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장(更張)인가 정변(政變)인가

기사입력 2018.10.15 17:06  |  조회수 2,36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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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원섭(경민대 교수)
 
지금으로부터 130여 년 전, 조선은 밖으로는 무력을 앞세워 통상을 요구하는 열강의 침략 위협이 높아지고 있었고, 안으로는 봉건체제의 낡은 틀을 깨뜨리고 근대사회로 나아가려는 변화가 일어나고 있었다. 이런 분위기에 편승하여 일부 양반 관료들과 중인 출신 지식인들은 부패한 정치를 개혁하고 사회경제적 모순을 해결하려는 세력으로 성장하였다.

그러나 개화파 내에서도 개혁의 궁극적 방향을 같이하면서 그 방법에서는 차이를 드러내고 있었다. 온건파는 청나라에 대한 사대외교를 유지하면서 점진적으로 추진하자는 입장이었다. 반면에 급진파는 사대관계 청산을 우선과제로 꼽았고 정권도 타협의 대상이 아닌 타도의 대상으로 삼았다. 결국 온건한 방법으로는 불가능하다는 판단을 내린 급진파에 의해 일어난 것이 바로 1884년 갑신정변이었다. 그러나 주도면밀하게 준비되지 못했던 탓에 이들은 청나라와 일본의 주도권 쟁탈전에 희생양으로 전락하였고 야심찬 계획은 사흘 만에 실패하고 말았다. 근대 시민사회로 나아갈 기회를 놓친 조선은 정치권의 부패와 무능으로 빠르게 몰락의 길로 접어들었다.

1894년 봄, 호남에서 동학농민운동이 일어났다. 농민들은 민중들의 절대적인 지지를 등에 업고 폐정개혁(弊政改革)을 부르짖으며 전라도를 휩쓸고 전주성(全州城)을 점거하였다. 민씨정권은 민심의 향방에 화들짝 놀랐다. 성난 이들을 무력으로 진압할 군대조차 없었던 민씨정권은 급히 관리를 파견하여 동학농민군의 요구를 들어주는 것으로 화해를 성립시켰다. 그러나 관리를 급파해 협상을 진행하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신속하게 청나라에 이들을 진압할 군대 파병을 요청하였다. 정부가 농민군을 속인 것이다. 조선에서 주도권을 다투고 있던 일본은 이를 빌미로 군대를 파견했다. 결국 청일전쟁이 일어났고 두 나라의 싸움터는 조선 땅이었다. 무능한 정부 때문에 조선의 백성은 막대한 피해를 입었다. 정권은 대원군에게 넘어갔고 개혁추진기구로서 군국기무처(軍國機務處)가 설치되고 3차에 걸친 내정개혁을 단행하였다.

원래 경장론을 역설하였던 사람은 조광조와 율곡이 대표적인 인물이다. 율곡은 역사의 모든 시기는 창업(創業)·수성(守成)·경장(更張)의 3기로 구분된다고 보았다. 창업이 이루어지면 그 혁명의 이념과 정신을 잘 보존하고 전수하는 수성의 시기가 오게 되고, 수성이 오래 지속되다 보면 정신과 문물제도가 병들게 되는 시기가 필연적으로 오게 마련이다. 이때 경장을 해야 하는데, 경장할 때가 되어 시기를 놓치면 나라에 큰 병폐가 생기게 된다고 하였다. 그 경장의 내용은 대체로 ① 정치나 학문의 사고방식에서 단순히 권위에 얽매이거나 유속(流俗)에 맹목적으로 따르지 말고 자주적 비판정신을 가질 것, ② 국민들의 생활고를 시급히 해결할 것, ③ 교육과 교육제도의 합리적 운영 및 교육자 우대 등 일대 교육혁신을 단행할 것, ④ 계층 간의 사회적 불평등이 심화된 데서 오는 사회적 폐습을 혁파할 것 등으로 요약된다.

경장이란 원래 가야금의 느슨해진 줄을 다시 팽팽하게 당겨 음을 조율한다는 뜻으로, 나라의 법도가 문란하고 기강이 해이해져서 병들게 되었을 때, 국가와 정치의 근본이념을 생각하여 나라의 정신과 문화를 일신해야 한다는 개혁론에서 출발한 것이다. 이때 중요한 것은 올바른 인재 등용이다.

약 19개월 동안 지속되어온 갑오개혁은 그 시의성(時宜性)과 당위성에도 불구하고 소기의 성과를 거두지 못하고 중도에서 좌절되고 말았다. 개혁을 주도했던 세력이 외세에 너무 의존하였을 뿐만 아니라, 반일과 반침략을 우선시 했던 백성들의 민심을 제대로 반영하지 못한 결과였다. 용인술(用人術)의 실패였다. 실학자 최한기(崔漢綺)도 그의 저서 《인정(人政)》에서 사람을 잘 쓰는 것(用人)은 인정의 마지막 과제로서 이재(理財)와 더불어 국가 경영의 두 기둥이 됨을 강조하였다. 사람을 제대로 쓰지 않으면 경장한다는 것이 겨우 응급책에 불과하다고 지적한 것이다.

새 정부가 적폐청산을 기치로 내걸고 사회개혁의 고삐를 바짝 죄고 있다. 소득주도성장과 세제개혁으로 경제의 틀을 바꾸고, 공기업의 지방 이전으로 지역균형의 틀을 재편하며, 저자거리의 민심을 국정에 적극적으로 반영하면서 병역기간까지 단축해 나가겠다는 야심찬 개혁은 아직 충분한 사회적 공감대를 얻지 못하고 있다. 급기야 소득주도성장론이 비판을 받자 새로운 아젠다로 '포용국가론'을 들고 나왔다.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전 생애를 국가가 책임을 지겠다는 것이다. 그 막대한 비용은 어디에서 나오는가? 결국은 고스란히 세금으로 메울 수밖에 없을 것이다. 갈수록 세간의 인심은 극명하게 나누어지고 있다. 제대로 충분히 준비한 것 같지도 않은데 너무 급하고 과격하게 밀어붙이는 탓일 게다.

지금 우리는 다시 100여 년 전과 같은 중대한 기로에 섰다. 그때와 마찬가지로 남과 북이 힘을 합쳐도 우리의 뜻대로 할 수 없는 것이 현재 한반도를 둘러싼 상황이다. 이 냉엄한 현실을 직시하지 못하면 그 결과는 뻔하다. 아아. 이 어찌 두렵지 아니한가!

우리 모두 다시 한 번 냉정한 눈으로 우리의 모습을 돌아보자. 우리는 지금 어디에 서 있는가? 지금 우리가 맞닥뜨린 현실은 대한민국의 100년 대계를 위한 경장인가, 아니면 급진진보세력의 정변에 불과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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