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조산하(再造山河)

기사입력 2018.01.11 11: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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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 원 섭
(경민대학교 교수)
 

살아가면서 가장 쉬운 일은 ‘남의 말 하기’라고 한다. 남의 잘못을 콕 집어 말하는 것은 ‘식은 죽 먹기’이다. 남의 허물은 일부러 들춰내지 않아도 눈에 훤히 들어오는 법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남을 흠집 내려 들면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다. 그런데, 특정인에게 앙심을 품고 눈에 보이는 것을 넘어 불을 켜고 묻혀 있는 흠을 찾으려 들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이런 상황이 되면 “머리카락을 불면서(吹毛)까지 숨어 있는 흉터를 찾아낸다(覓疵).”는 성어를 떠올리게 된다. 털을 일일이 한 올 한 올 입으로 불어가며 그 속에 들어있는 보이지 않는 작은 흉터까지 찾아낸다는 뜻으로 ‘취모멱자(吹毛覓疵)’라고 한다. “털어서 먼지 안 날 사람이 어디 있느냐”라는 속담이 있듯이, 없는 먼지도 털어가며 일부러 흠을 찾으려 드는데, 이를 아무 탈 없이 비껴갈 수 있는 사람이 몇이나 되겠는가. 《한비자(韓非子)》〈대체편(大體篇)〉에 “털을 불어 작은 흉터를 찾는다(吹毛而求小疵).”라는 문장에서 비롯되었다.

한비자는 이런 행위를 전형적인 소인배의 처신으로 간주했다. 현명한 군주는 조그만 지식으로 마음을 어지럽히지 않으며 사리를 추구하지 않는다고 했다. 법으로 어지러움을 다스리고 상벌에 의해 시비를 분별해야 하며, 사람의 본성을 상하게 하지 않는다고 지적한다. 그러면서 그는 말한다. ‘터럭을 불면서까지 남의 작은 흠을 찾으려 하지 않으며, 때를 씻어가며 알아내기 힘든 상처를 찾으려 하지 않는다(不吹毛而求小疵 不洗垢而察難知).’ 높은 자리에서 백성을 다스리는 자가 정적들의 사소한 것까지 들춰내려 하다가는 도리어 백성들로부터 신망을 잃게 되리라는 가르침이다.

이 성어는 고려 말의 대학자 이색(李穡)의 시 구절에도 등장한다. 남에 비해 출세가 늦었음을 한탄하며, 서로 잘났다고 다투면서 남을 모함하는 세태를 꼬집는 부분에서 ‘터럭 불어 흠을 찾아 서로 헐뜯기도 하는데, 몸을 숨겨서 남을 모략하니 더욱 가소로워라(吹毛求疵或相詬 匿影射人尤可嗤).’라고 일갈하고 있다.《목은시고(牧隱詩稿)’》에 실려 있다.

새 정부가 시작한 지도 벌써 세 번째 계절이 바퀴고 어느새 찬바람이 불고 낙엽이 길거리에 뒹굴고 있다. 아직도 진행 중이라 언제 끝날 지도 알 수 없는 공직자 인사청문회는 ‘취모멱자’라는 성어를 실감나게 해주었다. 더 깨끗하지도 않은 자들이 남의 흠결을 찾아 망신을 주는 데에는 가히 귀신같은 재주들을 가지고 있음을 또다시 확인시켜 주었다. 어디 인사청문회뿐인가. 각 당 내에서 일어나고 있는 계파 싸움도 이에 못지않다. 국민들이 매의 눈으로 지켜보고 있는데도 반성은커녕 이전투구를 벌이고 있는 걸 보면, 그들에게는 이미 백성들은 안중에도 없어진 지 오래다. 

정부의 행보도 갈지 자 걸음이다. ‘탈원전’ 공약을 지키겠노라고 큰소리치더니 신고리 5·6호기 공사 재개를 놓고 갑자기 여론에 맡기겠다고 한 발 물러섰다. 그리고 여론은 대통령의 밀어붙이기에 제동을 걸었다. 지난 5월 취임 후 문 대통령이 숨 가쁘게 밀어 붙여온 선거공약 이행이 처음으로 암초를 만난 것이다. 그래도 대통령은 마치 오기라도 부리듯 ‘탈원전 정책’은 그대로 추진하겠다고 했다. 동력을 크게 잃은 탈원전 정책은 어떤 형태로든 수정이 불가피해 보이지만, 다른 한편으로 보면 문 대통령의 탈원전 정책은 이미 그 성패에 대한 책임을 국민에게 전가시키는 데 성공한 셈이다. 참으로 교묘하고 사악한 지도자의 술수라 하지 않을 수 없다.

사실 새 정부 정책 중에는 탈원전 정책 말고도 속도 조절이 필요한 것들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인천공항에서부터 삐걱대는 비정규직 정규직화, 근로시간 단축, 건강보험 보장 확대 등, 일일이 열거하기도 힘들 정도이다. ‘최저임금제’에 이르면 서민들의 걱정은 이제 공포의 수준에 이르렀다. 대통령 스스로도 “속도에 문제가 있다니 일단 내년까지 해보고 다시 논의하자.”면서 교묘하게 구렁이 담 넘어가려 한다. 요즈음 저잣거리에서는 이 제도가 시행되면 당장 중소기업과 자영업자의 부담 증가는 물론, 일자리마저 줄어들 것이 뻔한 부작용이 우려된다고 야단이다. 최저임금위원회 위원장마저도 취약계층 일자리에 부정적이라는 데 동의할 정도다.

모두 하나같이 국가의 미래가 걸린 굵직한 사안들이다. 공약이라는 이유만으로 밀어붙이기에는 고려할 점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일각에서는 “헌법이 규정한 3권분립 정신을 살려 갈등 조정은 민의 대표기관인 국회에 맡기면 될 것”이라며, 부담스런 정책 결정은 여론에 맡김으로써 교묘하게 자신의 책임을 국민에게 전가시키는 문 대통령의 정책 결정 방식에 문제가 많다는 입장을 보이고 있다. 말로는 탕평을 말하면서 정작 주요 요직에는 자기 사람을 쓰며, 민생정치와 안보보다는 한(恨)풀이하듯 정치보복에만 혈안이 돼 있는 현실을 어떻게 설명하려는가.

새삼 문 대통령이 선거전에서 외쳐대던 ‘재조산하(再造山河)’를 곱씹어 본다. 그의 ‘재조산하’, 즉 ‘나라다운 나라’를 만들겠다는 말은, 지금도 우리 사회 전반에 널리 회자되는 유행어가 되었다. ‘재조산하’란 한마디로 ‘나라를 다시 추스르라’는 의미다. 엉망이 되어버린 나라를 정상적인 나라로 만든다는 의미야 얼마나 좋은가. 문제는 그 방식이다. 안으로는 여론을 들먹이며 민주주의를 호도하고 정적들의 흠 찾기에 골몰하느라 정신이 없다. 국민들은 북핵문제로 불안해하는데 대통령은 연일 대화로 극복할 수 있다고 큰소리치고 있다. 밖으로는 다른 나라 정상이 우리의 정체성을 송두리째 부정하는 언사에 대해서는 적당히 얼버무려 넘어가기에 급급하다. 그야말로 외교력의 실종이다. 역사의식이 없는 것인지, 아니면 관용이 철철 넘치는 것인지 헤아리기 힘들다.

문 대통령은 대선에서 승리하면서 첫 일성을 ‘촛불 민심’의 승리라고 했다. 거리로 쏟아져 나온 ‘촛불 민심’의 승리라는 것이다. 그런데 과연 그럴까? 이 ‘촛불민심’에 대한 해석에 오해는 없는 걸까?

춘추시대 초(楚)나라 수도인 영(郢)에 사는 사람이 먼 북쪽의 연(燕)나라 재상에게 편지를 쓰게 되었다. 밤이어서 하인더러 촛불을 들게 했는데 방 안이 어두워지자 그는 촛불을 잡은 하인에게 ‘촛불을 높이 들어라(擧燭)’고 지시했다. 그런데 글을 받아쓰는 사람이 잘못 이해하여 ‘거촉’ 두 자를 편지에 써버렸는데, 본인은 그 사실을 알아차리지 못했고 문제의 편지는 그대로 보내졌다. 편지를 받은 연나라 재상은 고개를 갸웃했다.

‘촛불을 높이 들어라? 난데없이 이게 무슨 소리지?’ 잠깐 동안 생각하던 재상은 별안간 무릎을 탁 쳤다.
‘옳거니! 이거야말로 나라를 다스리는 핵심이다. 촛불을 높이 들라고 촉구하는 건 밝음을 존중하라는 뜻이며, 구체적으로는 현명하고 어진 선비를 적극 등용하여 정치에 활력을 불어넣으라는 의미가 아니겠는가. 참으로 고맙고 귀중한 가르침이로군!’

다음날 아침 왕을 알현한 자리에서 재상은 ‘촛불을 높이 들어라.’라는 말에서 터득한 자기 정치 철학을 열심히 설명했다. 경청하던 임금은 재상의 탁월한 논리에 매우 기뻐하면서, 곧 그대로 정치에 반영하여 시행이 되도록 했다.《한비자(韓非子》의 외저설편(外儲說篇)에 나오는 고사로서, 여기에서 유래한 ‘영서연설(郢書燕說)’은 ‘말의 뜻을 억지로 끌어다 붙여 교묘하게 이치에 맞추어 제멋대로 해석하는 일’이라는 뜻이다.  

그래도 해석이야 어찌 되었든 그 결과만 바람직하게 나타나면 그보다 더 좋은 일은 없을 것이다. 그러나 요즈음 우리 국민들은 어두운 밤길을 걷는 마음으로 불안한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다. 국민들의 마음을 ‘촛불민심’으로 잘 헤아려 국가와 민족을 위한 백년대계의 초석을 다지는 일이 무엇보다 시급하다. 그러나 이를 어이하나. 터럭을 불어가며 갈지 자 행보를 하기에는 너무나 아까운 시간이 흐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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