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송(北宋) 말기 휘종 황제 때(1120년), 중국의 강남 지방에서 지배층의 수탈이 심해지자 이에 반발하여 머슴 출신 방랍(方蠟)이라는 사람이 주모자가 되어 반란을 일으켰다. 반란의 명분은 다음과 같았다.
“1년 내내 피땀 흘려 모은 곡식과 피륙을 관리들이 멋대로 약탈해가고 있다. 그들은 까닭 없이 백성을 매질하고 죽이기를 밥 먹듯 하고 있다.
우리에게 약탈해간 것으로 자기들의 배를 채우고 나머지는 우리의 적인 요나라와 서하에 세공(歲貢)으로 바치고 있다. 우리의 피와 땀으로 적을 기르고 있는 셈이다. 그 적이 공격해오면 매국노들은 우리를 자기들의 방패막이로 써먹으려 할 것이다.”
관리들은 백성으로부터 무자비한 착취를 자행했다. 이 때문에 백성의 생활은 날이 갈수록 엉망이었고 불만은 하늘을 찔렀다. 마침내 반란이 일어났다. 비록 방랍이 아니더라도 일어날 사건이었다. 그것도 최대의 적국인 요나라를 공격하기로 한 시점에서 일어난 반란이었다.
반란이 일어나자 불과 열흘이 못 되어 여러 지역이 호응하더니 삽시간에 수 십 만으로 불어났다. 방랍은 스스로를 성공(聖公)이라고 칭하고 연호를 영락(永樂)으로 정했다. 정권까지 수립한 것이다. 나라에서는 반란을 진압하기 위해 적국인 요나라를 치려던 군사를 돌렸다. 방랍의 난은 거의 4년을 끌었다. 조정에서는 반란을 진압하고 주모자 등을 참시한 후에도 민심을 수습하는 데 애를 먹어야 했다.
동서고금의 역사 속에서 반란사건의 공통점은 농민 등 하층민들의 대중적 지지 여부가 성패의 직접적인 분수령이 되고 있다는 점이다. 즉, 충분한 명분이 축적되지 않은 반란은 폭 넓은 대중적 지지를 이끌어낼 수 있는 사회적 공감대를 확보할 수 없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따라서 역사는 소수의 불만세력이나 정당성을 확보하지 않은 반란이 성공하기가 쉽지 않다는 것을 극명하게 보여주고 있다.
지난 연말연시에 시작된 철도노조의 파업이 그들 스스로 파업을 철회하면서 싱겁게 끝났다. 국가 기간시설인 철도를 볼모로 하고 국민을 인질로 잡아 기세등등하게 시작한 파업치고는 결과가 우습게 된 것이다. 철도노조는 경쟁체제 도입이 민영화로 가기 위한 수순이며 민영화가 되면 철도요금이 몇 배나 올라 국민들의 부담 증가로 나타날 것이라는 주장을 폈다. 반면, 정부는 경영 효율성을 높이기 위해서는 경쟁체제 도입이 불가피하다는 점을 강조했다. 그러나 자회사를 설립하여 경쟁을 시키기 때문에 민영화로 인한 폐해는 없다고 주장했다. 대통령까지 나서 민영화를 하지 않겠다고 하는데도 노조가 ‘민영화 반대’를 외치며 파업을 계속했다. 바로 명분 없는 투쟁이었다.
국민들은 끝내 철도노조에 대해 분노를 드러냈다. 파업과정에서 코레일이 방만한 경영으로 천문학적인 부채를 지고 있는 부실기업이라는 것이 알려진 것이다. 게다가 그동안 연봉과 복리후생 등에서 가히 ‘신의 직장’으로 부러움을 사면서, ‘고용세습’의 관행을 유지하는 대표적인 공기업임이 만천하에 드러난 것이다.
현재 우리나라 노동현장에서 노조 조합원은 민주노총 60여 만 명, 한국노총 80여 만 명 등 150만 명 정도로 전체 노동자수의 약 10% 정도에 해당한다. 그러나 이들 10% 노동귀족들의 파워는 엄청나다. 이들은 이번 파업 과정에서 그동안 자신들이 숨겨온 부끄러운 실상들이 하나 둘 드러나고 국민의 대중적 지지를 끌어내는데 실패하자, 파업지도부를 검거하려는 공권력에 맞서 ‘정권퇴진운동 운운’하며 이슈를 다시 돌리며 정치싸움으로 전선의 확대를 도모하려했다. 귀족노조의 불순한 선동에 정치권 일부의 이해가 맞물리며 명분은 그때그때 달라지고 있는 것이다.
어찌 이들 뿐이랴? 종교단체 속에 둥지를 틀고 종교를 빙자하여 국민을 선동하는 정치모리배들도 있다. 걸핏하면 시국선언을 하는 자들, 바로 소위 ‘정의구현사제단’이다. 그들이 말하는 시국선언은 항상 북한의 주장을 옹호하고 정당화하며, 우리 정부의 정체성에 흠집을 내는 일방적인 것들이었다. 그러나 이 단체는 천주교 신부단 내에서 극소수의 비주류 정치신부들의 모임이다. 천주교 공식입장과는 전혀 다르다. 이들은 비공식 소수단체임에도 불구하고 자신들이 천주교의 대변인인양 각종 친북언행과 동조수위를 계속 높이는 한편, 제주도 해군기지건설 반대 등 비정상적인 일탈활동을 계속해 오고 있다. 보편적 가치인 대한민국 민주주의 가치관에서 관용의 한계는 과연 어디까지인가? 종교라는 치외법권 속에 숨어있는 이들 반역세력들을 이대로 두고 봐야만 하는가?
647년(선덕여왕16) 정월, 새해에 접어들자마자 신라는 일찍이 경험하지 못했던 거대한 정치적 소용돌이에 휩싸였다. 당시 신라의 최고 직위 즉 상대등의 자리에 있던 비담(毗曇)이 염종 등과 함께 군사를 일으켜 왕성을 포위하고 반란을 일으킨 것이다. 반란군은 왕이 있는 궁궐까지 쳐들어와 곧 궁궐 전체를 장악한 듯이 거세게 밀어붙였다. 당시 최고의 명성을 날리던 김유신의 군대도 반란군의 위세에 눌려 고전을 면치 못하였다.
비담은 반란의 명분으로 “여자가 왕이 되니 나라가 어지럽고 제대로 다스려지지 않는다.”면서 여왕의 통치를 직접적으로 들고 나왔다. 난은 곧 진압되었지만 정치적 파장은 엄청난 것이었다. 이 과정에서 전면에 등장한 김춘추는 진덕여왕의 뒤를 이어 왕위에 올라 마침내 진골 귀족의 왕위계승시대를 열었다. 이렇게 비담의 난은 삼국통일 이후 신라의 유교적 이념을 바탕으로 하는 정치제도 확립의 분기점이 된 사건이었다.
822년(헌덕왕 14) 3월에 웅천주(熊川州)의 도독(都督) 김헌창이 반란을 일으켰다. 반란 세력은 삽시간에 지금의 충청도, 전라도, 경상도 일부 지역을 세력권에 두면서 국호를 ‘장안(長安)’, 연호를 ‘경운(慶雲)’이라 하면서 기세를 올렸다. 그러나 정부군에게 거점인 웅진성(熊津城)이 함락되고 김헌창이 자결함으로써 한 달이 못 되어 진압되었다.
김헌창이 내세운 반란의 명분은 왕위계승의 정통성과 합법성에 대한 부정이었다. 즉, 귀족회의에서 공식적으로 왕위에 추대된 아버지 김주원(金周元)이 원성왕(김경신)의 정변으로 즉위하지 못하고 명주군왕(溟州郡王)으로 물러난 것을 들어, 김주원을 지지했던 귀족 세력들에게 자신의 거사를 합리화하며 동시에 지지를 호소하는 명분으로 내세운 것이다.
이 두 사건은 모두 통치자에 대한 왕위계승의 합법성과 정통성에 대한 부정에서 비롯된 것으로 사건의 결과는 완전히 다르게 나타났다. 전자의 경우, 반란군을 진압한 김유신과 김춘추 등 진골 귀족세력이 왕위에 오르고 전면에 등장하면서 기존 성골귀족 중심의 노쇠한 사회의 개혁에 성공함으로써 삼국통일의 기초를 다질 수 있었다. 반면 후자의 경우, 진골 귀족세력의 극심한 분열과 왕권쟁탈을 더욱 가속화 시키고 말았다. 결국 신라는 하대 155년간 20명의 왕이 교체되는 과정에서 국론의 분열과 농민의 반란 등으로 결국 멸망의 길로 치닫고 말았다.
반란은 정부나 지배집단에 대한 무장(武裝) 반항이 운동화 한 것이다. 반란은 끊이지 않는 인간의 불만에 기초한 하나의 반항 형태로서 몇 가지 원인이 있다. 첫째, 지배집단에 의해 부여된 지위나 상벌이 정의에 반한다고 인식하는 경우이다. 둘째, 지배집단의 일부를 구성하고 있지만 처우에 대한 불만이 누적되어 반란으로 이어지는 경우다. 그러나 이런 불만을 가지고 있다 하더라도 집단의 역량이 거의 뒷받침되지 않으면 즉시 반란으로 이어지지는 않고 장기간 잠복하면서 지속적으로 사회적 불안을 조성한다. 그러다가 그 집단의 역량이 충족되었다고 판단되면 반란을 일으킨다. 이는 바로 오늘날 강성노조에 의해 진화해온 노동운동의 정치세력화로 대변되고 있다고 하겠다.
이번 철도노조의 파업을 통해 확인했듯이, 명분 없는 노동운동은 결코 국민의 대중적 호응을 이끌어낼 수 없다. 자신들의 작은 이익을 관철하기 위해 국가 기간산업시설을 볼모로 사실을 호도하고 국론을 분열시키는 그들의 행위는 과연 정당한가? 민주노총과 민주당 그리고 종교시설에 숨어 파업을 지휘하던 지도부는 경찰에 체포되면서도 국민을 향해 파업이 합법이라고 강변했다. 사회불안을 조장해온 악(惡)의 축(軸) 답게 그들의 행동은 끝까지 당당하고 뻔뻔스러웠다.
반역(反逆)의 양상과 행태가 교묘하게 진화하고 있다. 국민들의 대중적 지지가 없는 파업은 합법을 가장한 현대판 반역행위이자 반란(叛亂)의 시작이다. 이제는 이런 반역의 씨앗을 과감하게 도려내 그 진화의 싹을 잘라야 한다. 그런 의미에서 최근 정부가 사회 전반에 걸쳐 강도 높게 추진하고 있는 이른 바, ‘비정상의 정상화’ 개혁에 기대를 걸어 본다.
“1년 내내 피땀 흘려 모은 곡식과 피륙을 관리들이 멋대로 약탈해가고 있다. 그들은 까닭 없이 백성을 매질하고 죽이기를 밥 먹듯 하고 있다.
우리에게 약탈해간 것으로 자기들의 배를 채우고 나머지는 우리의 적인 요나라와 서하에 세공(歲貢)으로 바치고 있다. 우리의 피와 땀으로 적을 기르고 있는 셈이다. 그 적이 공격해오면 매국노들은 우리를 자기들의 방패막이로 써먹으려 할 것이다.”
관리들은 백성으로부터 무자비한 착취를 자행했다. 이 때문에 백성의 생활은 날이 갈수록 엉망이었고 불만은 하늘을 찔렀다. 마침내 반란이 일어났다. 비록 방랍이 아니더라도 일어날 사건이었다. 그것도 최대의 적국인 요나라를 공격하기로 한 시점에서 일어난 반란이었다.
반란이 일어나자 불과 열흘이 못 되어 여러 지역이 호응하더니 삽시간에 수 십 만으로 불어났다. 방랍은 스스로를 성공(聖公)이라고 칭하고 연호를 영락(永樂)으로 정했다. 정권까지 수립한 것이다. 나라에서는 반란을 진압하기 위해 적국인 요나라를 치려던 군사를 돌렸다. 방랍의 난은 거의 4년을 끌었다. 조정에서는 반란을 진압하고 주모자 등을 참시한 후에도 민심을 수습하는 데 애를 먹어야 했다.
동서고금의 역사 속에서 반란사건의 공통점은 농민 등 하층민들의 대중적 지지 여부가 성패의 직접적인 분수령이 되고 있다는 점이다. 즉, 충분한 명분이 축적되지 않은 반란은 폭 넓은 대중적 지지를 이끌어낼 수 있는 사회적 공감대를 확보할 수 없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따라서 역사는 소수의 불만세력이나 정당성을 확보하지 않은 반란이 성공하기가 쉽지 않다는 것을 극명하게 보여주고 있다.
지난 연말연시에 시작된 철도노조의 파업이 그들 스스로 파업을 철회하면서 싱겁게 끝났다. 국가 기간시설인 철도를 볼모로 하고 국민을 인질로 잡아 기세등등하게 시작한 파업치고는 결과가 우습게 된 것이다. 철도노조는 경쟁체제 도입이 민영화로 가기 위한 수순이며 민영화가 되면 철도요금이 몇 배나 올라 국민들의 부담 증가로 나타날 것이라는 주장을 폈다. 반면, 정부는 경영 효율성을 높이기 위해서는 경쟁체제 도입이 불가피하다는 점을 강조했다. 그러나 자회사를 설립하여 경쟁을 시키기 때문에 민영화로 인한 폐해는 없다고 주장했다. 대통령까지 나서 민영화를 하지 않겠다고 하는데도 노조가 ‘민영화 반대’를 외치며 파업을 계속했다. 바로 명분 없는 투쟁이었다.
국민들은 끝내 철도노조에 대해 분노를 드러냈다. 파업과정에서 코레일이 방만한 경영으로 천문학적인 부채를 지고 있는 부실기업이라는 것이 알려진 것이다. 게다가 그동안 연봉과 복리후생 등에서 가히 ‘신의 직장’으로 부러움을 사면서, ‘고용세습’의 관행을 유지하는 대표적인 공기업임이 만천하에 드러난 것이다.
현재 우리나라 노동현장에서 노조 조합원은 민주노총 60여 만 명, 한국노총 80여 만 명 등 150만 명 정도로 전체 노동자수의 약 10% 정도에 해당한다. 그러나 이들 10% 노동귀족들의 파워는 엄청나다. 이들은 이번 파업 과정에서 그동안 자신들이 숨겨온 부끄러운 실상들이 하나 둘 드러나고 국민의 대중적 지지를 끌어내는데 실패하자, 파업지도부를 검거하려는 공권력에 맞서 ‘정권퇴진운동 운운’하며 이슈를 다시 돌리며 정치싸움으로 전선의 확대를 도모하려했다. 귀족노조의 불순한 선동에 정치권 일부의 이해가 맞물리며 명분은 그때그때 달라지고 있는 것이다.
어찌 이들 뿐이랴? 종교단체 속에 둥지를 틀고 종교를 빙자하여 국민을 선동하는 정치모리배들도 있다. 걸핏하면 시국선언을 하는 자들, 바로 소위 ‘정의구현사제단’이다. 그들이 말하는 시국선언은 항상 북한의 주장을 옹호하고 정당화하며, 우리 정부의 정체성에 흠집을 내는 일방적인 것들이었다. 그러나 이 단체는 천주교 신부단 내에서 극소수의 비주류 정치신부들의 모임이다. 천주교 공식입장과는 전혀 다르다. 이들은 비공식 소수단체임에도 불구하고 자신들이 천주교의 대변인인양 각종 친북언행과 동조수위를 계속 높이는 한편, 제주도 해군기지건설 반대 등 비정상적인 일탈활동을 계속해 오고 있다. 보편적 가치인 대한민국 민주주의 가치관에서 관용의 한계는 과연 어디까지인가? 종교라는 치외법권 속에 숨어있는 이들 반역세력들을 이대로 두고 봐야만 하는가?
647년(선덕여왕16) 정월, 새해에 접어들자마자 신라는 일찍이 경험하지 못했던 거대한 정치적 소용돌이에 휩싸였다. 당시 신라의 최고 직위 즉 상대등의 자리에 있던 비담(毗曇)이 염종 등과 함께 군사를 일으켜 왕성을 포위하고 반란을 일으킨 것이다. 반란군은 왕이 있는 궁궐까지 쳐들어와 곧 궁궐 전체를 장악한 듯이 거세게 밀어붙였다. 당시 최고의 명성을 날리던 김유신의 군대도 반란군의 위세에 눌려 고전을 면치 못하였다.
비담은 반란의 명분으로 “여자가 왕이 되니 나라가 어지럽고 제대로 다스려지지 않는다.”면서 여왕의 통치를 직접적으로 들고 나왔다. 난은 곧 진압되었지만 정치적 파장은 엄청난 것이었다. 이 과정에서 전면에 등장한 김춘추는 진덕여왕의 뒤를 이어 왕위에 올라 마침내 진골 귀족의 왕위계승시대를 열었다. 이렇게 비담의 난은 삼국통일 이후 신라의 유교적 이념을 바탕으로 하는 정치제도 확립의 분기점이 된 사건이었다.
822년(헌덕왕 14) 3월에 웅천주(熊川州)의 도독(都督) 김헌창이 반란을 일으켰다. 반란 세력은 삽시간에 지금의 충청도, 전라도, 경상도 일부 지역을 세력권에 두면서 국호를 ‘장안(長安)’, 연호를 ‘경운(慶雲)’이라 하면서 기세를 올렸다. 그러나 정부군에게 거점인 웅진성(熊津城)이 함락되고 김헌창이 자결함으로써 한 달이 못 되어 진압되었다.
김헌창이 내세운 반란의 명분은 왕위계승의 정통성과 합법성에 대한 부정이었다. 즉, 귀족회의에서 공식적으로 왕위에 추대된 아버지 김주원(金周元)이 원성왕(김경신)의 정변으로 즉위하지 못하고 명주군왕(溟州郡王)으로 물러난 것을 들어, 김주원을 지지했던 귀족 세력들에게 자신의 거사를 합리화하며 동시에 지지를 호소하는 명분으로 내세운 것이다.
이 두 사건은 모두 통치자에 대한 왕위계승의 합법성과 정통성에 대한 부정에서 비롯된 것으로 사건의 결과는 완전히 다르게 나타났다. 전자의 경우, 반란군을 진압한 김유신과 김춘추 등 진골 귀족세력이 왕위에 오르고 전면에 등장하면서 기존 성골귀족 중심의 노쇠한 사회의 개혁에 성공함으로써 삼국통일의 기초를 다질 수 있었다. 반면 후자의 경우, 진골 귀족세력의 극심한 분열과 왕권쟁탈을 더욱 가속화 시키고 말았다. 결국 신라는 하대 155년간 20명의 왕이 교체되는 과정에서 국론의 분열과 농민의 반란 등으로 결국 멸망의 길로 치닫고 말았다.
반란은 정부나 지배집단에 대한 무장(武裝) 반항이 운동화 한 것이다. 반란은 끊이지 않는 인간의 불만에 기초한 하나의 반항 형태로서 몇 가지 원인이 있다. 첫째, 지배집단에 의해 부여된 지위나 상벌이 정의에 반한다고 인식하는 경우이다. 둘째, 지배집단의 일부를 구성하고 있지만 처우에 대한 불만이 누적되어 반란으로 이어지는 경우다. 그러나 이런 불만을 가지고 있다 하더라도 집단의 역량이 거의 뒷받침되지 않으면 즉시 반란으로 이어지지는 않고 장기간 잠복하면서 지속적으로 사회적 불안을 조성한다. 그러다가 그 집단의 역량이 충족되었다고 판단되면 반란을 일으킨다. 이는 바로 오늘날 강성노조에 의해 진화해온 노동운동의 정치세력화로 대변되고 있다고 하겠다.
이번 철도노조의 파업을 통해 확인했듯이, 명분 없는 노동운동은 결코 국민의 대중적 호응을 이끌어낼 수 없다. 자신들의 작은 이익을 관철하기 위해 국가 기간산업시설을 볼모로 사실을 호도하고 국론을 분열시키는 그들의 행위는 과연 정당한가? 민주노총과 민주당 그리고 종교시설에 숨어 파업을 지휘하던 지도부는 경찰에 체포되면서도 국민을 향해 파업이 합법이라고 강변했다. 사회불안을 조장해온 악(惡)의 축(軸) 답게 그들의 행동은 끝까지 당당하고 뻔뻔스러웠다.
반역(反逆)의 양상과 행태가 교묘하게 진화하고 있다. 국민들의 대중적 지지가 없는 파업은 합법을 가장한 현대판 반역행위이자 반란(叛亂)의 시작이다. 이제는 이런 반역의 씨앗을 과감하게 도려내 그 진화의 싹을 잘라야 한다. 그런 의미에서 최근 정부가 사회 전반에 걸쳐 강도 높게 추진하고 있는 이른 바, ‘비정상의 정상화’ 개혁에 기대를 걸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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