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밀번호를 입력해주세요.

로그인을 하시면
다양한 서비스를
제공받으실 수 있습니다.

어머니의 보따리

  • 기자
  • 입력 2014.10.02 12:20
  • 글자크기설정

며칠 전 오후, 부산 서구 아미파출소에 “할머니 한 분이 보따리 두 개를 든 채 한 시간째 동네를 서성이고 있다”는 신고가 들어왔다. 신고를 받은 경찰관들이 곧바로 현장에 도착했다. 경찰관들의 질문에 할머니는 “지금 딸이 아기를 낳고 병원에 있다”는 말만 반복할 뿐, 자신의 신상에 관한 것은 아무 것도 기억하지 못하며 그저 보따리를 꼭 껴안고 눈물만 흘리고 있었다.

경찰은 당시 슬리퍼를 신고 있었던 할머니 차림새로 보아 인근 동네 주민일 것으로 판단해 할머니를 아는 주민을 찾아 나섰다. 결국 6시간 동안 수소문하며 동네를 뒤진 끝에 할머니를 아는 이웃 주민을 만나, 할머니의 딸이 부산진구의 한 병원에 입원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냈다. 순찰차를 타고 병원에 도착한 할머니는 딸을 보자 기뻐하면서 그동안 보물단지처럼 품에 꼭 껴안고 있던 보따리 두 개를 풀었다.

경찰관들은 달라고 해도 막무가내로 거절하며 6시간째 가슴에 꼭 껴안고 있던 할머니의 보따리 두 개가 궁금했다. 마침내 “어여 무라(어서 먹으라)”는 말과 함께 펼친 보따리에는 비록 이미 식어버렸지만 출산한 딸에게 먹일 미역국과 밥, 반찬 등이 들어있었다. 온전치 못한 정신에도 자신에게 먹일 미역국을 품에 안고 온 엄마를 본 딸은 펑펑 눈물을 쏟아냈다. 그제서야 함께 갔던 경찰관들은 고개를 끄떡이며 병원 직원들과 함께 눈물을 흘렸다.

이 같은 사실은 지난 17일 부산지방경찰청 트위터에 ‘치매를 앓는 엄마가 놓지 않았던 기억 하나’라는 제목으로 사연이 소개되면서 뒤늦게 알려졌다. 트위터에서 이 글을 본 네티즌들은 “감동이다”, “치매 할머니, 정말 눈물 나”, “엄마가 못하는 일은 없나 봅니다.”, “모성애는 그 어떤 것보다도 강하네요.”라는 댓글을 올렸다.

자식에 대한 부모의 사랑만큼 맹목적인 것이 있을까? 아낌없이 다 내어 주고도 더 주고 싶은 것이 자식을 향한 부모의 사랑이다. 그래서 예로부터 아버지는 엄하시고 어머니는 자애로우시니 엄부자모(嚴父慈母)란 말로 부모를 일컬었다.

어머니의 자식 사랑을 뜻하는 말에 ‘의문지망(倚門之望)’이라는 말이 있다. 글자 그대로 문에 기대서서 바라본다는 뜻으로, 자식이 성장하여 먼 길을 떠나게 되면 어머니는 걱정되어 그 아들이 돌아올 때까지 문 밖에서 기다린다는 말이다. 자식을 향한 부모의 간절한 마음을 비유하는 이 말은 중국 춘추시대 제(齊)나라 왕손가(王孫賈)의 고사에서 유래하였다. 그의 어머니는 “네가 아침에 나가 늦게 돌아올 때면 나는 대문에 기대 네가 돌아오는지 바라보았고, 네가 저녁에 나가 돌아오지 않으면 나는 마을 입구 문 앞에 기대서서 네가 돌아오기를 기다렸다(汝朝出而晩來, 則吾倚門而望, 汝暮出而不還, 則吾倚閭而望)” 이 고사(故事)는《전국책(戰國策)》의〈제책(齊策)〉편에 실려 있다.

양주동 선생이 작사한《어머니 마음》의 노랫말 가운데 “어려선 안고 업고 얼러 주시고, 자라서는 문 기대어 기다리는 맘. 앓을사 그릇될사 자식 생각에, 고우시던 이마 위에 주름이 가득”이라는 표현이 바로 그 의문망(倚門望)이다.

공자(孔子)도 “부모님이 살아 계실 때는 멀리 다니지 않고, 혹시라도 가게 되면 반드시 가는 곳을 알려야 한다(父母在 不遠遊 遊必有方)”고 하였다. 이렇듯 자식이 다 커서 어른이 되어도 자식을 걱정하는 부모의 노파심(老婆心)은 가실 날이 없다.

명(明)나라 때 박물학자 이시진(李時珍)이 지은《본초강목(本草綱目)》에는 까마귀 습성에 대한 다음과 같은 내용이 실려 있다. 까마귀는 새끼가 부화한 지 60일 동안 어린 새끼를 위해 먹이를 물어다 주며 키운다. 온갖 벌레들을 잡아와서 새끼에게 먹일 때는 먹은 것을 다시 토해 새끼가 먹기 좋도록 잘게 썰어 먹인다. 어미의 정성스러운 보살핌으로 새끼가 다 자란 후, 시간이 지나 어미가 먹이사냥에 힘이 부치면 이번에는 새끼가 어미가 했던 방식 그대로 따라하면서 어미를 먹인다.

이렇듯 까마귀가 어미를 되먹이며 봉양하는 습성을 ‘반포(反哺)’라고 하는데 어미에게 되먹이는 까마귀의 효성이라는 뜻으로, 어버이의 은혜에 대한 자식의 지극한 효도를 이르는 말이다. 까마귀의 이런 습성을 두고 예로부터 사람들은 까마귀를 일러 어진 새(慈烏) 또는 반포조(反哺鳥)라 칭송했고, 어버이의 은혜에 대한 자식의 지극한 효도를 일러 ‘반포지효(反哺之孝)’라 했다.

까마귀의 효성을 빗대어 자신의 입장을 간절하게 나타낸 고사로 이밀(李密)의《진정표(陳情表)》를 들 수 있다. 이밀은 진(晉) 무제(武帝)가 자신에게 높은 관직을 내리지만 홀로 늙으신 할머니를 봉양하고 있는 상황에서 큰 고민에 빠지고 말았다. 결국 그는 죽음을 무릅쓰고 관직을 사양한다. 무제는 이밀의 관직 사양을 불사이군(不事二君)의 불충이라고 크게 화내면서 처벌하라고 명령을 내렸다. 그러자 이밀은 글을 올려 다음과 같이 말했다.
 
“저는 어려서 일찍 부모님을 여의고 할머니 손에 자라 오늘에 이르렀습니다. 제가 관직에 나아가면 홀로 남은 할머니를 봉양할 사람이 없습니다. 한낱 미물인 까마귀도 자기를 길러준 어미에 대한 지극한 효성(反哺之孝)이 있다고 합니다. 사람으로 태어난 제가 늙으신 할머니를 까마귀가 어미 새의 은혜에 보답하려는 마음으로 돌아가시는 날까지만 봉양할 수 있도록 넓은 마음으로 헤아려 주십시오(烏鳥私情, 願乞終養)”.

이밀이 올린 진정표를 읽고 감동을 받은 무제는 그에게 할머니를 잘 봉양할 수 있도록 최선의 배려를 하도록 조서를 내렸다.

까마귀에 대한 인식은 중국이나 우리나라나 거의 같다. 보통 까마귀는 음침한 울음소리와 검은 색깔로 멀리 하는 새이며, 좋지 않은 의미로 많이 사용되었고 흉조라고 여겨져 왔다. 또 까마귀는 시체를 먹는 불결한 속성이 있어 까마귀밥이 되었다고 하면 곧 죽음을 의미한다. 이렇듯 까마귀는 불길한 징조의 대명사로 인식되어 왔지만, 인간이 반드시 본받아야 할, 간과할 수 없는 습성도 있다.

동서고금을 통해 역사상 수많은 문학작품들을 살펴보면, 끝없는 자애와 헌신으로 자녀를 위하여 일생을 보내는 어머니의 모습이, 시간과 공간을 초월하여 표현되어 있다. 그 양상을 보면, 하나는 자녀를 위하여 다 하지 못한 모정(母情)을 드러낸 작품들이고, 다른 하나는 끝없는 어머니의 사랑에 대한 사모(思慕)의 정을 읊은 작품들이다. 어느 작품이나 모두 순수하고 고귀한 뜻으로 이루어졌기 때문에 읽는 이들에게 무한한 감동을 준다. 문학작품을 통해 그려지는 어머니의 무한한 사랑에 감동을 받는 것도 이러할진대, 하물며 각박한 현실에서 접하는 감동스러운 이야기들은 우리들로 하여금 망각하고 살아가고 있는 많은 것들을 다시 일깨워 주고 있다.

바야흐로 계절은 초가을의 문턱을 넘어서고 있다. 추석도 지나버린 들녘은 황금색으로 바뀌었고 푸르던 산천도 붉게 물들기 시작했다. 벌초를 마친 계곡의 여러 산소도 이제는 차디찬 겨울을 맞이할 준비를 한다. 이제 한 해를 마무리하는 행사로 시제(時祭)만 남았다. 오늘의 나를 있게 하신 조상님들의 음덕에 감사하며, 그 분들의 무한한 자식사랑의 뜻을 기리고 받드는 모습을 자식들에게 보여주는 일이야말로 후손으로서 대(代)를 이어가며 마땅히 해야 할 의무이자 본분이다.

딸을 만나기 전에는 아무에게도 보여주지 않고 가슴에 꼭 껴안고 있다가 딸을 보자 비로소 풀어놓은 할머니의 미역국 보따리처럼, 나는 어려서부터 지금까지 부모님으로부터 어떤 보따리를 물려받았는지, 또 내 자식들에게 물려줄 보따리에는 무엇을 담을 것인지 바쁜 시간이라도 잠시 짬을 내 하늘을 한 번 올려보며 곰곰이 생각해 보자. 끝없이 넓고 드높은 푸른 가을하늘이다.
ⓒ 울진뉴스 & uljinnews.com 무단전재-재배포금지(문의 054-781-6776)

추천뉴스

  • 금강송배 전국 유소년클럽 축구대회, 울진서 열전 돌입
  • 새벽 일터에서 군정을 듣다! 민선 9기 첫 현장군수실 운영
  • 울진군, 가뭄 관심단계 선제 대응 농업용수 확보 기반 강화
  • 2025년 관광택시 1기 1,886건·5,583명 이용성과 바탕으로 2기 확대 운영 시작
  • 울진군, ‘햇빛소득마을 조성사업’ 공모 선정
  • 울진군 청년 창업 지원사업 지역 문화의 성과로 청년 예술가 정효민 개인전 개최
  • 울진 꼬마발명가들, AI로 게임 만들고 강릉에서 발명을 만나다
  • 제293회 울진군의회 임시회 개회!
  • 한울원자력본부, 울진군 부구천 산책로 조성 지원
  • 울진군, ‘왕피천유역 생태·경관보전지역’ 하반기 주민감시원 운영

포토뉴스

more +

해당 기사 메일 보내기

어머니의 보따리

보내는 분 이메일

받는 분 이메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