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몸이 정상일 때는 잘 몰랐습니다. 사고를 당해서 장애인이 되고 나니 모든 게 불편하더군요. 그래서 장애인의 불편함을 알리기 위해 이런 모임을 만들었습니다.”
“어떤 점이 제일 불편했습니까?”
“무관심이었습니다. 저희와 같이 몸이 불편한 장애인들에게 관심을 가져주는 사회적 분위기가 너무 아쉽습니다….”
휠체어에 앉아 기자와 인터뷰를 하는 동안 그는 시종일관 장애인에 대한 사회적 관심이 부족함을 아쉬워했다. 휠체어를 밀고 있던 그의 부인도 내내 손수건으로 눈물을 닦고 있었다. 교통사고로 하반신을 못 쓰게 된지 불과 얼마 되지 않았는데도 그동안 정상인으로 살면서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일들을 너무 많이 겪었다는 것이다.
생각해 보면, 우리 사회는 장애인들이나 노약자들이 살기에는 불편한 게 한두 가지가 아니다. 장애인의 입장에서 다시 우리 주변을 돌아보면, 우리가 평소 일상생활에서 전혀 느끼지 못하고 있던 사소한 것에서부터 불편함이 시작된다. 시내버스를 타거나 지하철을 이용하는 과정에서 겪는 어려움은 이미 알려진 대로이고, 사무실을 오르내리고 관공서를 드나들 때도 여전히 개선해야 할 점이 많다는 것을 알게 된다.
모든 관심과 다툼은 이렇게 이해관계를 달리하는 데서 비롯된다. 자신 또는 자신이 속한 집단의 이익을 지키기에 충실하다 보면 가끔은 사회 통념상 요구되는 기본적인 보편성을 잃어버릴 때가 있다. 우리는 이를 집단 이기주의라고 부른다. 어떤 일을 결정할 때, 조금만 주의를 기울이면 내가 아닌 다른 사람들의 입장을 고려해서 조금은 모자라지만 모두가 공감하는 비교적 보편적인 결론을 이끌어낼 수 있다. 모여서 머리를 맞대고 회의를 하는 이유가 바로 거기에 있다. 상대에 대한 이해와 배려가 있으면 양보는 쉽게 얻어낼 수 있다. 그러나 대개는 자기와 직접적인 관련이 없으면 모두 무관심하다. 예나 지금이나 사회의 전반적인 흐름이 그러하다.
왜병(倭兵)들이 쳐들어와 약탈당하고 부녀자들이 희생되고 온 마을이 불바다가 되는데도 이 농부는 자기 밭에서 무를 캐고 있었다. 마을의 불행쯤은 안중에도 없었다. 이 농부에게는 곧 추수를 앞 둔 자기의 무밭이 더 소중했던 것이다.
약탈을 마친 일단의 왜병들이 다른 지역으로 이동하면서 공교롭게도 이 농부의 무밭을 지나게 되었다. 왜병들을 낄낄거리면서 농부가 소중하게 길러 놓은 무밭을 가로질러 지나갔다. 왜병들의 발길에 무밭이 순식간에 엉망이 되자 비로소 이 농부는 화가 났다. 농부는 무모하게도 쇠스랑을 들고 왜병들에게 달려들었다. 왜병들은 들고 있던 조총으로 농부를 쏘았다. 그리고 쓰러진 농부의 시신을 밟으며 깔깔대면서 산등성이를 넘어 사라졌다.
임진왜란 때 오희문(吳希文)이 피난 생활을 하면서 겪은 견문록인 쇄미록(瑣尾錄)에 나오는 일화로서 강원도 고성 지방에서 있었던 일이다. 자기가 살고 있는 마을이 약탈을 당하고 불바다가 되는데도 아랑곳하지 않던 농부가, 자기가 직접 재배하던 소중한 무밭이 피해를 입자 비로소 어이없게도 조총을 든 왜병에게 달려들었던 것이다.
마을이 피해를 입는데도 이 농부는 자기와는 상관없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왜냐 하면 자기가 직접 피해를 입는다고 생각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소중한 자기 무밭에 직접적인 피해가 나타나자 그는 무모하게도 왜병들에게 달려들었다. 올바르게 대처할 상황을 판단할 생각도 하지 않았다.
대체로 사람들은 주변에서 일어나는 일이 나와는 상관없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나에게 그런 일이 일어날 것이라는 것은 아예 생각하지 않는다. 그래서 무관심하다. 나와는 상관없는 일이기 때문이다. 그러다가, 어느 날 갑자기 자신이 그 입장이 되고 나면 비로소 자신의 무관심을 탓하게 된다.
연말이 되자 구세군 냄비가 또 등장했다.
익명의 기탁자도 많고 고사리 손길도 그치지 않는다. 드러나지 않으면서도 세상의 어두운 곳에 빛을 드리우려고 노력하는 이런 사람들이 많은 세상이라면 얼마나 살맛나는 곳이겠는가! 남의 일은 아랑곳하지 않고 자기만 생각하다가 어이없는 죽음을 당했던 그 농부가 주는 교훈을 되새길 때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