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래에서 온 사람

기사입력 2007.04.02 12: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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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장원섭
(강남대학교 외래교수)

1984년 8월 어느 날 아침, 각 신문 1면 톱기사로 경북 영주에서 고구려 벽화고분이 발견되었다는 보도가 있었다. 영주는 원래 신라문화권에 속하는 지역이었기 때문에 그 곳에서 고구려 벽화고분이 발견되었다는 것은 역사학자들에게는 대단히 충격적인 사건이었다.

당시 한국고대사를 전공하며 석사과정에 있었던 나는, 지도교수와 함께 청량리에서 열차를 타고 풍기에서 내려 택시로 발굴 현장이 있는 영주 순흥으로 갔다. 그리고 그 때 처음으로 웬만한 사람이면 볼 수 없는 벽화고분의 내부를 자세히 볼 수 있었다.

채색이 약간 바래기는 했지만, 연도(羨道)의 남쪽 벽에는 명문(銘文)과 어형기(魚形旗)가, 서쪽 벽에는 우람한 청년이 뱀을 몸에 감고 두 손에 뱀의 목과 꼬리를 잡아 역도하는 자세를 취하는 역사상(力士像)이 그려져 있었다. 

그리고 바닥에는 피장자의 유골이 일부 남아 있었다.
발굴단과 함께 식사를 하고 나서 나는 고분 주위를 둘러보았다. 이미 여러 개의 고분들이 석실을 드러낸 채 파괴되어 있었다. 모두 도굴을 당한 것이다. 그 중에서 제일 커 보이는 고분의 석실에 들어가 보기로 했다. 허리를 굽혀 들어간 고분의 내부는 장방형의 석실로 현실(玄室) 내부가 제법 컸다. 바닥에는 도굴 과정에서 깨뜨려진 듯 한 토기 조각들이 어지럽게 널려져 있었다. 

나는 벽 쪽으로 플래시를 비추다가 뭔가 이상한 것을 보고 흠칫 놀랐다. 사방 벽에는 강돌을 쌓아 축조를 하면서 돌과 돌 사이에는 방수를 위해 진흙에다 잘게 썬 볏짚을 섞어 반죽처럼 만들어 발라놓았다. 그런데, 자세히 들여다보니 진흙을 발라놓은 자리 자리에 수 백 개의 지문들이 선명하게 남아 있는 것이 아닌가.

나는 온 몸에 소름이 끼치는 흥분을 가라앉히지 못하고 석실 한 가운데 앉아 눈을 감았다.“역사는 과거와의 대화”라고 카아(E. H. Carr)는 말했던가. 이 무덤의 피장자는 누구일까? 이 지문을 남긴 사람들은 어떤 생각을 가지고 어떤 생활을 하던 사람들이었을까? 이 사람들은 과연 천 여 년이 지난 후에 자신의 후손들에 의해, 그들의 뜻과는 전혀 상관없이 자신들이 일정한 평가를 받게 되리라는 것을 알고 있었을까?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었다.  

조사 결과, 이 고분들은 모두 6~7세기경에 축조된 것으로 판명되었으니까, 나는 1,300~1,400년 전의 사람들과 대화를 한 셈이었다.
나는 그 때 흥분된 마음을 진정시키며 얼마나 가슴 뿌듯한 생각을 했는지 모른다. 아하. 사람들은 이런 느낌 때문에 자기가 전공하는 분야에 더욱 몰입하게 되는구나. 지금에 와서 생각해도 그 만한 느낌을 가져 본 적이 별로 없다. 

영화“백 투 더 퓨처(Back to the future)”를 보면, 주인공이 미래의 좋은 삶을 만들기 위해 과거로 돌아가서 자신의 운명을 바꾸는 소동을 재미있게 그리고 있다.
우리는 역사 공부를 하면서 종종 안타깝게도 자신의 뜻을 제대로 펴 보지도 못하고 시대의 풍운아로 사라진 몇 몇 선각자들을 아쉬워하곤 한다. 그들이 주장했던 사상이나 세계는 다음 세대에 이르러 그대로 현실로 나타났음을 우리는 역사적 교훈을 통해 알 수 있다. 그들을 죽음으로 몰고 간 이른 바 지은 죄는 당시 사회로서는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는 파격적인 사고에 기인한 가치관을 사회적으로 보편화, 일반화하려는 것이었을 뿐이었다. 즉, 시대를 앞서 간 죄밖에는 없었던 것이다.

이제 우리도 그런 역사의 오류를 다시 범하지 않기 위해서라도 다가올 미래 사회에 대한 인식을 바로 해야 하고 그 준비가 필요하다. 
그리고 우리가 미처 깨닫지 못하고 있는 새로운 세계에 대해 구체적이고 과학적인 대안을 제시하는 사람들을 주목해야 한다. 혹시 우리 주변에는 우리보다 한 발 먼저 지나갔다가 우리를 위해 미래에서 다시 온 사람은 없을까.   
우리는 누구나 미래의 우리와 우리 후손들의 모습에 대해 궁금해 한다. 1,300~1,400년 전에 그 고분을 만든 사람들이 그랬고, 오늘을 사는 우리도 마찬가지이다. 
우리들의 100년 또는 그 후의 모습은 과연 어떨까?

[장원섭 강남대학교 외래교수 기자 uljin@uljin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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