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합정부의 과제

기사입력 2017.06.27 14: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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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원섭(경민대학교 교수)
 
제(齊)나라 환공(桓公)이 어느 날 ‘맥구(麥丘)’라고 하는 작은 마을로 사냥을 나갔다가 한 노인을 만났다. 노인의 풍모가 참으로 그럴듯하고 지혜로워 보였으므로, 환공은 수레를 멈추게 하였다. 환공이 노인에게 나이를 물으니 여든세 살이라고 하였다. 감탄한 환공은 “수복(壽福)을 타고난 노인이시군. 그대의 장수(長壽)로써 과인을 축원해 주면 고맙겠소.” 노인은 기도를 시작했다.

“왕을 축원합니다. 오래오래 장수하소서. 돈과 옥을 천한 것으로 보시고, 부디 사람을 귀하게 여기소서.”
“참 좋은 말씀이시오. 한 말씀 더 해 주시지요.” 노인은 다시 기도를 시작했다.
“왕을 축원합니다. 왕께서 배움을 부끄러워하지 않으시고, 아랫사람에게 묻는 것을 싫어하지 않게 하소서. 간언하는 자를 항상 곁에 있게 하는 현명한 분이 되게 하소서.” 왕은 고개를 끄떡이며 다시 노인에게 부탁했다.
“옳은 말씀이오. 덕이 있는 자는 외롭지 않은 법이지요. 한 말씀만 더 해 주시구려.” 노인은 다시 기도를 시작했다.
“왕을 축원합니다. 왕께서는 신하들과 백성들에게 죄를 짓지 않는 분이 되게 하소서.” 그러자 지금까지는 흐뭇하던 환공이 이 말에 기분이 상해 안색을 바꾸었다.
“과인은 자식이 아비한테 죄짓고 신하가 군주한테 죄짓는다는 말은 들었어도, 군주가 아랫사람한테 죄짓는다는 얘기는 금시초문이오.” 그러자, 노인도 정색을 하고 말했다.

“행실이 바른 자식이 아비한테 죄를 짓는다면, 그것은 대개 친척 때문이니 오해가 풀리면 아비가 자식을 용서해 줄 수 있고, 바른 신하가 군주에게 죄를 짓는다면, 그것은 주위의 그릇된 신하들 때문이므로 오해가 풀리면 군주는 역시 용서해 줄 수 있습니다. 그런데, 옛날 걸왕(傑王)이 탕왕(湯王)에게 망하고 주왕(紂王)이 무왕(武王)에게 주살당한 것은 왕이 신하에게 죄지은 셈이지만 용서를 받지 못했고, 오늘날까지 사면되지도 않았습니다.”

노인의 말을 듣고서야 환공은 깊이 깨닫는 바가 있었다. 환공은 기뻐하며 최대한 공경한 자세로 노인에게 예를 표한 다음, 그를 맥구의 장(長)에 임명하여 다스리도록 하고 귀로에 올랐다. 여기에서 유래한 맥구읍인(麥丘邑人)이란 말은 곧은 성품과 슬기로운 지혜로써 다른 사람의 삶을 바른 길로 인도할 수 있는 어른을 가리키는 뜻으로 회자되고 있다. 전한(前漢) 말 유향(劉向)이 지은 《신서(新序)》〈잡사(雜事)편〉에 보인다.

정권이 바뀌고 세상이 달라지고 있다. 국민들은 새 정부가 과거 승리한 자들처럼 그 전리품을 나눠 먹기 바빴던 낡은 틀을 깨뜨리고, 그들이 약속했던 것처럼 과연 새로운 모습을 보여줄 것인가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새 정권은 새 술은 새 부대에 담아야 한다는 국민들의 뜻을 멋대로 해석해서는 안 될 것이다. 첫 출발은 그 자리에 합당한 인물을 기용하는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국민을 통합시키는 정부를 구현하겠다던 구호들은 무늬만 남을 것이다. 국민들은 지금 매의 눈으로 지켜보고 있다.

장자(莊子)는 천하에 군림하는 제왕이라 하더라도 자기 마음대로 천하를 다 차지하고 제멋대로 할 수는 없다고 하였다. 알고 보면 자기 한 몸을 겨우 지탱할 뿐이라는 것이다. 천하를 다스리는 것은 제왕의 힘과 위엄만으로 되는 것이 아니라, 어진 신하와 부지런하고 순박한 백성들이 있어서 잘 따라 주기 때문이다.

뱁새가 큰 숲속에 산다고 해서 그 숲 전체를 마음대로 가지는 것이 아니고 겨우 나뭇가지 하나에 둥지를 만들어 의지하고 산다. 두더지가 강가에 살면서 물을 마신다고 해도 그 강물을 전부 먹을 수는 없다. 겨우 자기 한 몸의 갈증을 해소할 정도에 불과하다. 이와 마찬가지로 대통령이 자기 임기 중에 모든 일을 자기 마음대로 다하려고 들면 국민들이 고달파진다. 그렇게 되면 치적이나 성과보다는 원성이 저잣거리에 회자된다. 그러므로 권력자들은 국민들의 작은 소리라도 귀담아들어야 한다. 이것은 동서고금의 역사가 보여주는 교훈이다. 

옛날 초(楚)나라에 한 보석상이 살았다. 어느 날 크고 아름다운 둥근 옥이 수중에 들어왔다. 그는 비싼 값에 팔아 큰 이익을 남길 생각으로 이웃 정(鄭)나라에 가서 팔기로 했다. 그러다가 문득 한 가지 좋은 생각이 떠올랐다.
‘이처럼 진귀한 보물에 어울리는 상자를 만들어야겠다. 포장이 좋으면 내용물이 한층 돋보여서 더 비싸게 팔 수 있을 거야.’

상인은 목련으로 근사한 상자를 만든 다음 계초(桂椒)라고 하는 향내가 진한 나무로 내피를 만들어 속에 끼운 다음, 다시 물총새 털을 곱게 깔아서 거기에다 옥을 담았다. 멋진 상자에 들어간 옥은 더욱 아름답고 고급스러워 보였다. 상인이 정나라 도심에 이르러 저잣거리에서 좌판을 펼치자 순식간에 사람들이 모여들었다.

이때, 돈 많은 고관이 지나가다가 이 광경을 목격하고 그 상자를 들고 요모조모 뜯어본 다음 값을 물었다. 상인이 옥값에다 상자값까지 얹어서 돈을 매기자, 고관은 요구하는 값을 두말없이 지불하고 샀다. 그런데 상자만 소중하게 집어넣고 옥은 상인에게 도로 돌려주는 것이 아닌가. 뜻밖의 일을 당한 상인이 놀라 눈이 휘둥그레져서 묻자, 고관이 말했다. “내가 탐이 나는 건 상자이지 옥이 아니라네.” 그리고는 상자만 가지고 가버렸다. ‘옥을 포장하기 위해 만든 나무상자를 사고 그 속의 옥은 돌려준다(買櫝而還珠)’는 고사는 여기에서 유래했다. 이는 호화롭게 꾸민 겉 포장에 현혹되어 정말 중요한 실체를 잃는다는 의미로 두루 사용되고 있다고《한비자(韓非子)》〈외저설(外儲說)〉에 실려 있다. 공자도《논어(論語)》〈학이편(學而篇)〉과〈양화편(陽貨篇)〉에서 거듭 강조한 대목에 “교묘한 말과 얼굴빛을 선하게 꾸며 아첨하는 얼굴을 하는 사람 가운데 어진 사람이 적다(巧言令色鮮矣仁)”고 했다. 즉, 말을 그럴듯하게 꾸며대거나 남의 비위를 잘 맞추는 사람, 생글생글 웃으며 남에게 잘 보이려는 사람치고 마음씨가 착하고 진실된 사람이 적다는 뜻이다.

선거기간 동안 후보들은 하나같이 상대방이 거짓말을 늘어놓는다며 비난하고, 자신만이 진실하고 능력이 있으며 준비된 사람이니 믿어달라고 목소리를 높였었다. 그 가운데 한 사람이 선택을 받았다. 이제 남은 것은 자신의 능력과 진실된 모습을 확인시켜 주는 것이다.

옛날 중국 검주(黔州)에는 당나귀가 없었다. 일 벌이기를 좋아하는 어떤 사람이 당나귀를 들여와 쓸모없게 되자 산에 버렸다. 호랑이가 당나귀의 큰 몸집에 놀라 신(神)이라 여기고 숲에 숨어서 조심스레 살펴도 도무지 알 수 없었다. 다음날, 당나귀가 한 번 울자 호랑이는 크게 놀라 자기를 잡아먹을까 봐 무서워하면서도 자세히 살펴보니 특별한 재주가 없어 보이고 울음소리에도 익숙해져서 다가갔다. 겁이 난 당나귀가 발길질을 해댔지만 호랑이에게는 별 것이 아니었다. 마침내 호랑이가 달려들어 당나귀를 잡아먹었다. 이 이야기는 재주와 능력이 부족하면서도 자신의 큰 덩치만 믿고 행세하다가 훗날 그 밑천이 들통나면 몸집 작아도 능력 있는 자에게 잡아먹힘을 비유한 ‘검려지기(黔驢之技)’의 고사로서 당나라 유종원(柳宗元)의《삼계(三戒)》에 실려 있다.

시시각각 급변하는 한반도 주변 정세는 약육강식의 냉엄한 역사적 교훈을 자꾸 떠올리게 한다. 이제는 능력을 발휘하여 갈기갈기 찢어진 민심을 하나로 아우르고 밖으로 눈을 돌려야 할 때다. 지금 국민들은 무엇보다 튼튼한 안보를 간절히 바라고 있다. 어설픈 국수적 민족주의로 더 이상 국민을 불안하게 만들어서는 안 된다. 나라가 있고 난 다음에 국민이 있다. 우선은 지혜롭고 능력 있는 자를 그 자리에 기용해야 한다. 나눠먹기식 인사나 무늬만 그럴듯한 정책은 이제 더 이상 통하지 않는다. 새 정부는 민심은 호랑이와 같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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