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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4년 원남면 동인약방(同仁藥房) 사절서(仕切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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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4.10.02 12: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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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자료는 일제강점기인 소화(昭和) 9년(1934년)과 14년(1939년)에 경성(京城) 남대문통(南大門通) 이정목(二丁目)에 자리한 주식회사 신정약방(新井藥房)에서 강원도 울진군 원남면(遠南面) 신흥리(新興里)에 소재한 동인약방(同仁藥房)으로 보낸 사절서(仕切書)이다.

사절서(仕切書)는 일본에서 에도시대(江戸時代)부터 상품 거래의 중개 업무에서 해당 수취인 도매상이나 운송선 도매상 등의 거래와 결재에서 사용됐던 문서를 뜻하는 것으로, 요즘으로 치면 ‘송장(送狀)’ 또는 ‘납품서(納品書)’이다.

이는 운송 계약에서 발송인이 운송인의 청구에 따라 교부하는 서류로써, 운송 제품과 함께 도착지에 송부되어 수취인이 운송 제품의 동일성을 검사하고, 그 운송에 관한 권리 의무 관계를 나타내기 위해 일찍부터 사용되어 왔다.

소화(昭和) 9년 12월 20일에 생산된 문서를 살펴보면, 당시에 서울 신정약방에서는 울진 원남의 동인약방으로 ‘사카린(サッカリン)’ 25g들이 9봉지를 보내고 있고 금액(金額)은 620원이다.

바로 아래에는 옥대(玉代) 150원, 소포(小包) 860원으로 표기되어 있다.

옥대(玉代, ぎょくだい)는 일본어로 ‘화대’ 또는 ‘해우채’를 나타내는 말이지만, 약품 거래 시에 사용된 송장이라는 점을 감안할 때 상품 중개인에게 부담해야 하는 일종의 ‘수수료’나 ‘수고비’ 정도로 보는 것이 타당할 듯하다.

품명(品名)란의 제일 아래쪽에는 소포(小包) 금액이 860원으로 기록되어 있는데, 사카린 9봉지의 전체 가격이 620원인 점을 감안하면, 일제강점기 당시 소포를 발송하는 우편 비용이 지나치게 높았다는 점을 알 수 있다.



함께 소개하는 소화(昭和) 14년에 생산된 문서 또한 내용면에서는 별반 차이가 없다.

각종 기록에 따르면, 19세기 말에 개발된 사카린은 설탕에 비해 300배 이상의 강한 단맛을 내는 합성 감미료로 우리나라에는 일제강점기에 ‘당원’이라는 이름으로 처음 소개됐다.

사카린은 1970년대까지도 ‘뉴슈가’ 또는 ‘신화당’ 등의 이름으로 판매됐고, 일반에 널리 애용됐다.

특히 설탕과는 달리 열량이나 충치 걱정을 할 필요가 없는 사카린은 단맛을 충족시키는 감미료로 널리 사용됐지만, 1980년대 들어 세계보건기구(WHO) 산하의 국제암연구소(IARC)가 사카린을 인체 발암성이 의심되는 ‘2B군’으로 분류하면서 세계적으로 판매가 금지됐다.

다행이 최근 들어 사카린이 사람에게 암을 일으킬 확률이 매우 낮다는 과학적 사실이 명백히 밝혀지면서, 지난 7월 27일 식품의약품안전처는 인공 감미료인 ‘사카린나트륨(사카린)’의 사용 범위를 어린이 기호식품까지 허용한다고 발표했다.

앞서 1992년에 빵류, 과자, 캔디류, 빙과류, 아이스크림류, 코코아가공품, 껌, 과자류, 간장 등을 제외한 식품에서 사카린을 사용할 수 있도록 규제를 푼데 이어, 2014년에 사용 가능한 대상을 큰 폭으로 확대한 것이다.

사실상 전면적으로 허용한 것인데, 사카린이 30여년 만에 그동안 뒤집어쓰고 있던 발암 물질이라는 억울한 누명을 벗은 셈이다.

일제강점기에 왜 약방에서 사카린을 구입하고 또 판매했는지 지금으로서는 미루어 짐작하기가 쉽지 않다.

단순하게 식재료의 하나로 약방에서 사카린을 판매했는지, 아니면 약방에서도 약의 조제가 가능했던 당시에 사카린을 약재의 한가지로 사용했는지 명확하지 않다.

다만 일제강점기의 각종 자료에 따르면, 소화불량에 사카린을 먹어서 소화를 도왔다거나, 부스럼 치료에 사카린과 밀가루를 혼합 반죽하여 환부에 붙였다는 식으로 민간요법(?) 수준의 의학상식이 널리 통용됐던 점을 상기할 때, 사카린이 약재의 하나로 사용되지 않았을까 유추할 수 있을 뿐이다.

특히 일제강점기에 생산 판매된 다양한 종류의 약(藥) 가운데 사카린이 염산키니네(鹽酸kinine, 금계랍 金鷄蠟-해열·진통제)와 더불어 가장 이문이 많이 남는 품목이었다는 증언은 곳곳에서 기록으로 확인할 수 있다.

이 자료는 일제강점기의 제약사(製藥史)에 더해, 울진 지역의 사회상을 단면적으로 확인할 수 있는 자료로써 가치가 뛰어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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