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행복을 담아드리는 포크레인

화려한 무대의상은 아니지만 감칠맛 나는 목소리에 능숙한 진행 솜씨로 박기봉(52세)씨는 어르신들의 마음을 즐겁게 해주고 있다. 음악 동아리 회원들을 이끌고 자원봉사를 수년째하고 다니며 몸으로 익힌 노하우로 고향 집 마을회관 준공식에서 그 끼를 발휘하고 있다.
“oo 아버지”, “oo 어머이” 기봉씨는 연신 동네 어르신들의 이름을 부르며 노래와 여흥을 이끌어내고 있다. 어르신들은 박수를 치며 하나둘씩 둥실둥실 어깨춤을 추며 무대로 향한다. 그 와중에도 손님들 먹을 음식이 부족함이 없도록 기봉씨는 동네청년들에게 연신 손짓으로 서빙을 독려하며 행사를 진행하고 있다. 
중학생 교복... 부러웠다!
기봉씨의 고향은 울진읍 호월2리 일명 용재라는 마을이다. 동네에서 10리 정도를 걸어 가야 하는 신림초등학교를 졸업했다. 그러나 친구들이 중학교를 진학할 때 기봉씨는 중학교에 다니지 못하고 농사일을 해야 했다.
9남매에 먹고 살기 어려운 가정형편 탓에 중학교 진학은 엄두도 내지 못했다. 농사일을 하다가 친구들이 교복을 입고 등하교할 때 부끄럽기도 했지만, 부러운 마음이 더 강했다. 어쩌면 철이 없다고나 할까? “뻔한 집안 사정으로 한사람이라도 일손을 도와야 하는데 중학교를 보내달라고 떼를 쓰고 했으니 부모님인들 속마음은 편했겠어요.”
하지만 기봉씨는 부모님의 마음을 헤아릴 생각도 없었다. 학교 가는 것 이외에는 아무 생각이 없었다. 답답한 기봉씨 마음과 달리 부모님은 알았다고 대답만 하고는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고 했다. 기봉씨는 추수가 끝날 때쯤 신림초등학교를 찾아가 선생님께 어떻게 하면 중학교에 갈 수 있냐고 물어보았다고 한다.
기봉씨는 당시 정확한 기억은 아니지만, 선생님이 가르쳐 준 대로 읍사무소에 찾아가서 호적등본인지 주민등록 등본인지를 발부받아 모교 초등학교에 직접 주었다고 했다. 중학교 취학통지서가 나오면 부모님도 어쩔 수 없을 것 같았기 때문이다.
우여곡절 끝에 친구들보다 한해 늦게 중학교에 입학했지만, 기초실력 부족과 공부에는 취미가 없었는지 학업성적은 늘 바닥을 쓸고 다녔다. 어렵게 시작한 중학교 생활이지만 이러다가 고등학교 진학은 물 건너 가는 것 같았다.
중3 신학기를 시작하면서 나름 결의를 다졌다. 막상 고등학교 진학을 위해 공부를 시작하려고 해도 도움을 주는 이가 없었다. 암기과목 위주로 무조건 외우기 시작했다. 국·영·수는 기초가 부족해 따라가기가 어려웠다.
그래도 나름 열심히 노력한 결과 울진종고 농업과에 입학할 수 있었다. 부모님도 시험에 합격해 진학한 아들을 더 이상 뭐라고 말하지는 않았지만 학비 등 돈 들어가는 것에 대해 걱정을 하셨다. 
나의 인생 목표는...
다행히 고등학교 진학 후 채소포 당번을 맡아 3년 동안 학비를 면제 받는 등 돈 걱정없이 학교를 다닐 수가 있었다. 그러나 고등학교를 졸업 후 대학은 엄두도 내지 못했다. 기봉씨는 스스로 돈을 벌어서 대학을 가야겠다는 생각에 누나와 형님들이 있는 부산으로 내려갔다.
지인의 소개로 가스밸브 안전장치를 만드는 조그마한 회사에 취직을 했다. 돈도 벌고 공부도 하면서 대학 진학에 대한 꿈을 이어가고 싶었다. 그러나 현실은 그리 만만하지 않았다. 퇴근해서 집에 들어오면 피곤해서 책이고 뭐고 다 필요 없고 잠이 최고였다.
젊은 친구가 나름 열심히 사는 모습을 지켜보던 동네 형님이 중장비 기술자 시험에 한번 응시해보지 않겠냐고 제의했다. 당시 포크레인과 같은 중장비를 운전하는 사람들의 숫자가 그리 많이 없어서 망설여졌다.
전혀 생각하지 못한 분야에서 일을 해야 한다는 두려움과 장래 등 여러 가지 고민을 해 보았지만 뾰족한 묘책은 없었다. 포크레인 사업을 하고 있던 그 형님은 수시로 찾아와서 자신의 일터로 기봉씨를 데리고 다니며 기술이 있어야 나중에 대접을 받는다며 중장비 기술을 배울 것을 건했다.
중장비 시험 문제지를 구입해 와서 시험만이라도 쳐보라는 그분의 성하에 못 이겨 응시를 했다. 운이 좋았던지 중장비 면허증을 따고 나니 이곳저곳에서 일을 해보자고 찾아오는 사람들이 생겼다.
포크레인 기사 박기봉
83년 늦가을, 우여곡절 끝에 거제도 지세포에 건설 중인 지하 저장고 시설 현장에서 처음으로 포크레인 보조 기사로 취업이 됐다. 아직 이쪽 계통 일에 익숙하지 못한 탓도 있었겠지만 하루 24시간 2교대로 포크레인 운전을 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또한 국산 장비가 전무했던 당시에는 일본 장비를 개조하거나 낡은 장비를 수리해서 사용하다 보니 수시로 고장이 났다. 장비를 수리하다가 부속이 없어 직접 제작하거나 큰 도시에서 부품이 올 때까지 마냥 기다리는 날도 허다했다.
“하루는 나랑 교대하던 사수 운전기사가 술을 먹고 이틀 꼬박 출근을 하지 않아 기봉씨가 그 자리를 채우느라 잠 한숨 못 자면서 일을 하다 과로로 쓰러지는 등 고생도 제일 많이 했던 현장으로 기억한다.”고 기봉씨가 말했다.
이후로 광양제철 공사부지 조성, 안산 반월공단 조성사업, 부산, 양산 등 공사 현장을 옮겨 다니며 거칠다는 건설현장에서 기름밥을 수년간 먹게 됐다. 기계를 운전하다 보니 육체적인 피로보다는 정신적인 스트레스가 많은 편이었다.
기봉씨는 86년도 경남 양산 골재생산 현장에서 큰 사고를 당한 경험도 있다. 차량이 낡은 일본 하다찌 07M 기종의 포크레인을 운전하던 중 돌이 운전석으로 떨어져 크게 다쳤다. 혼수상태로 있다가 이틀 만에 깨어나는 중경상을 입고 3개월을 병원에서 지낸 적도 있었다.
그때 심정으론 다시는 장비를 운전하지 않겠다고 다짐했었는데 지금도 장비를 몰고 있다며 기봉씨는 멋쩍은 웃음을 짓는다. 사고 이후 그는 자주 사색에 빠져들었으며, 목표 없이 달려온 지신의 모습이 초라하게 느껴지기 시작했다고 했다.
기봉씨는 미래를 준비하지 못하고 지금껏 살아온 자신을 사고 이후 되돌아보면서 나름 목표를 정하고 보험과 적금을 넣기 시작했다. 생활 패턴도 바꾸고 생활비 등 꼭 필요한 곳이 아니면 돈을 쓰는 것도 줄였다.
1년이 조금 지나 노력은 결실로 이어졌다. 중고지만 할부 대금을 안고 공투 포크레인 장비를 구입했다. 기봉씨는 장비를 인수하던 그날 “내가 주인이다”라고 수십 번을 외치며 기뻐했던 일을 지금도 잊을 수 없다고 말했다.
고향으로 돌아와...
장비를 구입하고 영업을 하던 중 울진지역에서 건설업을 하시는 지인들로부터 고향에 와서 같이 일을 해보자는 제의가 들어왔다. 정확한 숫자는 아니지만 당시 울진에는 포크레인 장비가 10대도 채 안되는 것으로 기억하는 기봉씨는 사업성도 희망적이고 고향에 살고 싶다는 생각으로 88년 6월 울진으로 돌아오게 되었다.
울진에서 장비를 시작하면서 잠자는 시간도 없을 정도로 바쁘게 움직였다. 포크레인을 필요로 하는 현장이 많아서 북쪽으로 호산과 봉화 석포까지 울진군 지역을 벗어나 일을 다니기도 했다. 건설 현장도 현장이지만 그때 밭을 논으로 바꾸는 농지변경을 원하는 농민들이 많아 일감이 넘쳐났다.
일은 많이 했지만 사실 남는 돈은 별로 없었다. 고향 땅이라 사람을 믿고 거래를 하다가 공사 대금을 받지 못해 떼이는가 하면, 농민들에게는 기름값 정도만 받고 일을 해주는 등 하는 일에 비해 재정 관리가 잘 되지 않았다.
그러던 차에 대구에서 직장생활을 하고 있는 참한 아가씨가 있다며 소개팅이 들어왔다. 대구에서 맞선을 보고 첫눈에 이 여자가 내 여자구나 생각했다고 했다. 그날 이후 기봉씨는 대구를 얼마나 다녔던지 모른다.
인생의 동반자 만나...
맞선을 보고 만남이 시작 된지 5개월 만에 부인 이현숙(46세)씨와 결혼까지 골인했다. 결혼을 하고 난 이후 기봉씨의 생활은 완전히 바뀌었다. 현숙씨가 계약서랑 자금 관리 등 사업체를 관리 운영하면서 체계가 잡히고 얼마 후 전문건설업 면허도 개설하게 되었다.
기봉씨는 그동안 보고 익힌 노하우로 건설업에 본격적으로 뛰어들었다. 비슷한 분야라고 생각했지만 건설업을 하면서 부족한 점이 많음을 느끼고 공부를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어 경북전문대 토목과에 입학을 했다.
“공부는 해도 끝이 없는 것이 그때 뼈저리게 느끼게 되었지요.”라며, 배움의 한을 풀기라도 하듯 기봉씨는 망설임 없이 전문대 졸업 후 동양대학교에 편입했다. 아마도 어릴 때 배움에 대한 아픔을 경험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자신이 어렵게 공부한 탓에 딸 바보인 기봉씨는 수연(23세, 유치원 교사)과 수경(21세, 대학생) 두 딸이 계속해서 공부를 하고 싶어 하면 시켜줄 생각이다. 또한 그녀들이 필요한 물건을 사길 원하면 사주는 편이다. 물론 넘치고 과하면 가족들과 회의를 통해 사전 조율은 한다.
얼마 전에는 북면까지 출퇴근하는 큰딸이 불편할 것 같아 승용차를 선물로 사줬다. 초보운전이라 중고차를 사주라는 주변 사람들의 권유에도 기봉씨는 새차를 샀다. 늘 깨끗하고 새것으로 단장해 주고 싶은 아빠의 마음이란다.
사회봉사에 최선을 다해
기봉씨는 객지에 나가 있을 때는 느끼지 못했는데 고향동네 크고 작은 대소사 일에 인원 동원과 각자 제각기 목소리를 내면서 협력 체제를 이루지 못하는 것을 아쉬워했다. 기봉씨는 주변 선후배들을 설득하고 규합해 청년회를 구성했다.
어버이날, 효도잔치, 윷놀이 등 동네의 크고 작은 행사를 청년회가 주관하면서 청년회 단합과 어른들에게 칭송을 받는 청년회가 되었다. 이후 울진읍 청년회 가입하면서 기봉씨는 울진청년연합회 제4대 회장직을 맡아 도연합청년회 내무부회장과 감사까지 역임했다.
울진라이온스클럽과 울진음악동호회(회장 박기봉 이하 울음동)에 가입해 사회 봉사활동에도 적극적으로 동참하고 있다. 특히 울음동을 이끌고 있는 기봉씨는 울진의료원, 주간보호센터 등지에서 음악봉사 활동을 하면서 힘든 이들에게 즐거운 한때를 제공해 주고 있다.
9년 전 기봉씨 어머님(81세)은 뇌경색으로 쓰러져서 아버님인 박경율(81세) 어른이 병수발을 하신다. 부모님이 연세도 많으시고 특히 병환으로 거동이 불편한 어머님 때문에 고향 집 근처를 떠날 수 없다.
어머님의 대소변을 받아내시는 아버님께서 자식들에게 내 살아생전에는 너희 엄마를 요양원으로 보낼 의사가 없음을 확실히 다짐하는 등 자녀들의 도움도 달갑게 생각하지 않는다. 그렇지만 현숙씨가 매일 시부모님을 찾아뵙고 아버님이 힘들어하지 않을까 해서 자리를 지킨다.
기봉씨는 현장이 바쁘지 않으면 호월리 동네를 누빈다. 부모님 뿐 아니라 동네 어른들이 몸이 불편하지 않나 필요한 것이 없나 둘러본다. 자신보다 남을 위해 사는 것이 행복하다는 기봉씨는 포크레인의 웅장한 기계음도 그의 넘치는 끼를 덮을 수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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