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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한 시절에 관한 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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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4.02.05 16: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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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명기(시인)
어떤 이야기를 써야할까. 원고 청탁을 받고 그 멀고도 아득한 곳을 오래 생각했다. 인생을 긴 항로라고 말한다면 배위에서 바다를 떠돌았던 그 시간들은 내게 무엇이었을까. 살면서 벌어지는 여러 일들은 늘 순간이다. 그 순간들이 이어져 결국 하나의 생이 되는 일인데, 어쩔 수 없는 시간이었고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면 이 글은 결국 나의 이야기 일 수밖에 없다. 그러니까 내 눈으로 보고 느낀 모든 것들의 기록은 그것들과 그들을 빌려온 나의 이야기다. 아마도 나는 이것이 대단한 묘사가 아니란 말을 이렇게 길게 늘어뜨리고 있는 것이리라. 그 무렵 나는 이제 막 시를 발표하기 시작한 풋내기 시인이었다. 다행스러운 일은 견고한 내 사회적 관념들이 무너지기 시작했다는 것이고 불행은 더불어 나의 개인사도 무너지고 있었다는 것이었다. 
 
바다가 마당처럼 펼쳐진 외가의 사랑방에서 태어난 나는 유년기를 제외하곤 늘 바다 가까운 곳에서 살았다. 그러나 한 번도 바다를 동경해 본 적이 없다. 바다는 내가 발을 딛고 사는 땅의 연장에 불과했다. 그곳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또 어떤 삶이 그곳에 있는지 궁금하지 않았고 알려고 하지도 않았다. 그러나 인생이라는 긴 항로에서 모든 것이 뒤집히는 풍랑의 한때가 있다면 내게는 바로 그 즈음이었다. 피항지가 필요했다. 아이러니하게 나는 그 피항지를 바다로 택한 것이다. 모든 것이 무너지기 시작한 삶을 억지로 가둘 수 있는 공간으로 그만한 곳이 어디 있겠는가. 한편으로 아주 낭만적인 생각도 있었다. 남과 다른 시를 써보자. 그곳과 그곳의 사람들을 써보자. 이것이 얼마나 어리석은 생각인지를 깨닫는 시간은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그렇다고 해도 그곳에서 일어난 일들이 나의 글에 아무런 영향을 끼치지 않을 수는 없으니 안일한 낭만이 아주 틀린 것도 아니다. 하지만 내가 그 바다에서 돌아왔을 때에는 그것은 더 이상 낭만이 아니었다. 무엇을 부풀리고 너무 힘들었다고 투정부릴 일도 아니었다. 단지 그 시절 맞닥뜨린 삶이었고, 그 삶이란 내가 시를 쓰는 어쩔 수 없는 이유와 별로 다를 것이 없었다.
 
내게 주어진 일은 근로 감독관이었다. 말하자면 화주 대리인인 셈이다. 내가 소속된 회사는 킹크랩을 수입, 유통하는 회사였다. 배는 중국 선적의 배와 러시아 선적의 배를 임대했다. 중국 선적의 배는 운반선이었고 러시아 선적의 배는 조업선이었다. 운반선은 여러 척의 조업선에서 잡아온 킹크랩을 한 번에 운반하기위해 오래된 중국 화물선의 밑창을 수족관으로 개조해 만든 배였다. 운반선은 주로 초보 감독관이 일을 배우기 위해 승선하는 배였다. 살아있는 게를 최대한 손실을 줄여 빠른 시간에 가져오는 것이 운반선 감독관의 일이었다. 그곳에서 상품의 가치를 선별할 정도의 경력이 쌓이면 조업선 감독관으로 옮겨갔다. 운반선의 일이란 상품을 운반할 때 며칠 잠을 제대로 자지 못하는 것과 게를 옮겨 싣기 위해 대기하는 지루함 말고는 딱히 힘들다고 말할 것이 없었다. 물론 배에서 이루어지는 모든 작업은 배와 함께 온 중국 선원들의 몫이었다. 운반선 감독관으로 육 개월을 근무하고 조업선 감독관으로 옮겨갔다. 조업선은 운반선에 비해 크기가 반밖에 되지 않았다. 그 비좁은 공간에서 선장과 두 명의 항해사 기관장과 요리장 선원 일곱 그리고 감독관 한 명, 열 네 명이 삼주 길면 한 달 동안 조업을 했다. 킹크랩의 전진기지는 일본 북해도 최북단의 와카나이 항이었다. 조업선들이 와카나이를 출발해 오호츠크에서 킹크랩을 잡아오면 다시 그곳에서 운반선에 옮겨 싣고 꼬박 삼일 반나절을 쉼 없이 달려 강원도 묵호항이나 동해항으로 돌아왔다. 삼십 년이나 된 화물선으로 시간에 맞춰 도착하는 일도 만만한 일은 아니었다.
 
일본 근대 소설 중 ‘고바야시 다키지’라는 일본 소설가가 쓴 『게공선』이라는 소설이 있다. 요즘으로 말하면 노동문학 정도에 해당하는 리얼리즘 소설이다. 그 소설의 배경도 북해도 어디쯤이다. 구십 년 전에 쓰인 이 소설은 그 당시 게 잡이 노동자들의 학대와 착취를 고발하는 내용이다. 지금처럼 게를 살려오는 기술이 없었던 시절이라 제목처럼 게를 잡아 배에서 가공한 상태로 돌아왔다. 그러니 배는 배가 아니라 공장인 셈이었다. 그러므로 바다의 법을 적용받지 않았고, 바다에 나가 있었으므로 공장의 법률을 적용하지도 않았다. 소설을 읽다 보면 재미있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소설속의 주인공이 없다는 것이다. 그러나 있다. 소설에 나오는 모든 사람들이 주인공이다. 그때처럼 가혹한 착취는 없어도 노동 강도는 별로 달라진 것이 없다. 먼 바다의 겨울 날씨란 오뉴월 팥죽 같아서 언제 어떻게 변할지 종잡을 수 없다. 첨단 장비의 도움으로 예측하지만 현장의 상황과 꼭 맞아떨어지지는 않는다. 그렇다보니 일기가 좋을 때는 서른 시간 이상 작업이 이루어진다. 통발을 던지고 미리 던진 통발을 건져 올리기 위해 잠깐씩 이동하는 시간에 밥을 먹고 틈틈이 존다. 갑자기 몰아치는 파도에 몸이 휩쓸리는 아찔한 순간도 다반사다. 그러나 누구하나 불평하는 사람이 없다. 열 네 명의 승선 인원 중 누구하나라도 다치면 노동 강도는 배가된다. 그러니 이들 중 누구하나 중요하지 않은 사람이 없고, 모두 주인공인 셈이다. 물론 소설적 표현과는 개념이 다른 이야기다. 그곳으로 모여든 사람들은 내면에서 이면으로 밀려난 사람들 같았다. 서로 다른 삶의 조건들에 밀려 떠도는 디아스포라들. 조건에 떠밀려 왔지만 죽으라고 그 조건에 정면으로 대항하는 사람들. 그곳에서는 서로의 상처를 건들지 않는다. 알려고도 하지 않는다. 다만 어쩔 수 없는 삶이 있을 뿐이다. 사람들은 곧잘 공포란 말을 쓴다. 그러나 칠흑 같은 밤바다에서 거대한 파도가 뱃전을 때리는 울림을 온몸으로 느끼며 나는 공포란 말이 너무 실없다는 생각을 했다. 삶과 죽음은 아주 가까이 있었다. 그런 밤이면 마음은 죽음 쪽으로 더 기울어지기도 했다. 조도 낮은 브리지에서 그 순간을 빠져나오기 위해 단파 수신기를 돌려댔다. 명태 잡이를 위해 그곳 어디쯤을 떠돌던 경상도 사내들의 걸쭉한 목소리와 그런 밤이면 어김없이 누군가 부르던 동백아가씨를 듣고서야 애써 잠자리에 들곤 했다. 
 
시월 중순이면 눈이 내리기 시작하는 와카나이. 눈은 며칠씩 내렸다. 낮도 밤같이 어두웠다. 항구는 고요한 슬픔 같기도 하고 떠도는 것들의 은신처 같기도 했다. 내장 속을 흐르는 피마저 차갑게 응고되어야 외로움이나 그리움 따위를 잊을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맘때면 그곳은 오랜 관습처럼 온통 먹빛이었다. 오호츠크를 향해 끝없이 먹장구름이 흘러가고, 그 풍경은 두고 온 곳을 그리워하는 사람들을 우울하게 만들었다. 아무르 강가에 가난한 처자를 두고 온 선원은 물처럼 보드카를 마시다 갑판 위에서 제 속을 덥히던 보드카를 다시 다 토해내고 그 자리에 쓰러지기도 했다. 쓰러진 그이를 부축해 선실에다 눕히고 담요를 덮어주거나 이마를 짚어주던 사람들. 그러니 나의 안일한 낭만은 얼마나 보잘 것 없는 것인가. 그토록 절박하고 아프며, 따뜻한 사람들을 나는 지금까지도 본적이 없다. 그것은 그냥 받아들여지는 삶으로써 존재할 뿐, 어떤 기록도 가치 있는 일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어쩌면 평생 바다 위를 떠돌며 자신을 밀어내는 것들과 맞짱 떠야 할지 모르는 사람들을 무슨 수로 기록할 것인가. 때가 되면 조용히 돌아가야 할 내가 그들의 거대한 서사를 훔쳐 돌아갈 자신이 없었다.
 
아직도 그들 중 대부분은 여전히 바다 위를 떠돌 것이다. 나는 이년 남짓 그 바다위에 있었다. 땅위에서는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삶이 그곳에 있었다. 때로는 사람에게 받은 상처가 부풀어 오르는 날이 있다. 그런 날이면 나는 그 북구의 이방인들을 생각한다. 비린내 나는 그들의 입김과 축축이 젖어있던 큰 눈망울, 오호츠크 겨울 밤바다 시린 별빛아래 럭키스트라이크를 입에 물고 밤새 통발을 끌어올리던 사내들을. 도무지 세련되지 못해 낡아가는 것이 차라리 편안했던 풍경들을. 나는 돌아왔고 그들은 바다에 남았다. 돌아와 일 년이 지날 쯤 첫 시집을 냈고, 두 편의 바다이야기를 썼다. 아직도 나는 그 두 편의 시를 훔쳐왔다는 생각을 한다. 그 미안함을 떨치려고 애써 이 글을 나의 이야기라고 둘러대는 것이다. 생의 시작과 끝은 모호하다. 그 모호함 속 어느 곳에 내려 앉아야할지 여전히 모른다. 다만 어느 한순간 바다는 내 생의 풍랑을 피해 기를 쓰고 나아가던 피항지였으며 나의 문학처럼 어쩔 수 없이 선택된 삶이었을 뿐이다. 내가 기억하는 것은 사람다운 사람들이 그곳에 살고 있었다는 것과 저물녘 솜이불 같은 눈 위로 남기고 온 것들이 와르르 밀려들 때, 심하게 출렁거리던 내 생의 한 부분이다. 떠나왔지만 모든 것을 남겨두고 온 것도 결국 나였으므로.

※김명기 시인 : 경북 울진생, 2005년 계간 <<시평>>을 통해 작품 활동 시작, 시집『북평장날 만난 체 게바라』와 연구서『북으로 간 시인들(공저)』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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