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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뚝이 인생 이종식 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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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4.01.10 12: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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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가족 생각에 힘든 것도 다 이겨냈어요!


따르릉~, “예 선창활어도매센터입니다.”며 경쾌한 목소리로 전화를 받는다. 이 가게 주인장인 이종식(50세. 울진읍 읍내리 전통시장)씨다. 각종 횟감을 주문받아 울진 관내 어디든 마다치 않고 배달을 전문으로 장사한 지 13년째다.

지금이야 어엿한 사장으로 횟집을 운영하고 있지만 십여 년 전에는 끼니를 걱정해야 할 정도로 형편이 말도 아니었다. 염색공장, 공사장 막노동, 돈가스 체인점 등 돈 되는 일은 다 해도 운이 없었는지 실패만 거듭했다.
울진읍 연지리(일명 대나리)에서 태어나 고등학교를 졸업하고는 서울로 상경해 염색공장에서 첫 직장생활을 시작했다. “요즘도 염색공장의 작업 환경이 열악하지만, 그때는 말도 꺼내지 못할 정도였다”는 종식씨가 당시를 회상하며 긴 한숨을 내쉬었다.



▣ 인생의 동반자 만나

새벽공기를 가르며 출근한 의정부 근처 염색공장 근무는 뿌연 연기와 코를 찌를 뜻한 매캐한 냄새로 인해 아침부터 온종일 머리가 어지러웠다. 공장에선 제일 막내였던 종식씨는 색소 배합과 굳은 일이 모두 그의 차지였다. 그나마 몸은 힘들고 고단했지만 공장 식구들은 가족처럼 잘 대해 주었다고 했다.

“힘들고 외로웠던 저에게도 사랑이 찾아왔지요, 어렵던 그 시절 지금의 집사람 김춘희(51세)를 친구의 소개로 만났어요.” “어찌나 예쁘던지 첫눈에 반해 버렸죠. 약간 부담스러워 하는 집사람을 매일 쫓아다녔어요,” “결국은 내 나이 21살, 제대로 된 결혼식은 올리지 못했지만, 신혼살림을 차리게 되었지요.”

신혼집 마련은 꿈도 꾸지 못했다. 수유리 달동네 단칸방에 둘째 누나랑 셋이 함께 살아야 했을 정도로 찢어지게 가난하고 힘든 서울 생활이었다. 새벽부터 나가서 밤늦게 녹초가 되어 돌아왔지만 분가해 나갈 전셋집 하나 장만하지 못했다. 


▣ 고향으로 돌아오다

종식 씨의 몸은 점점 지쳐가고 의욕도 점점 사라져갔다. “이래 살다가는 미처 버릴 것 같았어요.” 집사람보고 “우리 시골로 내려가 살자고 제안했어요.” 하지만 “집사람은 반대했지요, 힘들지만 이대로 서울에 살자고 했어요. 아내는 또 다른 환경에 다시 적응하기 두려웠던 것 같아요.”
그러나 “아무리 생각해도 집사람이 임신해서 자꾸 배가 불러오고 그렇다고 좁은 단칸방에 다 함께 살기도 어려운 여건은 선택의 여지가 없었지요, 결국 귀향을 결정했어요.” 다행히 매형의 소개로 원자력 건설 현장의 안전 관리 요원으로 들어가 북면 부구리에 살림집을 마련해 고향에서의 삶이 시작됐다.

고향에서 시작한 첫 직장 생활은 일이 힘들지는 않았지만, 보수가 너무 적었다. 혼자가 아니라 가족을 부양해야 하는 종식씨는 몸은 피곤하지만, 보수가 조금 나은 철근공으로 자리를 옮겼다. 그나마 몸으로 하는 일은 자신이 있었다. 



▣ 나도 사장이 됐다...

조금씩 생활 형편이 나아졌다. 그러다가 지인의 소개로 울진읍 내에서 ‘맛맛나 돈까스 전문점’을 열게 됐다. 나도 사장이 된다는 기쁨에 별다른 준비 없이 사업에 뛰어들었다. 그동안 모은 돈과 여기저기에서 끌어들인 돈으로 장사를 시작했다. 그러나 장사는 얼마 가지 않아 손익 분기점이 마이너스로 돌아서더니 그냥 내리막을 치기 시작했다.

더 이상 견딜 수가 없어 가게를 정리하고 보니 남는 것 하나 없는 빈털터리가 되어버렸다. “무엇보다 공부방 하나 없이 가게 뒷방에서 공부하고 잠자며 갖은 고생을 다한 어린 두 딸에게 제일 미안했죠.” 지금도 그때 생각하면 가슴이 뭉클해진다는 종식씨 눈엔 눈물이 맺힌다.

“재기의 발판을 마련하기 위해 고심 중에 내가 가장 잘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인지 고민했어요.” “저의 어머니가 시장에서 생선 좌판을 하셨기에 해물과 연관되는 장사를 해야겠다고 마음먹고 준비했는데 문제는 돈이 한 푼도 없었어요.”

“시장 조사도 하고 자신감도 있었지만 누구 하나 선뜻 돈을 빌려주겠어요.” “이래저래 알아보다 동네 형인 설덕수씨를 찾아가 대출을 부탁했는데, 두말 안 하고 그 자리에서 2천만원을 빌려줬어요.” “얼마나 고맙고 감사하던지 그 은혜를 잊을 수가 없다”고 했다.

‘선창활어도매센터’라는 간판을 올리던 날 부부는 너무 기뻐 감격의 눈물을 흘리며 한없이 울었다고 했다. “아마 그때가 2001년 4월로 기억돼요, 밤이고 낮이고 구별 없이 열심히 일했지요.” 라고 말했다.

손과 발은 물에 다 터졌지만 새우잠을 자며 밀려드는 주문에 정신없이 장사가 잘되었다. 장사 시작 2년 만에 선배에게 빌린 돈을 다 갚아 버렸다. “횟집 근처에도 가보지 못한 집사람이 지금은 횟감을 잘 썰어낼 정도면 그간 노력이 얼마나 많았겠어요.”라며 집사람 손을 꼭 잡았다.

▣ 고향 집 땅 분쟁에 휩싸여

마냥 행복할 것 같았던 종식씨는 뜻하지 않게 2003년 고향(대나리)집이 땅 분쟁에 휩싸였다. 50여년 넘게 살아오던 고향 집이 어느 날 옆집에서 재건축하면서 자기네 땅 15평을 종식씨 집이 무단 점용해 사용하고 있었다는 것이다. 지적공사에서 재측량해보니 사실이었다.

옆집 땅에 들어가 있던 종식씨네 15평 땅은 도로 쪽으로 밀려나 있어 도로로 사용되고 있었다. 당초 잘못된 측량과 행정기관의 착오가 있음을 군에서도 인정했다. 군에다 매입을 요구했지만 이런저런 핑계를 대며 땅을 구입한 전례가 없다며 난색을 표명했다. 종식씨는 너무 억울해서 민원고충위원회, 대한지적공사, 청와대 등 여러 곳에 민원을 제기했지만 해결되지 않았다.

종식씨는 동네 분들에게 죄송했지만 해결 방법을 찾기 위해 차도를 막았다. 이 일로 인해 동네 분들이나 지역 주민들이 본의 아니게 코앞 길을 두고 2km 넘게 돌아서 가야 하는 불편함을 겪었다. “힘없는 나로선 내 땅을 지키고 싶었다.”며, “아무런 조건 없이 내 땅을 빼앗기고 싶지 않았어요.”라고 말했다. 

결국 7~8년 만에 군에서 매입 의사를 전해와 깨끗하게 정리되었지만 본의 아니게 동네 분들에게 불편함을 안겨주어 지금도 그때 일을 생각하면 늘 미안하게 생각된다고 했다.


▣ 가족을 위해

“이젠 주변을 둘러보고 살려고 해요, 저도 젊을 때 고생이 많았지만 주변 분들 덕분에 조금은 여유롭게 살고 있다,”며, “그러나 뭐니 뭐니 해도 지영(27세. 서울우유 연구원)이와 정아(25세. 바리스타) 두 딸이 잘 커 제일 고맙죠.”

특히 “큰딸 지영이는 포항여고를 나와 고려대와 고려대학원을 졸업과 동시에 바로 취업했다.”며, “얼마 전 용돈을 보내와 얼마나 대견하던지 이것이 자식 키우는 보람이 아닌가 생각되네요.” “둘째는 얼마 전 해군 부사관으로 전역해 전문 바리스타가 되기 위해 열심히 준비하고 있어 두 딸 모두 자랑스러워요.”라며 호탕하게 웃는다.

시간이 허락하는 대로 어려운 이웃을 위해 봉사하고 자원봉사 활동도 열심히 하려고 계획하고 있다고 했다. 아직 구체적인 계획은 세우지 못했지만, 동네 어른들에게 안겨준 마음의 빚도 꼭 갚아드려야 한다고 다짐했다.

점점 추워지는 날씨지만 아내 춘희씨가 주문받은 횟감을 부지런히 썰어 배달통에 담아주자 종식씨는 힘차게 오토바이 몰고 달려가는 것이 누가 뭐라 해도 부창부수(夫唱婦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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