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형화(紫荊花)

기사입력 2015.04.28 13: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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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장원섭(경민대학교 교수)
중국 남조(南朝) 양(梁)나라의 오균(吳均)이 쓴《속제해기(續齊諧記)》에 다음과 같은 일화가 보인다.

옛날 도성에 전진(田眞)이라는 사람이 있었다. 그는 두 아우와 함께 살았는데, 어느 날 서로 분가하기로 하고 재산을 똑같이 나누었다. 그런데 뜰에 있는 큰 박태기나무(紫荊樹) 한 그루를 놓고 어떻게 할까 하고 고민했다. 셋이서 상의한 결과 나무를 셋으로 잘라서 분배하기로 결정하였다.

다음날 아침 맏형인 전진이 나무 있는 곳으로 가봤더니 어제까지만 해도 멀쩡했던 나무가 마치 불에라도 타버린 것처럼 시들어 있었다. 놀란 전진이 동생들을 불러서 말했다.

“나무는 본래 한 줄기로 자라는 것인데 우리가 나무를 자르려고 한 것을 알고 이렇게 시들어버렸나 보다. 우리 형제도 이 나무와 다르지 않아야 하지 않겠는가. 돌아가신 부모님께서도 살아생전에 늘 형제는 서로 화목하게 지내야 한다고 말씀하셨다. 우리 형제가 이제 재산을 나누어 뿔뿔이 서로 흩어져 버리면, 제각기 망해버릴 수밖에 없지 않은가? 부모님께서 물려주신 재산을 나누어 서로 헤어지려 했던 우리는 이 나무보다도 못한 사람들이다!”

형의 말을 듣고 나서 아우들이 나무를 베어내지 않기로 하자 나무가 언제 그랬느냐는 듯 이전처럼 다시 푸른 기운을 회복하고 무성해졌다. 이 일로 크게 깨달은 형제들은 재산을 나눠 갖기로 했던 일을 취소했다. 그리고 셋이 힘을 합하여 재산을 더 열심히 일구어 가문의 효행을 드높이는 데 사용했다. 훗날 맏형인 전진은 벼슬이 태중태부(太中大夫)에 이르렀다.

이후로 ‘형수(荊樹)’ 즉 박태기나무는 형제를 나타내는 말이 되었고 박태기나무에서 피는 꽃은 ‘자형화(紫荊花)’라 하여 화목한 형제애를 비유하며 형제가 서로 화목하고 협심하여 잘산다는 뜻으로 쓰인다. 오늘날에도 형제 또는 자매, 남매 등을 표현할 때에는 흔히 나무에다 비유하기를 즐긴다. 이것은 곧 나무라는 것이 한 뿌리에서 나고 본줄기를 거쳐 가지가 무성해지기 때문이다.

얼마 전, 동생이 자신의 친형과 형수를 총으로 살해하여 사람들에게 큰 충격을 안겨준 ‘화성 총기 살인사건’도 결국 ‘돈’ 때문에 벌어진 일로 알려졌다. 언론기사와 관련 댓글을 살펴보니 “돈 달라”고 행패를 부리다 살인까지 저지른 동생의 패륜을 탓하는 목소리가 대부분이었다. 하지만 일각에서는 100억이 넘는다는 형의 재산을 언급하며 “나는 저 심정 이해한다. 오죽하면 형을 쏴죽이고 자신도 죽었을까?”라는 지적도 눈에 띄었다. 아마도 사람들은 이번 사건을 각자의 처해진 상황과 생각들을 대입시켜 재해석하고 싶었던 것 같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자식들에게 그 큰 재산을 물려주고 돌아가신 그들의 부모가 살아서 돈 때문에 형제끼리 죽고 죽인 이번 사건이 사건을 알 수 있다면, 그 심정은 과연 어땠을까 하는 생각이 뇌리에서 지워지지 않았다. 자신들이 자식들에게 물려준 땅이 택지로 개발되면서 받은 70억인가 하는 보상금이 형제간 갈등의 발단이었다니, 그 땅을 물려준 것이 얼마나 한스러울까?

세간을 떠들썩하게 만들었던 이 사건이 잊혀 지기도 전에, 이번에는 친형에게 흉기를 휘둘러 숨지게 한 혐의로 15살의 고1 학생이 체포되는 사건이 일어났다. 17살의 고3 형이 평소 자주 괴롭히는데다가 그날따라 술에 취한 형이 또 행패를 부리자 우발적으로 흉기를 휘둘러 살인에까지 이른 것이다. 뉴스를 접한 사람들에게는 사건 당시 현장에는 이를 말리던 부모가 있었다는 사실에 더 큰 충격을 받았다. 부모의 눈앞에서 어린 형제가 벌인 일이었다.

이 뿐만이 아니다. 부모의 재산을 노리고 치밀한 계산아래 아버지와 어머니, 형을 차례로 살해한 사건도 있었다. 이처럼 자신의 부모나 자녀를 죽이는 ‘친족살해’가 세상을 경악케 하고 있다.

부모와 자식, 형제자매와 형제자매사이는 이른 바 ‘천륜(天倫)’이라 하여 하늘이 맺어진 인연으로 그 관계는 세상의 어떤 특별하다는 것 보다 더 상위 개념으로 간주되었다. 즉, 어떤 가치와도 비교할 수 없는 관계라고 본 것이다. 이를 두고 예로부터 삼강오륜이라 하여 어릴 때부터 인간으로서 마땅히 지켜야 할 기본 도리를 도덕률, 즉 인간 됨됨이의 으뜸으로 가르쳐 온 것이다.

이 세상에 어떤 이유로도 ‘부모가 자식의 목숨을 마음대로 할 수 있다’는 법도 권리도 있을 수 없다. 자식은 부모의 소유물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부모라는 이유만으로, 어린 자식들의 목숨을 함부로 취급할 수는 없다. 이런 일이 반복되는 것은 부모가 자식을 하나의 인격체로 보지 않고 자신의 소유물로 생각하기 때문이다. 내 자식의 목숨은 내 맘대로 할 수 있다는 잘못된 생각이 비극의 악순환이 되고 있는 것이다. 어린 자녀들은 자신이 왜 죽어야 하는지도 모른 채 죽어갔다.

‘가화만사성(家和萬事成)이라 했다. 모든 일은 가정에서부터 비롯된다는 말이다. 가정은 공동생활이 이루어지는 최소 단위이자, 사회생활의 출발점이다. 따라서 공동체의 근간인 가정이 화목하지 않으면 가족 구성원 사이에 갈등이 생기고, 의심하고 미워하는 마음이 일어나 결국 서로 반목하게 된다.

예로부터 가정의 화목은 가정을 다스리는 가장 핵심적인 요소이자 사회생활의 근본으로 중시되었다.《대학(大學)》에서 격물(格物), 치지(致知), 성의(誠意), 정심(正心), 수신(修身), 제가(齊家), 치국(治國), 평천하(平天下)를 8조목으로 삼아 집안의 다스림을 강조한 것도 이 때문이다. 격물에서부터 수신까지는 개인이 각자 중시해야 할 덕목이고, 제가부터 평천하까지는 공동체를 위한 덕목을 말하는 것으로, 가정을 화목하게 하는 것이 그만큼 중요하다는 말이다.

《명심보감(明心寶鑑)》〈치가(治家)〉편에도 “자식이 효도하면 부모가 즐거워하고, 가정이 화목하면 만사가 이루어진다(子孝雙親樂 家和萬事成)”는 말이 나온다. 또 “조상이 덕을 쌓은 집안에는 반드시 후손에게 경사가 따른다(積德之家必有餘慶).”는 한자성어 역시 가화만사성에 뿌리를 두고 있다. 이밖에도 가정의 화목과 관련된 고사나 글 등은 유교 경전이나 서적에 빠지지 않고 등장한다. ‘효를 모든 행실의 근본(孝百行之本)’으로 보는 것도 가화만사성이 그만큼 중요하다는 것을 반증한다.

가정폭력과 불화에 대해 사람들은 대체로 남의 일이라 생각한다. 그래서 ‘남의 집 일에 참견하지 않는다.’는 통념과 무관심으로 이어지고 있다. 물론 개인의 사생활은 존중되어야 하지만, 위기가정에 대한 보다 적극적인 관심과 보호도 필요하다. 특히, 친족을 대상으로 하는 범죄는 그 어떤 이유로도 정당화될 수 없으며, 개인의 가정문제로만 치부해서도 안 된다. 가족의 소중함을 일깨울 수 있는 가치관의 변화도 선행돼야 한다.

집집마다 ‘현관(玄關)’이 있다. 집안을 들어서는 문을 이르는 말이다. ‘현관(玄關)’이라는 말은 ‘오묘한 깨달음에 이르는 관문’을 가리키는 불교용어이다. 왜 집안을 들어서는 문을 하필 현관이라 했을까? 여기에는 세상의 모든 깨달음에 이르는 곳의 시작이야말로 바로 가정에서부터 비롯된다는 깊은 뜻이 숨어 있다.

오늘부터라도 일을 마치고 귀가할 때 현관에 서서 자신이 신었던 신발은 물론, 부모형제들이 함부로 벗어놓은 신발까지도 가지런히 정리하면서, 현관이라는 용어가 주는 깊은 뜻과 함께 가정의 의미를 한 번 되새겨볼 일이다. 그리고 잠시 여유를 내, 봄 향기 가득한 뜰 앞에 박태기나무 한 그루를 심으면서, 고향을 떠나 멀리 떨어져 사는 부모님과 형제들을 한 번 떠올려 보는 것도 의미가 있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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