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심인(有心人)

기사입력 2018.05.10 17:46  |  조회수 2,2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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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원섭(경민대 교수)
 

해가 바뀌고 시간이 꽤나 지났는데도 만나는 사람마다 인사말은 여전하다. “건강하시고 복 많이 받으시라.”는 말이다. 오랜만에 만난 지인과 차를 한 잔 나누는 자리에서도 빠지지 않는 덕담이다. 예로부터 건강은 제일이니 스스로 챙겨야 하는 것이고, 복은 베푸는 사람에게 저절로 따라 온다고 했다. 가만히 기다려서는 저절로 이루어지는 게 아닌 셈이니, 결국은 꾸준히 노력을 하라는 말이다. 고개를 돌려 벽을 바라보니 ‘유지경성(有志竟成)’이라고 쓴 커다란 액자가 눈에 들어온다.

《후한서(後漢書)》 〈경엄전(耿弇傳)〉에 보면, 광무제(光武帝)와 장수 경엄의 고사에서 유래된  ‘유지자사경성(有志者事竟成)’의 고사가 실려 있다. 줄여서 ‘유지경성(有志竟成)’이라고도 쓰는데 ‘뜻이 있어 마침내 이루다’라는 뜻으로, 이루고자 하는 뜻이 있는 사람은 반드시 성공한다는 것을 일러주는 말이다.

경엄은 원래 문약한 선비였다. 당시 한(漢)나라는 외척인 왕망(王莽)이 온갖 권모술수를 동원하며 나라를 찬탈하여 ‘신(新)’ 왕조를 세웠기 때문에 나라가 망한 후였다. 그러나 한나라를 되찾으려는 사람들이 곳곳에서 봉기를 일으켰기 때문에 세상은 여전히 혼란스러웠다.

집에서 글공부만 하고 있던 경엄은 어느 날 저자거리에서 건장한 장정들이 말을 타고 칼을 쓰며 무용을 자랑하는 광경을 보게 되었다. 경엄은 그 광경을 보면서 문득 이런 혼란스런 현실에서 자신이 해야 할 일이 무엇인지 깨달았다. 그는 글공부를 잠시 뒤로 하고 자신도 장차 대장군이 되어 나라를 되찾는 데 공을 세우겠노라고 마음먹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유수(劉秀:훗날의 광무제)가 병사를 모집한다는 소식을 듣고 달려가 그의 수하가 되었다.
경엄은 수많은 전투에 참가하여 혁혁한 공을 세웠다. 특히, 광무제의 명을 받고 막강한 장보(張步)의 군대와 마주하게 되었는데, 여기에서 이 고사가 유래하였다. 경엄은 전력의 열세를 극복하고 장보의 군대를 격파하여 전세를 역전시키는데 성공함으로써 큰 공을 세웠다. 광무제는 경엄이 부상을 당하고서도 포기하기는커녕 더욱 분전하여 장보의 군대를 물리친 것을 보고 매우 기뻐하면서 다음과 같이 칭찬하였다.

“장군이 전에 남양에서 나에게 천하를 얻을 큰 계책을 건의할 때는 너무 아득하여 실현될 수 없을 것이라고 여겼었는데, 이제 와서 보니 뜻이 있는 자는 마침내 성공하는구려.(將軍前在南陽, 建此大策, 常以爲落落難合, 有志者事竟成也)”
이 고사성어는 큰 뜻을 가지고 그것을 이루기 위하여 꾸준히 노력하면 반드시 성취할 수 있음을 비유하는 뜻으로,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굳건한 의지를 다잡는 의미로 쓰고 있다. 서예를 배우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한번쯤은 써 봤을 것이고, 지인에게 덕담으로 남기는 글에도 빠지지 않는 명구(名句)로 회자되고 있다. 중국 속담에도 “노력은 뜻이 있는 사람을 저버리지 않는다.(功夫不负有心人)”라 했고, “의지가 굳세면 세상에는 못 해낼 일이 없다.(世上无难事,只怕有心人)”라고 했다. 살면서 정말 두려워해야 하는 사람은 “굳건한 뜻을 가진 사람(有心人)”이라는 것이다.

세상을 살다보면 세상이 온통 부패하고 공정하지 않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세상이 왜 이렇게 되었는가 하고 한탄하는 것도 부질없는 일이라는 것도 깨닫게 된다. 저자거리라는 게 원래 권모와 술수가 만연하고 그런 것이 당연하게 오가는 곳이기 때문이다. 그런 세상에서 살아남아 자신의 뜻을 펼치려면 여간 모질게 마음먹지 않고는 힘들다. 성공이라는 게 누가 그저 가져다 바치는 게 아니기 때문이다. “어렵고 힘든 일이 지나면 즐겁고 좋은 일이 온다(苦盡甘來).”는 가르침은 그래서 더욱 귀하게 다가온다. 힘든 일을 참고 이겨내 성공을 해본 자만이 진정으로 그 쾌감을 알 수 있다.

무술년 해가 밝은 지도 벌써 한 달이 지나갔다. 동해를 박차고 솟아오른 뜨거운 태양도 아직 가슴 속에 이글거리며 타고 있다. 올해는 뭔가 좋은 소식으로 새해를 시작하겠지 하는 마음으로 보낸 1월인데, 들려오는 소식은 여전히 우울하기만 하다. 그래도 믿는 구석은 항상 있다. 매서운 설 추위가 물러가면 바로 봄소식이 따라올 것이라는 거다. 단단하게 다졌던 각오가 흐트러지기 전에 마음을 다잡아야겠다.

설날 아침에 ‘유지경성(有志竟成)’으로 잠시 느슨해진 마음을 다시 다잡아보는 것도 좋을 듯하다. 얼어붙은 대지를 뚫고 봄은 이미 앞산을 넘어 들판을 가로지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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