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울진 지역의 보부상 옛길로 전국의 어떤 곳보다 원형이 오롯이 남아 있는 ‘십이령길’을 스토리텔링(Storytelling)한 김주영 작가의 장편 소설 『객주』 10권이 출간됐다.
이에 따라 군비 1억8천만원을 지원한 울진군이 당초의 기획 의도대로 ‘향후 이 책을 어떤 식으로 활용해서 십이령 보부상길을 기념비적인 관광 명소화로 만들어갈지’에 큰 관심이 쏠리고 있다.
홍보를 위해 1억8천만원이라는 적지 않은 예산을 한 작가에게 지원해가면서 해당 지자체의 역사·공간적 배경을 소재로 소설을 집필하도록 한 것은 국내에서 유례를 찾아보기 힘든 일이기 때문이다.
『객주(客主)』10권은 지난 4월말부터 서울신문과 인터넷 교보문고에 동시 연재를 시작하여 8월말에 연재를 마치고 9월 25일 ㈜문학동네에서 책으로 묶여 나왔다.
◈『객주(客主)』10권은 어떤 내용으로... 울진 고유 지명과 등장인물 귀에 익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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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특히 북면 두천리에 소재하는 조선시대 철비(鐵碑) 울진내성행상불망비(蔚珍乃城行商不忘碑)에 나타나는 실존 인물인 선질꾼 집단의 우두머리인 접장(接長) 정한조(鄭韓祚)와 반수(班首) 권재만(權在萬)을 등장시키고 있다.
울진 포구 소금상단 접소(임소)의 도감으로 등장하는 정한조는 주인공격으로 만기, 배고령, 곽개천, 박원산, 길세만 등의 수하 부상들과 복꾼들을 데리고 소설 전체를 끌고 가는 비중 있는 역할을 맡고 있다.
그리고 김 작가는 지난 9권에서 도망쳐 간신히 살아남은 천봉삼을 10권에 재등장시켜 생달 마을 한가운데 객주를 열고 정착하여 울진 흥부장, 봉화 내성장, 강원 영월 태백의 장시를 주름잡을 수 있도록 한다.
이 책에는 울진 지역 고유 지명인 빛내골, 말래, 근남 수산, 샛재, 한나무재 등이 나타나고 있어, 일부 주민들에게는 익숙하게 다가들 수도 있을 것으로 보인다.
애초 1979년부터 1984년까지 5년간 서울신문에 연재된 후 9권의 책으로 묶여 나왔던『객주』는 30여년 만에 울진 지역과 봉화 지역의 장시를 오가며 힘겨운 삶을 이어갔던 선질꾼들의 이야기를 소재로 하는 10권이 발간되면서 완간된 셈이다.
『객주』10권은 앞서 발간됐던 1~9권과는 연관성이 낮아서 10권만을 독립된 한권의 장편 소설로 골라 읽기에도 무리가 없을 듯하다.
문학평론가 황종연은『객주』에 대해 “한국의 서민은 고향을 잃어버린 대신에 객주를 얻었다”며, “(객주는)다양한 대중 서사 장르의 혼성물이다. 신분과 지역의 경계를 넘나드는 상인들의 모험은 피카레스크 소설 코드, 숱하게 많은 모략과 복수의 이야기는 의협 활극 코드, 계급과 장소에 특유한 인생살이 묘사는 풍속 소설 코드, 작중 곳곳에 박힌 격언과 요설과 타령은 구술 연희 코드와 연결되어 있다. 그런 점에서 객주는 고유 언어의 보물창고일 뿐 아니라 대중서사의 백과전서이기도 하다.”고 평하고 있다.


<2011년 관송헌 현판 게첩 당시>
◈‘십이령 보부상길 스토리텔링 개발 사업’ 어떻게 추진돼 왔나
2011년 7월 울진군은 김주영 작가측의 ‘파라다이스문화재단(2012년 3월 사단법인 ‘장날’로 변경)’과 스토리텔링 개발 사업 협약을 체결하고, 김주영 작가에게 십이령 옛길을 무대로 하는 객주 10권의 집필을 요청했다.
울진군의 의도는 6.25전쟁 이전까지 숱한 보상과 부상들이 넘나들었던 십이령 옛길의 스토리텔링 사업을 통해 그 길을 테마 관광 코스로 전국에 널리 알리겠다는 것이었다.
앞서 김주영 작가는 2010년 10월에 서면 소광리에서 열린 경상북도 주최 산림비즈니스 행사 원년 선포식 행사에 참석하는 등 이미 수차례에 걸쳐 울진을 방문하고 있었다.
김 작가가『객주』10권이 출간되고 난 후 10월 2일 서울 중구 프레스센터에서 열린 『객주』 완권 기념 기자 간담회에서 밝힌 대로, 김 작가는 수년전 이중환의『택리지』를 읽다가 삼척 울진 근방에 80여호가 염전을 일구고 살았다는 얘기에 착안해 그 흔적을 찾아서 울진군 등지를 답사하고 있었다.
마침 그 당시에 십이령 옛길의 관광 자원화를 고민하고 있던 울진군은 울진을 답사 중이던 김 작가 측과 연결이 됐고, 결국 서로간의 필요성에 따라 뜻을 같이하게 된 것이다.
‘십이령 보부상길 스토리텔링 개발 사업’ 협약에 따라 울진군은 김 작가 측에 보조 사업비로 1억8천만원을 지원하고, 2년여 동안 엑스포공원안의 유기농 경작지 관리사를 숙소로 제공하는 한편, 이와 별도로 1천만원 상당의 사무용 기기 또한 무상으로 제공했다.
2011년 7월 8일, 울진군은 근남면 수산리 엑스포 공원 내에 자리하고 있는 74.84㎡(약 23평, 방 3개) 면적의 유기농 경작지 관리사 앞에서 울진군수를 비롯한 담당 공무원 등 10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관송헌(觀松軒)’이라고 명명한 현판을 게첩 하는 행사를 가졌다.
2011년 7월에 체결한 당초 협약서는 십이령 스토리텔링 개발 완료 시한을 2012년 말까지 완료하는 것으로 돼 있지만, (사)장날의 집필실 사용 기간 연장 요청에 따라 2013년 3월말까지 집필실을 포함한 사무용 기기 무상사용 기간은 3개월 늘어났다.

◈울진군의 기획 의도대로『객주(客主)』10권은 1억8천만원 값어치 할 것인가... 소설 여러 군데서 ‘옥에 티’ 발견되기도
『객주』10권이 완간 형식을 갖추어 출간된 지금, 무엇보다 관심을 끄는 것은 울진군이 애초에 기획한 의도대로 국내 저명 작가를 통한 보부상들의 역사와 애환을 스토리텔링화하여 십이령 옛길을 기념비적인 관광명소로 만들 수 있을까 이다.
앞서 경상북도는 오는 2015년까지『객주』의 저자 김주영 작가의 고향인 청송군 진보면 진안리 일원에『객주』소설의 다양한 콘텐츠를 부각하는 문학 타운을 조성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총 사업비 240억원이 투입되는 이 사업을 통해 청송군에는 객주 문학관, 객주 문학 마을, 객주 문학길이 들어서게 된다.
경북도는 객주의 무대가 되는 울진, 상주, 봉화 등 도내 시·군까지 연계해서 관광 상품을 개발하고 관광객을 유인할 수 있는 내용물을 확보 구비할 계획이라고 밝히고 있지만, 그 계획이 실효성을 거둘 수 있을지는 미지수이다.
더욱이 강원 영월, 경북 봉화, 영양, 청송군 등 4개 지자체는 힘을 합쳐 보부상들이 걸었던 옛길을 되살려 13개 구간 200km에 이르는 ‘외씨 버선길’을 이미 조성하여 운영하고 있는 중이다.
이 가운데 청송군 진보면 주변 지역과 과거 보부상들이 청송에서 진보 5일장을 보기 위해 넘나들었던 산길로 이루어진 세 번째 길 15.6km 구간은 이미 ‘김주영 객주길’로 명명되어 숱한 외지인들이 찾는 명소로 자리 잡았다.
이러한 외부의 여러 가지 불리한 요인은 1억8천만원의 예산을 지원하여 만들어지는 소설 한권으로 십이령 옛길을 관광명소화하겠다는 복안을 가졌던 울진군에 난제로 작용할 것이 뻔하다.
『객주』10권이 출간된 지난 9월 25일 이후 두 달여밖에 지나지 않았기 때문인지 아직까지 1억8천만원이라는 막대한 예산을 지원했던 울진군청 공무원들은 물론, 스토리텔링 소재 해당 지역인 울진 지역 주민들에게서도 책에 대한 서평이나 반향은 확인하기 어렵다.
다만 처음부터 십이령 옛길의 스토리텔링 사업을 주도했던 담당 부서인 울진군청 문화관광과 사무실에서『객주』10권 10여권을 확인할 수 있을 뿐이다.
이는 주지하듯이 워낙 책을 읽지 않는 작금의 세태를 반영하는 것일 수 있다.
그러나 이는 곧 울진군이 디지털 시대의 감성을 제대로 읽어내지 못하고 아날로그의 전형인 종이책에 너무 과감하고 낭만적인 투자를 한건 아닌지에 대한 반증일수도 있다.
사정이 이러한데도 울진군은 앞으로도 소설가, 시인, 화가들의 울진 이야기를 단행본으로 발간하는 각종 사업을 검토하고 있다고 밝히고 있다.
한편 매년 연말에 국내 유명 일간지나 잡지사 등에서 현상금을 내걸고 실시하는 시, 소설, 희곡, 동화 등의 문학작품을 공개적으로 모집하는 신춘문예의 상금도 기껏해야 500~1천만원, 아무리 많아도 보통 2천만원을 넘기지 않는다.
물론 신춘문예는 기성 문인들과는 달리 당선작을 낸 사람들을 문단에서 신인 문학가로 인정하여 준다는 점에서 저명한 기성 작가에게 스토리텔링을 맡기면서 지원하는 예산과 비교하는 것 자체가 무리일수도 있다.
또 이런 단순 비교는 80년대『객주』라는 작품으로 우리나라 문학사에 큰 획을 그은 김주영 작가와 그의 작품을 폄하하려는 의도가 아니다.
다만 울진군이 앞서 지역의 빼어난 문화 자산인 십이령 옛길의 스토리텔링을 고민할 당시에 보다 다양하고 현실적인 채널을 선택했어야 하고, 그에 따른 결과를 도출해 냈어야 한다는 지적이다.

<엑스포공원 내 김주영 작가가 집필실로 사용하던 ‘관송헌(觀松軒)’>
근래 일부 선진 지자체에서 시행하고 있듯이 1억8천만원이라는 예산이면 전국적으로 울진군을 소재로 하는, 울진군의 입맛에 맞는 다양한 장르의 작품을 얼마든지 의도하는 방향으로 공모할 수 있다.
또한 울진군이 주최하는 공모 사업을 통해서 선정된 작품은 그 결과물의 지적재산권이나 판권이 울진군에 귀속되고, 두고두고 이를 홍보 수단으로 제한 없이 백퍼센트 활용할 수 있다.
그런 면에서 1억8천만원이라는 예산을 지원하고도 이번에 출간된『객주』10권의 판권이 울진군에 귀속되지 않은 것은 이해하기 어렵다.
이런 지적에 대해 울진군 담당자는 “2011년 7월 울진군과 김주영 작가측이 ‘십이령 보부상길 스토리텔링 개발 사업 지원 협약서’를 체결할 당시에 판권과 관련한 부분이 명시되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전했다.
실제로 당시에 체결된 협약서 어디서도 판권 또는 지적재산권과 관련한 언급은 찾을 수 없다.
다만, 제6조 ‘관련 자료 등의 사용’ 항목에서 「‘갑(울진군)’은 스토리텔링 개발 중 수집된 자료를 협약 기간 중이나 이후에 관광 및 지역 홍보(비영리)를 위해 사용할 수 있으며, ‘을(파라다이스문화재단 이사장 김주영)’은 ‘갑’의 요구 시 무료로 제공한다.」는 조항만 확인할 수 있을 뿐이다.
판권이 울진군에 귀속되든 김주영 작가측 또는 책을 펴낸 출판사에 귀속되든, 판권과 관련한 부분에 대한 구체적인 명시가 없이 이렇듯 두루뭉수리하게 작성된 협약서는 두고두고 시사하는 바가 크다.
한편, 소설 속 곳곳에서는 고유 지명인 ‘울진’이 느닷없이 ‘울산’으로 둔갑하여 나타나거나, ‘흥부장’이 ‘부흥장’으로, 반수 ‘권재만’이 ‘권세만’으로 표기되는 등 눈에 거슬리는 크고 작은 오류가 발견되고 있다.
실례로 31p, 79p, 80p에서는 ‘울진 포구’가 뜬금없이 ‘울산 포구’로 나타나고 있고, 153p에는 ‘흥부장’이 ‘부흥장’으로, 252p에는 ‘권재만’이 ‘권세만’으로, 봉화군 소천면 분천리에 소재한 ‘꼬치비재’는 33p, 152p, 248p에서 반복적으로 ‘코치비재’로 나타난다.
십이령 옛길 가운데 울진 땅인 ‘큰넓재’를 지나 봉화 땅에서 만나는 ‘꼬치비재’는 공식 지명으로써 일명 고채비재, 고체비재, 고치비재 등으로 불린다.
‘흥부장’이 ‘부흥장’으로, ‘꼬치비재’가 ‘코치비재’로 표기되는 건 교정 또는 편집 과정에서의 단순 실수로 여길 수도 있지만, 소설의 주요 공간 무대인 ‘울진’이 뜬금없이 ‘울산’으로 표기되는 건 영 아쉬움으로 남는다.
고유 지명 ‘울진’과 관련한 심각한 오류는 향후 『객주』10권이 재판될 때 반드시 수정되어야 할 것으로 지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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