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용(寬容)의 미학

기사입력 2018.10.15 17: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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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원섭(경민대 교수)
 
진(秦)·초(楚)의 쟁패가 끝나갈 무렵, 장강 하류에서 오(吳)와 월(越)이 일어났다. 오나라는 진나라가 초나라를 공격할 때 여러 차례 연합하여 공격하였다. 오왕 합려(闔閭)는 초나라에서 망명해 온 오자서(伍子胥)와 손무(孫武)를 장군으로 삼아 초나라의 수도를 점령하였다. 초 소왕은 황급히 도망했다가 진나라의 도움을 받아 간신히 나라를 건질 수 있었다.

그런데 초를 정벌한 오에 내분이 일어났다. 설상가상으로 초의 지원 아래 국력이 크게 성장한 월이 오를 공격하여 후방을 괴롭혔다. 오왕 합려는 후환을 제거하려고 월을 공격하다가 패하여 전사했다. 아들 부차(夫差)는 부왕의 원수를 갚으려고 푹신한 침대를 놔두고 가시 많은 거친 나무 위에서 자면서(臥薪) 절치부심하던 끝에 월을 공격하여 속국으로 만들었다. 그리고 각 나라의 제후들을 불러 모아 패자(霸者)의 위용을 과시했다.

월왕 구천(句踐)은 왕비와 함께 오로 잡혀가 오왕 부차의 수레를 끌고, 말을 기르며, 청소를 하는 등 온갖 굴욕을 당하였다. 그는 나라를 되찾아 복수를 해야겠다는 일념에서 갖은 치욕을 참아 냈다. 3년 후 본국으로 돌아온 구천은 지난날의 치욕을 잊지 않으려고 쓰디쓴 쓸개를 천정에 메달아 놓고 아침저녁으로 핥으면서(嘗膽) 복수의 기회를 노렸다. 오랜 기다림 끝에 마침내 구천은 오를 공격하여 멸망시켰다. 그 역시 부차와 마찬가지로 각국 제후들을 불러 모아 패자를 자처하며 천하를 호령했다. 우리에게 잘 알려진 와신상담(臥薪嘗膽)의 고사는 여기에서 비롯되었다.

이처럼 패자가 되기 위한 싸움은, 『춘추(春秋)』의 기록에 따르면, 춘추시대 242년 동안 483 차례나 있었고, 초기에 110여 개의 제후국이 각축을 벌였으나 마지막에는 10여 국으로 줄어들어 지역별로 통일이 이루어져 훗날 천하통일의 기반이 되었다.

유명한 병법서 『손자』를 쓴 손무는 바로 이 시대의 인물이었다. 그는 그냥 자기 이론만 외치고 다닌 학자가 아니라, 실제로 전쟁에서 스스로 군대를 몰아 자신의 병법을 입증해 보임으로써 더욱 명성을 얻었다. 그는 오왕 합려를 도와 서쪽으로는 초의 수도 영(郢)을 공략하고 북쪽의 진(晉), 제(齊)와 싸워 항복을 받아낸 명장이기도 하다.

그가 쓴 『손자』의 ‘구지편(九地篇)’에 보면 다음과 같은 내용이 있다.
“군대(兵)를 쓰는 방법에는 아홉 가지의 지(地)가 있는데, 그 마지막이 사지(死地)다. 과감하게 일어서서 싸우면 살 수 있지만 기가 꺾여 망설이면 패망하는 필사(必死)의 땅이다. 그러므로 사지에 있을 때는 싸워야 살 길이 생긴다. 나아갈 수도 물러설 수도 없는 지경이 되면 병사들은 그야말로 필사적으로 싸울 것이기 때문이다. 이때 유능한 장수의 용병술은 상산(常山)에 서식하는 솔연(率然)이란 큰 뱀의 몸놀림과 같아야 한다. 머리를 때리면 꼬리가 날아오고, 꼬리를 때리면 머리가 덤벼들며, 몸통을 치면 머리와 꼬리가 한꺼번에 덤벼든다. 이처럼 힘을 하나로 합치는 것이 중요하다.

예전부터 사이가 나쁜 ‘오나라 사람과 월나라 사람이 한배를 타고 강을 건넌다고 치자. 강 한복판에 이르렀을 때 갑자기 강풍이 불어 배가 뒤집히려고 한다면 그들은 평소의 적개심을 접고 서로 왼손과 오른손이 되어 필사적으로 도울 것이다. 바로 이것이다. 전차(戰車)를 끄는 말들을 서로 붙들어 매고 차바퀴를 땅에 묻고서 적에 대항하려고 해봤자 그것이 마지막 의지(依支)가 되지는 않는다. 그 의지는 오로지 죽을 각오로 똘똘 뭉친 병사들의 마음이다.”
오나라 사람과 월나라 사람이 같은 배를 탔다는 뜻으로, 적대관계에 있는 사람끼리 이해 때문에 뭉치는 경우를 비유한 오월동주(吳越同舟)의 고사도 여기에서 비롯되었다. 원수사이라도 한 배에 타고 있는 한 목적지에 도착할 때까지는 서로 운명을 같이하고 협력하게 된다는 뜻이다. 살아남는 것이 때로는 어줍지 않은 고리타분한 명분보다 더 낫다. 후일을 기약할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 속담에 ‘원수는 외나무다리에서 만난다.’는 말이 있다. 원수는 공교롭게도 피하기 어려운 곳에서 만나게 된다는 말이다. 정보통신이 발달한 오늘날 보통사람들에게는 별로 어울리지 않는 말이 되긴 했지만, 정치를 하는 사람들에게는 여전히 유효한 말이다. 적어도 2년이나 늦어도 4년 만에 반드시 다시 만나 외나무다리 승부를 펼치기 때문이다. 진검 승부는 너무나 냉혹하다. 그러나 영원한 승자는 없는 법이다. 그래서 와신상담이라는 고사는 정치판에서 늘 회자되는 교훈이다.

선거가 끝나니 온통 원수만 남아 있다. ‘원수는 순(順)으로 풀라’는 말이 있다. 원한 관계는 관용으로 풀어야 후환이 없다는 말이다. 그런데 그게 잘 안되는 게 현실이다. 승자(勝者)는 모름지기 패장(敗將)의 경험과 지혜를 받아들여 산적한 어려운 문제를 함께 해결하려는 너그러움(寬容)이 필요한 때다. 적어도 덕(德)을 쌓고 정치를 오래하려면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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