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재가 없는 나라
기사입력 2015.07.01 17: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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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한(後漢) 말 여남(汝南 : 지금의 호북성)에 사람들의 관상을 잘 보기로 소문이 자자한 허소(許劭)와 허정(許靖)이라는 사촌형제가 살고 있었다. 그들은 매달 초하루(月旦)가 되면 허소의 집에서 고을 사람들의 인물을 평했는데, 그 인물평이 매우 적절하여 사람들 사이에 평판이 높았다. 거기에다 매 달 인물에 대한 평을 달리하여 발표했기 때문에 여남지방에서는 ‘월단평(月旦評)’이라는 말이 생기게 되었다.
장원섭(경민대학교 교수)
이 소문을 들은 조조가 찾아와 자신에 대한 인물평을 부탁했다. 허소는 그를 보자마자 그의 요청을 거절했다. 그러나 평을 거절하면 죽이겠다고 위협하자 할 수 없이 다음과 같이 평을 해주었다. “그대는 올바르고 태평스런 세상에서는 간사한 도적이 될 것이고, 어지러운 세상에서는 영웅이 될 것이오.”라고 했다.《십팔사략(十八史略)》에서는 “그대는 잘 다스려진 세상에서는 능력 있는 신하가 될 것이요, 어지러운 세상에서는 간사한 영웅이 될 것이다”라고 말한 것으로 되어 있다. 아무튼 조조가 기뻐한 것은 ‘난세의 영웅’이라는 말 때문이었고 이에 몹시 만족하고 돌아갔다 한다.《십팔사략(十八史略)》과《후한서(後漢書)》의 허소전(許소傳)에 나오는 이야기이다.
오늘날에 이르러 신문이나 방송 또는 각종 매체와 SNS를 통해서 인물평이 난무하는 세상이 되었다. 그러나 원래의 뜻과는 다르게, 어떤 인물에 대해서라기보다는 상대편의 하는 일에 대해서 일일이 트집 잡고 흠집을 내기 위해 대중을 상대로 한 감언이설이 대부분이다. 그것은 바로 월단평과 같은 공평무사함이 결여되었기 때문일 것이다. 어떤 인물을 비평하기 위해서는 비평을 하는 인물의 인물됨이 비평을 받는 인물의 인물됨을 능가해야 한다. 그런데 요즘은 비평을 한다는 인물들은 거의가 개인이나 개인이 속한 집단의 이익을 챙기기에 여념이 없는 그 방면의 전문가일 뿐이다.
기해천수(祁奚薦讐)라는 성어가 있다. 기해(祁奚)라는 인물이 자기의 원수를 천거했다는 말로, 인재 등용에 공평무사한 마음가짐을 가리키는 말이다.
춘추시대에 진(晉)나라 도공(悼公)의 신하 기해(祁奚)가 중군위(中軍尉)의 직에 있었는데, 그의 나이 70에 이르자 연로했음을 이유로 자리에서 사직코자 하였다. 진도공(晉悼公)이 적합한 후임자를 천거해 달라고 하자, 기해는 자기와 원수 사이인 해호(解狐)를 추천하였다. 이를 들은 도공은 깜짝 놀라면서, “해호는 당신의 원수인데 어찌 그를 천거하느냐?”고 물었다. 기해는 “왕께서는 저에게 제 후임으로 누가 적임자인지 물은 것이지, 저의 원수를 물으신 것은 아니지 않습니까?” 라고 대답하였다. 진도공은 감탄했다.
그런데 얼마 지나지 않아 공교롭게도 해호가 취임하기도 전에 죽자, 왕은 기해에게 적임자를 다시 천거하라고 했다. 그러자 이번에는 자신의 아들 기오(祁午)를 추천하였다. 진도공은 다시 한 번 놀라면서, “기오는 당신의 아들이 아니오?”하며 물었다. 이번에도 기해는 “왕께서는 저에게 제 후임으로 누가 적임자인지 물은 것이지, 저의 아들에 대해 물은 것이 아니지 않습니까?” 하였다. 평소 기해의 공평무사함을 알고 있던 왕은 즉시 기오를 임명하였다.
아무리 나라를 위한 인재 추천이라 하더라도 원수 사이인 사람을 적임자라 하여 추천하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더군다나 자기 아들이 그 적임자라 하여 추천한다는 것도 더 더욱 어려운 일이다. 게다가 그런 인재 추천을 받아들여 과감하게 기용하는 것 또한 지도자의 역량이라 아니할 수 없다. 그래서 예로부터 능력 있는 인재를 발굴해 적재적소에 앉히는 용인술은 지도자의 필수 덕목이라 하지 않았던가. 인사를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만사(萬事)’가 되지만 어떤 때는 ‘망사(亡事)’가 되기도 한다. 그만큼 어느 조직이나 인사가 중요하다.
며칠 전, 국무총리 후보자 인사청문회와 관련하여 야당 원내대표가 “총리 한 사람 잘못 뽑아서 메르스 전쟁에서 패배하는 일이 없기를 간절히 희망한다.”고 말했다. 그는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방역총리다. 메르스와의 전쟁에서 국민 생명과 안전 지킬 사령관이 필요하다”면서, “국민과 야당을 방역의 대상으로 보는 공안총리는 이제 필요 없다.”고 말했다. 한 나라의 총리로서 자격이 없다는 것이다.
그는 총리 후보자와 고교 동창으로서 누구보다도 잘 알고 지내는 사이로 알려져 있다. 그렇게 절친한 사이인 사람이 왜 나라 법치의 근간을 감당하는 막중한 법무부장관 인사청문회 때는 침묵했을까? 장관은 되고 총리는 왜 안 되는 걸까? 그가 지금 필요로 하는 것은 메르스 퇴치를 위한 일회용 총리란 말인가? 그러고 보면 그동안 야당은 일관성 있게 정부 관료의 임명동의안에 반대해 왔다. 대체 이 나라에는 왜 그들이 원하는 인재가 없는 걸까? 서로를 잘 알고 절친한 고교 동창 사이로 알려진 두 사람 사이에는 과연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한유(韓愈)가〈유자후묘지명(柳子厚墓誌銘)〉이라는 글에서 조석으로 변하는 세상 사람들의 의리와 천박한 인심을 다음과 같이 꼬집었다.
“선비의 의리는 궁핍할 때 비로소 드러난다. 요즘 사람들은 서로 흠모한다고 말하며, 어울려 먹고 마시고 노닌다. 오라 하면 달려가고 살랑살랑 억지로 웃음 짓는다. 굽실거리고 낮추며 두 손을 부여잡고 간이라도 빼줄 것처럼 한다. 해를 가리키고 눈물도 흘리면서 죽어도 변치 말자고 맹세한다. 진짜 그럴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일단 머리털 같은 자그마한 이해관계에 부딪히면 안면을 바꿔 모르는 사람 취급한다. 함정에 빠져도 손을 내밀어 구해 주지 못할망정 도리어 밀어뜨리고 다시 돌을 던진다. 세상 인심이 모두 그러하다. 금수와 오랑캐조차도 차마 하지 않는 일이다.”
한유가 살았던 시대나 오늘날이나 사람들의 천박한 의리와 가벼운 인심의 행태는 판에 박은 듯 빼닮았다. 능력과 인품을 겸비했다면 진나라 기해처럼 비록 자신의 정적이라도 추천하고 중용한 사례가, 동서고금의 강국에서는 비일비재한 일이었다.
총리로 임명된 지 달포를 겨우 넘기고 물러나는 바람에 공석이 되었는데도, 새 총리 후보자를 놓고 2달이 넘어가도록 왈가왈부하며 싸우는 사이에 국정은 마비되어 가고 있다. 각종 국가적인 현안들이 쌓여가면서 사령탑이 없다고 불만을 터뜨리면서도, 정작 국회는 여전히 ‘식물집단’의 오명을 벗을 생각을 하지 못하고 있으니 답답한 건 모두 우리 서민들의 몫이다. 인사는 예나 지금이나 조직경영의 첫째가는 대사이자 만사(萬事)로 가는 지름길이다. 비록 자기와는 철천지원수 사이라할지라도 자신보다 더 훌륭한 인재를 기꺼이 천거할 줄 아는 기해(祁奚)와 같은 지도자들이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정치의 모든 업적은 인물의 살피고 임용함에 있으니, 현명한 이를 안팎으로 천거함을 어찌 싫어할 수 있으리오(庶績之凝在銓敍 哲人何嫌內外擧)” 조선 전기 성리학자 김종직(金宗直)의 ‘술회3수(述懷三首)’에 나오는 말이다.
물난리를 만난 송(宋) 나라 민공(閔公)이 노나라 장공의 사신을 만난 자리에서 “모두 다 내 잘못이오. 하늘을 공경하지 못했으니 이런 재난을 당하는구려.”라며 자책했다. 이 이야기를 전해 들은 노(魯)나라 대신 장문중(臧文仲)이 말했다. “송나라는 흥하겠구나. 우왕과 탕왕은 스스로 자책했기에 불(火)처럼 일어났고, 걸왕과 주왕은 남 탓만 했기에 재처럼 스러졌지”
오늘날 우리는 어떤가. 지도자들은 안팎으로 나라가 ‘위기’임을 강조한다. 그럼에도 아무도 스스로를 질책하는 사람들이 없다. 오로지 상대를 탓하고 그 잘못을 추궁하는 사람들로 넘쳐나고 있다. 이 나라에는 정말로 인재가 없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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