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946년 초대 노기일(盧箕一) 군수 부임
홍순호 군수 3년 9개월 재임, 한우삼·김형기 군수 2·3개월 재임해
울진의 행정 역사는 1895~1944년까지를 근대로, 1945년 이후를 현대로 구분된다.
행정구역은 1895년 5월 26일 칙령 제98호에 의거 현(縣)에서 군(郡)으로 그 명칭이 변경되었다. 1896년 8월 4일 칙령 제36호에 의거 강원도에 편입되었다가 1963년 1월 1일 법률 제1172호에 의거 경상북도에 편입되었다.
1909년 6월 25일 법률 제20호로 구역과 명칭변경에 따라 면(面)과 리(里)를 결정하였다. 1914년 3월 1일 부령 제111호에 의거 부(府), 군(郡), 면(面)의 조정에 따라 평해군(平海郡)을 울진군에 통합해 지금까지 내려오고 있다.
1914년에 8개 면과 81개 법정 동으로 개편한 후 1953년까지는 울진면, 북면, 서면, 근남면, 원남면, 기성면, 평해면, 온정면으로 구성되었다. 울진군에는 1945년 11월 초대 노기일 군수가 부임했다.
해방 이후 행정과 사회적 기반이 취약한 시대적 배경을 감안하면 상당히 어수선한 시기였다. 행정력 부재와 정치적 갈등 등 지방행정에 어려움이 상당했을 것으로 여겨지는 시기에 노기일 군수는 많은 어려움을 겪었을 것으로 예측된다. 부임 6개월 만에 2대 김수근 군수로 교체되었다.
김수근 군수는 온정 출신으로 1년 6개월을 재직하고 우익 계열의 범정당 정치 단체였던 대한촉성회에 가입하여 활동하다가 울진에서 재헌국회의원에 출마했지만, 김광준 의원에게 밀려 낙선했다.
1948년 3대 이태영 군수가 취임했다. 북면 부구3리 출신의 이태영 군수는 1년 1개월을 근무하고 1950년 6대 군수로 다시 8개월을 재임했다. 현재 망양정에 걸려있는 망양정 현판이 당시 현직에서 물러나 선거관리위원장으로 재임시 이 군수가 직접 쓴 것이다.
1949년 박재상 군수가 4대 군수로 부임했으나, 4개월의 짧은 시간을 보내고 돌아갔다. 5대 김병선 군수, 6대 이태영 군수, 7대 양기수 군수, 1952년 8대 심경섭 군수가 부임했다. 심 군수는 전쟁 이후 재건 사업에 행정력을 집중하는 등 해야 할 일들이 많았다. 1년 10개월을 재직하면서 평해면 후포리에 후포 출장소와 울진면 죽변리에 죽변출장소를 설치했다.
1954년 9대 이상용 군수, 1956년에는 10대 김병선 군수가 부임했다. 6년 만에 다시 울진군으로 부임한 김병선 군수는 2년을 재임했다. 11대 지춘식 군수, 12대 이풍섭 군수가 부임했었다. 13대 이승환 군수는 부임한지 한 달 만에 사라호 태풍으로 울진은 엄청난 피해를 보았다.
당시 울진읍 교량과 읍내3리 월변 송림 및 구만동 송림이 유실되어 없어져 버렸다. 남대천 주변 마을, 평해 전 지역, 노음초등학교가 폐허가 되어 산으로 이사해 공부해야 하는 등 울진군 전체가 아수라장이 되었다. 사라호 태풍은 울진군의 현대사에서 가장 큰 피해를 입힌 태풍으로 기록되고 있다.
14대 최병수 군수, 15대 이보규 군수, 16대 한우삼 군수가 부임했다. 11대 군수부터 16대 군수까지 재임 기간을 10개월을 넘긴 군수는 한 명도 없었다. 그중 한우삼 군수는 2개월을 재임했다.
1961년 17대 윤재선 군수, 1963년에는 18대 유명화 군수가 부임하던 시절 정부에서 국민 체육 진흥법이 제정 공포했다. 이후 울진군민의 체육 진흥책을 마련하기 위해 그해 3월 설립된 울진군체육회는 초대 회장을 유명화 군수가 맡는 등 지역에서도 체육 활동이 비약적으로 발전하는 계기가 되었다.
1963년 7월에 19대 배태민 군수가 부임했으며, 후임인 제20대 김형기 군수는 부임 3개월 만에 발령장 잉크가 마르기도 전에 되돌아갔다. 1964년 21대 최종호 군수, 22대에는 이상배 군수가 부임했다. 울진에 초임 발령을 받은 이상배 군수는 이후 경북도지사,
서울시장 등을 역임하고 15대~17대 국회의원까지 지냈다.
1967년 부임한 23대 홍순호 군수는 북면에 하당출장소를 설치하였다. 이에 울진군의 행정구역은 8개 면 3개 출장소로 확대 개편했다. 3년 9개월을 울진군수로 재직해 관선 군수로는 최장기간 재임한 군수가 되었다.
1971년 24대 김일규 군수, 1972년 25대 권명흠 군수, 1973년 26대 봉기수 군수가 부임했으며, 최초로 민원실을 설치해 행정서비스를 도입하는 계기를 마련했다. 1975년 27대 정용운 군수는 부군수제가 도입해 70년에 신설된 감사실과 1973년에 신설된 새마을과를 폐지하고 대신 새마을계, 개발계, 감사계, 기획예산계, 새마을상황실을 부군수 소속으로 관할을 변경하였다.
1977년 28대 김용대 군수, 1979년 부임한 29대 김성록 군수는 울진면을 울진읍으로 승격시켰다. 또한 부군수제가 폐지되고 새마을상황실을 새마을과로 부활하고 감사와 기획예산업무는 내무과로 통합되었다. 그리고 사회과를 신설하고 성류굴 관리사무소를 설치했으며, 덕구온천 개발권을 허가해 주었다.
1980년 부임한 30대 곽춘식 군수는 평해면을 평해읍으로 승격시켰다. 또 새마을과에 소속되어 있던 주택계가 건설과로 이전했다. 1981년에 백암온천개발사업소를 설치하였다. 1982년 31대 김재권 군수가 부임했다.
83년에는 군위 군수를 지냈던 이병목 군수가 32대 울진군수로 부임해 내무과 통계계가 서무통계계로 명칭이 바뀌고 내무과에 소속되어 있던 병사계가 민방위과로 그 소속을 변경했다. 국도 36호선 개통에 맞추어 서면 전곡리(前谷里) 일부를 봉화군 석포면(石浦面)에 편입시켜 행정구역을 변경했다. 또한 울진군수를 끝으로 공직생활을 마무리했으며, 안동에서 후학들을 위해 도서 기증과 사회활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했다.
1985년 33대 이상우 군수는 문화공보실 직제를 고쳐 문화관광계를 공보계와 문화계로 확대 개편하고 새마을과에 국토미화계를 신설하였으며, 백암온천개발사업소는 폐지했다.
86년 35대 이인향 군수가 부임했다. 울진읍 죽변출장소가 죽변면
으로, 평해읍 후포출장소가 후포면으로 승격되었으며, 86년부터 울진군의 행정구역은 2개 읍, 8개 면이 되었고 출장소는 하당만 남게 되었다. 또한 1979년 폐지되었던 부군수제를 부활하였다.
88년 35대 박상흠 군수를 거쳐, 89년 36대 남봉우 군수가 부임하면서 기획실을 신설하여 종전의 내무과에 속해 있던 서무통계·기획예산업무를 기획실로 이관하여 기획·예산·통계전산계로 개편하였다.
내무과에 통신계, 재무과에 세외수입·세무조사계를 설치하였다. 사회과의 직제를 3개 계에서 사회·환경위생·의료보장·환경보호·가정복지계 등 5개 계로 확대 개편하였다. 도시과를 신설하여 도시·주택·수도·토지관리계를 두었다. 새마을과의 건전생활계를 체육청소년계로 명칭을 바꾸고 수산과에 어업지도계를 신설하는 등 행정체계에 변화를 주었다.
91년에는 37대 김우연 군수가 울진군 행정을 책임졌다. 울진군에서 임기를 마친 김 군수는 고향 영덕에서 마지막 관선 군수로 부임했다가 명예퇴직하고 초대 민선 영덕군수에 당선됐다. 하지만 2004년 11월 뇌물수뢰혐의로 군수직에서 물러나는 등 불명예도 함께 안았다.
92년 부임한 38대 신현택 군수는 산림과에 지도계, 건설과에 방제계를 신설하였으며, 민방위과의 소방계는 광역자치단체로 이관시켰다. 93년 39대 김동희 군수는 사회과를 사회진흥과로 명칭을 바꾸고 종전의 새마을계와 체육청소년계를 폐지하고 사회진흥계, 건전생활계를 신설하였다.
또한 환경보호과의 폐기물과를 청소계로, 산업과의 잠특계를 유통잠특계로 각각 그 명칭을 변경하였다. 내무과에 민원계와 온정수질환경 사업소를 설치하였다. 도시과의 토지관리계와 재무과의 지적계를 통합하여 지적과를 신설하고 여기에 지적정보관리 기능을 포함시켰다.
95년 1월에 부임한 제40대 남정덕 군수는 6개월의 짧은 임기를 채우고 민선 군수 시대를 열어주고는 관선 군수 마지막을 장식했다.
본격적인 지방자치 시대를 맞이하여 지역의 일꾼을 지역민 스스로의 손으로 뽑아야 한다는 취지 아래 전격 실시된 지방선거에서 군수를 선출했다. 1995년 7월 초대 전광순 민선 군수가 처음으로 군정을 펼쳤다.
1998년 출범한 민선 2기 군수에는 신정 군수, 2002년 시작된 민선 3기와 민선 4기에는 김용수 군수, 2010년 민선 5기와 민선 6기에는 임광원 군수가 열어가고 있다.



울진의 행정 역사는 1895~1944년까지를 근대로, 1945년 이후를 현대로 구분된다.
행정구역은 1895년 5월 26일 칙령 제98호에 의거 현(縣)에서 군(郡)으로 그 명칭이 변경되었다. 1896년 8월 4일 칙령 제36호에 의거 강원도에 편입되었다가 1963년 1월 1일 법률 제1172호에 의거 경상북도에 편입되었다.
1909년 6월 25일 법률 제20호로 구역과 명칭변경에 따라 면(面)과 리(里)를 결정하였다. 1914년 3월 1일 부령 제111호에 의거 부(府), 군(郡), 면(面)의 조정에 따라 평해군(平海郡)을 울진군에 통합해 지금까지 내려오고 있다.
1914년에 8개 면과 81개 법정 동으로 개편한 후 1953년까지는 울진면, 북면, 서면, 근남면, 원남면, 기성면, 평해면, 온정면으로 구성되었다. 울진군에는 1945년 11월 초대 노기일 군수가 부임했다.
해방 이후 행정과 사회적 기반이 취약한 시대적 배경을 감안하면 상당히 어수선한 시기였다. 행정력 부재와 정치적 갈등 등 지방행정에 어려움이 상당했을 것으로 여겨지는 시기에 노기일 군수는 많은 어려움을 겪었을 것으로 예측된다. 부임 6개월 만에 2대 김수근 군수로 교체되었다.
김수근 군수는 온정 출신으로 1년 6개월을 재직하고 우익 계열의 범정당 정치 단체였던 대한촉성회에 가입하여 활동하다가 울진에서 재헌국회의원에 출마했지만, 김광준 의원에게 밀려 낙선했다.
1948년 3대 이태영 군수가 취임했다. 북면 부구3리 출신의 이태영 군수는 1년 1개월을 근무하고 1950년 6대 군수로 다시 8개월을 재임했다. 현재 망양정에 걸려있는 망양정 현판이 당시 현직에서 물러나 선거관리위원장으로 재임시 이 군수가 직접 쓴 것이다.
1949년 박재상 군수가 4대 군수로 부임했으나, 4개월의 짧은 시간을 보내고 돌아갔다. 5대 김병선 군수, 6대 이태영 군수, 7대 양기수 군수, 1952년 8대 심경섭 군수가 부임했다. 심 군수는 전쟁 이후 재건 사업에 행정력을 집중하는 등 해야 할 일들이 많았다. 1년 10개월을 재직하면서 평해면 후포리에 후포 출장소와 울진면 죽변리에 죽변출장소를 설치했다.
1954년 9대 이상용 군수, 1956년에는 10대 김병선 군수가 부임했다. 6년 만에 다시 울진군으로 부임한 김병선 군수는 2년을 재임했다. 11대 지춘식 군수, 12대 이풍섭 군수가 부임했었다. 13대 이승환 군수는 부임한지 한 달 만에 사라호 태풍으로 울진은 엄청난 피해를 보았다.
당시 울진읍 교량과 읍내3리 월변 송림 및 구만동 송림이 유실되어 없어져 버렸다. 남대천 주변 마을, 평해 전 지역, 노음초등학교가 폐허가 되어 산으로 이사해 공부해야 하는 등 울진군 전체가 아수라장이 되었다. 사라호 태풍은 울진군의 현대사에서 가장 큰 피해를 입힌 태풍으로 기록되고 있다.
14대 최병수 군수, 15대 이보규 군수, 16대 한우삼 군수가 부임했다. 11대 군수부터 16대 군수까지 재임 기간을 10개월을 넘긴 군수는 한 명도 없었다. 그중 한우삼 군수는 2개월을 재임했다.
1961년 17대 윤재선 군수, 1963년에는 18대 유명화 군수가 부임하던 시절 정부에서 국민 체육 진흥법이 제정 공포했다. 이후 울진군민의 체육 진흥책을 마련하기 위해 그해 3월 설립된 울진군체육회는 초대 회장을 유명화 군수가 맡는 등 지역에서도 체육 활동이 비약적으로 발전하는 계기가 되었다.
1963년 7월에 19대 배태민 군수가 부임했으며, 후임인 제20대 김형기 군수는 부임 3개월 만에 발령장 잉크가 마르기도 전에 되돌아갔다. 1964년 21대 최종호 군수, 22대에는 이상배 군수가 부임했다. 울진에 초임 발령을 받은 이상배 군수는 이후 경북도지사,
서울시장 등을 역임하고 15대~17대 국회의원까지 지냈다.
1967년 부임한 23대 홍순호 군수는 북면에 하당출장소를 설치하였다. 이에 울진군의 행정구역은 8개 면 3개 출장소로 확대 개편했다. 3년 9개월을 울진군수로 재직해 관선 군수로는 최장기간 재임한 군수가 되었다.
1971년 24대 김일규 군수, 1972년 25대 권명흠 군수, 1973년 26대 봉기수 군수가 부임했으며, 최초로 민원실을 설치해 행정서비스를 도입하는 계기를 마련했다. 1975년 27대 정용운 군수는 부군수제가 도입해 70년에 신설된 감사실과 1973년에 신설된 새마을과를 폐지하고 대신 새마을계, 개발계, 감사계, 기획예산계, 새마을상황실을 부군수 소속으로 관할을 변경하였다.
1977년 28대 김용대 군수, 1979년 부임한 29대 김성록 군수는 울진면을 울진읍으로 승격시켰다. 또한 부군수제가 폐지되고 새마을상황실을 새마을과로 부활하고 감사와 기획예산업무는 내무과로 통합되었다. 그리고 사회과를 신설하고 성류굴 관리사무소를 설치했으며, 덕구온천 개발권을 허가해 주었다.
1980년 부임한 30대 곽춘식 군수는 평해면을 평해읍으로 승격시켰다. 또 새마을과에 소속되어 있던 주택계가 건설과로 이전했다. 1981년에 백암온천개발사업소를 설치하였다. 1982년 31대 김재권 군수가 부임했다.
83년에는 군위 군수를 지냈던 이병목 군수가 32대 울진군수로 부임해 내무과 통계계가 서무통계계로 명칭이 바뀌고 내무과에 소속되어 있던 병사계가 민방위과로 그 소속을 변경했다. 국도 36호선 개통에 맞추어 서면 전곡리(前谷里) 일부를 봉화군 석포면(石浦面)에 편입시켜 행정구역을 변경했다. 또한 울진군수를 끝으로 공직생활을 마무리했으며, 안동에서 후학들을 위해 도서 기증과 사회활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했다.
1985년 33대 이상우 군수는 문화공보실 직제를 고쳐 문화관광계를 공보계와 문화계로 확대 개편하고 새마을과에 국토미화계를 신설하였으며, 백암온천개발사업소는 폐지했다.
86년 35대 이인향 군수가 부임했다. 울진읍 죽변출장소가 죽변면
으로, 평해읍 후포출장소가 후포면으로 승격되었으며, 86년부터 울진군의 행정구역은 2개 읍, 8개 면이 되었고 출장소는 하당만 남게 되었다. 또한 1979년 폐지되었던 부군수제를 부활하였다.
88년 35대 박상흠 군수를 거쳐, 89년 36대 남봉우 군수가 부임하면서 기획실을 신설하여 종전의 내무과에 속해 있던 서무통계·기획예산업무를 기획실로 이관하여 기획·예산·통계전산계로 개편하였다.
내무과에 통신계, 재무과에 세외수입·세무조사계를 설치하였다. 사회과의 직제를 3개 계에서 사회·환경위생·의료보장·환경보호·가정복지계 등 5개 계로 확대 개편하였다. 도시과를 신설하여 도시·주택·수도·토지관리계를 두었다. 새마을과의 건전생활계를 체육청소년계로 명칭을 바꾸고 수산과에 어업지도계를 신설하는 등 행정체계에 변화를 주었다.
91년에는 37대 김우연 군수가 울진군 행정을 책임졌다. 울진군에서 임기를 마친 김 군수는 고향 영덕에서 마지막 관선 군수로 부임했다가 명예퇴직하고 초대 민선 영덕군수에 당선됐다. 하지만 2004년 11월 뇌물수뢰혐의로 군수직에서 물러나는 등 불명예도 함께 안았다.
92년 부임한 38대 신현택 군수는 산림과에 지도계, 건설과에 방제계를 신설하였으며, 민방위과의 소방계는 광역자치단체로 이관시켰다. 93년 39대 김동희 군수는 사회과를 사회진흥과로 명칭을 바꾸고 종전의 새마을계와 체육청소년계를 폐지하고 사회진흥계, 건전생활계를 신설하였다.
또한 환경보호과의 폐기물과를 청소계로, 산업과의 잠특계를 유통잠특계로 각각 그 명칭을 변경하였다. 내무과에 민원계와 온정수질환경 사업소를 설치하였다. 도시과의 토지관리계와 재무과의 지적계를 통합하여 지적과를 신설하고 여기에 지적정보관리 기능을 포함시켰다.
95년 1월에 부임한 제40대 남정덕 군수는 6개월의 짧은 임기를 채우고 민선 군수 시대를 열어주고는 관선 군수 마지막을 장식했다.
본격적인 지방자치 시대를 맞이하여 지역의 일꾼을 지역민 스스로의 손으로 뽑아야 한다는 취지 아래 전격 실시된 지방선거에서 군수를 선출했다. 1995년 7월 초대 전광순 민선 군수가 처음으로 군정을 펼쳤다.
1998년 출범한 민선 2기 군수에는 신정 군수, 2002년 시작된 민선 3기와 민선 4기에는 김용수 군수, 2010년 민선 5기와 민선 6기에는 임광원 군수가 열어가고 있다.



ⓒ 울진뉴스 & uljinnews.com 무단전재-재배포금지(문의 054-781-6776)
NEWS TOP 3
추천뉴스
정치/행정/의회
more +-
경북도, 지역별 전기요금제 조기 시행 촉구… 울진 최대 수혜지역 평가
경상북도가 국내 최대 전력 생산지역의 역할과 희생을 전기요금 체계에 반영하는 '지역별 전기... -
새벽 일터에서 군정을 듣다! 민선 9기 첫 현장군수실 운영
울진군(군수 황이주)은 민선 9기 군정 비전인 '변화와 혁신! 도약하는 울진'을 실현하기 위해 군민의... -
울진군, 가뭄 관심단계 선제 대응 농업용수 확보 기반 강화
울진군은 올해 누적 강수량이 455㎜로 평년(605㎜)의 75%, 평균 저수율은 61%로 평년(71%) 대비... -
2025년 관광택시 1기 1,886건·5,583명 이용성과 바탕으로 2기 확대 운영 시작
울진군(군수 황이주)은 지난 31일 2026년 관광택시 발대식을 개최하고 울진군 관광택시 2기 사업의 힘...
사회/경제/교육
more +-
울진 꼬마발명가들, AI로 게임 만들고 강릉에서 발명을 만나다
울진교육지원청(교육장 이기협) 과학발명교육센터가 관내 초등학교 4~6학년 학생들을 대상으로 창의... -
울진국유림관리소, 지자체와 더불어 하천·계곡 불법행위 합동 점검 실시
울진국유림관리소(소장 김기한)에서는 울진군청 산림과와 함께 최근 여름철 관광객 방문이 급증하는 ... -
국립울진해양과학관, ‘제1회 KOSM 국민안전점검단 모집’
해양수산부 산하 공공기관인 국립울진해양과학관(관장 김외철, 이하 해양과학관)은 오는 8월 3일부터 21... -
후포초, ‘한수원 2026년 울진군 초등학생 방학 중 점심도시락 바우처 지원 사업’으로 시원한 방학 선물
후포초등학교(교장 김은희)는 이번 방학 동안 한국수력원자력(주) 한울원자력 본부의 지원으로 추진...
원자력소식
more +-
한울원자력본부, 울진군 부구천 산책로 조성 지원
한국수력원자력(주) 한울원자력본부(본부장 이용희, 이하 한울본부)는 한수원 지원사업의 일환인 ‘부... -
한울본부, 2027년도 한수원지원사업 공모 시행
한국수력원자력(주) 한울원자력본부(본부장 이용희, 이하 한울본부)는 오는 7월 31일(금)부터 8월 31... -
한울본부, 울진 소상공인 최대 5천만 원 금융지원
한울원자력본부가 경기침체와 소비 위축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울진지역 소상공인의 경영 안정을 ... -
한울본부, 신한울3·4호기 건설현장 용접사 양성 하반기 교육생 모집
한국수력원자력(주) 한울원자력본부(본부장 이용희, 이하 한울본부)는 한수원, 울진군, 현대 컨소시엄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