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크루스테스의 침대
기사입력 2019.02.26 17: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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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원섭(경민대 교수)프로크루스테스(Procrustes)는 힘이 엄청나게 센 거인이었다. 아테네 교외의 강가에 여인숙을 운영하면서 지나가는 나그네를 상대로 강도질을 일삼았다 그는 손님이 들어오면 먼저 침실에 미리 마련해 놓은 자신의 침대에 눕게 했다. 그의 침대에는 사람이 누우면 자동으로 그 길이를 조절하는 보이지 않는 장치가 있었다. 그는 나그네의 키가 침대보다 길면 긴만큼 잘라내고, 침대보다 짧으면 억지로 침대 길이에 맞추어 늘렸다. 그 어떤 나그네도 침대의 길이에 딱 들어맞는 이가 있을 수 없었다. 결국 그의 여인숙에 일단 들어가면 살아서 다시 나오는 사람은 없었다. 악행을 저지르던 그는 훗날 아테네의 영웅 테세우스에게 자신이 저지르던 악행과 똑같은 방식으로 죽임을 당했다.요즘에도 사람들 사이에서 자주 회자되는 ‘프로크루스테스의 침대’라는 표현은 이 신화에서 유래하였다. 자기 기준이나 생각에 맞춰 남의 생각을 바꾸려 하거나, 폭력적인 행태를 보이면서까지 자기의 주장을 굽히지 않는 아집과 횡포를 부리는 극도로 융통성이 부족한 태도를 이르는 말이다. 힘 있는 사람일수록 주변의 고언을 경청하지 않는다. 남의 생각을 무조건 무시하고 자신의 주장을 내세우며 독단적인 논리를 펼치기 일쑤다. 자신의 주장의 옳고 그름은 전혀 중요하지 않다. 우리 사회의 ‘갑질문화’ 역시 그 한 사례로 볼 수 있다.사실 ‘프로크루테스의 침대’라는 신화가 가지는 의미도 크다. 전형적인 독재정권의 기준으로 비유할 수 있기 때문이다. 길면 자르고, 짧으면 늘려서 본래의 모습을 가질 수 없도록 하는 괴력을 가진 존재, 이름하여 바로 ‘독재자’일 것이다.이 비유를 오늘날 우리나라의 시민운동에 적용하면 어떻게 될까? 오늘날 우리 사회에서도 청산해야 할 많은 구체제의 습관과 제도, 가치관들이 있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이러한 사회적 모순을 합리적으로 해결하고, 우리 사회를 더 청정하게 만드는 역할을 해야 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오늘날 시민운동을 이 침대에 눕혀 놓으면 긴가, 아니면 짧은가? 시민운동의 방향과 그들이 추구하는 잣대는 과연 우리 사회가 지향하는 방향성에 최적인가? 아니면, 정당하고 공정하게 적용해야 할 기준을 상대에게만 적용하고 만족하는 아집과 불소통의 횡포인가?민주주의는 어떻게 종말을 맞이하는가. 이런 질문을 던졌을 때 우리의 머릿속에 떠오르는 건 쿠데타를 일으킨 군인들이 탱크를 몰고 거리를 진격하거나, 시민들의 추앙을 받는 지도자가 정적의 총칼에 맞아 목숨을 잃는 장면이다. 실제로 냉전 기간 동안에 일어난 ‘민주주의의 죽음’ 가운데 대부분은 쿠데타에 의한 것이었다.그러나 오늘날 민주주의는 아이러니하게도 국민이 선출한 지도자의 손에서 죽음을 맞이하고 있다. 선출된 독재자는 국민의 지지라는 이름으로, 사법부를 효율적으로 개편한다는 명분으로, 부패 척결이라는 기치를 내세우며 민주주의를 파괴한다. 시민들은 투표를 통해 지도자를 뽑고, 지도자는 적법한 절차를 밟아 권력을 휘두르는데도 민주주의가 뒤흔들리는 사례가 지구촌 곳곳에서 목격되고 있다. 베네수엘라의 차베스 정권이 그랬고, 트럼프의 미국 역시 이런 논란에 휩싸여 있다.하버드대 정치학과 교수인 스티븐 레비츠키와 대니얼 지블렛은 ‘어떻게 민주주의는 무너지는가’ 라는 책에서 바로 이런 문제를 다루고 있다. 저자들이 이 책을 지은 동기는 종잡을 수 없는 트럼프의 국정운영이었다. 두 저자는 잠재적 독재자를 감별할 수 있는 네 가지 신호를 제시한다. ① 말과 행동으로 헌법을 위반할 뜻을 드러내거나 선거 불복 등을 언급한 적 있는가. ② 정치 경쟁자를 적으로 몰아세우고 헌법 질서의 파괴자라고 비난한 적 있는가. ③ 폭력을 용인하거나 다른 나라의 정치 폭력을 칭찬 또는 비난하기를 거부한 적 있는가. ④ 상대 정당이나 시민단체·언론에 법적 대응을 하겠다고 협박한 적 있는가. 이 중 하나라도 해당한다면 민주주의를 파괴하는 독재자에 해당한다.두 사람은 민주주의를 지키는 것은 헌법이나 제도가 아니라, ‘상호 관용’과 ‘제도적 자제(institutional forbearance)’라는 규범이라고 역설한다. 상대를 인정하는 정치문화, 그리고 법적인 권리를 신중하게 행사하려는 태도가 민주주의를 수호한다는 것이다.촛불항쟁으로 탄생한 문재인정부는 어떤가? 집권 여당 대표는 선거 기간 내내 개혁 진영이 성과를 내려면 최소 20년 집권이 필요하다고 포효했었다. 그런 그가 이번에는 북한을 방문해 북한 지도자들 앞에서 자신이 살아있는 한 절대 정권을 안 빼앗기게 단단히 마음먹고 있다고 자신감을 드러냈다. 그 오만함과 오기에 감동을 해야 하나, 아니면 섬뜩하게 느껴야 하나? 만약 그것이 가능하다면 우리는 20년 뒤 어떤 대한민국을 만나게 될까.‘혁명은 썩는다.’고 했다. 그들이 말하는 사회혁명 역시 필연적으로 썩게 될까. 쥔 자의 오만함을 드러내기 전에 정말 야당에 대해 관용의 자세로 접근했는지, 결정적 순간에 제도적 자제력을 발휘했는지 한번 곰곰이 짚어볼 일이다. 정권을 뺏고 빼앗기는 논리로 보는 지도자, 경쟁자를 적(敵)으고 간주하는 리더는 잠재적 독재자라고 규정한 두 학자의 경고가 서늘하게 느껴지는 아침이다.
[장원섭 교수 기자 jangsfarm@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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