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부(夫婦)의 인연(因緣)
기사입력 2015.09.25 17: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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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8년 안동시 정상동 택지개발지구의 오래된 무덤에서 한 장의 편지가 발견되었다.
장원섭(경민대학교 교수)
아내가 죽은 남편을 향한 서러운 마음을 담아 적은 〈원이 아버님께〉라고 이름 붙여진 한글 편지였다. 읽는 사람의 눈시울을 적시게 하는 그 편지의 전문은 다음과 같다.원이 아버님께.
병술년 유월 초하룻날 집에서.
당신이 늘 나에게 이르되, 머리가 세도록 살다가 함께 죽자고 하시더니, 어찌하여 나를 두고 먼저 가셨나요? 나와 자식은 누구의 말을 들으며, 어떻게 살라고 다 버리고 당신 먼저 가셨나요? 당신은 나에게 마음을 어떻게 가져왔고, 나는 당신에게 어떻게 마음을 가져왔나요? 매번 함께 누워 당신에게 내가 이르되,
“남들도 우리같이 서로 어여삐 여기며 사랑할까요? 남들도 우리 같을까요?”
당신에게 그렇게 말했는데, 어찌 그런 일을 생각지 않고 나를 버리고 먼저 가셨나요? 당신을 여의고는 아무래도 살 수 없어요. 어서 당신 계신 곳에 가고자 하니 나를 데려가세요. 당신을 향한 마음은 이승에서 잊을 수가 없고 서러운 생각 끝이 없어요. 이내 마음을 어디에 두고, 자식을 데리고 당신을 그리워하며 살 수 있을까요?
이따 편지 보시고 내 꿈에 와서 자세히 말씀해 주세요. 내 꿈에 편지 보시고 하시는 말씀 자세히 듣고 싶어 이렇게 편지를 쓰는 거랍니다. 그러니 자세히 보시고 내게 일러주세요. 당신은 내가 밴 자식 낳거든 보고 싶다고 말하더니 그리 훌쩍 가셨으니, 자식이 태어나면 누구를 아버지라 부르게 하나요?
아무래도 내 마음 같을까요? 천지가 아득한 이런 일이 하늘 아래 또 있을까요? 당신은 한갓 그곳에 가 있을 뿐이니, 아무리 한들 내 마음같이 서러울까요? 안타깝고 끝이 없어 다 못 쓰고 대강만 적습니다. 이 편지를 자세히 보시고 내 꿈에 와서 자세히 보여 주시고 자세히 말씀해 주세요. 나는 다만 당신 볼 것을 믿고 있으니 이따 몰래 와서 보여 주세요. 하고 싶은 말 그지없어서 이만 적습니다.
이 글은 경북 안동에 살았던 고성이씨 가문의 이응태(李應台, 1556〜1586)라는 사람의 묘에서 발견된 한글 편지이다. 편지를 쓴 사람은 다름 아닌 이응태의 부인, 곧 원이 엄마이다. 그녀는 먼저 죽은 남편에 대한 그리움과 견딜 수 없는 자신의 아픈 마음을 편지에 적어 죽은 남편의 품에 고이 넣어 묻었던 것이다. 무덤에서는 이 편지와 함께 머리카락으로 짠 미투리와 배냇저고리가 함께 발굴되었다. 원이 엄마는 남편이 31세의 젊은 나이에 병이 위독해지자 자신의 머리카락으로 미투리를 삼아 쾌유를 기원했건만, 남편은 아들 원이와 유복자를 남겨둔 채 숨을 거두고 말았다. 배냇저고리는 뱃속에 든 아이를 위해 만들어 둔 것으로 보인다.
우리가 이런 편지를 읽으며 감동받는 것은 그 사연이 애틋하기 그지없거니와, 편지가 쓰인 시대가 참으로 뜻밖이기 때문이다. 흔히 유교에 바탕을 둔 가부장제 아래에서 살다간 부부간에는 다정다감한 인간적 정감이 없을 것이라 생각하기 쉽다. 하지만 위의 편지글은 우리의 통념을 단박에 깨뜨려 버리고 만다. 그때의 부부도 오늘날의 우리와 마찬가지로 허물없는 애정 표현, 서로 아끼고 존중하는 마음, 그리고 죽음을 넘어 영원히 함께 하고픈 마음을 지니고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삶과 죽음으로 갈린 부부의 애끊는 정이 어찌 여자에게만 해당되겠는가? 남편들도 또한 그러했다. 근엄하기 짝이 없을 것만 같은 조선시대 사대부 남성의 글에서도 그런 모습을 종종 발견하게 된다.
부부란 참으로 알다가도 모를 관계이다. 예전에는 얼굴조차 보지 못한 남녀가 부모가 정해 주는 대로 결혼을 했다. 혼례식에서 처음 만나 첫날밤을 같이 하고, 검은 머리가 파뿌리 될 때까지 살았다. 요즘 우리로선 상상하기 어려운 일이다. 그런데 흥미로운 것은, 서로 사랑해서 결혼한다는 요즘 사람들이 옛날보다 이혼하는 비율이 더 높다는 사실이다. 도대체 옛날 부부 관계는 어떠했기에 그렇게 낯설게 만나서도 금슬 좋게 살 수 있었던 것일까?
까치는 울타리 꽃가지에서 울고(鵲兒籬際躁花枝)
거미는 상머리에서 줄을 늘이네.(蟢子床頭引網絲)
그리운 님 머잖아 오시려는지(余美歸來應未遠)
마음이 벌써 달려와 알려 주는가 보네.(精神早已報人知)
이 노래는 이제현(李齊賢, 1287~1367)이 고려시대 민간에서 불리던 노래를 7언 절구의 한시 형식으로 채록한 소악부(小樂府) 가운데 하나이다. 작품 제목을 〈거사련(居士戀)〉이라 했는데, 뜻을 풀이하면 ‘남편에 대한 그리움’ 정도가 될 것이다. 이른 아침부터 까치가 울거나 거미가 줄을 타고 내려오면 반가운 손님이 찾아온다는 민간의 속설을 채용함으로써 토속적 정취가 물씬 풍기는 노래이다. 물론, 그런 가슴 설레는 기대감은 사랑하는 사람이 돌아올 것만 같은 예감에서 말미암은 것이다. 실제로 노래 뒤에는 창작 배경이 적혀 있는데, 부역에 나가 오래도록 돌아오지 않는 남편을 기다리던 아내가 부른 노래라고 한다.
사연이 그렇다고 한다면, 노래에 담긴 낭군을 기다리는 아내의 마음은 설렘보다는 돌아오지 못하면 어찌할까 하는 안타까움에 가깝다고 할 수 있다. 이외에도 돌아오지 않은 남편을 걱정하며 기다리는 아내의 노래는 많고도 많다.
부부라는 관계, 예나 지금이나 그들은 이렇듯 애틋한 그리움의 대상인 동시에 서로에게 의지가 되는 삶의 동반자이다. 송강 정철(鄭澈, 1536~1593)도 〈훈민가(訓民歌)〉에서 이렇게 노래하였다.한 몸 둘로 나누어 부부를 만든 것이니 있을 때 함께 늙고 죽으면 한 데 간다.
어디서 망령의 것이 흘기려 하는고.
부부는 본래 한 몸이었는데 둘로 나뉘어 부부로 태어났다는 것, 함께 늙고 함께 죽을 삶의 동반자라는 것, 그러니 서로가 서로에게 함부로 대해서는 안 된다는 것. 그것이 이 노래로 일깨우고자 했던 요점이다. 마지막 행의 망령되게 눈 흘기지 말라는 말은, 아무리 가까운 사이이지만 서로에게 깍듯한 예의를 갖추라는 가르침의 생동한 표현이다. 우리는 이런 부부 관계를 일심동체(一心同體)라 일컫는다. 비록 피 한 방울 섞이지 않은 남남이지만, 부부의 인연을 맺어 몸과 마음이 하나가 되었다는 뜻이다. 부부란 정말 그런 관계이다.
추석이 끝난 후에 이산가족 만남이 성사되었다는 소식에 많은 이산가족들이 또다시 아픈 가슴을 쓸어내리며 조바심을 내고 있다. 6.25전쟁으로 헤어진 남과 북의 수많은 이산가족들의 피맺힌 한(恨)은 한 갑자를 넘겼는데도 해결의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헤어진 부모자식과 부부들이 다시 한 자리에 모여 하늘이 맺어준 인연의 끈을 다시 이어갈 수 있는 날이 언제쯤이면 오려나.
수백 년이 지난 후에 우리 후손들이 오늘을 살다간 사람들의 무덤을 발굴하는 날에는 제발 또 다른 원이 엄마의 편지가 발견되지 않기를 간절히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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