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년대 건립 망양정 준공년...1958년 아닌 ‘1959년’

기사입력 2016.04.27 14:58  
댓글 0
  • 카카오톡
  • 카카오 스토리로 보내기
  • 네이버 밴드로 보내기
  • 페이스북으로 보내기
  • 트위터로 보내기
  • 구글 플러스로 보내기
  • 기사내용 프린트
  • 기사내용 메일로 보내기
  • 기사 스크랩
  • 기사 내용 글자 크게
  • 기사 내용 글자 작게

1959년에 준공한 구(舊) 망양정

“지난 2005년에 완전히 해체된 후 새로 건립된 현 망양정 이전의 망양정 준공년도는 1958년일까? 1959년일까?”
  
그동안 지역에서는 의심의 여지없이 1958년에 구(舊) 망양정이 준공된 것으로 인식돼왔다.
  
1950년대 후반에 망양정이 건립되고 난 후 처음으로 발간된 1971년도 판 『울진군지(蔚珍郡誌)』에서 망양정의 낙성 연도를 1958년으로 잘못 기록하고 있는데 따른 것이다.
  
이후에 발행된 1984년도 판 『울진군지』와 2001년도 판 『울진군지』 또한 1971년도 판 군지의 기록을 그대로 베껴 쓰면서 50년대에 건립된 망양정의 준공년도는 1958년으로 정설화 되어왔다.


50년대에 건립된 망양정 중건년도를 1958년으로 최초 기록하고 있는 1971년 판 울진군지(부분)

50년대에 건립된 망양정 준공년도의 정확성에 대해 지역의 일부 향토 사가들이 의문을 갖기 시작한 것은 본지 [울진뉴스] 2011년 7월호(통권 제63호) ‘기획 연재-우리 곁의 이런 삶’ 코너에서의 인터뷰 기사 때문이었다.  
  
2011년 당시 근남면 산포리에 거주하던 장문희(張文熙. 당시 73세)씨는 인터뷰에서 “양력으로 1959년 8월 15일에 망양정이 완공되어 낙성식을 했다. 망양정을 낙성하고 얼마 지나서 추석이었는데 그때 사라호 태풍이 올라와서 개락이 났으니 그 연도를 정확히 기억한다. 그러니 망양정 낙성식과 사라호 태풍이 같은 해에 있었던 것이다.”고 증언했다.
  
장문희씨는 50년대 망양정 건립 공사 당시 단청장(丹靑匠)이던 손치후(孫穉厚) 선생 밑에서 단청 작업에 참여했던 단청장이다.
  
장씨는 망양정 공사가 끝나고 낙성식을 할 때 단청 공로자로써 기념품으로 받은 뚜껑이 달린 놋쇠 주발과 술잔 세 개를 지금까지 보관하고 있다. 


장문희씨가 1959년 8월 15일 망양정 건립 단청 공로로 수여받은 포상 기념품. ‘축 망양정 낙성 기념’이라고 음각되어 있다
  
특히 장씨는 망양정 건립에 공이 컸던 부친 고(故) 장상훈(張相勳)씨가 1959년 망양정 건립 준공 일에 맞추어 첫 제사를 올린 다음부터 지금까지도 매년 양력 8월 15일이면 술과 과일 등의 제물을 준비하여 다수의 동네 주민들과 함께 제사를 지내고 있다.
  
원남면 신흥리에서 태어난 고 장상훈씨는 원남면장, 기성면장 등을 역임하고 퇴임했다.    

◈50년대에 건립된 망양정의 준공년도가 공식적인 관문서(官文書)에 의해 1958년이 아닌 ‘1959년’으로 명확하게 확인된 것은 윤대웅 울진문화원장의 도움에 기인했다.
  
윤 원장은 구 망양정 낙성식 때 공사에 도움을 준 공로자에 대한 표창이 있었는데, 그 포상자 명부가 당시에 문화재 관리를 담당했던 울진교육청에 보관돼 있다고 전해왔다.

신상구 울진문화원 사무국장과 함께 울진교육청을 방문하여 1950년대 후반에 수기로 작성된 망양정 건립 포상자 명부를 확인할 수 있었다.
  
3장에 걸쳐 기록되어 있는 망양정 건립 관련 포상자 명부는 단기 4292년(1959년) 8월 15일자로 낙성식을 기념하여 총 17명에게 표창과 함께 기념품을 수여한 것으로 나타나 있다. 
  
각각 최중길(崔重吉, 근남면), 손치후(孫穉厚, 평해면 월송리, 교감), 김용식(金容湜, 울진면 읍내리), 장성업(張聖業, 근남면 노음리), 박승갑(朴承甲, 근남면 노음리), 권상웅(權相雄, 근남면 행곡리), 심상열(沈相烈, 울진면 읍내리), 주우진(朱宇鎭, 울진면 고성리), 장문희(張文熙, 근남면 산포리), 주만영(朱万英, 울진면 정림리), 장무희(張武熙, 근남면 수곡리), 윤태용(尹泰龍, 근남면 수곡리), 김동수(金東秀, 근남면 수곡리), 남라석(南羅錫, 울진면 읍내리), 남용극(南容克, 울진면 읍내리), 이대연(李大淵, 울진면 읍내리), 전학수(田鶴洙, 울진면 읍내리)이다.


울진교육청 포상자 명부   

◈포상자 가운데 최중길씨는 당시 울진 지역 최고의 대목(大木)으로 설계도도 없이 망양정 건립 공사를 실질적으로 주도한 인물이다.
  
2011년 본지와의 인터뷰에서 단청장이 장문희씨는 “지금 생각해보면 설계도 한 장 없이 망양정을 지었던 최중길씨가 정말 실력이 대단한 분이었다. 용머리나 용이 입에 물고 있는 야광주 같은걸 깎자면 품도 많이 들고 실력도 대단해야 한다......그때 망양정 네 귀퉁이에 걸려있던 용머리는 대흥사(울진읍 대흥리 소재)의 용머리를 본뜬 것인데, 전부 다 최중길 대목이 조각을 했다”고 말한바 있다.
  
이어 장씨는 “몇 년 전(2005년)에 새로 지은 망양정에 올라가보면 네 귀퉁이에 용머리가 없다. 아마 업자들이 실력도 없고 시간을 절약하자고 그런 것 같은데 정자의 품격을 떨어뜨리는 일이다”며 아쉬워하기도 했다.
  
손치후씨는 구 망양정에 단청을 시공했던 단청장이다.
당시 단청장의 보조로 작업에 참여했던 장문희씨에 따르면, 손치후씨는 일제강점기에 일본으로 건너가서 2년제 대학인 동양미술학원을 졸업하고 당시 월송초등학교 교사로 재직했다.
  
손치후씨는 단청뿐만 아니라 불상 조각과 개금(改金, 불상에 금칠을 다시 하는 일), 탱화(幀畵) 그리는 일에도 아주 뛰어났던 예술가로써, 울진읍내에 위치한 불영사 포교당(현 동림사) 대웅전의 단청도 시공했다.

이에 대해서는 『울진군지』 또한 근남면 최중길의 설계 건축과 평해읍 손치후의 단청으로 망양정을 건립했다고 기록하고 있다.
  
김용식, 장성업, 박승갑씨는 망양정 공사 당시 목재를 기증했던 지역의 유력인사들이며, 이 중 장성업씨는 1973년에 설립된 제동학원(제동중학교)의 초대 이사장으로 재직했던 인물이다.
  
1959년 울진교육청 포상자 명부는 장성업씨를 교육위원으로, 박승갑씨를 영림관리소 소장으로 기록하고 있다.
◈50년대에 건립된 구 망양정의 준공년도를 1958년으로 기록하고 있는 『울진군지』의 기록이 오기(誤記)임이 명백하게 밝혀졌다.
  
준공년이 1958년이 아니라 1년 후인 1959년이라는 사실이 공식적인 관문서를 통해 밝혀지는데 장장 57년이나 걸린 셈이다.
  
이는 역사적 사실이 한번 잘못 기록되면 그것만이 객관적 진실인양 후대로 내려가면서 끊임없이 확대 재생산될 수 있다는 실례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것이다.
  
군지(郡誌)가 통상 15~20년 안팎으로 개정판이 간행된다는 점을 고려할 때, 수년 내에 발행될 신간 군지에서는 구 망양정 준공년도는 물론, 뒤늦게 확인된 다수의 오기들이 모두 수정될 수 있기를 기대한다.
<저작권자ⓒ빠른뉴스! 울진뉴스 & uljinnews.com 무단전재-재배포금지. >
이름
비밀번호
자동등록방지
68500
 
 
 
 
 
    울진뉴스/월간울진(http://uljinnews.com |   창간일 : 2006년 5월 2일   |   발행인 / 대표 : 김흥탁    |   편집인 : 윤은미 
  • 사업자등록번호 : 507-03-88911   |   36325. 경북 울진군 울진읍 말루길 1 (1층)   |  등록번호 : 경북, 아00138    |   등록일 : 2010년 7월 20일                         
  • 대표전화 : (054)781-6776 [오전 9시~오후 6시 / 토, 일, 공휴일 제외(12시~1시 점심)]   |  전자우편  uljin@uljinnews.com / ytn054@naver.com
  • Copyright © 2006-2017 uljinnews.com all right reserved.
빠른뉴스! 울진뉴스의 모든 콘텐트(기사)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습니다. 무단 전제·복사·배포 등을 금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