 운동선수로 나서는 것은 당연한 반대였다.
축구를 하겠다는 꼬맹이의 고집 앞에서 엄마의 반대는 힘을 쓰지 못했다. 우여곡절 끝에 옥천초를 거쳐 강릉 명륜중, 강릉상고(현 제일고), 단국대를 졸업하게 됐다. 대학 졸업 후 92년 5월 울진중학교 축구부를 재창단하면서 자연스레 지도자의 길로 들어섰다.
박 감독의 가족은 모두 운동선수 출신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2남 1녀 중 누나를 빼면 아버지는 유도, 엄마는 배구, 형과 조카는 축구로 강원도 대표로 전국체전에 모두 참가한 유일한 가족이다. 현재 조카도 지도자 길을 걷고 있어 운동선수 출신 가족이라는 특이한 이력을 가지고 있다.

강릉 명륜중학교 축구부 창단식

1992년 울진중학교 축구부 재창단식
어머니의 눈물이 지금의 나를…
박 감독은 “요즘 선수들은 참 편하게 운동하는 것이 아닌가?” 라고 반문한다. 선수생활 때 선배들의 집단 구타, 열악한 숙소 환경 등 숱한 고생을 견디어 내며 의리, 협동심도 키우고 인내력, 끈기도 만들게 되었다. 그때를 생각하면 생각 자체도 하기 싫은데 왠지 모르게 그때가 그리워질 때도 있다. 지금 선수들은 갈수록 자기 자신밖에 모르고 힘들면 빨리 포기하는 모습을 보여 많이 안타깝다. “만약 지금 선수들에게 옛날처럼 대접하면 운동을 거의 다 포기하지 않을까?”라고 의미에 찬 미소로 당시를 회상했다.
그는 “강릉상고 3학년 때 감독이 갑자기 해임되어 감독님을 지켜드리기 위해서 학교와 총동창회 상대로 집단행동을 결행했다.” 그러나 “실망도 하고 반발도 했지만, 권력 앞에는 한없이 약하다는 것을 실감했다.”며, “다행히 국가대표 출신인 이강조 감독선생님이 부임하면서 지금껏 배워왔던 것과 전혀 다른 축구를 경험하게 되면서 오히려 전화위복의 기회가 되었다.”고 했다.
이 감독 부임 이후 강릉상고는 고교 전국대회 3위에 입상을 하는 등 확 달라진 분위기로 제법 명성을 날렸다. “선수 시절 비록 체격은 왜소했지만 넓은 시야, 정확한 패스와 킥. 누구보다 부지런하고 성실했기 때문에 여러 대학에서 스카우트 제의가 왔지만, 나의 기량을 제일 인정해 주고 믿음을 준 단국대학교로 진학하게 되었다.
그런 그도 선수 시절 고비는 있었다. 대학 3학년 때 시력이 나쁘단 걸 알게 되어 렌즈를 착용하게 되었다. 처음 착용하는 날, 마침 비가 내려 눈이 매우 불편하였다. 경기를 마치고 숙소로 돌아오는 버스 안에서 차창 유리에 비친 내 모습이 너무 초라해 보여 렌즈까지 착용하며 운동을 계속 해야 하나? 처음으로 축구에 회의를 느꼈다. 그때가 “어버이날 바로 전날이라 잊을 수가 없다.”며, “보잘것없는 내가 부모님께 뭘 해줄 수 있을까? 라고 생각하니 무엇에 홀린 듯 운동이고 뭐고 다 포기하고 싶다”는 생각에 그날 숙소를 이탈했다.
“내가 뭔가 크게 사고를 칠 것 같았는데 고작 5일 만에 집으로 돌아왔지요,” 엄한 아버지의 첫 마디가 “마!~ 남자는 그럴 때도 있는 거야!” 하면서 등을 토닥였고, 어머니는 눈물을 흘리면서 “그래도 졸업은 해야지 하며 뒤돌아서는 모습은 지금도 생생하게 기억난다.”고 했다.
“만약 그때 화를 내고 야단을 맞았다면 아마 더 크게 반항을 했을 거라며, 부모님의 그런 모습이 나를 더 빨리 운동장으로 돌아오게 했던 것 같아요.” 그 길로 학교로 돌아가 보다 성숙된 모습으로 선수생활에 임하였다. 그는 부모님을 실망시키는 아들이 되지 않으려고 열심히 달렸다.

가족사진
축구밖에 잘하는 것이 없다
축구밖에 잘하는 것이 없다
“인생은 내가 열심히 한다고 해도 뜻대로 풀리지는 않는 것 같아요.” 박 감독은 고향에 내려와 1년 정도 지도자 길을 걷고 있었지만, 축구선수로 성공할 줄 알았다는 주위의 시선에 많은 부담을 느껴 축구를 떠날 새로운 전환점이 필요했다. 그때 선배가 인도네시아에서 무역업을 같이 해보자고 권유해 축구고 뭐고 다 팽개치고 도망치듯 외유를 감행했다.
축구가 인생 전부인 그로서는 어려운 길을 선택했지만, 쉽게 얻어지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외국물 2년 먹고 축구밖에 모르던 내가 바깥세상에 눈을 돌려본 것으로 만족하며 비싼 수업료를 지불했지요, 지금 생각해도 젊은 시절 후회 없는 삶을 살았죠.”라며, 멋쩍은 웃음을 짓는다.
2년 만에 박 감독은 울진으로 돌아왔다. “레스토랑, 보쌈집 등 장사를 해봤지만 내가 자신 있고, 제일 잘하는 것이 축구라는 사실을 깨닫게 되기까지 너무 긴 시간이 흘렀다.”고 했다. 7~8년 축구를 떠나 방황하다 기회가 다시 찾아왔다. 2002년 울진중 축구부 코치 제의가 들어온 것이다.
“김남진 선생님의 부탁과 조언으로 다시 발을 들였지만, 처음엔 두렵고 자신감도 없었다.”고 했다. 그 당시 축구부 여건과 운영 등 모든 것이 열악했다. “코치생활 1년 만에 어렵게 감독으로 취임했지만, 축구부원은 고작 16명뿐이었다.”며, 힘들었던 당시를 생각하며 담배를 연신 입으로 가져간다.
박 감독은 30여명의 선수를 구성하기까지 5년을 넘게 고생했다. “후배들을 키우면서 내가 못 이룬 꿈을 그들이 이뤄주기 바라는 마음에 열심히 가르치며 달려왔다.”고 한다. 선수 시절 한 번도 전국대회에서 우승컵을 안아보지 못한 한도 이젠 풀었다.
박 감독은 “주변에서 많은 도움을 받았어요,” 특히 “축구부 후원회와 학교 측의 노력과 배려가 지금의 위치까지 올라서게 되었다.”고 했다. 울진중은 2008년 제주도 탐라기 전국대회 3위, 2009년 전국금강대기 3위, 2012년 경북대회에서 우승, 올해 전국금강대기 3위와 지난달 전국대회 우승까지 차지했다.

제49회 추계 한국중등(u-15)축구연맹전 우승

초등부 축구팀 창단 시급해
박 감독은 “이번 전국대회 우승 주역이 죽변초 축구부 마지막 졸업생들로 구성됐다.”며, 하지만 “내년이면 더 이상 울진 출신 선수들이 중등부 경기에 출전하는 모습을 당분간 찾아보기는 어려울 것 같다.”고 안타까운 마음을 토로했다.
이젠 울진 지역 초등부 축구부가 없다. “지금까지 울진 축구의 명맥을 초, 중, 고등부 선수들이 지역에서 발굴되어 성장해 왔지만 이젠 그 뿌리가 사라지는 것 같다.”며 아쉬워했다. “개인적인 욕심으로는 울진초 같은 큰 학교에서 축구부를 창단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전국적인 현상이지만 엘리트 체육을 선호하는 인원이 자꾸 줄어 선수 수급에도 어려움이 많다. 그렇다고 포기란 단어는 없다. 울진중 축구부는 만년 3위 타이틀에서 우승의 단맛을 보았다. 선수들에게 그보다 더 좋은 경험은 없다.
몇 년 전 좋은 조건으로 감독 제의가 들어왔지만, 박 감독이 힘든 시절 동고동락을 함께한 울진중을 떠날 수가 없었다. 초심을 잊지 않고 고향에서 환갑 때까지 어린 선수들과 운동장에서 열심히 땀 흘리며 달리고 또 달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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