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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화 1회 민들레 홀씨 되어

  • 울진뉴스 기자
  • 입력 2026.07.24 13: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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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오사카에서 피어난 조선(朝鮮)의 혼(魂), 이복남(李福男) 장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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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동리에서 웅치 정상으로 오르는 길 

 

1592년 8월 14일(음력 7월 8일) 아침, 웅치(熊峙) 계곡에 여명이 밝아오면서 아침 안개가 서서히 걷히고 있었다. 동이 트기 시작하자, 고갯마루 아래 세동리 마을에서 진을 치며 명령을 기다리고 있던 왜군은 다시 전면 공격을 가해왔다. 

 

조선군의 강력한 저항으로 불의의 일격을 당했던 어제와는 전혀 다른 분위기였다. 왜군은 골짜기 숲 사이로 새카맣게 몰려들었다. 

 

아직 햇살이 비치지도 않는 계곡을 타고 개미 떼처럼 스멀스멀 올라오는 왜군을 보며 조선군 병사들은 비로소 공포를 느끼기 시작했다. 왜군의 공격은 밀려오는 파도처럼 집요했다. 조선군의 화살이 날아들면 엄폐물 뒤로 숨어 납작 엎드리고 있다가, 공격이 다소 뜸해지면 다시 좀비처럼 기어 올라왔다. 

 

7~8부 능선에서 진을 치고 왜군을 저지하며 악착같이 버텨내던 조선군은 시간이 흐르면서 주 무기인 화살이 점점 바닥이 나면서 서서히 무너지기 시작했다. 

 

조선군의 저항이 눈에 띄게 약해지자, 왜군의 공격은 더 맹렬해졌다. 이미 7부 능선을 돌파한 왜군의 일부가 계곡의 북쪽 사면을 넘어서 조선군의 측면에서 돌파를 시도하고 있었다. 

 

정상 부근에서 지휘하고 있는 본진의 신호를 기다리며 상황을 예의주시하고 있던 나주판관 이복남은 전세가 극도로 불리해지자 더 이상 버틸 수 없다고 판단했다. 그는 마음이 다급해지자 참호에서 뛰쳐나와 마지막 백병전을 감행할 준비를 하고 부하들의 동태를 다시 살폈다. 화살이 떨어져 가는 상황에서 병사들도 당황하여 몸을 피해 계속 지휘관인 이복남 쪽으로 모여들었다.

 

그 순간, 날카로운 호각 소리가 계곡에 울려 퍼졌다. 호각 소리는 길게 짧게 여러 번 울렸다. 이복남은 정상부의 김제 군수 정담 장군 진영을 바라보았다. 

 

이복남의 눈에 지휘부에서 흔들고 있는 깃발이 선명하게 들어왔다. 붉은 깃발 여러 개를 좌우로 흔드는 병사들의 모습이 보였다. 정상에서 지휘하고 있던 김제 군수 정담(鄭湛)의 지휘부에서 내린 신호였다. 사전에 약속한 대로 최후 방어선으로 퇴각하라는 신호였다. 

 

이복남은 신속하게 부장에게 후퇴하라는 신호를 보냈다. 부장은 재빨리 손에 들고 있던 호각을 꺼내 길게 불었다. 이복남의 부하들은 다투어 계곡을 거슬러 미리 약속한 대로 정상 부근으로 후퇴하기 시작했다. 

 

이복남은 장검을 꺼내 들고 부하들을 독려하며 계곡을 따라 올라갔다. 그는 병사들과 함께 정상에 있는 작은 서낭당 옆길의 능선을 따라 바위 숲까지 후퇴하여 정담의 본진에 합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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덕봉길(웅치를 오르던 옛길) 

 

정담은 칼을 빼 들고 좁은 능선 소로를 노려보고 있다가 이복남이 이끄는 부하들이 올라오자, 모습을 드러냈다. 정담은 앞으로 달려 나와 긴장한 모습으로 헐레벌떡 달려오는 이복남의 손을 잡았다. 이복남의 얼굴에는 땀방울이 쉴 새 없이 흘러내렸다. 

 

“이 판관(李判官). 괜찮소? 다친 데는 없소?” 

김제 군수 정담의 목소리는 걱정스러운 얼굴로 그의 몸을 이리저리 살피며 물었다. 그의 주변에서 망을 보고 있던 부장들은 경계를 늦추지 않고 몹시 긴장하고 있었다. 이복남은 정담에게 두 손을 모아 읍하고 말했다. 

 

“괜찮습니다. 장군.”

“상황은 좀 어떻소? 왜군의 수가 너무 많으니 어쩔 수 없소. 약속한 대로 이곳에서 막아내는 도리밖에는 없게 되었소.” 

정담은 숨도 쉬지 않고 말했다. 

 

“다친 군사들이 많습니다. 지원군도 없는 상황이니 어떻게 해야 좋을지 모르겠습니다.”

이복남은 뒤를 돌아보며 부하들을 걱정하고 있었다. 좁은 능선 소로에는 다친 병사들이 서로를 챙기고 있었다. 

“알고 있소. 하루 종일 버티느라 모두가 힘든 상황이오. 지원군을 기대할 수도 없으니 무슨 수를 써서라도 우리가 여기서 적을 막아낼 수밖에 없소. 그리고 이 종사관.”

“예. 장군”

 

그의 곁에서 그림자처럼 따라다니던 종사관 이봉이 앞으로 나섰다. 

 

“종사관은 남은 약품을 골고루 나누어 치료하도록 도와주시오. 이제는 아낄 이유가 없게 되었소. 그리고 지금 남은 군사는 얼마나 되오?”

“예. 알겠습니다. 이 판관의 병력을 합쳐 전투에 투입할 수 있는 병력은 모두 육백여 명 정도가 됩니다. 황 장군의 의병부대가 아직 보이지 않고 있어서 걱정입니다.”

 

그러고 보니 세동리 마을 뒷산에 배치되었던 제1방어선의 황박이 이끄는 의병 군이 보이지 않았다. 정담은 입술을 깨물었다. 

“알았소. 이 종사관.”

 

정담이 종사관 이봉을 불렀다. 

“종사관. 자네는 즉시 저 뒤쪽에 있는 바위 숲을 지휘부로 해서 빨리 군사들을 재배치하도록 하라. 그리고 전령을 보내 의병 군의 상황을 알아보도록 하라.”

 “예. 장군.”

 

종사관 이봉은 급히 강운과 박형길을 불렀다. 두 사람에 몇 마디 지시하자 종사관 강운이 병사 몇 명을 이끌고 정상을 향해 뛰어갔다. 이봉은 박형길과 함께 군사들을 데리고 바위 숲으로 뛰어갔다. 상황을 지켜보던 이복남이 앞으로 나섰다. 그는 주변을 둘러보며 말했다.

 

“장군. 우리 나주(羅州) 군사들이 아직은 부상자가 적은 편입니다. 우리가 선봉에서 막아내겠습니다. 여기가 이 웅치를 지켜내기에 아주 좋은 곳인 것 같습니다. 우리 나주군(羅州軍)이 선봉에서 막겠습니다.”

이복남이 손을 들어 주변을 가리키며 말하고 있는데, 갑자기 정상 부근에서 소란한 움직임이 보이더니 한 무리의 조선군 병사들이 뒷걸음질 치며 몰려들었다. 종사관 강운이 선두에 서서 이들을 이끌고 뛰어왔다.

 

이복남과 정담이 앞으로 나서며 이들을 막아서서 확인하니 제1방어선을 맡고 있던 의병장 황박(黃璞)이 지휘하고 있던 부대였다. 곧이어 뒤따라 소로에 모습을 드러낸 황박이 정담과 이복남을 발견하고는 달려와 두 손을 모아 읍했다. 

 

“장군. 장군. 왜놈들이 밀고 올라와서 도저히 막을 수가 없어서…” 

그는 가쁜 숨을 몰아쉬며 연신 손으로 뒤를 가리켰다. 정담과 이복남은 얼른 황박의 손을 잡았다. 

“고생하셨소. 황 장군. 다친 데는 없소이까? 군사들은…?”

“괜찮습니다. 군사들은 피해가 좀 심각합니다. 절반은 줄어들었습니다.”

김제 군수 정담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그의 어깨를 감싸안았다. 

“자자…. 그럼 됐소. 두 분은 군사들을 뒤로 물린 다음 재정비하라고 지시하시오. 부상이 심한 자는 후방으로 옮기고 싸울 수 있는 자는 모두 투입할 수밖에 없구려. 그리고 우리는 처음에 계획했던 방어 전략을 다시 점검합시다. 자자… 모두 나를 따라오시오. 그리고…”

 

정담은 고개를 좌우로 돌려 종사관을 찾았다. 종사관 이봉(李葑), 강운(姜運), 박형길(朴亨吉)이 그의 뒤에 서서 주변을 살피고 있다가 얼른 앞으로 돌아 나왔다. 세 사람은 김제 군수 정담의 신변 가까이에서 여전히 그림자처럼 움직이고 있었다.

정담은 이복남과 황박을 번갈아 보며 주위에 있는 종사관 등을 불러 작전 지시를 했다. 이제 남은 병력은 모두 합하여 칠백여 명에 불과했다.

 

“강운, 박형길 두 분 종사관은 이 두 분의 부대가 신속하게 재정비할 수 있도록 도와주시게. 특히 황 장군 부대는 의병들이니까 더 신경 써 주시고…. 이 종사관과 두 분 장군은 나를 따라오시오.”

정상의 후 사면으로 물러난 조선군은 총사령관인 김제 군수 정담의 지휘 아래 일사불란하게 움직였다. 사전에 지형 정찰을 충분히 한 탓에 방어진지 구축에는 큰 어려움이 없었다.

 

능선의 끝자락 부근에 소로길을 가로막고 있는 바위 숲에 지휘 본부를 구축한 정담은 100여 미터 앞쪽에 나주판관 이복남이 이끄는 군사로 1차 방어벽을 구축했다. 그 뒤로 약 50미터 뒤쪽으로 황박의 의병 군으로 2차 방어벽을 형성한 다음 정담이 이끄는 주력군이 바위 숲에서 마지막 방어선을 구축하였다.


정상의 조선군이 후퇴하면서 후사면 쪽으로 퇴각하자 승기를 잡았다고 판단한 왜군은 정상을 넘어 후퇴하는 조선군을 추격했다. 

 

정상에서 바위 숲까지 100여 미터 구간은 좌우로 소나무만 우거져 있을 뿐, 몸을 숨길만한 특별한 엄폐물이 없었다. 이 때문에 후퇴하면서도 무방비로 노출된 상황에서 추격하는 왜군이 쏘는 조총에 맞아 쓰러지는 조선군 병사들의 숫자가 점점 많아졌다. 

 

좁은 능선에는 총소리와 육박전으로 창검이 부딪히는 소리와, 적인지 아군인지 알 수 없는 단말마의 비명으로 아수라장이 되었다. 좌우 낭떠러지로 떨어지는 병사들도 갈수록 늘어났다.

정찰하면서 바위 숲에 미리 숨겨놓은 화살과 창검으로 마지막 결전에 나선 정담은 바위틈에 숨어 화살로 조준사격을 하며 장정들을 독려했다. 

 

왜군은 폭이 2~3미터 정도밖에 되지 않는 좁은 능선을 따라 쉽게 전진할 수 없었다. 정상을 점령했지만, 능선을 지나 반대편 후사면은 약간의 경사가 있는 좁은 능선이 길게 이어져 있었다. 

 

양쪽 옆으로는 낭떠러지에 가까운 계곡이 형성되어 있어서 대규모 병력이 동시에 움직일 수 없었다. 길게 이어진 능선은 거의 평지로 생각될 정도로 완만한 지형이었다. 지형적으로 보면, 소수의 병력으로 방어하기에 아주 유리한 조건을 가지고 있었다. 조선군은 이러한 지형적으로 유리한 지점을 택하여 방어진지를 구축하고 소수의 병력으로 길목을 차단하고 있는 형국이었다. 

 

왜군은 좀처럼 쉽게 전진할 수 없었다. 소나무 숲을 지나면 바위로 된 엄폐물이 있었다. 선두에 배치된 황박의 의병 군은 바위 뒤에 숨어서 조총과 화살로 조준 사격하며 버티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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웅치전투 제1방어진지 의병장 황박과 200여 명의 의병이 진을 쳤다. 

 

왜군은 계속 전진을 시도했지만 그럴수록 피해는 점점 늘어만 갔다. 숨어서 쏘아대는 조선군의 조총과 화살을 피하기는 어려웠다. 왜군은 쌓여가는 시체 뒤에 숨어 총을 쏘면서 계속해서 함성만 높이 질러댈 뿐, 좀처럼 전진하지 못하고 있었다. 

전투의 소강상태는 해가 중천에 떠오를 때까지 계속되었다. 조선군과 왜군은 서로 밀고 밀리면서 치열하게 맞붙었다. 황박의 의병 군이 서서히 밀리면서 나주판관 이복남의 부대로 후퇴하여 합류했다.


시간이 흐르자, 조선군은 화살도 바닥이 났다. 이복남의 군대도 뒤로 밀리기 시작하면서 마침내 정담의 본진까지 밀렸다. 곳곳에서 화살과 조총의 화약을 달라는 소리가 빗발쳤다. 사태가 결정적으로 불리해지자 정담은 종사관 이봉에게 지시하여 이복남과 황박을 불렀다.

 

이복남과 황박이 땀으로 범벅이 되어 정담에게 달려왔다. 정담은 두 사람의 손을 잡았다. 

“두 분은 이 자리를 빨리 벗어나 관찰사께 전황을 보고하시오. 나는 이곳에서 사수하겠소.”

그의 목소리는 비장했다.

 

“아니 되옵니다. 장군. 장군께서 먼저 이곳에서 몸을 빼셔야 합니다. 장군께서는 일단 여기를 벗어나 후일을 도모하시는 것이 좋겠습니다. 여기는 우리에게 맡기고 빨리…”

바위 숲까지 다다른 왜군이 쏜 총알이 바위를 튕기자 부서진 바위 조각이 병사들을 덮쳤다. 놀란 군사들이 모두 납작 엎드렸다. 그러나 정담은 눈 하나 까딱하지 않고 꼿꼿하게 서서 우렁차게 말했다.

“이곳 지휘관은 나요. 두 분은 내 말을 들으시오. 이 능선을 내려가면 우리 군이 진을 치고 있는 안덕원(安德院)까지는 한달음에 갈 수 있소. 전라감사를 만나거든 전하시오. 나 정담이 이곳에서 뼈를 묻는다고…. 뭣들 하시오. 지체할 시간이 없소. 빨리 움직이시오.”

 

정담은 두 사람을 살리고 싶었다. 그는 두 사람의 대답이 끝나기도 전에 두 눈을 부릅뜨며 큰 소리로 말했다. 

이복남과 황박은 잠시 서로 얼굴을 쳐다봤다. 두 사람은 소매로 눈물을 훔치며 일어섰다. 김제 군수 정담의 강경한 태도로 보아 더 이상 고집을 피워봤자 소용이 없다고 생각한 것이다. 

 

어느새 왜군은 바로 코앞까지 들이닥치고 있었다. 이제 총소리는 간간이 들려왔다. 총을 쏘기에는 서로 너무 가까웠다. 곳곳에서 조선군과 왜군이 뒤섞여 창칼이 부딪치는 소리와 기합 소리, 단말마의 비명으로 아수라장을 방불케 했다. 최전방에 배치되었던 황박의 의병 군과 왜군 사이에 백병전이 벌어진 것이다.

 

잠시 후, 거의 맨주먹으로 싸우고 있던 황박의 의병 군이 왜병의 창검을 이기지 못하고 속절없이 밀리기 시작했다. 다친 의병들이 계속 밀려오자, 황박과 이복남은 당황했다. 전황은 생각보다 훨씬 심각하게 돌아가고 있었다.

 

등 뒤에서 정담의 호통 소리가 들려왔다.

“두 분은 뭘 망설이는 게요. 빨리 움직이시오. 안덕원(安德院)을 지켜야 하오. 안덕원마저 뚫리면 전주부(全州府)는 보존할 방법이 없을 거요. 서두르시오.”

 

두 사람은 잠시 망설이다가 정담을 향해 무릎을 꿇고 읍을 하고 돌아섰다. 이 자리에서 끝까지 버티면 어떤 결말이 기다리고 있을 것이라는 것쯤은 충분히 체감하고 있었다. 두 사람은 눈물을 주체할 수 없었다.

 

정담은 두 사람의 손을 잡고 힘을 주었다. 그리고 그들의 등을 밀었다. 뒤로 밀려난 두 사람은 잠시 머뭇거리다가 정담을 향해 두 손을 모았다.

“장군. 금방 돌아오겠습니다. 조금만 버텨주십시오. 장군…”

두 사람은 정담의 곁에서 호위하고 있는 종사관 이봉, 강운, 박형길과 차례로 손을 잡았다.

“장군을 잘 부탁하오. 우리 금방 돌아오리다.”

 

두 사람은 몇몇 부하들을 데리고 재빠르게 능선 아래로 사라졌다. 김제 군수 정담은 두 사람이 능선 아래로 사라지자 멀리 안덕원을 바라보았다. 산 아래에는 두목마을에서 안덕원으로 이르는 골짜기가 그림처럼 펼쳐져 있었다. 구름 한 점 없는 8월의 하늘은 너무나 뜨거웠다.


정담은 몸을 돌려 바위에 올라섰다. 이제 더 이상 물러날 곳도 없다. 뒤로는 깎아지른 낭떠러지나 다름없다. 그는 왜군과 백병전을 벌이며 사투하고 있는 부하들을 향해 소리쳤다. 

“보다시피, 좌우에는 낭떠러지다. 저 아래 안덕원으로 가려면 여기를 통과하지 않고는 갈 수 없다. 아무리 적의 수가 많다고 해도 여기에서는 방법이 없다. 바로 이 바위 숲에서 막아내야 한다.”

정담은 손으로 자신이 서 있는 바위를 가리키며 소리쳤다.

“조선의 병사들이여. 들어라. 만약 우리가 이 고개를 지키지 못한다면 이 바위 숲이 나의 무덤이 될 것이다. 모두 결연한 각오로 적을 막아야 한다. 왜놈은 한 놈도 살려두지 마라.”

 

정담이 말을 마치자, 병사들은 일제히 함성을 질렀다. 우렁참 조선군의 함성이 골짜기에 울려 퍼졌다. 

정상에서 이곳 바위 숲까지 100여 미터에 이르는 능선은 폭이 불과 2~3미터에 불과하면서 완만하게 이어져 있었다. 그리고 양쪽으로는 수십 미터에 달하는 낭떠러지로 형성되어 있어서 일렬종대로 선다고 해도 2~3줄로 이동할 방법밖에는 없다. 

 

거기에다 바위 숲으로 막힌 지점에서 보면 접근을 완벽하게 차단할 수 있는 천혜의 자연 엄폐물이었다. 지금은 바위가 굴러떨어져 좁은 통로를 막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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웅치 정상 후 사면의 왜장 바위.

김제 군수 정담은 이곳에서 왜군 1만여 명과 싸우다가 장렬하게 옥쇄했다.

 

그 사이에도 왜군은 계속 밀고 내려왔다. 조선군의 무기라고는 이제 칼과 창이 전부였다. 마침내 바위 숲에 이른 왜군과 조선군은 좁은 능선에서 밀고 밀리는 백병전에 돌입했다. 그러나 병력에서 10배가 넘는 우세를 이용한 왜군은 인해전술로 밀어붙이며 쉴 새 없이 밀고 내려왔다.

 

김제 군수 정담과 종사관들의 호통 소리는 창과 칼이 부딪치는 소리와 비명에 묻혀 더 이상 들려오지 않았다. 웅치 정상에서 두목마을로 이어지는 후사면 능선에서는 그렇게 치열한 백병전이 전개되었다. 한여름의 뜨거운 햇살마저 골짜기를 뜨겁게 달구고 있었다. 


이날, 웅치에서는 김제 군수 정담의 지휘 아래 나주판관 이복남, 의병장 황박의 부대를 합하여 1,000여 명의 군사가 1만여 명이 넘는 왜군을 맞아 치열한 전투를 벌였다. 그리고 김제 군수 정담이 지휘하는 조선군 천여 명은 이곳에서 장렬하게 옥쇄를 선택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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