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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화(昭和) 16년(1941년) 호적사무협의회 기념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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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4.08.05 13: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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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사진은 일제강점기인  울진면사무소 앞에서 호적사무협의회(戶籍事務協議會)에 참석한 공무원들이 기념 촬영한 것이다.
  
사진을 살펴보면, 당시 행정 관청의 호적 담당자들로 보이는 일단의 공무원들과 경찰로 추정되는 사람들이 오와 열을 맞추어 경직되고 다소 근엄한 자세로 기념 촬영에 임하고 있다.
  
울진면사무소 입구 좌우에는 일제강점기의 다른 관청들과 다를 바 없이 일제가 조선인들에게 강요했던 구호로 ‘누구든지 자신이 맡은 분야의 일을 통해서 친일 행위를 표출하라’는 뜻인 ‘직역봉공(職域奉公)’의 ‘職(직)’자 등이 눈에 띈다. 
  
일본의 입김으로 한말(韓末)이던 1896년 9월 1일 칙령 61호 ‘호구조사규칙(戶口調査規則)’이, 같은 해 9월 3일 내부령(內部令) 8호로 ‘호구조사세칙(戶口調査細則)’이 공포됐지만, 이때까지의 호적은 대체적인 신분 관계를 반영한 계보(系譜) 체제를 중심으로 작성됐기 때문에 일반인들이 제대로 파악하는데 한계가 있었다.
  
이에 따라 1909년 3월에 법률 제6호로 ‘민적법(民籍法)’이 공포됐다.
  
민적법이 실시되면서 마침내 호적(戶籍)은 호구 조사의 수단이 아니라 집안(家)과 신분을 공시(公示)하거나 증명하는 공문서로 확정되었다.   
  
특히 이번에 소개하는 사진이 촬영된 1941년은 제7대 조선 총독인 ‘미나미 지로(南次郞, 1874~1955)’가 조선인의 황민화(皇民化) 정책 가운데 하나로 창씨개명(創氏改名)을 강요하기 시작한지 1년 후의 시점이다.
  
일제는 1940년 2월부터 1945년 8월 광복 직전까지 조선인들에게 일본식 성씨로 고치는 창씨개명을 강요했다.
  
이는 조선총독부가 1939년 11월 10일 일제강점기 조선인들에게 적용됐던 민사에 관한 사항을 규정한 기본법인 ‘조선민사령(朝鮮民事令)’의 3차 개정을 통해 내선일체(內鮮一體)와 황민화를 내세우며 조선에서도 일본식 씨명제(氏名制)를 따르도록 규정하고, 1940년 2월 11일부터 8월 10일까지 ‘씨(氏)’를 정해서 제출하도록 명령한데 따른 것이다.
  
이와 함께 일제는 1909년 3월 민적법을 제정하여 1894년 갑오개혁 이후의 호구조사 규칙에 따른 호구 조사 자료를 민적부(民籍簿)라는 형태로 경찰서 또는 경찰분서급 순사 주재소(巡査 駐在所)에 비치하면서 조선인들을 본격적으로 통제하기 시작했다.
  
그러다가 1923년 7월에 제정된 ‘조선호적령(朝鮮戶籍令)’에 따라 호적 업무의 감독권을 법원에 부여했고, 이것을 바탕으로 광복 후인 1949년 9월에 ‘법원조직법(法院組織法)’이 만들어지면서 지금까지 법원이 호적에 관한 사무를 관장·감독하고 있다. 
  
하지만 조선호적령에 따라 호적 사무의 감독권은 법원에 부여됐지만, 실제 호적 사무를 담당했던 곳은 각 읍·면에 소재하던 행정기관과 헌병경찰대였다.
  
1910년 9월 10일 조선총독부 칙령으로 발표된 ‘조선주차헌병조례(朝鮮駐箚憲兵條例)’는 헌병대가 군사 경찰과 치안 유지에 관한 행정을 담당하도록 했다.
  
이에 따라 헌병경찰대는 전국적인 규모로 확대되어 군사 경찰, 정치 사찰, 사법권 행사, 경제 경찰, 외사 경찰, 조장 행정, 위생 경찰 등의 법적인 권한을 가지고 초법적인 권력을 행사했다.
  
이 중 사법권 행사 권한이 호적 사무를 포함하여 범죄의 즉결, 신생쟁송의 조절, 검사업무의 대리, 집달리의 업무를 포함하고 있었다.
  
각종 자료에 따르면, 초대 조선 총독인 ‘데라우치 마사다케(寺內正毅)’ 당시 전국적으로 77개의 헌병 분대와 562개소의 파견소를 두었고, 일본 헌병 1명에 조선인 보조원 3명씩을 붙여 정보, 염탐, 착취, 고문의 하수인으로 삼았다.
  
또한 헌병대와 함께 각 도의 경찰부를 중심으로 전국적으로 경찰서 254개소, 주재소 22개처, 파출소 242개소를 두고 2만1천여 명의 순사를 배치시켜 전국을 상시 감시체제로 가동했다.
  
소개하는 사진은 일제강점기 당시 울진읍사무소에서 열린 호적사무협의회에 참석한 일단의 인사들을 통해 당시의 시대성과 역사성을 한꺼번에 엿볼 수 있도록 하는 소중한 자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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